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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밥을 통해 배우는 삶의 지혜 "먹는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
공양供養, 불가에서는 밥을 먹는 것이 곧 ‘받들고 베푸는’ 일이다. 내 입으로 밥 한 술, 반찬 한 젓가락이 들어오기까지 자연이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었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는지를 가슴 깊이 새기는 일이다.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자기 성찰과 지혜의 길로 이끌어주는 사찰 음식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된다. 매일 하고 있는 ‘먹는다’라는 행위의 진정한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의 진화 스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사찰 음식으로 유명한 봉녕사의 산사 음식을 배우면서 그 의미에 가까이 다가가보자.


즐겁게, 적게, 채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의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요즘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는 ‘3소식’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모든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먹고 (笑食), 내 몸에 필요한 양만큼만 적게 먹으며(小食), 육식을 멀리하고 채식(蔬食)을 하자는 내용의 식생활 운동이다. 이렇게 먹는 것이 과연 내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정말 먹는 것이 바뀌면 삶도 바뀔 수 있을까.
“먹는다는 것은 본능적 욕망에 의해 다른 존재를 섭취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섭취한 에 너지를 통해 새로운 생각,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지요. 그러니 우리가 조금 더 건강하고 평화로운 섭식을 한다면 그만큼 더 아름답고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단장 진 화 스님은 모두가 ‘건강하고 평화롭게’ 먹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은 3소식 캠페인에 우리 모두가 지향하는 삶의 모습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세상의 변화는 먹는 것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불교 최대 의식인 영산재靈山齋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가 바로 ‘식당작법食堂作法’이다. 죽은 사람의 넋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의식의 하이라이트가 바로 ‘먹는’ 행위라는 것에는 큰 뜻이 담겨 있다. 영산재는 부처님을 청해 공양을 올린 후, 하늘의 천신과 신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그다음 죽은 이의 넋을 천도薦度하는 순으로 진행한다. 식당작법은 마지막에 스님들이 발우 공양鉢盂供養을 하는 의식인데, 스님들은 재를 설판說辦(신도와 승려가 한 법회의 모든 비용을 마련한 일)한 이의 공덕을 기리고,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며 실제로 음식을 먹는다. 진화 스님은 식당작법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사실 영산재에서 하는 발우 공양은 실제로 매일 스님이 하는 일상 식사 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의식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스님의 현실적 문제이기도 하고 수행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식사를 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은 음식에서 얻은 자양분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음식을 먹기까지 수고한 모든 이에게 공덕이 돌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며 먹기 때문입니다.”
진화 스님은 스님의 식사법인 발우 공양에 상당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 발우 공양의 의미가 오롯이 담긴 것이 바로 ‘3소식 캠페인’이기 때문에 이 운동에 동참하는 것은 발우 공양의 의미를 내 몸에, 내 삶에 담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단장 진화 스님은 음식을 먹는 행위가 자기 수행의 과정이라고 한다.

발우 공양, 치열한 자기 수행 시간
절에서 수행하는 사람이 발우 공양을 할 때 염송하는 경전이 있는데 <소심경小心經> 이다. 불자가 공양하기 전에 외우는 ‘오관게五觀偈’는 바로 이 <소심경>에 수록된 열 가지 염송문 중 다섯 번째 게송이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을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오관게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음식은 결국 다른 생명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무수한 천지자연의 은혜와 수많은 이의 수고로움이 더해져 만들어졌지요. 결국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다른 생명에 의지해 나의 생명이 영위되고 있음을 깨닫는 행위입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모든 것이 연기緣起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존재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지는 위대한 행위입니다.”
불교에서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오로지 육신을 지탱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에너지원이자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삼독三毒을 치료하는 약으로 본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 근원을 자각한다면 결코 음식 맛을 탐하고 양껏 누릴 수 없다. 불자가 매번 식사할 때마다 오관게를 염송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음식을 대하고 먹는 것을 감사하고, 음식을 먹고 잘 수행해서 모든 사람에게 받은 은혜를 돌려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탐심을 없애고 쌀 한 톨, 고춧가루 하나라도 버리지 않으면서 발우를 깨끗하게 비우는 것은 발우 속에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해탈의 세계를 담는 것과 다를 바 없다.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생존을 위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밥상 앞에 앉는다. 내 앞에 놓인 음식들 속에서 나와 인연이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이미 당신의 도업道業은 시작된 것이다.

건강식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위해
불교에서는 ‘중도中道’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건강이라는 개념도 육체와 정신이 조화롭게 유지되는 상태로 이해한다. 육체를 ‘진리를 담는 그릇’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수행자에게 육신을 청정한 그릇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정신 수양만큼이나 중요하다. 나의 육신은 물론, 내 몸이 건강하게 생존하도록 도와주는 먹을거리 그리고 그것을 길러내는 사람들을 모두 존중하는 마음. 사찰 음식은 그런 근본적 건강 비결을 일깨워준다. 봉녕사에서는 환절기가 되면 감기에 걸리는 많은 스님의 건강을 위해 감기 예방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공양하곤 한다. 인삼과 수수는 노폐물을 배출해주고 피를 맑게 해주는 대표 식자재로, 계절이 바뀌면서 몸이 찌뿌드드할 때 생기를 되찾게 해준다.


인삼국
재료
인삼 4뿌리, 표고버섯 4개, 숙주 100g, 고춧가루 1큰술, 들기름 2큰술, 소금 약간, 채숫물 적당량
만들기
1 인삼은 깨끗이 씻어 어슷하게 썰고, 표고버섯은 저민다.
2 냄비에 고춧가루와 들기름을 넣고 약한 불에 올려 끓이면서 고추기름을 만든다.
3 ②에 인삼과 표고버섯, 숙주를 넣고 달달 볶은 후 채숫물을 붓고 푹 끓여 소금으로 간한다.
채숫물은 사찰에서 고기나 멸치 대신 다시마, 무, 말린 표고버섯 등을 넣고 끓인 맛내기용 국물을 일컫는 것으로 조림, 무침, 국 등 다양한 사찰 음식에 사용하는 기본 재료다.

수수경단죽
재료
수수 가루 2컵, 찹쌀가루 ½컵, 채숫물 적당량, 소금ㆍ조선간장 약간씩
만들기
1 채숫물을 만든다.
2 수수 가루와 찹쌀가루에 소금을 넣고, 익반죽(뜨거운 물로 반죽)해 치댄다.
3 ②의 반죽을 엄지손톱 크기로 동글동글하게 빚는다.
4 끓는 채숫물에 ③의 수수 옹심이를 넣고, 떠오를 때 소금과 조선간장으로 간한다.

*화이트 도자기 볼은 우일요, 놋숟가락은 정소영의 식기장, 대나무로 짠 사각 함은 규방도감.


지혜식 자연에 감사하고 함께 사는 지혜를 배운다
인간이 건강하게 생존하기 위한 기본 전제는 바로 자연과의 공생共生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자란
제철 음식을 기본으로 하는 사찰 음식에는 바로 생명의 가치와 자연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있다. 절밥은 아주 다양한 제철 식자재를 이용해 만든다. 때로는 ‘이런 것도 먹을 수 있을까’ 싶은 재료로 만든 음식도 상 위에 오른다. 사찰 음식에서 사용하는 재료를 통해 우리는 오랜 시간 축적해온 인간의 생존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아주 짧은 기간 동안만 맛볼 수 있는 계절의 산물은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봉녕사에서 추천하는 봄 채소는 머위꽃대와 민들레다. 머위는 보통 잎을 데쳐서 무쳐 먹는데 꽃대의 맛도 일품이다. 봄에 나오는 초록색 채소는 다 먹어도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독이 없다는 의미다. 특히 쓴맛이 나는 봄풀들은 입맛을 돋우고 원기를 되찾는 데 도움이 된다.


머위꽃대전
재료
머위꽃대 10송이, 밀가루 ⅓컵, 전분ㆍ소금ㆍ식용유 약간씩, 채숫물 적당량
만들기
1 머위꽃대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2 밀가루에 전분과 소금을 약간 넣고 채숫물을 부으며 멍울이 생기지 않도록 잘 푼다.
숟가락으로 떠서 똑똑 떨어질 정도로 농도를 맞춘다.
3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①의 머위꽃대를 ②의 밀가루 물에 송이째 담갔다 부친다.
제피 잎을 띄운(또는 다진 제피 잎) 조선간장에 전을 찍어 먹으면 좋다.

민들레겉절이
재료
민들레 200g, 고춧가루 3큰술, 매실액ㆍ조선간장 2큰술씩, 깨소금 약간
만들기
1 민들레는 잘 다듬어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는다.
2 볼에 양념을 모두 섞어놓고, 민들레를 넣어 젓가락이나 수저로 살살 버무린다.

*나무 트레이는 규방도감, 꽃무늬 백자와 연적, 벼루는 우일요, 흑자 그릇은 정소영의 식기장, 나무 젓가락은 토요.

수행식 먹는다는 것은 깨닫는다는 것
사찰 음식은 단순한 채식이 아니다. 사찰에서는 음식 재료를 재배하고 구하는 일부터 음식을 만드는 일, 먹는 일, 이 모든 것이 수행 과정이다. 지혜를 얻기 위해, 정신을 수양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 절밥이다. 사찰 음식을 배운다는 것은 조리법이 아닌 음식에 담긴 철학과 정신을 배우는 것이다. 공평하게 나누고, 감사하며 먹고, 버리지 않고 남김없이 먹는 스님들의 식사인 발우 공양은 절밥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봉녕사에서 소개하는 수행식은 스님들 발우 공양에 등장하는 모시나물무침과 으름나무순무침이다. 모시나물은 남쪽 지방에서 많이 먹는 재료로, 모시 잎은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쌈으로도 많이 먹는다. 봉녕사 경내에서도 자라는 으름나무는 다래 같은 달콤한 열매가 열리는 나무인데, 봄에는 그 순으로 무침 요리를 해 먹곤 한다. 으름나무순무침은 봉녕사 승가대학 학장이던 세주당 묘엄 스님이 즐겨 먹은 음식이기도 하다.


모시나물무침과 으름나무순무침
재료
모시나물 200g(또는 으름나무 순 200g), 조선간장 2큰술, 들기름 3큰술, 깨소금 약간
만들기
1 나물은 씻어 소금을 약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2 ①을 찬물에 두어 번 씻은 후 꼭 짠다.
3 볼에 나물을 풀어 담고 분량의 양념을 모두 넣고 조물조물 무쳐낸다. 모시나물무침과 으름나무순무침은 만드는 법이 같다. 모시나물과 으름나무 순이 없을 경우 다른 봄 채소를 이용해도 좋다.

*나무 받침대와 도자기 접시는 토요, 패브릭은 우일요.

이달 ‘아는 만큼 맛있다’는 경기도 수원시 광교산에 있는 봉녕사의 사찰음식교육관 부원장 동원 스님이 음식의 순수한 맛과 향을 살리는 사찰 음식을 건강식, 지혜식, 수행식으로 나누어 제안해주었습니다. 요리 카드는 봉녕사에서 즐기는 봄철 별식을 모았습니다. 봉녕사는 비구니의 수련 도량으로, 사찰음식교육관 ‘금비라’가 있으며 템플 스테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요리 동원 스님(봉녕사 사찰음식교육관 부원장) 스타일링 강혜림, 김지나 소품 협조 규방도감(02-732-6609), 우일요(02-763-2562), 정소영의 식기장(02-541-6480), 키엔호(02-717-6754), 토요(02-722-1260) 취재 협조 봉녕사(031-256-4127), 한국불교문화사업단(02-2031-2041, www.kbuddhism.com)

글 전은정 |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