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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꽃몸살'이 나고야 마는구나!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淸明. 이 생명력 왕성하고 할 일 많은 4월의 첫 주를 몸살감기로 꼼짝없이 누워 보냈습니다. 이른 봄부터 꽃을 찾아 내려온 상춘객들과 진달래, 매화, 산수유 꽃놀이를 하다가 말이지요.


봄에 시작한 ‘월인정인’의 빵 수업. 그의 빵은 우리밀을 사용한다. 또 고사리와 냉이 베이글, 쑥부쟁이 피자, 진달래,산수유, 딸기꽃, 제비꽃 등 봄꽃을 넣은 롤 케이크 등 자연 재료를 적극 활용해 맛은 물론 눈까지 행복하다. 그의 새 책 <심플 브레드>가 나온 이날, 작업실에선 봄꽃 피자를 곁들인 축하 파티가 열렸다. 

이 화창한 봄날, 마지막 손님을 보내고 나서 몇 날 며칠을 고열과 잠과 약에 취해 해롱거렸습니다. 전기담요를 제일 높은 온도에 맞춰놓고 두꺼운 이불을 두 채나 뒤집어쓰고 말이지요. 만물이 소생하는 이 봄에 속수무책도 이런 속수무책이 없습니다. 갈아둔 밭에는 옥수수, 강낭콩, 바질씨도 뿌려야 하고, 쑥쑥자라고 있는 양파에 퇴비 뿌리기, 어느덧 다 자란 두릅 따기, 농협에 가서 퇴비 신청하기,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빵 수업 참석 전 복습하기, 냉장고에 넣어둔 현미 발효종에 밥 주기, 건축가에게 건넬 ‘드림 하우스’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 문서로 작성하기, 지역 시공업자 찾기, 은행 일 보기, 인터넷으로 책 주문하기, 이젠 부팅마저 안 되는 컴퓨터를 고쳐 그 안의 사진 파일들을 외장 하드에 옮기기, 청탁받은 원고 쓰기… 자잘한 할 일이 태산인데 말이지요.

시골집, 손님이 찾아드는 힐링 캠프
시골에서 유유자적 한가롭게만 지낼 것을 상상하는 사람은 시골에 살면서 어떻게 병이 날 수 있는지, 왜 컨디션이 안 좋다는 것인지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게요. 저 또한 제가 시골에서 이렇게 지칠 줄이야 상상도 못 했습니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의 저자 마루야마 겐지의 주장처럼 어딜 가든 삶은 따라오는 것이고 시골에 간다고 건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급자족에 가까운 삶이기에 하루 세끼 먹으려면 세끼를 꼬박꼬박 손수 차리고 치워야 하고, 또 이를 위한 재료들도 파, 쪽파부터 된장과 고추장을 위한 콩, 고추 농사까지 스스로 일구어야 하니 어찌 보면 하루 종일 ‘먹고 살아보겠다고’ 보급 투쟁을 하는 느낌입니다. 거의 모든 아이템의 거의 모든 프로세스를 다 한다는 것은 소량 다품종 생산의 비효율과 어설픔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 한 번도 본 적 없이 자란 초보자로서는 피할 수 없는 시행착오이자 혼란과 좌절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본 시골 생활은 낭만적인가 봅니다. 그래서 일까요, 이른바 ‘힐링 캠프’라 불리는 저의 집에 지난 3년간 손님이 없던 계절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봄이면 꽃 보러, 여름이
면 피서로, 가을이면 단풍 구경으로….
올봄도 예외는 아닙니다. 화보에 봄꽃을 담으려는 잡지 쪽 선후배부터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여행하는 길에 들른 지인, 강원도의 겨울이 지겨워 남쪽으로 피난 온 양양의 친구, 귀농한 친구를 따라서 찾아온 친구의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들, 생일잔치 대신 2박 3일 남도 여행길에 오르신 모친과 부친, 자신도 지리산 자락에 터전을 잡아보겠다며 시골의 빈집과 땅을 찾아 나선 선배까지! 그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공자는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악호아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라고 했는데 방문객의 소식에 저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 집니다. 단언컨대 공자님 살아계신 때는 이렇게 하늘길 땅 길이 빵빵 뚫려서 단 몇 시간이면 강원도든 전라도든 제주도든 갈수 있는 때가 아니어서 하실 수 있는 말씀이었다고 봅니다. 하여간 시골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을 꼽으라면 저는 단연코 ‘손님’ 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저의 손님들이 폐를 끼치는 무례한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대부분 가족같이 지내는 정말 반가운 얼굴입니다. 만약 이곳이 시골이 아니었더라면 가로수길 어느 카페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 꽃을 피우다가 저녁이 되면 각자 집으로 향했을 친구들…. 그런데 시골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기 며칠 전부터 이런저런 준비가 필요합니다. 차편은 무어냐, 일행은 몇이냐, 가족이 오느냐 친구들과 오느냐, 몇 박을 묵을거냐, 어디서 잘 거냐, 우리 집은 방이 하나뿐이니 불편하면 동네에 방을 구해놓겠다, 몇 시에 도착하냐, 그러면 오는 길에 어디를 구경하고 오라, 동선이 그렇다면 점심은 섬진강 변 어디로 가서 먹고 오고, 저녁은 우리 집에서 막걸리나 하자, 그러고 나서 다음 날은 어디 어디를 꼭 보고 올라가거라 등… 저는 여행 가이드 내지는 지역의 홍보 대사가 됩니다. 또 때에 따라서 는 운전기사에 촬영기사까지. 하여간 손님이 오면 그 순간부터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손님맞이 장보기와 청소부터 마무리 설거지까지, 그저 모든 일정을 내려놓고 함께 관광객이 되는 게 최상의 선택입니다.


 ‘꽃 절’로 유명한 선암사의 매화. 수백 년 같은 자리를 지켜온 매화의 모습이 아름답다 못해 신령스러운 느낌이다. 


화엄사 각황전의 홀로 당당한 홍매화. 유난히 색상이 짙어 흑매라고도 부르는 이 나무에 꽃이 피는 날은 모두가 사진가이고 화가이고 시인이 된다. 

선암사로 떠나는 꽃구경
그리하여 올봄, 저는 또 한 차례 꽃구경을 제대로 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건 회색빛 산을 배경으로 피는 산동의 산수유들이요 (올해는 두 주나 일찍 폈습니다), 그다음은 섬진강 변의 매화입니다. 광양 쪽이 좀 더 따뜻한지, 구례에 매화가 필 무렵 화개장터 쪽은 벌써 벚꽃이 피어 빼도 박도 못 하는 왕복 일차선 길에는 벌써 관광버스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남쪽이라고 해도 순천 선암사 쪽은 산중이라 기온이 더 낮습니다.
구례에 벚꽃이 핀 날, 혹시나 하면서 찾은 선암사는 군데군데 진달래가 피었을 뿐 아직 황량한 겨울 숲의 모습이었습니다. ‘만약 매화가 아직 안 피었으면, 예쁜 동백이라도 보고 오지 뭐…’라는 생각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횡재입니까. 6백50년이 되었다는 ‘선암매’를 비롯해 수령이 적어도 3백 년, 길면 6백 년에 이르는 매화 수십 그루가 그 절정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젊어서부터 꽃꽂이며 원예며 좋아해서 꽃집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고 친구들과 돈을 모아 전 세계 꽃 박람회를 찾아다니신 모친에게는 최고의 생신 선물이 되었지요.
선암사의 매화가 별천지 같은 몽환적인 분위기라면 화엄사의 홍매는 홀로 당당한 모습입니다. 조선 숙종 때 각황전을 중건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이라는데, 꽃 색깔이 검붉어서 ‘흑매’라고도 부릅니다. 탐매가 중에는 이 흑매를 남도 으뜸으로 치는 사람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태가 보다 여성스러운 선암사 매화를 선호합니다. 선암사의 매화가 <순수의 시대>의 위노나 라이더라면, 화엄사의 흑매는 미셸 파이퍼 같다고 할까요? 강하고 진한 도전적 여성 모습을 띤. 하여간 매화는 많은 꽃 중에서 으뜸임은 분명합니다. 이른 봄에 피우는 어여쁜 꽃이며 그 고아한 향기며!


냉장고에 있는 갖은 재료로 만든 샐러드.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로 간해 먹을 수 있는 계절 꽃 몇 송이를 곁들이면 근사한 한 접시가 뚝딱 완성된다. 


세이지, 산수유, 제비꽃과 진달래를 듬뿍 넣은 롤 케이크.

‘매화 곁을 지나다가’ - K
“아직 목 시린 찬 바람인데, 코끝의 향기가,/ 머릿속을 간질이키는데, 향기의 그늘 끝쯤에 서 있는/ 누구시더라,/ 아! 누구시더라, 붉고 흰 살냄새로 흔들리는/ 매화 꽃잎 같은/ 아득아득한.” 이른 봄 섬진강 변을 따라 함께 매화 마중을 나갔던 한 시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시입니다. 아름다움과 그리움, 절개. 매화를 여인의 꽃이자 여인 자체로 본 것이지요. 뭐 그 여인이 저는 아닙니다만 달리는 버스 안에서 시상을 정리했을 모습을 떠올리니 손님치레가 전혀 보람 없는 것은 아니지 싶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시골살이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들은 전화라도 하고 오지만, 시골의 이웃들은 그저 어느 날 한 손에 막걸리 한 병 검은 비닐봉지 하나 들고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산에 갔다가 자연산 버섯을 좀 구해서, 비도 오고 할 일도 없고 해서, 낮에 장터에서 제대로 인사를 못한 거 같다며, 서울서 온 친구에게 동네 구경을 시켜주고 싶다며…. 얼결에 손님을 맞아 냉장고를 뒤져 술안주를 내고, 부침개 한 장에 같이 한잔 기울이다 보면 건너편에 내걸린 빨래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속옷이며 양말이며, 먹다 둔 빵 쪼가리며, 쌓아놓은 설거짓거리며 머리가 아득해집니다.
그러니 시골에 살려면 대문만이 아니라 모든 걸 열어둘 정도로 강심장이어야 합니다. 숨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숨길 틈도 없습니다. 개인적 시간이건 사적 공간이건 조촐한 세간부터 소소한 가정사에 통장 잔고까지, 모두 다 열어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꽃 대궐 구례, 지리산과 섬진강 가에 사는 자로서 받아 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면 견디고 무뎌지고 뻔뻔해져야 한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 아닌 나’로 버텨보려니 몸과 맘에
몸살이 납니다. 시름시름, 끙끙….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시 한 편이 위로가 됩니다. 옛 학자 송익필宋翼弼(1534~1599)의 ‘보름달’이라는 시입니다. “未圓常恨就圓遲미원상한취원지/ 圓後如何易就虧원후여하이취휴/ 三十夜中圓一夜 삼십야중원일야/ 百年心事總如斯 백년심사총여사(언제나 보름달 차는 것이 늦음을 한탄하더니/ 달이 차면 어찌 그리 쉬이 이지러지는고/ 한 달 서른 밤에 하루 밤만 보름인데/ 우리네 백년 인생 또한 이와 같구나).”
‘한 달 서른 밤 중 하루 밤만 보름인 것을!’,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매일매일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많은 다른 날을 부족하다, 불행하다 여기는 마음이 오류요 욕심임을 깨닫습니다.
이것저것 척척 해내는 ‘뛰어난 능력’과 퍼줘도 퍼줘도 부족하지 않을 ‘넘치는 에너지’를 갖고 싶으나, 부족한 대로 이러한 나를 구박하지 말고 아껴줘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언젠가 좀 더 씩씩하게, 좀 더 당당하게, 좀 더 편안하게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줄 때가 오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점심엔 보양식까지는 못 되더라도, 갓 올라온 상추와 부추에 기름기 가득한 차돌박이를 한 근 정도 사정없이 먹어야겠습니다. 아브라카다브라, 에너지 가득 차오르길 기원하며 말입니다.

글과 사진 정현선 | 담당 김민정 수석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