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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민예관 푸드 아티잔 프로젝트 첫 번째 이야기 전통주와 치즈의 신선한 맛 궁합
숙련된 손끝으로만 장인을 말할 수는 없다. 전통주 장인 김택상 씨와 치즈 명장 김소영 씨의 만남에서 도전과 소통으로 세상을 품고 나아가는 오늘날의 진정한 장인의 모습을 보았다.


치즈 명장 김소영 씨(왼쪽)와 삼해주 기능보유자 김택상 씨. 북촌민예관에는 삼해주 체험 공방이 마련돼 있다.

우리 전통문화를 ‘오늘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일은 전통 장인에게만 기대어서는 안 되는 우리 모두의 과제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전통문화에 현재적 의미를 담기 위해 마련한 공간 북촌민예관(구 북촌전통공방)에서 지난 7월 18, 19일 양일간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전통 식문화의 가치를 계승하는 장인과 명인을 찾아 현대 문화와 융합하는 ‘푸드 아티잔 프로젝트Food Artisan Project’의 첫 번째 자리로, 서울 전통주 삼해주 장인 이동복 여사(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 삼해주 소주장)를 이은 삼해주 기능보유자 김택상 씨와 미국에서 수제 치즈 공방을 운영하며 미국 스타 셰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치즈 명장 김소영 씨가 만난 것.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동환 대표는 첫 행사를 진행하며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한국 전통주와 치즈는 언뜻 보면 땅과 하늘처럼 접점이 전혀 없을 듯하지만, 이 두 세계의 장인이 만나면 진정한 소통과 울림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도 우리 음식 문화의 무궁무 진한 진화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김소영 씨는 북촌민예관에서 김택상 씨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친해지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전통주와 치즈는 발효 음식으로, 오랜 시간 기다려서 얻는 귀하디귀한 맛의 세계를 삶 속에서 오롯이 느끼기 때문일 터. “분야가 다를지라도 모든 장인은 서로 통하는 게 있게 마련이지요. 저는 새로운 장인을 만날 때 손을 먼저 보고 마주 잡습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 그 손에서 탄생하죠. 그 숨은 이야기와 정신이 모두 손에 담겨 있는 듯해요. 그렇게 우린 통하는 겁니다.”

김택상 씨의 전통주를 음미한 후 김소영 씨는 와인과 치즈처럼 전통주와 치즈도 서로 어우러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김소영 씨가 제안하고 김택상 씨가 의견을 보태 두 음식을 페어링했다. 와인과 치즈를 페어링할 때 일반적으로 생산지가 같거나 성질이 비슷한 것끼리 맞추는 방법, 아예 성질이 서로 반대되는 것끼리 맞추는 방법 그리고 성질이 강한 것과 약한 것을 맞추는 방법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전통주와 치즈의 페어링 결과를 발표하고 의견을 나누는 이날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세 가지 방법을 모두 경험했다. 또한 이 행사를 위해 북촌 민예관에서는 도예가 이창화, 이능호, 유리공예가 김성연 씨의 치즈 플레이트와 도예가 김지아나 씨의 잔을 새로 마련했으며, 소담떡방 최대한 떡 명장의 삼해주를 이용한 떡도 준비해 다양한 분야의 장인이 협업하는 입체적 행사를 연출했다.


1 서울 지역 전통 가양주 삼해주를 내리는 모습. 삼해주는 덧술을 세 번 담가 정성도 많이 들어가고 맛도 좋아 조선시대 궁중과 양반가에서 즐겨 찾던 최고급술이다.
2 미국에서 치즈 공방을 운영하는 김소영 씨는 이날 행사를 위해 자신이 직접 만든 수제 치즈를 공수했다.

3 톱 셰프들의 칭송을 받는 치즈 명장 김소영 씨는 미국에서 14년째 자신의 치즈 공방 안단테 데어리를 운영하고 있다.
4 북촌민예관에서 시연 중인 김택상 씨. 이곳에서 탁주인 삼해 막걸리, 이를 걸러내어 술을 숙성시킨 삼해약주, 약주를 증류한 삼해소주를 시음할 수 있다.

음식에 담긴 비밀과 철학을 공유하다 샌프란시스코 바닷가 언덕, 너른 목장에서 염소와 함께 살며 자신의 공방에서 치즈를 연구하고 만들 때가 가장 행복한 여인. 부드럽고 여린 인상의 치즈 명장 김소영 씨는 외유내강의 대표 모델이다. 그가 14년 동안 운영해온 치즈 공방 안단테 데어리Andante Dairy에서 만드는 치즈는 토머스 켈러 등 미국 스타 셰프의 열렬한 지지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미국 내 유력한 언론에서 손꼽을 정도로 최고 수준이니 말이다. 연세대와 카이스트에서 식품공학과 생명공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여행 중 운명처럼 치즈의 매력에 빠져들고 미국에서 낙농학 박사과정을 마친 후 최고의 수제 치즈를 만들기까지 김소영 명장은 식지 않는 열정으로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찾은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가 발견한 것이 바로 전통주였다. “옹기 꼬리에서 소주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한국 사람이지만 미국에서 가장 서양적인 음식을 만들며 치즈만 파고든 저의 식견을 넓혀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그도 김택상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 전통주를 전혀 몰랐다. 하지만 어릴 적 할머니와 지낸 기억 덕에 한옥 아궁이와 옹기 등 전통주를 만드는 환경은 친근하게 다가왔다고. 전통주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술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순간과 풍경 속에서 느낀 감성을 공유하고 싶어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그는 우리 전통문화에 흐르는 정신과 이를 이어나가는 장인 정신에 공감하며 ‘인간미’를 발견했다. “음식이든 문화든 익숙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여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러면 분명 어떤 아름다움을 발견할 거예요. 지금 외국에선 동양 술이 유행입니다. 동양 음식에 대한 이해와 취향이 곧 수준이며 대세가 됐지요.”

김소영 씨는 막걸리와 치즈의 매치가 아주 흥미로웠다고. 막걸리는 혼탁해 보이지만 뒷맛에 곡기가 남고 기포가 있다. 이런 질감을 맞추기 위해 그는 염소젖과 우유를 혼합해 만든 연질 치즈 ‘피아노포르테pianoforte’를 내놓았다. 언뜻 보면 모래가 침전한 것 같지만 입안에서는 부드럽게 넘어가며 막걸리의 곡기와 어우러진다. 막걸리의 산도와 잘 어우러지는 연질 염소젖 치즈 ‘에튀드etude’, 샴페인과 즐기는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parmigiano reggiano’도 산뜻했다. “삼해막걸리와 약주에 맞춘 치즈는 성질이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잘 어울렸어요. 반면 소주는 알코올 도수와 맛이 강한 편이기에 소프트 치즈보다는 단단하고 소주에 비해 살짝 맛이 부족한 듯한 치즈를 맞추었고요.”

사실 공산품 치즈로 전통주와 궁합을 맞추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까다롭고 복잡 미묘한 매칭 방법에서 알 수 있듯 자연에가까운 수제 치즈가 전통주와 잘 맞는다. “정성으로 빚은 음식은 통하는 법이에요. 이번 프로젝트로 서양 위주의 문화 선입견을 버리고 우리 음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즐기기 바랍니다.”

삼해주, 치즈를 만나다

1 증류주인 삼해소주와 매치한 잉글리시 팜하우스 체더, 그라나 파다노,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모두 소젖으로 만든 하드 치즈로, 알코올 도수가 높고 맛과 향이 강한 소주의 맛을 최대한 살려주는 방식으로 페어링했다.
2 삼해막걸리와 매치를 이룬 에튀드, 피아노포르테,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막걸리의 산도와 기포, 뒷맛에 느껴지는 곡기에 초점을 맞춰 페어링했다.
3 발효주인 삼해약주와 매치한 프랑스 치즈 아리오와 아베이 드 벨록. 두 치즈 모두 양젖을 이용한 경질 치즈로 맛이 고소해 약주와 잘 어울린다.
4 삼해 송엽 소주와 매치를 이룬 경질 염소젖 치즈 듀엣. 은은한 솔잎 향이 나는 술에 맞춰 치즈에 로즈메리 향을 입혀내니 마음에까지 잔향이 남는 듯 조화를 이룬다.

법고창신의 정신으로 전통을 잇다 “김소영 선생이 삼해주와 치즈의 페어링을 제안했을 때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일이기에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론 설레기도 했지만, 결국 예상보다 큰 즐거움을 선사했지요.” 김택상 씨에게 올해는 잊지 못할 한 해가 될 것 같다. 북촌민예관이 문을 열며 삼해주 체험 공방을 마련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번 아티잔 프로젝트로 새로운 경험과 의외의 결과를 얻었으니 말이다. 삼해주는 정월 첫 해일亥日, 곧 처음 맞이하는 돼지날에 담그기 시작해 세 번에 걸쳐 빚어 ‘삼해주’라 이름 지었으며, 술이 익는 데 1백 일이 걸려 예로부터 고급술로 여겼다고 한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 삼해주 소주장인 모친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후 자긍심과 애착으로 30년이 훌쩍 넘도록 술을 빚어왔으나 그 또한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며 소통하는 전통을 바란다는 점에서 김소영 씨와 생각이 같다.

“옛것에 토대를 두되 그것을 변화시킬 줄 알고 새것을 만들어가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야말로 오늘날 전통 장인에게 필요한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미각을 탐구하는 분들, 우리나라 식문화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과 함께한 이번 자리가 큰 힘을 주었습니다. 특히 삼해주가 가장 맛이 좋은때에 치즈와 함께 즐겼으니 21세기 스타일의 풍류라고 할까요?” 김택상 씨가 가장 마음에 든 것은 삼해 송엽주와 로즈메리 향을 입힌 연질 염소젖 치즈 ‘듀엣duet’의 조화다. 강원도 내설악에서 솔잎을 따와 햇빛에 자연 건조해 넣어 솔잎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송엽주에 김소영 씨가 솔잎과 가장 가까운 서양 허브라고 생각한 로즈메리 향을 입힌 치즈를 곁들이니 그 향이 마음에도 은은하게 배어나는 듯했다.

북촌민예관(구 북촌전통공방)
Food Artisan Project

북촌민예관이 한국 음식의 발전적 미래를 제안하는 ‘푸드 아티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8월 22일과 23일에는 정산 김연식 스님과 차병원의 크리스티 김영애 박사가 ‘진정한 의미의 사찰 음식’을, 9월 6일에는 최연소 떡 명장 최대한 씨와 함께 ‘송편 이야기’를 진행한다.
문의 070-8834-8401
글 강보라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