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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식사 발우공양鉢盂供養
넘치는 것은 모자란 것보다 못한 법이다. 그릇에 담긴 음식을 말끔히 비움으로써 마음의 수양도 쌓는 스님의 발우는 비움의 그릇이다. 배를 채우고 입을 현혹하는 음식을 담는 우리의 그릇과는 의미부터 다르다. 그간 지나치게 풍족한 식탁이 오히려 공해가 되어 요즘은 ‘1일 1식’ ‘간헐적 단식’이 몸을 살리는 방편으로 세간에 화제다. 다이어트를 위해 단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비워야 할 것은 위장이 아니라 마음 아니겠는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짓는 것이다. 한 끼 밥이라도 탐심을 버리고 쌀 한 톨, 나물 한 줄기 남기지 않는 스님들의 발우공양에서 참다운 식사를 배운다.


단출한 발우는 수납하기에도 효과적인 그릇이다. 가장 큰 어시발우 안에 국발우, 청수발우, 찬발우 순으로 포갤 수 있기 때문. 보자기로 싸서 수저와 함께 보관한다.

아침 뒷방공양상으로 제격인 대추유미죽과 꽈리고추양송이볶음, 김장아찌, 김장김치, 무장아찌.


마음으로 먹다 요즘은 여기저기 웰빙과 힐링이 너무 흔하다. 그마저도 제 몸 하나만 생각하니 속 빈 강정처럼 실속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다. 식생활도 다를 바 없지만, 매해 새롭게 등장하는 건강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양념과 조리법으로 자연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사찰 음식은 건강에 집착하는 현대인에게 여전히 약선藥膳으로 각광받는다.
하지만 무엇을 먹느냐를 고민하기 이전에 먹는 습관부터 바꾸는 일이 우리에게는 더 시급하다. 덜어내고 비워내는 절집 밥상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과잉 소비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 반드시 새겨야 할 덕목이 보인다.
“불가에서 음식 먹는 일을 공양이라고 합니다. 이때 스님이 사용하는 밥그릇이 발우지요. 발우공양은 단순히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아니라, 스님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중요한 수행의 한 부분입니다. 완벽한 독상이면서 겸상으로, 한솥밥을 모든 이가 공평하게 같이 나누어 먹는 것이니 평등하고, 제 양껏만 담아 깨끗이 비우는 절약 정신과 철저히 위생적으로 먹는 청결함이 이 안에 담겨 있어요. 이 음식을 받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수고로움이 있으니, 특히 쌀알 하나도 그것을 지어낸 이의 공덕을 헤아려 버림이 없도록 하는 복덕(타고난 복과 후한 마음) 사상까지 깃들어 있어요.”

사찰 음식 전문가 우관 스님은 발우란 온 우주를 담은 그릇으로, 발우공양은 감사의 마음으로 조금 부족한 듯 덜어 말끔히 먹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그 때문에 양에 맞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응량기’라고도 한다. 탐심을 버리면 온전히 먹는 일에 집중할 수 있으니 발우공양이야말로 일상에서 행하는 스님의 마음공부인 생활선生活禪일 터. 그 자체가 법도이고 구도의 세계이므로 스승이 제자에게 스승의 법을 인가하는 증표이기도 하다.
출가하면 절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기초 예절 또한 발우공양이다. 세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절에서 수행하는 스님처럼 살아가기는 힘들지만, 자연에서 얻은 음식을 귀히 여기며 마음으로 음미하는 발우공양이니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데 이만한 것도 없지 싶다.
“지나친 욕심은 정작 성취해야 할 것을 손에 쥐지 못하게 합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현대인이 탐미에 집착해 너무 많이 먹다 보니 채우기만 하고 배출이 안 되는 거지요. 비워야 채워지는 법입니다. 무조건 세끼를 먹으려 할 필요가 없지요. 배가 고프지 않은데 때가 됐다고 습관에 의해 먹는 것은 악습입니다. 한 번 건너뛰면 그다음 식사가 더욱 즐겁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또한 ‘내 몸이 원하는가’ 귀 기울여야 합니다. 무작정 굶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배고파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도 사시공양이라고, 하루 한 끼 일종식밖에 안 했습니다. 하지만 병자에게는 더 먹으라 하셨지요. 음식은 약으로 먹는 것이니까요.”

음식을 배불리 먹으면 정신이 흐리멍덩해지면서 판단력이 떨어지고 포만감과 함께 기운도 빠진다. 지나친 과식으로 몸도 마음도 정신도 비대해지니 덜컥 겁이 난 사람들이 몸에 이로운 것을 찾아 사찰 음식을 먹고, 수행자처럼 1일 1식이나 단식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이다.
“발우에는 비움의 미학이 있습니다. 발우공양의 식사법에는 낭비가 없지요. 그 안에 담기는 사찰 음식은 각종 화학조미료와 불필요한 먹을거리에 지친 우리 몸과 마음을 정화해주니 요즘 말로 디톡스 음식입니다. 정갈한 음식을 발우에 약간 적다 싶게 받아서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면 몸과 마음 또한 정갈해질 겁니다.”


제철 식재료로 차린 사시법공양상으로 서리태콩현미밥, 쑥날콩가룻국과 시금치견과류무침, 머윗잎생절이, 얼갈이제피김치, 두부우엉조림, 무장아찌.

1 우관 스님이 직접 담그는 된장, 고추장, 간장 항아리들. 
2 4합 도자기발우와 15합 검은색 목발우.
3 오미자 효소, 매실 효소,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양념은 직접 만들어 쓴다.
4 우관 스님의 은사이신 정화 스님에게서 받은 목발우.

비움의 음식 발우는 밥을 담는 ‘어시발우’, 국을 담는 ‘국발우’, 발우를 씻을 물을 담는 ‘청수발우’, 반찬을 담는 ‘찬발우’ 네 가지로 작은 그릇이 큰 그릇 안으로 들어간다. 특히 청수발우에 있는 청수는 그릇을 헹궈 마신 뒤 마지막으로 씻을 때 사용하는 물이다. 고작 네 개뿐인 그릇 중 하나가 닦아내고 비워내는 용도로 쓰이니 그 마음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한 끼 밥을 먹으면서도 스님들은 엄격한 수행을 합니다. 자신의 왼쪽 무릎 앞에 어시발우, 오른쪽 무릎 앞에 국발우를 놓습니다. 찬발우는 어시발우 앞에 놓고 청수발우는 국발우 뒤쪽에 놓지요. 공양할 때는 수저 소리도 나지 않아야 합니다. 후루룩 국을 먹거나 음식 씹는 소리를 내서도 안 됩니다. 어시발우에 음식을 비벼 먹는 일도 없습니다. 공양이 끝날 즈음 숭늉을 받으면 김치 조각이나 무장아찌를 하나 남겼다가 발우를 깨끗이 씻어 마신 다음, 어시발우부터 차례로 씻고 발건(발우의 물기를 닦는 헝겊 수건)으로 천천히 돌려 닦는데, 이때 발우를 씻은 천숫물은 처음처럼 맑아야 해요. 음식 쓰레기가 남을 일도 없고 발우를 씻을 때 세제도 쓰지 않으니 환경을 오염시킬 일이 없지요.” 조금 불편하고 낯설지만 먹는 일의 의미를 온전히 새기며 밥알 한 톨까지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워내는 발우공양에 낭비란 없다. 두말할 필요 없이 세계적 환경 운동가인 제인구달 박사도 감탄했다는 발우공양은 환경 문제를 껴안고 있는 현대인의 밥상에 절실히 요구되는 식사법인 것.

아침 공양은 보통 청소를 마친 다음 대략 오전 6시경에 시작한다. 대개는 죽으로 먹고 점심은 제철 채소로 차린 정찬으로 먹으며 저녁은 가볍게 먹는 것이 전통 습관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용맹 정진할 때는 음식 조절이 한층 중요하다. 하지만 스님들이 체면도 잊을 만큼 좋아하는 별식이 있는데, 바로 국수다. 오죽하면 스님들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고 승소라고 했을까. “절에선 말린 표고버섯, 다시마, 무 등을 넣고 끓인 채소 국물을 국수 물로 쓰고, 직접 담근 간장으로 간해요. 채식을 주로 하는 스님들에겐 늘 단백질이 부족한데, 콩과 밀에 있는 글루텐이 단백질을 보충해주니 몸이 저절로 국수를 좋아하게 되는 거지요. 보통 운력運力(대중이 함께 모여 하는 육체적 노동) 후나 뒷방공양할 때 국수를 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별식상으로 인기인 녹차미나리칼국수와 미나리연근전, 곶감채소꿀무침, 비름나물무침, 김장 김치, 무장아찌.


발우공양에는 현대인이 반드시 새겨야 할 덕목이 있다. 같이 나누어 먹으니 평등하고, 깨끗이 비우는 절약 정신과 청결함이 있으며, 복덕 사상까지 갖췄으니 온 우주를 담은 그릇이다. 정갈한 음식을 발우에 약간 적게 받아 꼭꼭 씹어 먹으면 심신이 정갈해진다.

생명력을 담아 정갈한 음식 “가볍게 먹어야 정신이 맑습니다. 너무 많이 먹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배가 고플 때는 제대로 먹어야 합니다.” 우관 스님은 본래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약선을 살린 음식을 먹어야 제대로 먹은 것이라고 재차 강조한다. 생명이 깃들어 있는 채소는 조리 과정을 많이 거치고 갖은 양념에 절여지면서 본래 가지고 있는 생명력과 약선을 잃으므로, 첫째는 직접 담근 장류와 효소류 등 올바른 양념을 써야 한다는 것.
둘째는 식재료로, 텃밭을 가꾸는 것이 가장 좋다. 채소에도 효소가 살아 있는데, 바로 생명력이다. 캐내더라도 2~3일은 효소가 살아 있다가 그 이후에는 영양분만 남는다. 그마저도 일주일이 지나면 말라비틀어지면서 섬유질만 남는다. 그래서 구입해야 한다면 크고 실한 것이 아니라 벌레 먹고 못난 것이라도 친환경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으로 잘라낸 부분이 말랐는지 봐야 한다. 셋째는 조리법이다. 요즘은 화학 제품을 먹고 자란 채소가 많아 무작정 생으로 먹는 것도 위험하다. 끓는 물에 살짝 데치거나 찌고, 기름 없이 채소 국물을 넣고 볶으면 속이 편하고 소화가 잘된다. 넷째는 조리 도구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도 알루미늄이나 양은 재질의 조리 도구를 쓰면 몸에 중금속이 쌓인다. 스테인리스 스틸, 유리, 뚝배기(무쇠) 등으로 만든 것이 좋다. “음식은 신성한 생명의 뿌리입니다. 음식은 최초의 약이자 치료법이지요. 제때에 난 것으로 제대로 만든 음식으로 마음을 다스려 소식하는 습관만 들여도 한층 안락한 상태를 느낄 겁니다.”


대추유미죽 냄비에 대추(18개)와 물(2컵)을 넣고 푹 끓인 후, 대추씨는 빼고 나무 주걱으로 으깨면서 체에 걸러 대추 앙금물을 만든다. 믹서에 불린 현미(1컵)와 물(2컵)을 넣고 곱게 간 다음 두꺼운 냄비에 넣고, 대추 앙금물을 부어 눌어붙지 않도록 나무 주걱으로 저으며 끓이다가 우유(2컵)를 조금씩 부으며 푹 끓인다. 죽이 끓어오르면 소금을 약간 넣고 대추 껍질 만 것을 고명으로 얹어 그릇에 담는다.

쑥날콩가룻국 쑥(100g)은 다듬어 깨끗이 씻은 후 물기를 빼고, 청양고추(1개)는 잘게 다진다. 쑥은 날콩가루(1컵)를 고루 묻힌다. 냄비에 물(8컵)을 부어 끓이다가 된장(2큰술)과 표고버섯 가루(1큰술)를 넣고 5분 정도 끓인다. 국물이 끓어오르면 콩가루 묻힌 쑥과 조선간장(1큰술)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이다가 고춧가루(1작은술)와 다진 청양고추를 넣고 불을 끈다.

녹차칼미나리칼국수 녹차가루 (3큰술)에 소금과 물을 적당량 넣어 만든 반죽물에 밀가루(2컵)를 부어 반죽한 뒤 냉장고에서 하루 동안 숙성시킨다. 이 반죽을 밀대로 0.5cm 두께로 민 뒤 0.3cm 폭으로 썬다. 표고버섯(5개)은 채 썰고, 미나리(50g)는 5cm 길이로 자른다. 냄비에 채소 국물(8컵)을 붓고 끓어오르면 면을 넣고 조선간장(2큰술)으로 간한 뒤 채 썬 표고버섯을 넣고, 한소끔 끓여 미나리를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발우공양을 해주신 우관 스님은 현재 경기도 이천시 도락산 자락에 위한 감은사 주지와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으며, 동국대학교와 종단 사찰음식교육관 국제선센터에서 정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는 <우관 스님의 손맛 깃든 사찰 음식>(스타일북스), <살아 있으니까 보이는 거다>(도서출판 지누>가 있다.


요리와 도움말 우관 스님(감은사 주지, 마하연사찰음식문화원 원장)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