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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에 시와 그림, 이야기를 품은 미식 공간 시詩 · 화畵 · 담談
호기심 강한 미식가들의 거리라 불리는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에 자리한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고급 한식당이 화제다. 한식 세계화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식 레스토랑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지만, 한국적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녹여낸 공간에서 한 편의 시화詩畵 같은 음식을 선보이니 그 의미가 더욱 깊다.


난이 핀 정원을 둘러싼 평상 콘셉트의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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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던한 미디어 아트월.
2, 3 새 오브제가 길을 안내하고, 한지로 만든 설치 작품이 길을 밝힌다. 모두 이헌정 작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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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층 화가의 방에 놓인 책가도가 그려진 조선시대의 장.
5, 6 시구를 연상시키는 3층의 룸과 테이블 세팅.


식탁에 시가 흐르고 그림이 피어나다 시・화・담은 그간 보지 못하던 새로운 모습의 ‘모던 코리안 파인 다이닝’이다. ‘신선설농탕’으로 유명한 ㈜쿠드가 한식의 세계화를 겨냥해 지난 10여 년간 공들여 야심 차게 준비한 ‘미식 문화 공간’인 것. “외국에 나가면 일부러 한식당을 찾습니다. 한데 대부분이 ‘생계형’으로, 수천년을 이어온 우리 음식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없더군요. 경제적 서열도, 역사적 차이도 가뿐히 초월하고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힘을 지닌 것이 음식이건만, 자연 건강식으로 조화로운 우리 한식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더 나아가 한국 문화까지 저평가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이 맛은 물론 한식의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미식 공간을 만들기로 마음먹었지요.” 떠들썩하게 광고를 한 적도 없건만, 지난 8월 오픈한 이래 이곳은 입소문만으로 정치인, 외국인, 국빈 등 최고의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로 터를 다지고 있다. 이는 외식 사업을 시작한 이래 20여 년간 한식이라는 외길을 우직하게 걷고 있는 ㈜쿠드의 대표 오청 씨가 한식 세계화를 사명감으로 마음속에 그리던 고품격 한식당을 실현한 때문 아닐까. 음식은 곧 문화의 집합체일지니.

“음식을 보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 수 있잖아요. 단순히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닌, 한국의 멋과 맛을 조화롭게 담은 음식으로 우리 문화와 전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외국인도 이곳에서 보고, 즐기고, 재미까지 느낄 수 있도록 말이지요.”
역사적・문화적 스토리가 있으며, 오감을 통해 인간만이 느끼고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미식’. 시・화・담은 한식을 매개로 한 문화 공간으로, 마치 박물관 속에 고급 한식당이 비밀스럽게 들어앉은 듯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 자마자 마주하는 1층 라운지&바에는 모던한 외관과 달리 가야와 통일신라시대의 토기와 도자기 오브제가 덴마크 디자이너 한스 웨그너의 소파와 자연스레 어우러져 있고, 한쪽에는 소스나 드레싱으로 쓰는 오청 대 표가 직접 담근 1백여 가지의 효소가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최상의 맛과 멋이 ‘문화’ 로 어우러진다. 중간중간 길을 안내하는 역할도 이헌정 작가의 대표 오 브제인 새가 한다. 시・화・담 이름처럼 ‘시, 그림,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일반 한식당과는 격이 다르다. 시・화・담은 층별 콘셉트를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진달래꽃 아름 따다’ ‘섬진강 매화꽃을’ 등 이름도 시적인 프라이빗룸으로 곧게 뻗은 복도가 마치 도자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3층은 ‘시詩’, 모딜리아니・피카소・마르티니 등 유명 화가의 이름을 딴 룸이 있는 2층은 ‘화畵’, 도자기・조각・그림 등 예술 작품이 군데군데 놓인 모던한 공간에서 한식을 통해 한국을 만날 수 있으니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1층이 ‘담談’이다. 시・화・담이 제안하는 미식 공간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은 중2층에 마련된 너른 룸이다. 우리의 전통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국악 공연 무대를 마련해 식사와 함께 즐길 수도 있다.


‘신선설농탕’으로 유명한 ㈜쿠드의 오청 대표가 시ㆍ화ㆍ담을 선보인 주인공. 도시농부이기도 한 그는 효소도 직접 담가 1층 한쪽에 전시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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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출간한 시ㆍ화ㆍ담의 음식 화보집.
2 가을에 사용할 도자 식기가 운치 있다.


이야기가 있는 음식으로 문화를 전하다 “한식이 아름답고 조화롭고 건강한 음식인 것을 알리고자 음식에 한국적 스토리를 녹여냈습니다. 우리에게 친근한 음식이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식재료와 음식의 재조명에도 신경을 많이 썼지요. 일례로 가죽나물이 그러합니다. 시・화・담에서는 찹쌀풀을 발라 만든 부각을 주전부리로 내고 있습니다. 고추장을 바른 가죽나물포는 술안주로, 찬으로는 가죽나물무침과 가죽나물 간장장아찌 그리고 고추장에 박은 장아찌를 내지요.”

콘셉트 구성부터 메뉴 개발, 푸드 스타일링까지 모두 오청 대표와 아내 박경원 이사의 손을 거치는데, 우리 음식의 정통성은 유지하되 예술성도 갖출 수 있도록 무엇보다 담음새에 신경을 쓴다. 음식에 디자인을 입힌 것. 코스로 제공하는 음식은 김희종, 이승호, 박소연 등 유명 도예가의 도자 식기에 담아 서빙하는데, 그 자체가 그림으로 예술 작품에 버금간다. 메뉴명도 시적이다. 점심 메뉴인 ‘한국의 시’를 비롯해 ‘그림 한 폭’ ‘즐거운 이야기’ ‘미식가들의 만찬’ 등으로, 12단계에서 22단계 코스로 최장 코스인 ‘미식가들의 만찬’은 시작부터 끝나기까지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시・화・담은 느리게 접대하며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으로, 한식 세계화에 이바지할 그들의 행보가 주목된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5-5 문의 02-798-3311

그림 같은 시・화・담의 가을의 맛

1 회귀
回歸 고수버들이 가득한 물가를 따라 연어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표현했다. ‘회귀’는 하나의 플레이트에서 연어회와 산사춘주를 함께 맛볼 수 있는 요리로, 안에 레드커런트를 넣고 젤리화한 산사춘주와 연어는 고소하면서도 상큼하다. 고추 모양으로 빚어낸 고추냉이를 간장으로 만든 거품에 풀어 찍어 먹는다.

2 버섯축제 능이버섯, 송이버섯, 표고버섯, 노루궁뎅이버섯, 황금꾀꼬리버섯… 은은한 향이 일품인 한국의 다양한 버섯을 여러 방법으로 정성껏 요리해 문지영 작가의 도자기 작품인 3단 도시락집에 담았다. 무엇보다 오방색을 모두 품고 있는 음식들의 정갈한 담음새가 눈길을 끈다.

3 가을의 주전부리_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흑자에 하얀 가루로 쓴 시한 구절과 말린 과일칩들의 조화로 사계의 특징을 연출하는 시·화·담의 주전부리중 가을철 프레젠테이션이다. 단풍이 든 나뭇가지 사이로 걸린 보름달과 말린 과일칩으로 표현한 낙엽이 인상적이다.

4 고구마밭에서 한 뙈기의 고구마밭이 고스란히 요리가 되었다. 볶은 누룽지 가루를 평평하게 펴 넣어 밭을 표현하고 그 속에 앙증맞은 고구마 모양 떡을 심은 것으로, 제철인 고구마를 수확하는 모습을 재현했다. 소꿉장난을 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요리다.

글 신민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