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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미가知味家의 미식취미
옛사람이나 현대인이나 안식처를 필요로 하는 마음은 같다. 그리고 그 안식을 음식으로 찾는 것이 곧 미식이 아닐는지. 반드시 비싸고 화려한 음식이라야 미식은 아니다. 조촐한 음식일지라도 옛 시성들의 아취를 흉내 내며 별스럽게 즐기던 것이 조선 사대부들의 미식 취미였다. 음식만 탐하고 진귀하고 맛난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해 남기는 일까지 한 조선 시대 지미가들의 특별한 음식으로 맛의 무릉도원을 거닐어보자.




추사 김정희
가장 위대한 음식은 가족과 즐기는 두붓국이다
추사 김정희는 꽤나 미식가였다. 제주도에서 오랜 기간 유배 생활을 하면서 아내에게 많은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에 나물이나 젓갈, 김치 같은 기본 반찬은 물론 민어와 어란 같은 고급 음식에 이르기까지 음식물을 보내달라는 이야기가 적잖았다. 충남 예산 추사의 고택에 가면 기둥에 그가 직접 쓴 글귀가 붙어 있는데, 그 글을 보면 추사가 꼽은 최고의 음식이 다소 의외이다.

“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 ‘위대한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가장 즐거운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주를 만나는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그는 두부를 가장 위대한 음식이라 했는데, 지금이야 가장 서민적 음식으로 꼽지만 조선 시대에는 서민이 범접할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조선의 사대부가에서는 귀한 선물로 주고받기도 했을 정도니 당시 선비들 사이에서 두부를 먹을 때는 불편하더라도 젓가락으로 느긋하게 즐기라는 말이 나온 것이 이해가 간다.

추사가 좋아한 두부, 생강, 채소 등을 넣고 끓인 소박한 두붓국.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에 보면 두붓국을 끓일 때 “고기 국물을 조금 떠서 밀가루즙을 만들어 국물에 넣어 잘 젓는다”는 내용이 있다. 이렇듯 녹말가루와 물을 같은 비율로 섞어 만든 녹말풀을 국물에 넣으면 두부의 부드러운 질감이 배가될 뿐 아니라 국물도 쉽게 식지 않고, 맛도 더 좋다.

<소문사설> 저자 어의 이시필
진귀한 음식으로 몸을 다스리다
조선의 숨은 지미가로는 부유층 중인이 많다. 행정 실무자인 서리, 통역을 담당하는 역관, 의사인 의관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오늘날의 지식 노동자로 조선에 선진 문물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비록 높은 벼슬에 오르지 못했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로워 웬만한 양반보다 식생활 수준이 높은 경우가 많았다. 나랏돈으로 호의호식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사대부와 달리 중인의 탐식은 사회적으로 비난거리가 아니었다. 중인 중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남긴 이도 있었는데, 숙종의 어의御醫 이시필이 기록한 <소문사설 聞事設>이 대표적이다(얼마 전까지도 역관 이표가 쓴 <수문사설>이라 잘못 소개되기도 했다). ‘소문사설’은 ‘생각이 고루하고 견문이 좁은 저자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기록했다’는 뜻으로, 18세기 조선의 생활 문화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그중 ‘음식으로 자신의 몸을 다스리는 법’을 정리한 ‘식치방食治方’에는 한ㆍ중ㆍ일 삼국의 음식 요리법이 적잖다. 저자가 의관으로서 당시의 외교사절인 조선통신사에 수행원으로 참석해 중국과 일본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 대표적 음식이 뱅어탕과 일본에서 배운 가마보곶可麻甫串.

뱅어탕은 녹말가루 반죽과 후추로 뱅어 모양을 만들어서 꿀물에 넣어 먹는 음청류. 생선살을 다져 김밥처럼 돌돌 말아 찜통에 찐 가마보곶은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시인 서거정
시로 순채를 찬양하다
부규·순나물이라고도 하는 순채는 지금은 낯선 식재료지만, 조선 시대 민간요법의 약재로도 쓰고 궁중에 진상품으로 올리기도 했다. 선비에게는 군자의 풍모가 느껴지는 고결한 음식으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조선 후기 실학자로 소식가이던 성호 이익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도 다름 아닌 순채였다. <성호사설>의 ‘만물문’ 중 ‘천리 순갱’을 보면 “오미자를 우려낸 물에다 벌꿀을 탄 다음, 순나물을 적셔 먹으면 달큼하고 시큼하며 맑고 시원한 맛이 흡사 선미仙味라, 이를 당할 만한 맛이 없다”고 극찬했다. 음식 좀 즐길 줄 안다는 조선의 미식가들도 순채를 찬양하는 시를 많이 남겼는데, 그중에서도 유달리 순채를 사랑한 시인은 단연 서거정 (조선 성리학의 대부 권근의 외손자)이다. 음식에 관한 시를 가장 많이 쓴 그는 ‘순채의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순채를 좋아했다. 순채는 연못에서 자라지만 옛날에는 잎과 싹을 먹기 위해 논에 재배하기도 했는데 순채초회, 순채전골, 순채불고기, 순채장국수, 순채물김치, 순채죽 등으로 봄부터 여름까지 다양하게 즐겼다. 오늘날 순채가 밥상에서 사라진 것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다. 일본 사람들이 순채를 좋아해서 조선산 순채를 일본으로 대량 반출해 씨가 마른 것.

고기와 채소가 듬뿍 들어가 한 조각만으로도 든든한 헌팅던 파이. ‘순채가’에서 서거정이 “미끄럽디미끄럽고 가늘디가늘어서 실보다 가볍고 타락죽보다 보드랍네” 라고 노래한 오미자 순채화채.

곽주의 편지글 <현풍곽씨언간>
다담상을 가장 좋게 차려두소
편지만큼 사적인 것이 있을까. <현풍곽씨언간>은 17세기 초 경상도 소례마을에 살던 곽주와 가족들이 주로 한글로 주고받은 편지글이다. 이 시대는 남녀유별 의식이 엄하던 성리학이 기울고 실생활의 유익을 목표로 한 실학이 대두되던 때로, 곽주가 사대부 체면을 뒤로하고 집안 살림에 일일이 관여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도 한몫했을 터. 곽주는 꽤나 가정적인 가장이었던 듯한데,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 중에는 음식이나 상차림과 관련한 내용도 꽤 많다. 그중 아내에게 아주버님을 위해 준비하라 당부한 상차림이 있다. 손님 대접용 음식상인 ‘다담상(차담상)’에 대해 눈에 보이듯 세세히 서술한 것이 인상적. 음식에 대한 예법과 절차는 물론, 음식상에 과일과 안주 등을 올리는 순서까지 자세히 썼다. “아주버님이 오늘 가실 길에 우리 집에 다녀가려 하시니, 진지도 옳게 잘 차리려니와 다담상을 가장 좋게 차리게 하소. 내가 길에 (다닐 때) 가지고 다니는 발상에 놓아 잡수게 하소. 다담상에 절육, 세실과, 모과, 정과, 홍시, 자잡채를 놓고, 수정과에는 석류를 띄우고, 곁상에는 율무죽과 녹두죽 두 가지를 쑤어놓게 하소. 안주로는 처음에 꿩고기를 구워드리고, 두 번째는 대구를 구워드리고, 세 번째는 청어를 구워드리게 하소. (아주버님이) 자네를 보려고 가시니, 머리를 꾸미고 가리매를 쓰도록 하소. 맏이도 뵙게 하소. 여느 잡수실 것은 보아가며 차리소. 잔대와 규화는 김 참봉 댁이나 초계 댁에서 얻도록 하소.”

첫 번째 상의 꿩고기구이, 두 번째 상의 대구구이, 세 번째 상의 청어구이.

<도문대작> 저자 허균
조선 제일의 탐식가를 자처하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천재 시인이자 탐식가였으며, ‘조선 맛 지도’를 그린 식객이었다. 부친 허엽이 관직에 있어 어릴 때부터 먹을 복이 많던 그는 당시 인격 수양을 위해 식욕과 성욕을 억제하던 성리학계의 이단아로 조선 최고의 미식가였다. 난생처음 전라도 익산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궁박한 처지에 거친 음식만 먹게 되자 이전에 즐기던 산해진미 생각이 간절했을 터. <도문대작屠門大嚼>(1611)은 허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즐기던 호시절을 떠올리며 눈앞에 어른거리는 음식의 맛을 하나하나 반추하면서 쓴 책으로, 조선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음식을 기록한 별미 노트다. ‘푸줏간 앞에서 입을 크게 벌려 고기 씹는 시늉을 해본다’는 뜻으로 기억을 더듬어 음식 맛을 작성한 것이니 지난날 자신의 방종을 후회하며 스스로 벌을 준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음식에 얽힌 추억부터 당시의 풍습까지 기록한 데다 음식 맛도 맛깔나게 표현하는 등 오늘날의 음식 칼럼니스트처럼 조선 시대 최고의 음식 품평서를 쓴 저자다. 책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별미 음식은 방풍죽, 최고로 꼽은 것은 삼척의 게이다.

“달콤한 향기가 입에 가득해 3일 동안 가시지 않는다”고 한 강릉의 방풍죽과 “그 맛이 매우 좋아 두텁떡이나 감찰떡도 여기에 따르지 못한다”는 금강산의 석이버섯을 넣어 찐 떡, 석용병(석이병).

다산 정약용
청렴한 선비의 소박한 밥상을 차리다
다산은 선비도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 유배살이를 할 때도 채소밭 가꾸기가 그의 낙이었던 듯. 워낙에 근검절약했으니 여느 사대부처럼 미식 취미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잘못 쓰고 있는
음식 이름 스무 가지를 바로잡았으니, 음식에도 관심과 조예가 깊었으리라. 다산은 가장 소박하고 모범적인 식습관을 보여준 선비이기도 하다. 그의 시를 보면 종종 두부, 부추, 상추, 가지를 비롯해 농어회, 게 등 서거정과 허균이 진미로 꼽은 식재료와 음식 이름이 눈에 띄는데, 그중 부추는 예로부터 청빈하고 소박한 밥상을 상징하는 채소. ‘어느 날 매화나무 아래를 산책하다가’에는 다산이 집 곁에 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는 과정이 소상하게 실려 있다. 텃밭에서 키운 채소로 차린 다산의 밥상은 제철 기운 가득해 오늘날의 건강 밥상이나 다름없다.

보리밥과 상추냉국에 쑥갓생채, 오이지, 이른 배추와 된장, 얼갈이배추나물, 가지나물, 부추전을 반찬으로 차린 소박한 여름 밥상.

성호 이익
검소한 실학자의 궁핍을 채워준 콩에 감사하다
성호는 평생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책만 읽고 살았던 이로, 검소한 선비의 전형이다. 평생 소식하고 탐식과 미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반한 음식이 있으니 바로 콩이다. “곡식이 사람을 살리는 면에서 가장 공이 큰 것이 콩이다”라고 예찬하며, 콩을 주식으로 삼고자 했을 정도. ‘삼두회’를 만들어 몸소 실천하기도 했다. ‘삼두三豆’란 콩으로 만든 세 가지 음식으로 콩죽, 콩장(콩자반), 콩나물을 가리킨다. <반숙가半熟歌>에서 “콩은 하늘이 준 오곡 중 하나로 그 가운데 붉은 콩이 가장 좋다네. 여름에 싹 터서 겨울에 죽으니 달고 부드러워 맛이 더욱 좋네. 가난한 집 재물 없어도 좋은 방편이 되고, 싼값에 구하니 이 또한 좋을 일이네”라며 콩을 예찬하기도 했다.

콩죽, 콩장(콩자반), 콩나물로 차린 성호의 삼두 반찬.


요리&도움말 한복려(궁중음식연구원 원장) 스타일링 서영희 세트 스타일링 강혜림, 김지나 캘리그래피 강병인 참고 도서 <조선의 탐식가들><따비>,<소문사설, 조선의 실용지식 연구 논트><휴머니스트>,<현풍곽씨언간주해><조선시대의 음식문화>(가람기획)

진행 신민주 기자 |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