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입하로 시작한다. 입하는 보통 어린이날 무렵으로, 올해는 때가 같다. 이름 그대로 ‘여름에 드는’ 시기로 서리가 사라지고 초여름 날씨가 이어지니 이즈음에는 비닐하우스에서 가꾸던 모종이 모두 텃밭으로 자리를 옮긴다. 곡우 때 장만해둔 못자리도 뿌리를 내려 자리를 잡고 바야흐로 농번기에 접어든다. 1년 중에 농민들이 손꼽는 고된 시기가 이때인 것. 논에서 종일 허리를 숙이고 모를 내는 일이 여간 힘든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추, 고추, 가지, 오이, 애호박 등이 텃밭에 늘 푸르게 자랐으니 반찬거리 걱정 없이 끼니를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어릴 적에도 이즈음부터 끼니때마다 밭에서 채소를 뜯어다 반찬거리를 풍성하게 올리던 엄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게 입하가 밥상을 푸르게 만드는 ‘푸성귀 철’인 이유다. 열무며 오이로 담가 아삭한 맛이 일품인 여름 김치도 이즈음부터 즐겼다. 밥심으로 사는 한국 사람에게 밥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김치 아니던가. 밥상 위에 오른 김치를 보면 철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1년 내내 맛있는 김치만으로도 아쉬운 줄 몰랐다.
그중에서도 열무김치는 비빔밥, 국수 등 별미로도 즐겨 다양하게 먹었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는 엄마 곁을 지키고 앉아 있기도 했다. 국물에 넣을 밀가루 풀 때문인데, 삼베 보자기에 넣고 물에 담근 뒤 주물럭거리는 모습이 마치 재미있는 놀이 같았다. “여름 김치엔 밀가루 풀을 넣고, 겨울 김치엔 찹쌀 풀을 넣어야 한다.” 음식맛을 재료에 맞게 제대로 내려면 환경에 따라 방법이나 재료를 달리해야 한다는 말씀은 지금도 음식 만들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원칙으로 지키고 있다. 요즘처럼 냉장고도 흔치 않고, 김치냉장고는 없던 시절이었으니 ‘다라이’라고 부르던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둥글넓적한 그릇에 찬물을 가득 붓고 여름 김치가 든 옹기 항아리를 담가놓아 김치가 빨리 시지 않게 하던 기억도 어렴풋하다.
김치가 소박한 일상식으로 계절을 느끼게 해주었다면 별미로 즐기던 제철 음식은 밥상을 화려하게 해주었다. 이즈음에 제일 인기인 음식은 단연 간장게장이었다. 애호박을 숭숭 썰어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 꽃게호박지짐이도 아버지가 좋아하셨기 때문에 종종 별미로 맛볼 수 있었다. 꽃게가 워낙 발라 먹기 어려운 음식인지라 어릴 적에는 어른이나 즐기는 음식처럼 여겨졌지만 통통하게 오른 살의 쫄깃한 식감과 감칠맛은 입안에 호사였다. 그 맛 때문에 이즈음이면 한식당에서도 간장게장을 내는데, 등딱지를 그릇 삼아 살을 잘 발라서 먹기 좋게 담아낸다. 음식을 공부하면서 그 맛의 매력에 반한 승기악탕勝妓樂湯도 이즈음에 빼놓지 않는 메뉴다. ‘맛이 매우 뛰어나(勝) 기녀(妓)와 음악(樂)보다 더 낫다’는 뜻으로 ‘승기악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숭어 또는 도미, 조기 등에 간장을 한 번 바른 후 구워 냄비에 담고 쇠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 고명을 함께 넣어 육수를 부어 끓인 음식으로, 나는 주로 도미를 넣어 만든다. 살이 덜 부서져 깔끔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깊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라 나중에 국수나 흰떡을 넣어 먹기도 한다. 손이 많이 가지만, 반할 정도의 맛을 지닌 음식을 선보이는 것도 음식을 통한 호사 중 하나일 터. 여기에 철 따라 먹는 일은 호사의 극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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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노영희(스튜디오 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