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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따라 길 따라 국민 간식 떡볶이 도감
본디 궁중 음식인 떡볶이가 전 국민이 즐겨 먹는 길거리 음식의 대표 주자가 되기까지, 떡볶이 맛집에는 ‘사소한 것들의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이제는 가히 국민 먹을거리로 동네마다 스타 떡볶이집이 하나쯤은 있지요. 서울에서 미슐랭 3스타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는 떡볶이 맛집에 대한 군침 도는 보고서입니다. 지방의 떡볶이 맛집은 <행복> 홈페이지(happy.design.co.kr) ‘대한민국 떡볶이도감 완성하기’에 올려주세요. 대한민국 떡볶이도감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완성하고자 합니다.


떡볶이가 싫은 적이 있었을까? 지겨운 적이 있었을까? 참 이상하게도 매일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먹어도 또 먹게 되듯 떡볶이도 그랬다. 대학생이 된 기쁨에 들떠 스테이크, 파스타, 철판볶음밥을 먹으며 목이 쉴 때까지 수다를 떠는 그 시간의 마무리는 언제나 떡볶이 트럭이었다. 어색한 힐을 신고, 더 어색한 눈화장이 어느새 다 사라지고 없는 그 밤에도 매콤하고 쫄깃한 떡볶이의 그 맛은 참 좋았다. 엄마가 해주는, 조미료 맛은 없지만 몸에는 좋은 떡볶이도 좋았고, 우리 나름의 레시피로 더 맵고 더 짜게 만든 떡볶이는 그보다 더 좋았고, 달라봐야 거기서 거기인 떡볶이 맛집을 찾아 친구의 서툰 운전에 비명을 지르던 그때부터 그 친구가 시집 잘 가 기사가 운전하는 차 뒷좌석에서 목소리 낮춰 시부모님 흉보며 돌아다닐 때까지 떡볶이집 순례는 언제라도 좋기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 떡볶이를 추억이라 부르고, 떡볶이를 향수라 부르기도 하고, 한식의 전령사, 대한민국 대표 음식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내게 떡볶이는 그냥 떡볶이다. “우리나라 음식 떡볶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맛 좀 볼래?”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는 ‘어휴, 왜들 이러시나요’ 싶었다. 떡볶이는 한식이라기보다 음식
이고, 음식이라기보다 정서인 것을, 나도 알고 당신도 아는 그것이 갑자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집중 조명받는 것이 영 불편했다. 불고기, 갈비탕, 비빔밥보다 먹기 쉽고,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더 맛있어 한국을 찾는,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내놓고 싶은 ‘한식’이긴 하다. 궁중에서 먹던 음식이라는 얘기로 시작하면 스토리도 흥미진진해진다. 그래서인지 콧등에 땀방울을 송글송글 매달고 맵다 맵다 하면서도 서울에 있는 내내 떡볶이 포장마차만 찾는 일본인도 있고, 아예 떡볶이집 지도를 들고 신당동으로 홍대 앞으로, 명동으로 다니며 혀 밑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키는 중국인도 여럿 봤다. 하지만 밑 양념이 되어야 하는 정서가 빠진 떡볶이를 한식 세계화의 첨병으로 내세우는 건 아무래도 내키지 않는다. 요즘은 학창 시절을 관통하고 출출한 야근의 한복판, 장 보다가 서서 비닐 씌운 접시에 묻은 아무것도 없이 빨갛기만 한 양념을 알뜰하게 묻혀 먹는 그 떡볶이가 갑자기 신부 화장을 하고 무대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떡볶이는 떡볶이, 우리의 바로 그 떡볶이인데 하고 말이다. 추억이라 하기에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지금은 먹지 못하거나, 먹을 수 없는 음식도 아닌데, 갈색 사진으로 떠올리기에 떡볶이는 여전히 팔팔하게 보글거린다.


떡볶이는 떡볶이다. 간단하기 짝이 없는 재료와 양념이지만 입맛에 착 붙는 오묘한 음식이다. 떡볶이가 관장하는 맛, 그 맛이 관장하는 기억은 명징하기만 하다. 더 잘생긴 총각, 더 웃기는 아저씨, 더 매운 양념, 더 달콤한 뒷맛, 더 쫀득한 질감까지 다채로운 공격으로 떡볶이 전쟁을 치르는 떡볶이 체인점 전성시대에 살고 있다고해도 아마 저마다의 기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떡볶이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매콤달콤, 쫀득쫄깃한 시간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키득거리는 친구와 허기, 많지 않은 용돈과 또 많지 않은 시간으로 점철된 우리의 그 시절에 빛나는 조연으로, 거기에 있는 바로 우리의 떡볶이일 테니까.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을 우리는 ‘떡볶이 같다’고 부르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글을 쓴 조경아 씨는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 ‘호기심 대마왕’이다.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잡지사 피처 디렉터로 일하다 최근 음식 철학과 사람이야기를 담은 <더 테이블>을 펴냈다.


도움말 서용준(<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운영자)

진행 신민주 기자, 강윤희 사진 김재윤 어시스턴트 박찬웅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