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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철든 부엌] 김장하는 날
초저녁 바람에 귀가 차가워지면 겨울이 들어서는 입동이 코앞입니다. 이렇게 가을과 겨울이 싸우는 입동이 오고 갑자기 추워지면 무서리 서너 번에 된서리 오듯, 된서리 서너 번에 얼음이 업니다. 살얼음이 잡히면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을 하는 소설 즈음이지요. 배추 뽑는 날은 왁자지껄 김장하는 날로 잘 담근 김장 김치만 있으면 1년 밥상이 행복했습니다.


반세기가 채 되지도 않았건만, 어린 시절만 해도 초겨울의 가장 큰 행사이던 김장이 이제는 맥이 끊겨가고 있다. 많은 사람이 번거롭고 짬이 안 난다는 이유로 김치를 주문해 사 먹거나 이웃 친지에게 얻어먹는다. 하지만 초봄에 장 담그기와 초겨울의 김장하기는 1년의 음식을 좌우하는 ‘일년지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년 내내 안주인의 손맛을 책임질 뿐 아니라, 훌륭한 영양 공급원으로 우리 밥상에 오르는 가장 중요한 음식이다. 요즘은 집집마다 있을 만큼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되어 사시사철 아삭한 김치 맛을 볼 수 있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제철에 담가 먹는 김장 김치 맛과는 비교할 수 없다. 기계로 온도를 유지한다고 한들 땅속에 묻어 자연 발효시키는 것과는 아무래도 다르기 때문이다. 11월은 8월에 심은 배추와 무가 가장 통통하고 달게 맛이 드는 때다.

사실 김치란 의외로 하기 쉬운 음식이다. 절이는 데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지만, 요즘은 절임 배추도 시판하는 마당이니 번거로워서 김장을 하지 못한다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적당히 간만 맞추면 미생물이 다 알아서 맛을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릴 적 김장하는 날을 떠올리면 늘 온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엄마는 김장을 하기 며칠 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워낙에 대식구이던 탓인데, 가을에 거두어 햇볕에 붉은빛으로 곱게 말린 고추를 깔끔하게 다듬어 방앗간에 가서 빻아 오고, 김장 항아리는 죄다 다시 닦고 물에 우려 볕에 말리셨다. 봄에 담근 멸치젓국은 달여서 한지에 밭쳐 내려 맑은 들기름 같은 색이 나오게 만들었고, 행상 아주머니들이 육젓을 머리에 이고 오면 어김없이 넉넉히 사두셨다. 찹쌀풀도 끓일 수 있도록 찹쌀 방아도 찧어놓았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던 밑 준비를 마치면 맑고 따뜻한 날을 잡아 김치를 담그셨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이맘때면 집집마다 김장을 하는 게 가장 큰일이어서 서로 품앗이를 하고 김장을 마치면 이웃집과 나눠 먹기도 했으니 김장은 고된 연중행사이면서 동시에 유쾌한 이벤트이기도 했다.

내게도 겨울 채비의 정점은 김장이다. 엄마 손맛을 따라 하다 보니 김치에 특별하거나 많은 종류의 재료를 넣어야 더 좋은 맛이 나는 것 같지 않고, 그보다는 좋은 재료를 선별해 꼭 필요한 재료만 넣고 깔끔하게 담그는 편이다. 멸치젓은 물론 황석어젓이나 갈치젓도 쓰던 엄마의 김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김치에는 새우젓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백령도 까나리 액젓과 생새우만 넣어 담그는데, 오히려 개운하고 감칠맛이 좋다. 지방에 따라 혹은 김치 종류에 따라 양념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한데, 경기도 파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생새우를 많이 넣는다. 자질구레한 생새우는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맛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양념이다. 김장철에 마트나 시장에 가면 팔딱팔딱 뛰는 조그만 새우를 사서 두어 번 씻은 뒤 통째로 넉넉히 넣는다. 단, 굴은 넣지 않는다. 굴이 워낙 맛있는 해물이라서 김치에 넣는 집도 꽤 있으나, 김치를 빨리 익게 만들므로 김장용보다는 보쌈 등에 곁들여 먹을 때만 쓴다.

요즘 미나리는 향이 진한 데다 석유 냄새 같은 게 나서 미나리도 넣지 않는다. 무채와 갓, 쪽파에 마늘, 생강만 넣고 연하게 양념하는 대신 양을 넉넉히 넣는다. 무가 많이 들어가야 김치 맛이 시원하다 보니 무채를 두껍게 많이 썰어 넣는다.김치소 만드는 일은 배추를 절이는 일만큼이나 손이 많이 가고 힘든데, 양념을 한꺼번에 믹서에 갈면 일손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채 썬 무에 준비한 양념을 다 뒤섞으면 김칫소가 완성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간이다. 김칫소의 간을 볼 때에는 반드시 배추 절인 것에 싸서 먹어보아야 한다. 짜게 절여졌으면 속이 싱거워야 하고, 덜 절여졌으면 약간 속이 짜도 괜찮다. 이렇게 배추를 절여 건져놓고 소까지 만들어놓으면 80%는 완성한 것이니 식구 수에 따라 열 포기 내외를 담근다면 초보 주부라도 간단하고 쉽게 김치를 담글 수 있다.


김장은 배추김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총각김치나 동치미도 담근다. 김장 김치의 별미는 바로 알싸하게 익은 총각김치가 아닐까? 일반 무보다 매운 느낌이 훨씬 강한 총각무는 우리나라 토양에서만 재배되는 토속 무다. 총각김치는 치렁치렁한 무청을 떼지 않고 담가 다른 김치보다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비타민 함량이 특히 높다. 입에 아삭아삭하게 씹히며 콧등이 찡하도록 매운 무 맛이 일품인 총각김치, 시원한 국물에 쩡하게 익은 동치미는 이맘때 담가 숙성해야만 비로소 제맛을 낸다. 추운 겨울날, 살얼음이 살짝 덮인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냉면을 말아 먹으면 별미 중 별미다. 동치미에도 배즙과 양파즙, 갓과 쪽파, 마늘, 생강 등을 넣는다. 어릴 적 엄마는 청각을 꼭 넣었는데 요즘에는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생략하기도 한다. 대가족이 함께 살던 어린 시절의 우리 집처럼 1백50포기 정도씩 담그지는 못하더라도 엄마의 비결을 꼭 따르는 것 중 하나는 김치냉장고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 앞 화단에 통배추김치와 총각김치, 동치미 항아리를 묻어 숙성하는데, 확실히 맛이 다르다. 우리 집 동치미의 ‘쩡한 맛’의 비결은 땅에 묻는 것.

김장하는 날은 먹을거리도 천지였다. 배추속대를 죽죽 찢어서 대충 무쳐 들기름에 볶아 먹고는 했는데, 돼지고기보쌈과 함께 김장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다. 김장철이나 김장할 때는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대청마루와 광, 장독대에 시루떡을 갖다 두고 무사 평안을 기원하며 이웃과 나누는 미풍양속이다. 한 해 농사를 지어 곡간에 알곡, 장독간에 김장 김치, 처마 밑에 장작이 쌓여 있으면 추운 겨울이 온다고 해도 걱정이 없이 그저 오붓하고 훈훈했다. 곡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올해는 어떨지 내심 궁금하다.

배추김치
재료
4포기(1포기 2.5kg 정도), 절이는 굵은소금 1kg, 물 10L, 무 2개(중간 크기 1.5kg), 쪽파ㆍ갓 200g씩
양념 고춧가루 1½컵, 액젓 1컵, 생새우 200g, 양파 150g, 마늘 80g, 생강 20g, 설탕 ⅔컵(또는 매실청 1컵), 소금 약간
만들기 1 배추는 너무 단단하게 속이 차지 않은 것으로 준비해 뿌리 쪽에서 칼집을 10cm 정도 넣은 다음 손으로 반 가르고, 다시 뿌리 쪽에서 칼집을 5cm 정도 넣는다.
2 물에 소금을 ⅔ 분량 푼 소금물에 ①의 배추를 담갔다 건져서 큰 통에 담는다. 줄기 쪽에만 물에 흔들어 웃소금을 뿌려 8시간 동안 절인다. 중간에 두 번 정도 아래위를 바꿔준다.
3 ②의 배추가 다 절여지면 잎 사이사이를 물에 흔들어 3회 정도 씻어서 엎어놓아 물기를 뺀다.
4 무는 씻어서 껍질을 벗기고 4cm 길이로 토막 내서 길이로 얇게 썬 후 너무 가늘지 않게 채 썬다.
5 믹서에 분량의 양파, 마늘, 생강을 넣고 생새우와 액젓을 부어서 간 다음 볼에 쏟아 고춧가루와 설탕(매실청)을 넣고 섞는다.
6 뿌리를 자른 쪽파는 겉잎을 벗기고, 갓은 떡잎을 떼어내고 뿌리 끝을 다듬은 다음 모두 씻어 물기를 빼고 4cm 길이로 썬다.
7 ④의 채 썬 무에 ⑤의 양념을 넣고 버무린 다음 ⑥의 쪽파와 갓을 넣고 버무린다. 이때 배추 절인 것에 싸서 먹어봤을 때 약간 짠 듯해야 익었을 때 간이 맞는다. 싱겁다면 소금으로 간한다.
8 ③의 배추는 길이로 반 쪼개서 뿌리 부분을 저며 내고 물기를 짠 다음 배춧잎 사이사이에 ⑦의 소를 골고루 펴 넣는다. 그런 다음 잎 부분을 접어서 겉잎으로 싼 다음 김치통에 배추 속 부분이 위로 올라오게 담는다. 김치를 다 담은 다음 맨 위에 비닐을 김치에 닿게 덮어서 뚜껑을 덮고 실온에서 익혀 냉장고에 보관한다.

총각김치
재료
총각무 5kg(3묶음), 쪽파 500g, 굵은소금 1½컵, 물 5kg
양념 양파 300g, 마늘 100g, 생새우 150g, 생강 30g, 액젓 ⅔컵, 고춧가루 1½컵, 설탕 1컵(또는 매실청 1½컵)
만들기 1 총각무는 잎이 싱싱하고 무의 끝이 둥글게 생긴 것으로 골라 시든 겉잎을 떼어내고 씻어서 필러로 껍질을 벗긴 다음, 잎과 무 연결 부분의 거무스름한 것은 칼로 저민다. 쪽파는 뿌리를 자른 뒤 겉잎을 벗긴다.
2 총각무와 쪽파를 씻어서 큰 그릇에 담고 소금물에 1시간 정도 절였다가 아래 위를 뒤집어서 다시 30분 정도 절인다.
3 믹서에 분량의 양파, 마늘, 생강을 넣고 생새우와 액젓을 부어서 간 다음 볼에 쏟아 고춧가루와 설탕(매실청)을 넣고 섞는다.
4 ②의 총각무와 쪽파가 절여지면 물에 한 번 씻어서 잎 부분의 물기를 짜고 총각무가 큰 것은 길이로 반 자른다. 큰 그릇에 담고 양념 갠 것을 넣고 버무려 간을 봐서 싱거우면 소금으로 간한다.
5 총각무 두 개와 쪽파 한두 줄기의 잎 부분을 모아 쥐고 돌려서 김치통에 담는다. 위에 비닐을 덮고 뚜껑을 닫아서 익혀 냉장고에 보관한다.

동치미
재료
동치미 무 5kg, 쪽파・200g씩, 굵은소금 1½컵, 설탕 ¾컵 부재료 배 1½개, 석류 1개, 삭힌 고추ㆍ청양고추 15개씩, 마늘 30쪽, 생강 40g 국물 배 3개, 양파 1½개, 설탕 1컵(또는 매실청 1½컵), 소금 1⅓컵, 물 45컵
만들기 1 동치미 무는 잎을 자르고 수세미로 깨끗이 씻는다. 잎은 연한 부분만 남기고 다듬는다.
2 무를 굵은소금과 설탕 섞은 것에 굴려서 김치통에 담아 하루 정도 절인다.
3 쪽파와 갓은 뿌리를 잘라내고 씻어서 물기를 뺀 후 소금을 뿌려서 30분 정도 절인다.
4 배와 석류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서 적당한 크기로 썰고, 고추는 씻어서 꼭지를 약간 남기고 자른다. 마늘은 반으로 썰고,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씻어서 얇게 저민 다음 망에 넣어 양념 주머니를 만든다.
5 믹서에 국물 분량의 배와 양파, 물 5컵을 넣고 갈아서 면포에 밭아 즙을 낸다. 이 즙을 나머지 물 40컵에 설탕과 소금을 넣고 저어서 녹인다.
6 다른 김치통의 바닥에 ④의 양념 주머니를 깔고 ②의 무를 용기에서 꺼내 옮긴 다음 ①의 무청과 ③의 쪽파와 갓을 넣고 ⑤의 국물을 부은 뒤 익혀 냉장고에 보관한다.


배추속대볶음
재료
절인 배추속대(또는 씻으면서 떨어진 잎) 1kg, 다진 마늘 1큰술, 다진 생강 ½작은술, 액젓 1~2큰술, 들기름 3큰술, 육수(또는 물) 1컵
만들기 1 배추 절인 것을 씻으면서 떨어진 잎이나 속대를 죽죽 찢어서 다진 마늘과 다진 생강, 액젓을 넣어 무친다.
2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①의 배추를 넣고 달달 볶다가 물이나 육수를 부어서 뜸을 들인다.

돼지고기굴보쌈
재료(4인분)
절인 배추속대 1포기분, 김칫소 800g, 굴 400g, 배 200g 삶은 돼지고기 삼겹살 1kg, 양파 200g, 대파 잎 100g, 생강 1톨(20g 정도), 청주 2큰술, 수삼 잔뿌리 10g
만들기 1 돼지고기는 씻어서 물기를 걷어낸 다음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양파, 대파 잎, 생강, 청주, 수삼 잔뿌리를 넣고 돼지고기를 얹어서 뚜껑을 덮고 중간 불에서 1시간 정도 삶는다. 이때 물은 붓지 않는다.
2 굴은 씻어서 껍데기를 골라내고 건져서 물기를 빼고, 배는 굵게 채 썬다.
3 김칫소에 ②의 굴과 배를 넣고 살살 버무린다.
4 ①의 삶은 돼지고기는 도톰하게 썰어 접시에 담고 배추속대와 ③을 곁들인다.

시루떡
재료
멥쌀가루 3½컵, 찹쌀가루 ½컵, 꿀 ¼컵 팥고물 팥 1컵, 설탕 3~4큰술, 볶은 소금 ½작은술, 물 7컵
만들기 1 팥은 씻어서 냄비에 담고 물을 넉넉히 부어서 끓인다. 우르르 끓으면 물을 따라내고 다시 물 7컵을 부어서 50분 정도 삶는다.
2 팥이 익었을 때 남은 물은 따라내고 센 불에서 수분을 날려 보낸다. 재빨리 넓은 쟁반에 쏟아서 팥이 뜨거울 때 설탕과 소금으로 간해 대강 빻는다.
3 멥쌀가루와 찹쌀가루를 합해 꿀을 넣고 손으로 싹싹 비벼 섞는다. 체에 두 번 내린다. 쌀가루는 가볍게 뭉쳐 위로 던져봐서 쉽게 부서지면 수분이 부족한 상태이므로 물을 약간 섞어야 한다.
4 찜통에 젖은 면포를 깔고 ②의 팥고물 1½컵을 깐 다음 ③의 떡가루를 평평하게 얹고 다시 팥고물을 덮어서 김이 오른 찜통에 얹어 30분 정도 찐다. 찜통이 뜨거울 때 접시 윗면이 아래로 가도록 덮은 뒤 뒤집어서 시루떡을 꺼낸 다음 면포를 떼어낸다.


요리 노영희 (스튜디오 푸디)

진행 신민주 기자 사진 김용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