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부산_음식 이야기]도예가 신경균, 임계화 씨 부부 새벽 시장에서 건져 올린 부산 진미 眞味
‘장안요’ 도예가 신경균 씨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여명 黎明이다. 여명도 채 시작되기 전, 정확하게 새벽 2시 반이면 눈을 떠 곧바로 도예 작업에 매진한다. 중노동에 가까운 도예 작업은 새벽 6시까지 계속된다. 그러고는 30분 정도 잠깐 눈을 붙인 후 곧장 부부가 함께 새벽 시장으로 향한다. 이들 부부가 만들어내는 부산의 맛은 시장에서 시작된다.


요즘 가장 맛이 든 생선은 하모(참장어). 하모는 회나 샤브샤브로 즐기고 곰장어는 소금구이나 양념구이로 먹으면 맛있다.


재래시장에서 계절과 소통하다
“부산은 서울 못지않은 대도시이지만 재래시장이 많기도 하거니와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만큼 부산 사람의 기질이 보수적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미각이 뛰어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계절의 변화가 가장 빠른 곳이 바로 재래시장이니까요. 텃밭에서, 들판에서 맛이 든 제철의 것을 얻어오는 ‘할매들’의 한 평 남짓한 노상 앞이 바로 재래시장의 쇼윈도랍니다”

도예가 신경균 씨는 입맛 까다롭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식가다. ‘음식은 그릇에 담기는 주인공인데, 우리 그릇 빚는 자가 우리 음식의 맛과 빛깔을 모르는 것은 어불성설 語不成說’이라는 게 그의 도예가로서의 철학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부부가 먹고 사는 스타일도 그가 도자기를 빚는 작업과 닮아 있다.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은 불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이고, 요리 또한 불을 조절하는것이 관건이니 요리는 그릇 빚는 일만큼 중요하다는 것.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도자기의 재료가 되는 흙을 좋은 것으로 까다롭게 고르고, 유약을 준비하고, 장작을 패 불을 때는 일련의 과정이 요리할때와 똑같다. 여기서 흙은 음식의 재료가 되고, 유약은 양념이 된다. 하지만 도자기를 빚는 일이 치열한 작업이라면 음식을 만드는 일은 그에게 즐거움이다. 그 시작은 재료를 구하는 장보기다. 그래서 전남 고흥 첩첩산중에 있는 작업장에서 경남 기장 ‘장안요’ 집으로 ‘퇴근’하는 토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근처 장으로 부부가 장을 보러 나들이를 나선다.

“인공적으로 사시사철 밤낮 쾌적한 온도와 환한 불빛을 유지하는 대형 마트에서는 계절의 감각을 느끼기 힘들지만, 춥고 덥고, 바람 불고 비 오는 재래시장에서는 온몸의 감각이 제철 감각으로 돌아옵니다. 과일이고 채소고, 모두 제철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장 건강하고 알찬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이들 부부가 사는 기장은 해운대에서 차로 30분 남짓 거리로 부산 시내와는 떨어져 있지만, 근처에 3일과 5일에 장이 서는 남창장과 2일과 7일에 장이서는 언양장 등 5일장이 두곳 있다. 규모가 제법 큰 기장시장도 있어 토요 일에 5일장이 서면 그곳을, 날짜가 맞지 않으면 기장시장을 찾는다. 근처에서는 이들 부부의 장보기 비법이 제법 입소문이 나 토요일 아침이면 그들과 함께 장을 보기 위해 일부러 재래시장을 찾는 이들도 있을 정도.

1 매주 토요일 새벽의 장보 가는 부부의 나들이요, 데이트다.
2 장안요의 물 좋은 생선을 책임지는 청해 수산. 택배 주문도 가능하다.

3 부산과 기장은 천혜의 자연 환경으로 육해공군의 식재료 다양하다.
4 어부나 해녀들이 그날그날 잡은 것을 파는 난전.


“도자기를 보러오는 분들에게 밥 한 끼 차려냈던 일이 입소문이 나서 ‘장안요의 계절 음식’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다 보니 많은 분들이 음식 만드는 노하우는 물론이고 장보기 비법을 물어오세요. 비법은 경험이에요. 20년 가까이 장을 보러 다니다 보니 이젠 어느것이 자연산이고, 어느 것이 양식인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눈썰미가 생겼지요. 시장에 가면 해산물 파는 데, 생선 파는 데, 채소 파는 데 구획이 나뉘어 있는데, 특히 부산 지역의 시장에는 배에서 잡은 것을 바로 내다 팔고, 해녀들이 직접 장꾼이 되는 난전이 있어요. 그곳을 먼저 둘러봐요. 채소는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캐오는 것들을 사고요.”

신경균 씨를 만나기 전에는 음식 솜씨가 변변 찮았다는 아내 임계화 씨. 입맛 까다로운 남편 신경균 씨가 음식 감독이라면, 재래시장의 할머니들은 선생님이다. “시골 인심이 넉넉해 덤으로 주시는 경우도 많고, 할머니들도 단골이 생겨서 좋은 재료를 따로 챙겨뒀다가 싸주시기도 하세요.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재료를 맛나게 먹는 조리법도 낱낱이 알려주시죠. 장아찌나 젓갈 담그는 법도 많이 배웠어요. 20년 가까이 장을 보다 보니 덕분에 제 장보기 실력도, 음식 만드는 노하우도 많이 쌓였답니다.”

이른 아침 7시 이전에 장을 보러 나서는 것도 ‘할매’ 장꾼들이 그 즈음 자리를 펴기 때문에 ‘좋은’ 물건을 사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들과 교류하기 위해서다. 백화점에서 유통이 일어난다면, 재래시장에서는 소통이 이루어진다. 부산의 재래시장이 건재한 이유다.

(왼쪽) 이들 부부의 아침 식사 10시 전후. 국수(밀면)는 출출해지는 오후 3~4시에 즐기면 좋은 요깃거리다.


1 하모(참장어)는 뼈대가 두꺼워 회를 뜰 때 잔칼집을 내는 것이 먹기 좋다.
2 하모, 농어, 조기, 참소라로 직접 뜬 모둠 회.


‘장안요’의 기장시장 단골집
대라건어물도매 기장시장에서 건어물가게의 시초가 되는 곳으로 올해로 14년 째다. 기장 멸치뿐만 아니라 질 좋은 미역, 다시마 등을 1.5kg 1만 4천~1만 5천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요즘은 청어새끼 말린 것이 좋다고. 문의 051-723-0344
청해수산 입맛 까다로운 신경균 씨와 꼼꼼한 임계화 씨의 마음에 쏙 들게 생선 손질을 해준다. 문의 017-557-1770
막내회센타 배를 직접 관리하는 곳으로 자연산만 취급한다. 제철의 싱싱한 생선으로 가득한 곳. 문의 051-721-5845


부산의 맛을 보다
부산은 바다와 강, 산을 끼고 있어 바다 생선, 민물 생선, 채소 등 식재료가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생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부산 시장의 특징이다. “제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환경유전자’라는 말이 있어요. 입맛도 유전이 되고 음식도 3대가 내려온다는 뜻이죠. 그래서인지 부산 사람들은 생선 맛을 본능적으로 기가 막히게 잘 알아요.”

딱히 싫어하는 음식이 없지만 좋아하는 음식은 계절에 맞는 것. 요즘은 부산 지역도 산란기가 지났을 때라 생선 맛이 별로 없지만 그중 제철을 맞은 것이 하모(참장어)다. 뱀장어, 먹장어(곰장어)도 맛이 좋을 때다. 곰장어는 부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기도 한데,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자갈치 시장의 역사와 함께한다. 자갈치는 원래 자갈이 많던 곳이어서 붙은 지명으로 1930~40년대 해안이 매립되면서 자갈이 다 없어졌다. 해방되면서 일본에서 살던 사람들이 부산으로 대거 몰려들었는데, 집도 재산도 없던 그들은 어물저장고, 냉동고 등이 있던 자갈치에다 좌판을 펴낸 것이 자갈치시장의 시초라고. 한국전쟁은 자갈치 시장을 한층 더 번창하게 만들었다. 피란민들이 너도나도 자갈치에 좌판을 벌인 것. 이 즈음에 곰장어구이 좌판이 등장했다. 곰장어뿐만 아니라 부산을 대표하는 밀면도 마찬가지다.

1 밀면은 부산 사람들이 여름이면 가장 많이 즐기는 별미로, 수육과 함께 낸다.
2 이들 부부는 밀면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벌써 10년 전에 국수 뽑는 기계를 구입했을 정도다.


“밀면은 한국전쟁 피란 시절에 만들어진 것인데, 함경도 출신의 실향민이 냉면을 먹고 싶어 당시 구호물자인 밀가루로 냉면 면발 비슷하게 만들어 먹은 게 시작이에요.” 속내를 알고 보면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것들이지만 지금은 부산의 대표 먹을거리로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다. 이들 부부도 여름이면 밀면을 자주 즐긴다고. 여기에 수육을 곁들여 먹으면 여름의 별미로 더없이 좋단다. 하지만 여기에도 ‘장안요 밥상’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제철 기운을 가득 담은 질 좋은 재료를 고집하는 것. 그 계절에, 우리 땅에서 난 살아 있는 재료로 그때그때 요리하는 게 ‘장안요다운’ 음식이다.

음식에 도자기 옷을 입히다
“그릇에 담기는 주인공이 음식입니다. 바꿔 말하면 음식은 도자기로 마감이 되지요. 도자기로 음식에 옷을 입히세요. 밑반찬도 담기는 그릇에 따라 요리가 되기도 한답니다.” 밥상 위에 오르는 그릇으로, 쓰임새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은 것이 신경균 씨의 마음이고, 그 심중을 헤아려 그릇에 담길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내 임계화 씨의 마음이다.

“그릇을 보면 얼마나 힘들게 만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그릇에 대한 고정관념이 제게도 있었어요. 음식을 담는 용도의 컵을 처음 만들어왔을 때, ‘여보, 이게 어떻게 밥그릇이야?’라고 했더니 ‘어떻게 그런 생각으로 음식을 만드느냐?’고 화를 버럭 내더라고요. 그릇이 제게 오면 숙제가 그거예요. 여기에 어떤 음식을 담아야 이 그릇이 제 구실을 할까.”

컵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릇을 한참 들여다보다 숭늉을 제일 먼저 담았다. 한데 숭늉을 담아보니 컵도 아니고 국그릇하고도 느낌이 다른 게 아닌가. 한낮 숭늉에 지나지 않던 것을 두 손으로 감싸 받쳐 마시다 보니 음식이 귀히 여겨지고, 속이 적당히 깊어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편했다. 요즘은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바뀌어 밥상에 엎드려 먹는 사람이 없으니 그릇도 생활에 맞게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생각을 바꾸자 그릇을 만들 때 담을 음식을 생각하는 남편의 마음씀씀이가 보이기 시작했다. 술 마시는 것, 요리하는 것, 음식을 먹는 것….

(왼쪽) 장안요의 도자기는 ‘뽐내는 그릇’이 아니라 음식을 담아내는, ‘쓰임새 있는 그릇’이다.


1 보릿 물을 삶아서 국물을 내는 경상도 열무 김치는 잘 쉬지 않는 반면 쌀이 들어가는 전라도 열무김치는 잘 쉰다.
2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신경균・임계화 부부.


하루 중 잠자는 4시간을 제외한 모든 일상이 그릇을 빚는 남편 신경균 씨의 작업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약주를 즐기다 보니 물김치가 1년 3백65일 떨어지는 날이 없어요. 여름철에는 열무김치가 늘 상에 오르죠. 손님상에도 올리는데, 오목한 접시에 담아 하나씩 내요. 개운한 맛이 입맛도 돋우고 양배추도 많이 넣어서 소화도 잘되거든요. 열무김치는 경상도식과 전라도식 두 가지를 모두 즐기는데, 주재료만 열무이지, 부재료는 엄연히 달라요. 경상도는 보릿물을 삶아넣거나 찹쌀을 끓여넣는 반면 전라도는 밥을 갈아넣거든요. 그런데 전라도 음식을 경상도의 도자기에 담다 보니 그 의미가 남다르더라고요.”

계절의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부는 식재료에 대한 대접도 남 다르다. 절기에 따라 식재료가 맛이 들면 그릇이 달라지는 것. “장마철엔 가지가 물이 많아 볶아도 고슬고슬한 맛이나지 않지만 맛이 드는 8월에는 가지도 요리 그릇에 담아요. 좋은 그릇에 제철 음식을 담아 먹는 것이 장안요식의 부산의 맛이지요.”

글 신민주 기자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