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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 철든 부엌] 단오 절식과 초여름 밥상
농사와 연관 지어 자연의 흐름을 알리는 24절기 중 아홉 번째가 망종 芒種이고, 이후로 하지 夏至가 이어집니다. 농사일이 바빠지는 때로, 먹을 게 없던 보릿고개도 이맘때가 되면 막바지에 이르지요. 그 와중에도 농사일을 접고 새 옷을 입고 놀이를 즐기는 큰 명절이 있었는데, 단오가 바로 그날입니다.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이즈음의 단오 절식과 보릿고개를 넘기던 옛 음식들은 여름을 맞이하는 유월의 맛이요, 최고의 호사가 아닐수 없습니다.

입하에 일어선 여름 기운이 하지가 되면 온 세상에 뻗치는데, 해가 가장 많이 비추니 이때부터 여름 한가운데로 접어든다. 농사일은 망종에서 하지까지가 고비라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장마가 오기에 앞서 밭마다 김을 매고 풀에 치이지 않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사이에는 예부터 설날・추석과 더불어 큰 명절로 꼽히는 단오가 있다.

단오 절식 가운데에서도 으뜸으로 꼽는 것은 준치 만두.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고 할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거니와 이즈음에는 가장 맛 좋을 때이다. 만두라는 이름이 붙긴 하지만 만두피에 소를 넣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생선 완자라 할 수 있다. 가시가 많은 준치를 푹 쪄서 살만 발라낸 다음 다진 쇠고기와 함께 양념해 동그랗게 완자로 빚어 녹말가루를 묻혀 쪄내거나, 장국에 삶아 건져 쑥갓을 띄워 낸다. 아기 입술처럼 빨갛고 통통하게 익은 앵두의 씨를 발라낸 뒤 오미자물이나 꿀물에 띄워 즐기는 앵두 화채와 수리취떡도 단옷날 빠질 수 없는 절식이다. 수리취떡은 수리취를 삶아서 시루에 안쳐 찐 절편으로, 햇쑥으로 버무리, 절편, 인절미를 만들어 대신하기도 했다. 지금에야 단오가 명절 대접을 못 받고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손에 꼽는 명절로 먹을거리가 풍성한 날이기도 했던 것.

큰 명절답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단오 즈음의 집안 어른들은 명절 준비하랴, 다가올 여름맞이하랴 늘 분주하셨다. 할머니께서 “여름 더위가 시작된다” 하시며 깊숙이 넣어두셨던 부채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베 적삼과 잠뱅이(바지)를 꺼내시면 ‘단오 즈음이구나’ 어림짐작을 했다. 남은 밥을 자루에 넣고 주물러서 풀을 먹여 반쯤 말리신 다음, 다시 올을 골라서 다듬질해 널어 말리면 다리미로 다린 듯이 반듯해 신기해 보였다.

특히 단옷날은 전날부터 부산했는데, 장에 나가서 준치를 사다가 직접 손질하시던 아버지 모습은 늘 애틋하게 그립다. 아버지는 준치 손질에도 일가견이 있으셨는데, 비늘을 긁고 내장을 발라낸 다음 껍질을 벗기고 어머니가 오이지 짤 때 쓰시는 올이 성근 삼베 보자기를 덮고, 감자 껍질 벗길 때 쓰는 날이 사선으로 난 숟가락으로 살살 긁어서 살만 발라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가시가 유별나게 많아 웬만해서는 먹기 어려운 생선 중 하나인 준치이건만, 살만 발라내던 아버지 모습이 어찌나 거룩해 보이던지…. 이렇게 살을 발라낸 준치는 양념을 해서 동글납작하게 빚어 살짝 전을 지진 다음 국물을 부어 탕이나 찜으로 즐겼다.

점심 밥상을 물리고 나면 할머니께서 미리 뜯어놓은 잎 뒷면이 허연 곰취에 귀한 쌀가루 대신 밀가루를 넣어 반죽해서 수리취 개떡도 종종 해주셨다. 집 울타리에 빨갛게 익은 앵두를 따서 빨간 오미자차에 동동 띄워주시기도 했다. 수리취떡 대신에는 쑥갠떡을 즐기기도 했는데, “단옷날 오시 午時(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에 쑥을 뜯어서 말려야 약쑥으로 쓸 수 있다” 하시며 1년 중 가장 양기가 좋은 단옷날 쑥을 뜯어 보관해두었다가 두고두고 즐기곤 하셨다. 시골에서 약쑥은 상비약으로 여겼는데, 사람이 아플 때도 닭이 아플 때도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었다. 단오는 농사일로 고단한 몸이 여름 더위에 거뜬할 수 있도록 몸보신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 옛날처럼 거하게 음식을 차릴 수 없더라도 준치 만두 대신 준치찜으로, 수리취떡 대신 쑥갠떡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는지. 앵두화채 대신 오미자화채를 곁들여서 말이다.

단오를 전후해서 망종이 되면 보릿고개도 막바지에 이른다. 넉넉한 살림이라도 이맘때는 보리쌀을 반 이상 넣어 밥을 짓곤 했다. 그나마 할아버지와 할머니 진지는 흰쌀이 제법 보였지만, 나머지 식구들 밥은 보리쌀에 흰쌀은 듬성듬성 섞여 있기 일쑤였다. 어머니가 햇감자를 큼직하게 썰어 보리밥이 우르르 끓으면 밥솥 뚜껑을 열고 감자를 넣어 감자밥을 지으시면 그것이 여름 밥상의 시작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감자가 상에 오르면 계절이 넘어가는 느낌이 든다. 반찬은 준칫국에 오이소박이, 애호박 새우젓 지짐이, 열무와 얼갈이를 섞어서 담근 김치, 꽈리고추를 쪄서 무친 반찬, 새우젓이나 조개젓무침 등 푸성귀 일색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름기 쏙 뺀 건강 밥상이다. 찬물에 만 보리밥에 오이지 하나만 더해도 입맛이 확 돌았으니까 말이다. 노랗게 익은 오이지를 썰어서 찬물에 담그고 실파를 송송 썰어 얹어 고춧가루 약간, 식초 한 방울 떨어뜨리면 더 이상의 찬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축축하고 눅눅한 장마가 오기 전에 여름 반찬 준비로 장떡을 만들어 말리기도 하셨다.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서 짭조름하게 만들어 반쯤 말렸다가 번철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지져주시던 장떡은 이즈음이면 간절하게 생각나는 솔 푸드다. 어린 시절에는 보릿고개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게 해주던 음식들이지만 몸은 물론 마음까지 다스려주니 진정한 건강 밥상이 아닐 수 없다.

어릴 적 추억 속의 화려한 단오 절식
준치찜
재료
(4인분) 준치(살만 바른 것) 150g, 쇠고기 100g, 무 80g, 표고버섯 2개, 미나리ㆍ 쑥갓 30g씩, 마른 고추 1개, 육수 3컵, 밀가루・달걀물・식용유 적당량, 소금 약간
준치살 양념 다진 파 1작은술, 다진 마늘 1/3작은술, 소금ㆍ후춧가루ㆍ참기름 약간씩
쇠고기 양념 국간장 1작은술, 다진 파 1/2큰술, 다진 마늘 1/2작은술,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 1 준치는 비늘을 긁고 내장을 발라낸 다음 껍질을 벗긴 후 올이 성근 베보자기를 덮고 숟가락으로 긁어 살만 발라낸다.
2 준치살에 분량의 재료를 모두 넣고 양념한 후 4등분해 동글납작하게 빚은 다음 밀가루와 달걀물을 순서대로 묻혀 전을 지진다.
3 쇠고기는 납작하게 썰어 분량의 재료를 모두 넣고 양념한다.
4 무와 표고버섯은 납작하게 썰고, 미나리와 쑥갓은 다듬어 씻어서 4cm 길이로 썬다. 고추는 가위로 잘라서 씨를 털어낸다.
5 냄비에 ③의 쇠고기와 ④의 무를 넣고 달달 볶다가 마른 고추와 육수를 붓고 거품을 걷어내면서 끓인다. 무가 무르면 표고버섯과 ②의 전을 넣고 끓이다 마지막에 미나리와 쑥갓을 넣고 소금으로 간한다.


쑥갠떡

재료 멥쌀가루 2컵, 쑥 100g, 소금ㆍ참기름 약간씩
설탕 시럽 설탕 11/2큰술, 물 3큰술
만들기 1 쑥의 떡잎은 떼어내고 줄기 끝은 잘라내고 씻는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고 데쳐서 찬물에 헹궈 물기를 꼭 짜는데, 이때 100g씩 납작하게 만들어서 랩에 싼 다음 냉동해두면 여름 내내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2 데친 쑥은 잘게 다져 소금을 약간 넣은 멥쌀가루에 넣고 손으로 비벼 섞는다.
3 물에 설탕을 넣고 약한 불에서 끓여 시럽을 만든다. 뜨거울 때 ②에 부어 고루 섞고 오래도록 치대 말랑하고 매끈하게 반죽한다.
4 ③의 반죽을 15등분해서 동그랗게 만들어 도마 위에 랩을 깔고 반죽을 몇 개씩 서로 붙지 않을 간격으로 놓은 다음 다시 랩을 씌우고 떡살로 찍는다. 면 보자기를 깐 찜통에 반죽을 넣는다.
5 찜통을 올릴 냄비에 물을 붓고 중간 불에서 끓인다. 물이 끓어오르면 ④의 찜통을 얹어서 25분 정도 찐다.
6 반죽이 다 익으면 한 김 식힌다. 그래야 떡이 쫄깃해진다. 양손에 참기름을 발라 떡을 한 개씩 비벼 담는다.

오미자화채
재료
말린 오미자 1컵, 물(끓여서 60℃ 정도로 식힌 것) 6컵
설탕 시럽 설탕 3/4컵, 꿀 1/4컵, 물 1컵
만들기 1 오미자는 소쿠리에 담아 흐르는 물에 휘 씻어 물기를 뺀 다음 유리 볼에 담고 끓여서 식힌 물을 부어 10시간 정도 우린다.
2 물에 설탕과 꿀을 넣고 약한 불에서 끓인 후 식혀 시럽을 만든다.
3 젖은 면 보자기에 ①을 부어 국물만 밭은 후 ②의 시럽을 넣고 기호대로 단맛을 조절한다.
4 컵에 ③을 붓고 씨를 뺀 앵두나 꽃 모양으로 찍은 배 과육을 띄운다.

여름을 맞이하는 소박한 밥상
감자 보리밥
재료
(4인분) 보리쌀 2컵, 쌀 1/2컵, 감자 2개
만들기 1 보리쌀은 씻은 후 물에 담가 하룻밤 정도 불리고, 쌀은 씻은 후 체에 밭쳐 30분 정도 불린다.
2 갑자는 껍질을 벗겨 큼직하게 썬 다음 물에 헹궈 건진다.
3 밥솥에 쌀과 보리쌀, 감자(밥의 양이 많지 않을 때는 처음부터 넣는다)를 고루 섞어 넣고 중간 불에 올린다. 우르르 끓으면 불을 줄여서 뜸을 들인다. 밥의 양이 많을 경우에는 밥이 끓어오를 때 감자를 넣는다.

오이지
재료
오이(오이지용) 50개, 굵은소금 21/2컵, 꽃소금 1컵, 물 15컵
만들기 1 오이는 물에 씻어 꽃소금으로 문질러 닦는다. 이때 오이는 20cm 정도 길이에 너무 굵지 않은 것이 오이지용으로 적당하다.
2 냄비에 물과 굵은소금을 넣고 끓인다. 끓어오르면 오이를 한 개씩 넣고 데쳐서 통에 차곡차곡 담고 마지막에 끓는 소금물을 그대로 부어서 식힌 다음 뚜껑을 덮고 오이가 뜨지 않도록 속 뚜껑을 덮거나 접시를 덮어서 눌러준다.
3 서늘한 곳에서 2주일 정도 익혀 냉장고에 넣는다.

부추 장떡
재료
(4인분) 부추 70g, 깻잎 30g, 풋고추 20g, 식용유 3큰술, 밀가루(박력분)ㆍ 참기름 1큰술씩
반죽 부침 가루 1컵, 고추장 1큰술, 된장 1작은술, 얼음물 2/3~1컵
만들기 1 부추는 다듬어 씻은 후 2cm 길이로 썰고, 깻잎은 씻어서 길이로 3등분해 5mm 폭으로 썬다. 풋고추는 송송 썬 다음 물에 헹궈 씨를 털어낸다.
2 채소의 물기를 빼고 밀가루를 고루 뿌려서 섞는다.
3 볼에 부침 가루를 담고 고추장 푼 물을 부어 대충 섞은 다음 ②의 채소를 넣고 섞어 반죽을 만든다.
4 달군 팬에 식용유와 참기름을 섞어 넉넉히 두른 다음 ③의 반죽을 1큰술씩 수북하게 떠서 얇게 펴 지진다. 한 면이 노릇하게 익으면 뒤집어서 고루 지진다.

 

요리 노영희(스튜디오 푸리)

 

진행 신민주 기자 사진 김용일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