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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유명요리 학교]르 코르동 블루 런던 캠퍼스에서 유학 중인 KBS <누들로드>의 이욱정 PD 요리사의 세계라는 망망대해로 쪽배에 몸을 싣고!
요즘 도심에서 잘나가는 레스토랑의 요리사를 만나 보면 해외 유명 요리 학교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외국의 요리 학교에 유학 중이거나 요리 유학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음식에 관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조선일보> 음식 담당 김성윤 기자와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로 방송대상을 거머쥔 KBS의 이욱정 PD도 현재 요리 유학 중입니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기에 ‘음식에 미친’ 이들을 그 멀리까지 날아가게 했는지, 두 남자의 생생한 유학 일기가 지금 시작됩니다. 유학 준비생을 위한 세계의 요리 학교 정보 모음도 놓치지 마세요.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제작하면서(이 말을 할 때마다 언제나 난 모든 사람의 부러움 섞인 감탄사를 듣는다) 정말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온갖 나라의 국수를 맛보았다. 그중 절반은 촬영을 다 끝낸 후 먹어야 하는 바람에 불어터진 국수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평생 다시 못할 독특한 체험이었다. 하지만 면발만큼 길었던 여정에서 내 마음을 정말 흔들어 놓은 건 각국에서 만난 요리사들이었다. 밀가루, 물, 소금같이 아무런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 재료를 먹음직스러운 한 접시의 요리로 바꾸어 놓는 요리사들은 누들로드의 마법사들이었다. 중국 신장 사막의 오두막 같은 국숫집 요리사부터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마스터 셰프까지, 내 눈에는 모두가 멋져보였고 어떤 이는 나의 우상이 되었다.

(왼쪽) 시연 강의 중간의 휴식시간

그러던 중 엉뚱한 꿈을 품기 시작했다. ‘프로페셔널 요리사가 되어보자. PD가 아닌 요리사의 눈으로 음식의 세계를 체험해보자!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누들로드>를 넘어서는 음식 프로그램을 제작해보자.’ 그러다 몇 개월 후 나는 정말 일을 내고야 말았다. 방송사에 휴직계를 내고, 요리 유학을 결정한 것이다. 휴직 서류를 접수한 방송사 인사팀 직원의 말처럼 ‘나는 KBS 개국 이래 요리 학교 유학 때문에 휴직계를 낸 최초의(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이 될) PD’가 되었다. 아무리 따져 봐도 참 용감무쌍하고 겁 없는 짓이었다. 일단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무슨 장애물이 있어도 저지르고 보는 평소 나의 성격 덕이었다.

하지만 막무가내 도전 정신으로 가득 찬 내가 보아도 유학길은 첩첩산중이었다. 우선, 유학 자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재테크와는 담을 쌓고 주로 ‘소비 테크’(먹는 것에 수입의 절반 이상을 썼으므로 후회는 없지만)에 열중해온 덕이니 남을 탓할 수도 없고, 결국 전세금에 마이너스 대출에 주머닛돈, 쌈짓돈 전부 다 쓸어모아야 했다. 전 재산으로 요트 한 척 사서 세계 일주에 나선 어떤 모험가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내가 꼭 그런 경우였다. 아무튼 <누들로드> 시리즈의 방송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나는 무작정 유학길에 올랐다. 요리사의 세계라는 망망대해로! 쪽배에 몸을 싣고!

(오른쪽) 내 단짝 친구들인 8인조, 가끔씩 고등학교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1 이제 겨우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었는지 표정이 여유로워 보인다.
2 처음에는 왠지 낯설고 어렵다. 하지만 자꾸 먹다 보면 왜 세계가 프랑스 요리를 숭배하는지 알게 된다.


미식과 요리 프로그램의 메카, 런던 내가 입학한 학교는 세계적인 명성의 프랑스 요리 학교 르 코르동 블루 Le Cordon Bleu. 189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탄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 학교이다. 얼마 전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줄리 앤 줄리아 Julie & Julia>의 배경이 되기도 한 르 코르동 블루는 파리를 비롯하여 전 세계 11개 도시에 글로벌 캠퍼스를 거느리고 있다. 그중 내가 선택한 곳은 르 코르동 블루 런던 캠퍼스였다. 사실 런던으로 요리 공부하러 간다고 하자, 주변의 흔한 반응이 이랬다. “영국에 뭐 먹을 게 있어. 피시 앤 칩스밖에 없잖아.” 하지만 해외 촬영때문에 영국을 여러 번 방문한 덕에 나는 일반의 ‘영국=맛없는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이제 더 이상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지난 10년간 런던은 세계적인 미식의 메카로 급부상했고, 이제는 파리와 뉴욕을 뺨치는 다채로움과 깊이를 갖추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인 셰프 안의 수업 장면. 특별히 허용된 한 컷!
4 실습 수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마지막 순간, 요리를 마무리하는 내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런던을 택한 데에는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파리에 비해 런던 캠퍼스가 유학 비용 면에서도 유리했다. 지금껏 런던이 생활비가 비싼 도시로 손꼽혀왔지만 최근 파운드화의 약세로 런던 캠퍼스의 학비와 생활비가 파리보다 저렴해졌다. 학교 수업도 전 과정이 영어로 진행되므로 언어 때문에 따로 골머리를 썩을 필요가 없었다. 가끔씩 수업 시간에 프랑스 셰프의 영어 발음을 알아 듣지 못해 고생할 때도 있지만(참고로, 르 코르동 블루의 경우, 파리 캠퍼스에서도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최근에는 최고급 과정까지 영어 강의가 확대되었다. 현실적인 조언을 하나 덧붙이자면, 르 코르동 블루의 글로벌 캠퍼스는 동일한 커리큘럼으로 연결되어 있다. 초중급 과정을 국내에서 마치고 슈피리어 과정만 런던이나 파리 같은 해외 캠퍼스에서 하는 것도 학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이런 매력 때문에 런던 캠퍼스는 르 코르동 블루의 글로벌 캠퍼스 가운데 재학생의 국적이 가장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지구 곳곳에서 셰프의 꿈을 품고 모여든 이들과 함께 같은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다. 50여 명 동기생의 국적을 따져보니 12개국이 넘었다. 요즘은 어떤 직종이나 마찬가지지만, 21세기의 요리사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국제적 감각을 가진 셰프에게는 전 세계의 레스토랑이 잠재적인 일터가 될 수 있다. 식문화 전문 프로듀서를 꿈꾸는 나에게도 이런 다문화 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인 조건이었다. 난 요즘 카레 curry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인도나 타이 친구들과 어울려 지낸 덕분이다(www.kbs.co.kr/cook에 가면 요리 학교 친구들의 쿠킹 비디오를 볼 수 있다).


5 입학 전, 아주 가끔 두르던 앞치마가 이제 일상복의 일부가 되었다.
6 맛내기보다 보기 좋게 담는 프레젠테이션이 몇 배나 더 어렵다.


PD인 나에게는 런던에서 요리 공부하는 장점이 한 가지 더 있다. 단언하건대, 영국은 전 세계에서 요리 프로그램을 가장 잘 만들고 가장 많이 시청하는 나라다. 일본에 가서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24시간 언제든지 나오는 프로그램이 두 가지 있는데 그 하나가 ‘야구 경기’고 또 하나가 ‘요리 프로그램’(특히, 유명한 우동이나 라면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다. 영국도 그와 비슷하다. 낮이고 밤이고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꼭 나오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축구 경기’이고, 두 번째가 ‘요리 프로그램’이다. 이탈리아도 그렇고, 프랑스조차도 TV 요리 프로그램의 인기가 영국처럼 높지 않거니와 프로그램의 품질도 그냥 그렇다. 반면에 영국의 BBC와 CHANNEL 4 등에서 제작하는 쿠킹, 요리 기행,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의 수준은 창의성이나 세련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내 요리 유학의 큰 목표가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할 멋진 음식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프로듀서가 되는 것인 만큼, 공부 환경으로는 이곳 런던이 10점 만점에 10점인 셈이다.

요리의 즐거움과 스트레스 사이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요리하기보다는 먹는 것이 주전공이던, 그래서 양파 하나 올바르게 썰 줄 모르던 방송사 PD에게 르 코르동 블루의 훈련 과정은 초급반 과정부터 전쟁이었다. 학교에 오기전까지 나에게 요리는 주말에 집에서 느긋하게 와인 한잔 마셔가며 콧노래 흥얼대며, 내 마음대로 레시피에 따라, 부엌을 최대한 어질러가며 즐기는 취미이자 놀이였다. 그런데 프로페셔널 셰프를 키우는 직업 요리 학교의 훈련 과정은 전적으로 달랐다.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생소했고 엄격한 매뉴얼을 지켜야 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주방 용어와 레시피를 암기하는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머리만 아픈 게 아니었다. 실습실 주방은 사방 360도가 ‘지뢰’였다. 까딱 정신줄 놓으면 영락없이 손가락을 썰었고, 불에 데었다. 입학 첫 주가 지났을 때 나는 이미 감을 잡았다. ‘어라? 이거, 장난이 아니구나!’

어떤 일이든지 취미로 할 때와 직업이 되었을 때, 그것에서 얻는 ‘즐거움’과 겪어야 할 ‘스트레스’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축구나 골프를 여가로 즐길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재미난 놀이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먹고사는 직업이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르 코르동 블루에 들어와보니 스포츠보다 그런 차이가 극과 극인 것이 바로 요리였다. 프로의 주방은 우선 도구부터 달랐다. 칼이 그랬다. 입학 전 주방에서 쓰는 칼 가운데 내가 아는것이라고는 고작 ‘식칼’ 아니면 ‘과도’였다.

르 코르동 블루의 나이프 케이스를 처음 열어봤을 때 나는 ‘식칼’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것에 새삼 놀랐다. 생선을 손질하는 피시 나이프 fish knife, 채소 껍질을 다듬는 패링 나이프 paring knife, 뼈를 토막내는 클리버 나이프 cleaver knife 등 각기 생김새도 다르고 쓰는 방법도 달랐다.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하나같이 무섭게 날카롭다는 사실! 이것과 비교하면 보통 집 주방에서 쓰는 칼은 장난감 칼이었다. 다양한 주방 칼 가운데 나를 자주 베던 놈은 카빙 나이프 carving knife다. 앞 끝이 둥그스름하게 생긴 카빙 나이프의 ‘인상착의’는 왠지 ‘순진하고 우직하게’ 생겼지만 예리함은 장난이 아니다(한번 베이면 손가락을 로스트비프처럼 썰어버린다). 정신을 똑바로 안차리고 이 ‘흉기’들을 잘못 다루다가는 나중에 공부 마치고 한국에 돌아갈 때쯤엔 열 손가락 중 성한 것이 없을 것 같았다.


7 르 코드동 블루에서는 전동 핸드 블렌더를 사용하지 않는다. 손으로 해봐야 음식의 실감을 제대로 배울 수 있기 때문.
8 <누들로드> 촬영 당시 이탈리아 시칠리에서 먹은 파스타. 역시 좀 불어있다.


집에서 요리하던 시절에야 조리하다 손가락에 묻은 소스를 슬쩍 빨아먹든, 미디엄 레어로 구워야 할 스테이크를 뻑뻑한 웰던으로 굽든, 요리를 한 시간 늦게 내든 용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의 주방에서는 다르다. 당근 하나 써는 일까지도 엄격한 규칙과 정확한 테크닉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부뤼누아즈 brunoise는 0.3cm 크기의 정육면체로, 파인 브뤼누아즈 fine brunoise는 0.15cm 크기, 마세도앙 macedoine은 1.2cm 크기로 썰어야 한다. 물론, 막상 자르다 보면 결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브뤼누아즈로 잘라야지 하고 시작했다가 삐뚤빼뚤 자르다보면 점점 작아져 어느덧 파인 브뤼누아즈가 되어 있다. 완성된 요리를 검사하던 셰프(학교에서는 선생님을 보통 셰프라고 부른다) 왈, “욱정, 너 이 당근 현미경 보면서 잘랐니?” 르 코르동 블루의 주방에서는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요리 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은 프로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것이다. 나의 겁 없은 도전은 이제 겨우 애피타이저를 맛본 단계일 뿐이다. ‘인생은 저지르는 자의 몫이다’라는 모토를 가슴에 새기면서 오늘도 주방의 뜨거운 열기와 싸워보려 한다.

르 코르동 블루 런던 Le Cordon Bleu London
런던 내에서도 유행의 중심지인 웨스트엔드 West End에 위치해 있다. 과정은 르 코르동 블루 프랑스와 같은 요리, 제과, 그랑 디플로마로 구성되어 있다. 런던의 고급 과정은 초콜릿 공예, 설탕 공예, 레스토랑 디저트, 애프터눈 티 모듈, 블랑제리 모듈 그리고 테크니컬 데모 수업으로 이루어진다.
홈페이지 www.lcblondon.com
주소 114 Marylebone Lane London, W1U 2HH, United Kingdom
전화번호 +(44) 20 7935 3503
글 이욱정 사진 이재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