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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 인터뷰]한국인의 얼굴을 한 벨기에 요리사 상훈 드장브르의 테이블
그림은 눈을 통해 마음에 감동을 전달하고, 음악은 귀를 통해 정신을 일깨운다. 온몸을 불사르는 무용 또한 사람을 동요시킨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예술 행위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요리는 어떠한가? 정갈하고 아름다운 요리 접시를 앞에 놓고 우리는 눈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재료들이 내는 신선한 소리에 귀가 황홀하다. 음식에서 풍기는 기분 좋은 냄새는 우리를 금세 다른 세상으로 이끈다. 삶에서 축적되는 온갖 문제와 그 무게를 모두 잊게 하는 힘을 분명 요리는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감히 훌륭한 요리 또한 예술의 범주에 넣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여기, 요리를 통해 커다란 즐거움을 느끼게 하 는 한 예술가가 있다.


(왼쪽) 식초에 절인 생강과 상훈 드장브르의 농장에서 재배한 한련 잎을 얹은 모시조개 요리, 퐁마랑 Fond Marin.
(오른쪽) 농장에서 갓 뽑은 래디시를 들고 환하게 웃는 상훈 드장브르의 모습.


벨기에 브뤼셀에서 30분 거리의 시골 동네 나뮈르 Namur에 작고 소박한 집 한 채가 있다. 바로 요리사 상훈 드장브르 Sang-Hoon Degeimbre의 레스토랑 ‘레르 뒤 탕 L’air du temps’이다.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시간의 공기’ 혹은 ‘시간이 가진 분위기’를 뜻하는 말인데, 불어에서 꽤 자주 쓰이는 표현이기도 하다. 왜 레스토랑 이름을 ‘시간의 공기’로 지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그냥 제가 자주 쓰이는 말이고 좋아하는 말이에요. 특히 레스토랑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다 보면 변화하는 시간이 내뿜는 분위기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이른 아침, 신선한 재료들이 배달되는 시간과 요리사끼리의 간단한 조회, 오늘도 열심히 해보자는 격려와 다짐, 그러고는 칼 소리와 물소리가 분주하게 흐릅니다. 손님이 오기 바로 직전 식사를 하고 요리사들과 홀서빙 웨이터들은 테이블과 옷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그리고 이내 손님들이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때부터 주방은 바쁜 움직임과 엄청난 긴장감으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죠. 러나 일사불란한 움직임과 협력으로 주방은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점심 식사가 끝나면 서둘러 주방과 홀 청소를 하고 저녁 시간까지의 휴식 시간이 찾아오면 녹초가 되어 빈 레스토랑 홀과 주방을 바라봅니다. 시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저는 항상 휩싸여 살아가기에, 그리고 긴장되지만 요리하는 그 순간만큼은 저를 감싸고 있는 시간의 공기가 매력적이기에 레스토랑 이름을 그렇게 지었습니다.”

(왼쪽) 주방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상훈 드장브르의 레스토랑, 레르 뒤 탕 L’air du Temps 메인 홀

그는 서양 사람들에 둘러싸인 작고 반짝이는 까만 눈의 남자다. 한국에서 태어나 벨기에로 입양되어 우리에게는 낯선 ‘드장브르’라는 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얼굴은 분명 해맑게 웃고 있는 순진한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상훈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벨기에 사람들은 그를 ‘상’이라고 부른다. 레스토랑의 로고 역시 한국어의 자음 ‘ㅅ’이다. 입양된 이래 한 번도 한국을 찾은 적이 없던 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배경은 그의 요리에 대한 재능이었다. ‘서울 고메 Seoul Gourmet 2010’을 통한 한국 방문이 그에게는 두 번째 한국 여행이었다. “한국인은 처음엔 친해지기 힘든 면이 있어요. 내성적이고… 뭐랄까 가까워지기 힘든 성격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친해지면 둘도 없는 사이가 되죠. 서양인들 사이에서 제 모습이 늘 그랬어요. 저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이 한국인을 만나면서 풀린 셈이지요. 아, 내가 한국 사람이라 그런 거였구나 하는 깨달음요.”

(왼쪽) 레르 뒤 탕 L’air du Temps 외관

약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어느 날, 그는 요리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약과 음식 모두 사람의 몸을 이롭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약보다는 음식이 사람에게 더욱 필요한 요소고 더 훌륭한 약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후 요리를 배우고 레스토랑 사업을 공부한 후 나뮈르라는 작은 시골 동네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되었다. 1997년 욕심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시작한 사업이었다. 2000년에 들어서 그는 모든 셰프가 꿈꾸는 <미슐랭 Guide Michelin>의 별을 하나 얻게 되었다. 이후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졌으며 많은 사람이 이곳 작은 시골 동네까지 찾아와 그가 펼치는 황홀한 요리를 맛보고 갔다. 약사가 되려고 했던 그는 물질의 성질과 화학 반응에 대한 실험을 요리에도 접목하기 시작했다. 장미 꽃잎의 향을 요리에 효과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꽃잎을 순간적으로 얼렸다가 가루로 만든다든가, 가리비를 전혀 다른 형태로 탈바꿈시켜 다른 재료와 섞는 등의 새로운 조리법을 도입해 그는 2008년 <기드 미슐랭>의 두 번째 별을 따냈다. 채 마흔이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베테랑 요리사도 따기 힘 든 ‘두 번째 별’을 딴 것이다. 물질과의 결합과 식재료 자체가 가진 영양 성분, 맛, 성질을 단순히 조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과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해보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를 지금의 셰프 스타덤에 오르게 한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모두들 요리라고 하면 단순히 주방에서 맛있게 요리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제게요리는 하나의 실험이기도 하고 예술 행위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워야 하고 맛있어야 하고 향기로워야 하지만 무엇보다 건강에 이로워야 하는 것이 바로 요리니까요.” 그의 주방에는 실험 장비가 곳곳에 눈에 띄기도 한다. ‘식재료의 화학 실험’이라고 해서 이상한 물질을 섞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료가 가진 성질을 이용해 맛과 향을 더욱 살리며 영양분을 파괴하지 않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요리사이자 과학자 그리고 예술가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제게 묻지만 저의 대답은 항상 동일했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죠. 저의 배경과 관심사, 열정을 찾으려다 보니 요리에 대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입니다.” 이제 그의 레스토랑은 나뮈르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현재 그는 항상 꽉 차는 예약 손님들때문에 근처의 더 큰 레스토랑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정도의 명성이면 대도시 한복판에 레스토랑을 차려도 좋을 텐데 왜 하필 작은 시골을 고집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곳의 좋은 점은 제 요리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신선하게 공급해 줄 수 있는 업체가 모두 가까이 있다는 것이죠. 저는 지역에서 난 재료로 요리를 하는 슬로푸드를 사랑하거든요. 사람들이 멀리서도 힘들게 레스토랑을 찾아와 제 요리를 맛보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10분 거리에 농장이 있어 신선한 쇠고기를 얻을 수 있고, 산비둘기 농장도 20분 거리에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신선한 해산물을 멀지 않은 거리에서 공급받지요. 거위 농장도 근처에 있어 푸아그라 같은 고급 재료를 신선하고 손쉽게 공급받습니다. 동네 한 귀퉁이에는 제 요리에 사용하는 채소들을 직접 가꾸기도 합니다.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깻잎이라든가 시소(일본 깻잎) 같은 식물, 그 외에도 갖가지 향을 내는 채소를 직접 심어 가꿉니다. 저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 이곳이야말로 요리를 하기에 천국과도 같은 곳이지요. 이사하게 될 레스토랑도 옛날 방식의 거위 농장과 창고를 개조한 곳이에요.”

(오른쪽) 성게 껍데기를 자르고 있는 상훈 드장브르.


분주한 주방 한 쪽에 신선한 재료들이 레시피의 온도에 맞게 지글지글, 보글보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좋은 요리는 그 지방에서 자라는 농산물로 사람에게 이로운 조리법을 적절하게 접목시켜 만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하모니의 리듬이 깨지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아무리 좋은 재료라 하더라도 좋은 조리법이 없으면 걸작 요리는 탄생하지 않며, 아무리 좋은 조리법도 재료가 훌륭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한국 요리를 어떻게 접하게 되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벨기에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 요리를 만나기란 힘든 일입니다. 일본 친구가 처음 김치를 맛보게 해주었을 때 제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어쩌면 그 단순한 배추 한 조각에 온갖 맛이 다 들어 있을 수 있을까 하고요.” 한국인은 한국 요리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좋은 한국 음식을 외국인에게 효과적으로 소개하는데는 아직 배워야 할 점이 많다. 음식은 미각을 통해 즉각적으로 사람의 기분을 바꾸어놓고, 좋은 재료로 만든 기분 좋은 식사는 우리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인은 한국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만 합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 복잡하고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요리도 있고 때로는 매우 간단한 맛을 내는 요리도 있습니다. 한국 요리는 그 하모니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무조건 많은 재료를 한꺼번에 넣는다고 좋은 요리가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아담하고 조용한 두 번째 홀.

벨기에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찾을수 있는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파릇파릇한 시금치도 입에서 살살 녹는 한우도 구경조차 할 수 없다. 한국의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탕도 재현해내기가 쉽지 않다. 그는 직접 씨앗을 뿌려 심고, 비슷한 질감의 고기와 생선을 찾으며, 오랫동안 저장 가능하고 건강에 좋은 발효 음식을 요리에 이용한다. 또 레시피를 따르기보다는 식재료가 가진 성질을 이해하고 화학 반응을 유도해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탄생시킨다. 한국의 발효 음식도 어찌 보면 그와 같은 과학적 화학 반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의 한국 음식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한국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기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그의 메뉴에서 김치라는 단어를 자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한국 요리 실험은 ‘서울 고메 2010’이라는 세계적 스타 셰프들과 함께 기량을 뽐내는 자리에서 빛을 발했다. 이후 한식 세계화 추진팀 명예회장이자 영부인인 김윤옥 여사로부터 홍보대사 자격을 수여받았으며, 지난 10월 5일 영부인이 직접 그의 레스토랑을 방문해 요리를 맛보고 갔다.


(왼쪽) 트뤼프 초콜릿과 포도, 살구, 감초, 무화과 등 말린 과일들을 감싼 요구르트 스펀지케이크 ‘네 뒤 리치 Nez du Rich’(직역하면 ‘부자의 코’라는 뜻이다).
(오른쪽) 상훈 드장브르와 그의 아내.


한국 요리는 무한한 가능성과 훌륭한 소재를 가지고 있다. 한국 요리의 수많은 재료와 조리법은 마치 화가가 가진 엄청난 양의 색을 풀어놓은 팔레트와 같다. 그는 “이 훌륭한 팔레트를 이용해 멋진 걸작을 탄생시키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 지속적으로 한국 요리의 세계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요리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늘 사업상 방문하는 한국 여행을 통해 분주한 서울의 모습만 보았지만, 내년 4월 경에는 아내 카린 드장브르 Carine Degeimbre와 세 아이와 함께 ‘한국 맛 기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진정한 미와 자신의 정체성도 더 많이 발견하고 싶다며.

“제 아이들에게도 그들의 시작 일부가 어디에 있었는지, 제 아내에게는 제가 태어난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어도 배울 생각입니다. 한국 요리와 분위기를 이해하려면 언어는 필수니까요. 저는 항상 새로운 것에 끌립니다. 한국은 제가 태어난 곳이지만, 늘 미지의 세계였고 또 끊임없이 끌리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나라 요리에 비해 한국 요리를 잘 모릅니다. 새로움을 모색하는 사람에게 한국 요리는 분명 새롭게 다가갈 것입니다.”

잘 정돈된 정갈하고 심플한 테이블, 색색의 유리잔이 하얀 테이블보를 영롱하게 물들이고 있다. 레스토랑의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고요한 테이블과는 달리 주방의 분위기는 매우 분주하다. 요리사들이 굴껍데기를 가르고 가리비를 손질하며, 밀가루를 저울에 단다. 디저트 파트에서는 쉴 새 없이 초콜릿을 틀에 담아 굳힌다.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작업들이 모여 하나의 근사한 멜로디를 이루면 멋진 요리가 완성된다. 홀에서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방 풍경은 마치 아티스트들이 저마다의 악기를 두드리고 휘두르며 펼치는 활기찬 퍼포먼스를 연상시킨다. 그 한가운데에 침착하게 요리에 집중하는 한국인 셰프, 상훈 드장브르가 있다.

레 르 뒤탕 L’air du Temps
주소 Chaussee de Louvain, 181 B-5310 Noville-sur-Mehaigne, Belgium
문의 +32(0) 8181 2876, www.airdutemps.be


사진 세바스티안 슈티제(Copyright © Sebastian Schutyser)

글 지은경(Eunkyung Ji, 벨기에 통신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