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그리운 엄마표 요리]김춘희 씨에게 배우는 고흥 토속 음식 갯장어 탕과 참맛 회무침
빠른 조수와 차진 뻘밭을 가진 전라남도 고흥 앞바다는 이 계절이면 갯장어와 참맛이 한창이다. 그래서 고흥 사람들은 여름내 지친 몸을 보하고 입맛을 되찾기 위해 갯장어 탕과 참맛 회무침을 즐겼다. 제철 채소를 적절히 곁들여 바다와 땅의 기운이 고루 어우러진, 늦여름 고흥의 별미를 소개한다.

내 고향 고흥은 사철 먹을거리가 넘쳐나는 곳이다. 그중 여덟 가지 특산물과 아홉 가지 별미를 선정해 ‘8품9미’를 꼽는데, 특산물 중에는 유자를, 별미 중에는 갯장어를 으뜸으로 친다. 다른 지방에서 참장어, 바닷장어로 부르기도 하는 갯장어는 일본으로 수출도 한다. 갯장어의 일본 이름은 하모 はも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기기 전부터(우리나라에서는 일제 강점기 이후 즐겨먹기 시작했다) 여름철 고급 별식으로 대접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갯장어 맛에 일가견 있는 일본인들이 가장 맛있는 하모로 꼽는 것이 고흥산 갯장어다. 그런 만큼 수출할 때 ‘한국산’이 아닌 ‘고흥산’을 표기해야 값을 높이 쳐준다는 말도 들었다.
갯장어는 5월부터 11월까지 제철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 사람들은 7월까지만, 고흥 사람들은 8월부터 즐긴다는 점이다. 주로 회나 샤브샤브로 즐기는 일본 사람들은 7월이 지나면 ‘너무 기름져서’ 먹지 않고, 구이나 탕으로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기름진 맛이 좋아서’ 먹기 때문이다. 고흥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기막힌 궁합’이라며 즐거워한다.
우리 집도 이 고흥 갯장어를 사다 탕으로 자주 끓여 먹었는데, 어머니는 항상 “아주 좋은 음식이니 많이 먹어라”라는 말을 덧붙이셨다. 서울에서 유학 중인 오빠들과 내가 방학에 내려가 지낼 때도 틈틈이 상에 올랐지만, 서울로 되돌아가는 날이면 “객지에서 고생할 자식들 보신해줘야 한다”며 만들어주시기도 했다. 그땐 깊고 진한 국물과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갯장어가 맛있을 뿐 보양식이라는 말이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야 공부를 하면서 갯장어가 단백질 함량이 높고 건강에 유익한 지방이 많은 식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에게 배운 방법대로 갯장어 탕을 끓이려면 우선 3~5mm의 좁은 간격으로 뼈 속까지 깊게 잔칼질을 한 다음 적당한 크기로 토막 내 생강을 넣고 뭉근하게 푹 끓인다. 여기에 시래기나 제철 채소인 얼갈이 배추, 열무, 고구마 순 등을 데쳐서 된장에 무친 것과 붉은 고추와 쌀, 들깨 간 것을 함께 넣어 끓이면 된다.
갯장어 탕을 끓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갯장어를 손질하는 일이다. 옛날에는 이렇게 잔칼질해서 푹 끓이면 먹을 때 큰 가시만 발라내고 잔가시는 꼭꼭 씹어 먹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기겁을 하고 싫어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잔칼질을 하지 않고 토막내서 푹 삶은 뒤 건져 일일이 가시를 빼고 살만 넣어 끓이는 방법이다. 아예 구입할 때 뼈를 잘 발라달라고 한 다음(지느러미에서 깊은 맛이 우러나므로 지느러미를 꼭 가져와야 한다) 뼈와 지느러미, 대가리를 푹 곤 물에 갯장어 살만 넣고 끓이는 방법도 있다. 국물에 들깨를 갈아 넣는 것도 옛날과 다르다. 어머니는 들깨가 아닌 참깨를 갈아 넣으셨는데 이유를 여쭤보니 들깨는 돈이 되질 않아 심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넣을 생각도 못하셨단다. 요즘은 흔할 뿐 아니라 맛과 향이 갯장어와 잘 어울려 들깨를 주로 이용한다.
갯장어 탕이 몸을 든든하게 만들어주는 보양식이라면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무뎌진 입맛을 살려주던 음식은 참맛 회무침이었다. 맛조개라고도 부르는 참맛을 살만 발라 살짝 데친 후 호박, 양파 등의 채소와 함께 초고추장에 무쳐 먹는데, 졸깃한 참맛 살과 아삭한 채소가 어우러져 입맛 없을 때 별미로 그만이다. 참맛 회무침의 묘미는 참맛과 호박을 알맞게 익히는 데에 있다. 제대로 된 맛을 내려면 참맛은 끓는 물에 넣어 10초 정도만 데쳐 차게 두고 애호박은 굵게 채친 후 팬에 기름을 두르지 말고 풋내가 가실 정도로만 살짝 볶아내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푹 익으면 형태도 망가지고 맛도 나질 않는다.
또 이맘때 즐겼던 음식으로 풋고추 열무김치도 떠오른다. 담그는 법은 열무김치와 같지만 고춧가루나 붉은 고추 간 것 대신 풋고추를 갈아 넣는 점이 다르다. 풋고추가 약이 올라 칼칼한 맛이 날 때 담그면 개운하고 시원한 뒷맛이 일품이다. 요즘도 즐겨먹는데 어머니는 해마다 콩밭 고랑에서 기른 열무로 김치를 담그시면서 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자라야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내 어머니의 그런 열무를 구하진 못하겠지만 여름철 입맛을 돋워주는 별미 김치이므로 한번쯤 담가보길 권한다.

(오른쪽)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진흥회 이사를 역임하고 현재는 반야로 차도 문화원 회원으로 향기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김춘희 씨. 우리 문화를 두루 아끼는 그가 고향인 고흥 지방의 별미를 소개했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합니다.

갯장어 탕과 참맛 회무침과 풋고추 열무김치 만들기

갯장어 탕
재료
갯장어 1마리(약 2kg), 물 10컵, 생강 5g, 시래기(또는 얼갈이 배추나 열무)·고구마 순(또는 토란대) 100g씩, 된장 30g, 다진 마늘·쌀 1큰술씩, 붉은고추 3개, 들깨 2/3컵, 깻잎 20g, 대파 1대, 소금 약간

만들기
1 갯장어는 4~6cm 크기로 토막낸다.
2 냄비에 손질한 장어, 물, 생강을 넣고 한 시간 정도 뼈에서 살이 똑똑 떨어질 때까지 뭉근하게 푹 끓인다.
3 ②의 탕을 체에 걸러 국물은 냄비에 다시 담고 갯장어는 살과 뼈를 발라낸다.
4 시래기와 고구마 순은 살짝 데쳐 된장, 다진 마늘을 넣어 무친다.
5 믹서에 붉은고추, 쌀, 들깨를 모두 넣고 곱게 간다.
6 ③의 냄비에 바른 장어 살, 시래기와 고구마 순, ⑤의 고춧물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먹기 직전에 굵게 썬 파와 깻잎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참맛 회무침
재료 참맛(껍데기 포함) 1kg, 애호박 1개, 양파 1/2개, 풋고추 3개, 실파 3뿌리, 다진 마늘·통깨 1큰술씩초고추장 재료 고추장 2큰술, 고춧가루·다진 마늘 1큰술씩, 식초·설탕 1 1/2큰술씩

만들기
1 참맛은 껍데기와 살에 붙은 수염을 제거한다.
2 손질한 맛살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체에 밭쳐 물기를 뺀 후 차게 식힌다.
3 애호박·양파·풋고추는 나무젓가락 굵기로 채썬다. 실파도 비슷한 길이로 썬다.
4 채 썬 애호박을 팬을 달궈 살짝 볶은 다음 채반에 펼쳐 식힌다.
5 분량의 초고추장 재료를 모두 섞는다.
6 볼에 준비한 재료와 초고추장을 넣고 설설 무친 다음 먹기 직전에 통깨를 뿌려 낸다.

풋고추 열무김치
재료 열무·얼갈이배추·풋고추 1kg씩, 양파 3개, 실파 200g, 당근 1/2 개, 밀가루·멸치액젓 3큰술씩, 물 3컵, 마늘 1큰술, 소금 1/2컵

만들기
1
열무, 얼갈이배추는 씻어서 적당량의 굵은소금에 절인다.
2 풋고추, 양파는 믹서에 곱게 갈고, 실파는 5~6cm 길이로 썰고, 당근은 가늘게 채 썬다.
3 밀가루에 물을 부어 묽게 풀을 쑨다.
4 ①의 절인 열무와 배추를 씻어 물기를 뺀 다음 ②와 ③을 섞고 다진 마늘, 멸치액젓을 넣어 간을 맞춘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