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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엄마표 요리] 안명화 씨에게 배우는 평양 토속 음식 초계탕과 메밀전
기름기 많은 음식, 특히 육식을 즐기고 면 요리가 발달한 지역인 평양의 여름 별미를 소개한다. 얼음을 동동 띄워 먹는 새콤하고 매콤한 초계탕 그리고 초계탕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는 메밀전의 구수함으로 잠시나마 더위를 잊어보자.
무더위가 절정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등골까지 서늘해지는 음식, 냉면이 절로 당긴다. 그와 더불어 자연스레 떠오르는 아버지. 아버지는 냉면을 여름에만 드시지 않았다. 사철 내내 하루에 한 번은 꼭 냉면으로 끼니를 때우시고, 그것도 모자라 동창회 날이면 동향인 친구들과 함께 을지로의 우래옥(평양냉면을 전문으로 파는 식당)을 찾으셨다. 요즘은 냉면을 만들어 먹는 집이 흔치 않지만, 내 어린 시절 어머니는 새콤하게 익힌 백김치 국물과 고기 육수를 반반씩 섞는 평양냉면을 만들기 위해 정기적으로 백김치를 담그셨고, 집 안에선 늘 고기 육수 끓이는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냉면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고향 그 자체였다. 부모님은 모두 평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뒤 한국전쟁 때 피란오셨다. 그러고는 고향 땅이 그리워 평양을 바라보며 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땅, 임진강만 건너면 곧바로 고향에 갈 수 있는 경기도 파주에 정착해 살았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그리움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고향 음식을 먹는 것이었다. 냉면이 가장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만두, 김치밥, 순대, 콩비지, 초계탕, 빈대떡, 메밀전 등이 사철 밥상에 오르는 메뉴였다. 이 중 메밀전을 제외한 모든 음식에 고기가 들어가는데, ‘옷은 못 지어 입어도 고기반찬은 빼놓지 않는다’는 게 평양 사람들의 특징이다. 우리 집 역시 채소나 과일은 잘 먹지 않고(유일한 채소 반찬이 백김치였다), 밥상에 고기가 빠지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평양 사람은 대식가이기도 하다. 만두도 주먹만 하게 빚어 한 끼에 7~10개를 먹고, 순대는 가는 소창이 아닌 굵은 대창을 이용해 만드는 데 한 사람이 1미터 이상 먹을 수 있게 준비한 정도다. 그렇게 자라서인지 나 역시 남의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나물만 잔뜩 놓인 상, 고기반찬이 없는 소박한 밥상을 받으면 어쩐지 서운한 마음부터 든다.
어린 시절 먹던 음식 중 여름에 더 자주 즐긴 음식이 초계탕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보다 닭고기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어머니는 꽤 자주 초계탕을 만들어주셨다. 새콤하고 매콤한 맛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시원하고 개운한 게 어린 입맛에도 어찌나 맛있던지, 초계탕의 짝꿍으로 늘 상에 함께 오른 메밀전은 초계탕의 강한 맛을 순화해주는 슴슴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초계탕은 식초의 ‘초’와 겨자를 ‘계자’라 불렀던 평양말, 국물을 일컫는 ‘탕’이 한데 붙어 생긴 이름이다. 비슷한 요리로 ‘초교탕’이 있는데 이것은 닭고기와 쇠고기, 도라지, 미나리 등을 달걀물에 개어서 닭 육수에 넣고 끓인 맑은 장국으로 궁중음식에서 유래한 것이다.

초계탕 만들기는 보기보다 참 간단하다. 우선 닭을 푹 삶은 뒤 건져서 살만 발라내고 국물은 기름기를 걷어 차게 식힌다. 백김치, 오이, 배, 도토리묵은 알맞게 썬다. 닭 국물에 백김치 국물, 겨자, 식초, 설탕, 소금 등을 넣어 양념 국물을 만든 뒤 준비한 재료를 담고 얼음을 동동 띄워 먹으면 된다. 초계탕에 곁들이면 그 맛이 잘 어우러지는 메밀전은 더 쉽게 만들 수 있다. 메밀가루에 부추나 호박, 당근, 양파 등 집에 있는 채소를 약간 썰어 넣고 반죽한 다음 프라이팬에 부쳐내면 완성이다. 한여름 간단하게 만들어서 먹을 수 있는 별미, 초계탕과 메밀전이 놓인 식사의 마무리는 초계탕 국물에 만 메밀국수로 해야 제격이다. 닭고기와 채소를 건져 먹은 뒤, 메밀전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허전함은 후루룩 소리를 내며 먹는 메밀국수와 국물까지 깨끗이 비운 뒤에야 비로소 채울 수 있다.
어린 시절 음식 이야기를 하고 나니 함께 떠오르는 이런저런 추억이 참 많다. 내겐 한 동네에 살면서 늘 함께했던 이모님이 네 분 계신다. 본래는 두 분이 더 계시는데 미처 피란오지 못하셨다고 한다. 큰이모는 순대를 참 잘하셨고, 둘째 이모는 돼지 갈비를 넣은 콩비지를 기막히게 끓이셨고, 셋째 이모는 내포탕을, 넷째인 우리 어머니는 냉면과 초계탕을, 막내 이모는 녹두빈대떡과 메밀전을 즐겨 만드셨다. 오빠들이 대학에 합격한 기쁜 날에도 모두 모여 순대를 만들고 동치미 국물에 밥을 만 김치말이를 먹으면서 지낸 그때가 그립고 또 그립다. 음식이란, 이처럼 추억을 새기는 오묘한 힘을 지닌 존재인가보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합니다.

초계탕과 메밀전 만들기

초계탕
재료 닭 1마리(양파 1/2개, 마늘 10쪽, 생강 1톨, 대파 10cm), 백김치 1/4포기, 오이 1개, 배 1/2개, 도토리묵 1/3모, 홍고추·청고추 1개씩, 잣 20알, 호두 10알, 메밀국수 100g, 소금·후춧가루·마늘 약간씩
양념장 재료 겨자 갠 것 1큰술, 식초 3큰술, 설탕 2큰술, 소금 1작은술, 백김치 국물 3컵

만들기
1 닭을 깨끗이 씻은 후 냄비에 물을 붓고 양파, 마늘, 생강, 대파를 넣고 끓이다가 닭을 넣어 40분간 삶는다.
2 중간중간 떠오르는 기름은 깨끗하게 걷어낸다.
3 닭은 건져 살만 발라 결대로 찢은 후 소금, 후춧가루, 마늘을 넣어 재운다. 국물은 체에 면포를 깔고 밭친 후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힌다.
4 오이는 반으로 갈라 5cm 길이로 어슷 썬다.
5 백김치, 배, 묵은 굵게 채 썰고 청·홍고추는 어슷어슷 썰어 물에 담가 씨를 뺀다.
6 겨자 갠 것을 오목한 그릇에 바른 후 끓는 냄비 위에 엎어 10분간 발효시킨 다음 나머지 양념장 재료를 담고 고루 섞어 양념 국물을 만든다. 메밀국수는 삶아 찬물에 깨끗이 씻어놓는다.
7 그릇에 닭고기와 채소, 묵을 담고 양념 국물을 붓는다. 메밀국수는 따로 담아낸다. 먹을 땐 닭고기와 채소를 먼저 건져 먹고 남은 국물에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다.


메밀전
재료
메밀가루 1컵, 소금 1/4 작은술, 물 1 1/4컵, 부추 30g, 호박 1/2개, 양파 1/4개, 당근 20g, 식용유 적당량
양념장 재료 간장 2큰술, 참기름 1/2작은술, 깨소금·다진 쪽파·식초 약간씩

만들기
1 분량의 재료를 손질해 준비한다.
2 볼에 메밀가루를 담고 소금과 물을 넣어 끈기가 나도록 갠다(부치기 30분 전에 반죽을 해야 점성이 생긴다).
3 부추, 호박, 양파, 당근은 같은 길이로 채 썬다.
4 ②의 반죽에 채 썬 채소를 고루 섞는다.
5 달군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반죽을 넣어 노릇하게 부친다.
6 분량의 양념장 재료를 고루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