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으로는 아바이순대, 냉면, 가자미 식해 같은 이북 음식이다. 그중 요즘 같은 여름철에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시던 추억의 음식을 꼽으라면 내 머릿속엔 단번에 ‘여미젓’이 떠오른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멸치가 잡히는 6월 초가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여미젓을 담그셨다. 고춧가루를 넣어 칼칼한 맛이 나면서 적당히 익어 살점이 졸깃한 여미젓은 한두 점만 집어도 찬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는 여름철 밥도둑이었다. 여미젓을 담그려면 우선 커다랗고 싱싱한 통멸치를 일일이 손으로 잡고 꼬리지느러미부터 멸치 대가리 쪽으로 훑어가며 비늘과 내장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곤 굵은소금을 넉넉히 뿌려 하루 동안 숙성시킨 후 맑은 물에 서너 번 씻어 체에 밭쳐둔다. 물이 빠지는 사이 고춧가루에 설탕을 섞어 양념을 만든 뒤 물기 뺀 통멸치에 고춧가루 양념을 고루 발라 항아리에 넣고 한 달 정도 음지에서 숙성시키면 다 익은 것이다. 잘 숙성된 여미젓은 뼈에서 살점이 똑똑 떨어진다. 어머니는 항아리에 담을 때 풋마늘이나 쑥갓을 듬성듬성 썰어 넣기도 하셨는데, 이것들을 넣으면 채소의 향이 통멸치와 어우러져 한결 맛이 좋았다.

(오른쪽) 부산에서 문화요리학원(051-804-1124)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희 씨(오른쪽)와 학원의 행정사무를 맡고 있는 딸 나유진 씨가 나란히 섰다.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것이 참 좋다”라는 말에 활짝 웃는 이경희 씨 모녀가 친구처럼 참 다정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음식이 물회다. 아버지가 삼촌과 술잔을 기울이실 때면 어머니는 한치(간혹 오징어를 사용하기도 했다)와 무, 배, 오이, 양파 등을 채 썰어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양념에 무친 다음 얼음물을 넉넉히 부어 내셨다. 별다른 재주 없이 뚝딱 만든 것 같은데도 아버지 곁에 앉아 시원한 물회 한 사발 들이켜면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입맛을 퍽 당긴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절 먹을 게 귀했다고 해도 참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골고루 먹고 자란 듯하다. 세월이 변해 요즘은 통멸치와 백가자미도 귀하다. 겨울이면 정말 흔하게 먹던 도치탕(알이 꽉 찬 도치라는 생선에 묵은 김치를 넣어 끓인 탕)이나 복어의 한 종류인 쫄복 역시 구하기 쉽지 않다. 그 이유가 환경오염 때문이든 대량생산하는 흔한 재료에 가려졌기 때문이든 간에 다양한 재료를 신선한 상태 그대로 먹던 그 시절이 잊혀가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합니다.
여미젓과 가자미국 그리고 물회 만들기


여미젓(통멸치젓)
재료 멸치 5kg, 굵은소금 500g, 풋마늘 300g, 통마늘 100g, 고춧가루 200g, 설탕 100g
만들기
1 생물 멸치는 젓갈용으로 크고 굵은 것을 준비해(강원도 속초 멸치가 기름이 많고 살이 통통해 여미젓을 담그기에 적당하다) 멸치 대가리와 내장, 비늘을 제거한다.
2 굵은소금에 재워 하루 동안(겨울엔 2일) 숙성시킨다.
3 숙성시킨 멸치를 맑은 물에 3~4번 씻어 체에 밭친다.
4 볼에 고춧가루를 담고 설탕을 섞어 양념을 만든다.
5 풋마늘은 7cm 길이로 토막낸 다음 굵게 채 썬다. 통마늘은 껍질을 벗겨 다듬는다.
6 ③의 멸치를 ④의 고춧가루 양념에 무쳐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이때 채 썬 풋마늘과 손질한 통마늘을 멸치와 켜켜이 담는다. 뚜껑을 덮은 다음 한 달 정도 그늘에 두어 숙성시킨다.

가자미국
재료 백가자미 200g(1마리), 무 50g, 물 4컵, 청양고추 1개, 소금 약간
만들기
1 가자미는 비늘을 깨끗이 제거한 다음 3~4토막 낸다.
2 무는 가로세로 3~4cm 크기로 나박 썬다. 청양고추는 씨를 빼고 채 썬다.
3 냄비에 물을 붓고 무를 넣어 끓이다가 무가 투명하게 익으면 가자미와 청양고추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가자미가 익으면 소금으로 간한 후 그릇에 담아낸다.

물회
재료 한치(오징어) 100g, 무·배·오이 각 50g씩, 양파 20g, 홍고추 3g, 풋고추 5g, 실파 1줄기, 통깨 약간
양념 재료 설탕 3큰술, 생수 1컵, 고추장 3~4큰술, 식초 6큰술, 소금 약간
만들기
1 한치는 깨끗이 손질한 후 0.2cm 크기로 곱게 채 썬다.
2 각종 채소도 한치와 비슷한 크기로 채 썬다.
3 볼에 분량의 양념 재료를 담고 고루 섞은 다음 모든 재료를 넣고 고루 버무린다. 그릇에 담고 찬물과 얼음을 넉넉히 부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