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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씨에게 배우는 속초 아바이마을 토속 음식 여미젓과 가자미국 그리고 물회
함경도 북청에서 내려온 실향민이 대거 모여 사는 강원도 속초 아바이마을은 향토색 짙은 북청의 전통 음식을 고스란히 지켜오고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여미젓과 가자미국, 물회를 먹으며 실향의 아픔을 달래는 속초 아바이마을의 전통 음식을 소개한다.
내 고향은 몇 해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가을 동화>에서 주인공 송혜교의 집 배경으로 등장한 속초의 아바이마을이다. 최근엔 <해피선데이>의 ‘1박 2일’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는데, 나 역시 두 프로그램에 모두 나온 마을의 명물 갯배(뗏목처럼 생긴 바지선으로 아바이마을에서 중앙동으로 건너기 위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를 매일 타고 다녔다. 우리 마을의 정식 지명은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동쪽으로는 속초 바다를, 서쪽으로는 청초호를 사이에 두고 형성된 그곳엔 유난히 피란민이 많다. 그중에서도 내 부모님과 동향인 함경도 북청 출신들이 대거 모여 살았다. 청호동 대신 ‘아버지’를 뜻하는 이북 사투리를 붙인 ‘아바이마을’이란 이름이 더 유명한 이유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으로는 아바이순대, 냉면, 가자미 식해 같은 이북 음식이다. 그중 요즘 같은 여름철에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주시던 추억의 음식을 꼽으라면 내 머릿속엔 단번에 ‘여미젓’이 떠오른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멸치가 잡히는 6월 초가 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여미젓을 담그셨다. 고춧가루를 넣어 칼칼한 맛이 나면서 적당히 익어 살점이 졸깃한 여미젓은 한두 점만 집어도 찬물에 만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는 여름철 밥도둑이었다. 여미젓을 담그려면 우선 커다랗고 싱싱한 통멸치를 일일이 손으로 잡고 꼬리지느러미부터 멸치 대가리 쪽으로 훑어가며 비늘과 내장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곤 굵은소금을 넉넉히 뿌려 하루 동안 숙성시킨 후 맑은 물에 서너 번 씻어 체에 밭쳐둔다. 물이 빠지는 사이 고춧가루에 설탕을 섞어 양념을 만든 뒤 물기 뺀 통멸치에 고춧가루 양념을 고루 발라 항아리에 넣고 한 달 정도 음지에서 숙성시키면 다 익은 것이다. 잘 숙성된 여미젓은 뼈에서 살점이 똑똑 떨어진다. 어머니는 항아리에 담을 때 풋마늘이나 쑥갓을 듬성듬성 썰어 넣기도 하셨는데, 이것들을 넣으면 채소의 향이 통멸치와 어우러져 한결 맛이 좋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더라도 별미인 이 여미젓 맛을 잊지 않기 위해 몇 해 전 일부러 담그는 법을 배워뒀다. 그 후론 이맘때면 싱싱한 통멸치를 구하기 위해 수산시장을 뒤지고 다닌다. 이 여미젓과 함께 어머니를 그립게 만드는 음식이 바로 가자미국이다. 어린 시절 아침 밥상에 자주 오르던 가자미국은 배가 누런 참가자미가 아닌, 이북 사투리로 ‘어기가자미’라 부르는 백가자미로 끓여야 제맛이다. 가자미국을 끓이는 방법은 꽤 간단하다. 우선 냄비에 물을 적당히 붓고 나박나박 썬 무(어머니는 요즘의 나처럼 예쁘게 나박 썰지 않고 칼로 툭툭 베어 큼직하게 넣으셨다)를 넣고 팔팔 끓인다. 무가 투명해질 정도로 푹 익으면 그때 불을 줄인 뒤 가자미와 청양고추를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살짝 끓여 소금으로 간한 뒤 먹으면 된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가자미를 손질할 때 지느러미를 자르지 않고 비늘만 긁은 뒤에 툭툭 끊어 넣는 것이다. 그래야 지느러미와 뼈에서 맛있는 성분이 우러나 국물이 한결 진하고 구수하다. 간혹 고춧가루 양념을 넣고 벌겋게 끓이는 경우도 있는데, 싱싱한 가자미의 참맛을 고스란히 느끼려면 역시 맑은 국이 제격이다.

(오른쪽) 부산에서 문화요리학원(051-804-1124)을 운영하고 있는 이경희 씨(오른쪽)와 학원의 행정사무를 맡고 있는 딸 나유진 씨가 나란히 섰다. “어머니와 함께 일하는 것이 참 좋다”라는 말에 활짝 웃는 이경희 씨 모녀가 친구처럼 참 다정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음식이 물회다. 아버지가 삼촌과 술잔을 기울이실 때면 어머니는 한치(간혹 오징어를 사용하기도 했다)와 무, 배, 오이, 양파 등을 채 썰어 새콤달콤한 초고추장 양념에 무친 다음 얼음물을 넉넉히 부어 내셨다. 별다른 재주 없이 뚝딱 만든 것 같은데도 아버지 곁에 앉아 시원한 물회 한 사발 들이켜면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입맛을 퍽 당긴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시절 먹을 게 귀했다고 해도 참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골고루 먹고 자란 듯하다. 세월이 변해 요즘은 통멸치와 백가자미도 귀하다. 겨울이면 정말 흔하게 먹던 도치탕(알이 꽉 찬 도치라는 생선에 묵은 김치를 넣어 끓인 탕)이나 복어의 한 종류인 쫄복 역시 구하기 쉽지 않다. 그 이유가 환경오염 때문이든 대량생산하는 흔한 재료에 가려졌기 때문이든 간에 다양한 재료를 신선한 상태 그대로 먹던 그 시절이 잊혀가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합니다.



여미젓과 가자미국 그리고 물회 만들기


여미젓(통멸치젓)
재료 멸치 5kg, 굵은소금 500g, 풋마늘 300g, 통마늘 100g, 고춧가루 200g, 설탕 100g
만들기
1 생물 멸치는 젓갈용으로 크고 굵은 것을 준비해(강원도 속초 멸치가 기름이 많고 살이 통통해 여미젓을 담그기에 적당하다) 멸치 대가리와 내장, 비늘을 제거한다.
2 굵은소금에 재워 하루 동안(겨울엔 2일) 숙성시킨다.
3 숙성시킨 멸치를 맑은 물에 3~4번 씻어 체에 밭친다.
4 볼에 고춧가루를 담고 설탕을 섞어 양념을 만든다.
5 풋마늘은 7cm 길이로 토막낸 다음 굵게 채 썬다. 통마늘은 껍질을 벗겨 다듬는다.
6 ③의 멸치를 ④의 고춧가루 양념에 무쳐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이때 채 썬 풋마늘과 손질한 통마늘을 멸치와 켜켜이 담는다. 뚜껑을 덮은 다음 한 달 정도 그늘에 두어 숙성시킨다.


가자미국
재료 백가자미 200g(1마리), 무 50g, 물 4컵, 청양고추 1개, 소금 약간
만들기
1
가자미는 비늘을 깨끗이 제거한 다음 3~4토막 낸다.
2 무는 가로세로 3~4cm 크기로 나박 썬다. 청양고추는 씨를 빼고 채 썬다.
3 냄비에 물을 붓고 무를 넣어 끓이다가 무가 투명하게 익으면 가자미와 청양고추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가자미가 익으면 소금으로 간한 후 그릇에 담아낸다.


물회
재료 한치(오징어) 100g, 무·배·오이 각 50g씩, 양파 20g, 홍고추 3g, 풋고추 5g, 실파 1줄기, 통깨 약간
양념 재료 설탕 3큰술, 생수 1컵, 고추장 3~4큰술, 식초 6큰술, 소금 약간
만들기
1
한치는 깨끗이 손질한 후 0.2cm 크기로 곱게 채 썬다.
2 각종 채소도 한치와 비슷한 크기로 채 썬다.
3 볼에 분량의 양념 재료를 담고 고루 섞은 다음 모든 재료를 넣고 고루 버무린다. 그릇에 담고 찬물과 얼음을 넉넉히 부어 먹는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