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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그릇] 만지고 싶은 그릇, 담고 싶은 그릇, 백자
달빛처럼 희고 물빛처럼 말간 그릇, 백자. 마치 흰 도화지처럼 어떤 음식이든 품을 준비가 된 그릇, 뽀얀 살결마냥 어루만지고 싶은 그릇, 눈이 시원해지는 흰 빛깔이어서 여름에 더 어울리는 그릇이 바로 백자입니다. 전통 백자의 아름다움을 타산지석 삼아 자기만의 방식으로 현대 생활에 맞게 빚는 도예가 6인의 백자를 만나봅니다. 모두가 흰빛이지만 제각기 다른, 단순하지만 미묘한 백자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백자의 태토 胎土(바탕흙)는 돌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백토, 즉 하얀 흙입니다. 백토는 점성이 약하기 때문에 정교하게 성형하기 어렵지요. 역사 교과서에서 본 백자가 청자보다 두껍고 투박한 것도, 정교하고 유려한 곡선이 나오지 않는 것도 바로 흙의 이런 특성 때문입니다. 청자가 상감기법으로 모양내고 유약을 입혀 신비로운 비취색으로 단장했다면, 백자는 원초적인 태토 자체의 멋을 유약을 통해 극대화할 뿐입니다. 백자의 종류는 유약과 안료에 따라 여러 가지지만 현대의 식탁 위에서 흔히 쓰는 백자는 순백자(소문 素文 백자라고도 함)와 청화백자가 대세입니다. 순백자는 표면에 장식 무늬가 없고 백색의 단일색으로 된 순수한 백자를 통칭하고, 청화백자는 백토로 기형 器型을 빚은 뒤 코발트 안료를 이용해 푸른색 무늬를 만든 자기입니다. 순백자의 흰 빛깔도 같은 빛깔이 아닙니다. 유약 안에 포함된 금속 산화물에 따라 눈처럼 흰 순백, 혹은 우윳빛이 감도는 유백, 푸르스름한 빛의 청백을 띠게 됩니다.
백자의 가장 큰 매력은 넉넉한 자태와 너그러움, 꾸미지 않은 무심함에 있습니다. 중앙대 공예과 이기조 교수는 “좋은 백자는 만지고 싶은 그릇이고, 좋은 그릇은 뭔가를 담고 싶은 그릇”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요리사가 자신의 요리를 더욱 빛내는 그릇으로 백자를 선택합니다. 여백이 많고 단순함이 있는 백자야말로 음식을 품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이 완성되고, 또 음식 만든 사람의 마음도 막힘없이 보여주기 때문 아닐까요. 예로부터 겨울에는 놋그릇을, 여름에는 백자를 쓰는 것이 보편적이었습니다. 여기에 소개하는 유명 도예가들의 작품 중 여러분 식탁에 올리고 싶은 백자는 무엇인가요?

광주요
달형 볼, 물잔, 장형 볼, 원형 접시, 원형 볼, 통형 접시, 날개형 합, 사각 볼, 정사각 접시, 직사각 접시, 원형 평접시, 연잎 접시, 장형 접시, 평사발, 조개형 접시, 참외형 접시, 참외형 볼, 연잎 굽접시…. 광주요의 ‘모던 라인 진ː進’을 대표하는 ‘월백 月白’에서는 요즘 기본 상차림에 필요한 다양한 디자인과 크기의 백자를 만날 수 있다.
월백 라인은 반광택 유약을 사용해 은은하고 깊이 있는 흰 빛깔, 자연스러운 흰빛을 표현한 유백자다.


(왼쪽) 이창화
백자토를 물레나 판 작업으로 성형해 투명 유약에 담가 구워냄으로써 눈처럼 반짝이는 흰 빛깔을 띤다. 평소 이창화 작가는 백자를 과감하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표현해 주목받아왔다.
차를 마시지 않을 때 다관을 보관할 수 있는 상자처럼 생긴 다관 보관함과 다관의 작품명은 ‘신륵사의 티타임’, 비정형의 곡선이 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선을 드러내는 큰 접시(지름 38cm), 절제와 겸양의 정신이 배어 있는 5첩 발우(지름 22.5cm), 코발트 안료로 선을 그려 장식한 청화백자 선문 원형 합.

(오른쪽) 한정용
얼마 전 첫 개인전을 연 한정용 작가. 정소영의 식기장 정소영 대표는 그의 그릇을 “한 치의 군더더기도 허락하지 않는 형태, 적당한 규모에 안정적인 비례, 여기에 순도 높은 백색의 조화까지, 모자람이나 넘침이 없는 상태로, 품 品으로 치자면 능품 能品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했다. 한정용 작가는 국민대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도예계의 기대주. 반광택유의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백자 잔(지름 8cm, 높이 12.2cm)과 묵직한 백자 왕사발(지름 23.5cm, 높이 14.4cm).


(왼쪽) 정재효
청화백자는 백토로 빚은 기형 위에 코발트 안료로 문양을 그린 뒤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다. 정재효 작가의 청화백자는 꽃 그림 시리즈와 기하학적 추상 패턴으로 표현된다.
안료로 패턴을 그리는 것은 기본이고, 음각으로 조각한 뒤 안료를 채우는 상감기법이라든지, 백자 기형 위에 코발트 안료를 두껍게 바른 뒤 긁어내는 박지 기법 등 다양한 기법을 적용한다. 전통을 따르되 자신만의 패턴과 방식으로 풀어내는 색다른 작업 방식이 눈에 띈다. 기하학적 패턴의 청화백자 접시와 에스프레소 잔, 집 모양 오브제는 모두 정재효 작가의 작품.

(오른쪽) 이능호
입자가 거칠어 ‘돌백자’라고도 불리는 이능호 작가의 면기. 그는 흙의 본질에 충실해 최소한의 형태와 최대의 질감을 표현하고자 노력한다. 양구에서 채취한 백토를 철분 등의 불순문을 정제하지 않고 그대로 작업하기 때문에 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뒤에는 백자 안에 철분의 흔적인 크고 작은 검은 점이 자연스럽게 박혀 있다. 바닥에 깔린 흙은 백자의 바탕흙인 백토.


(왼쪽) 물레를 돌리거나 판 성형이 아닌 캐스팅 기법(대량생산을 전제로 석고형을 몰드에 주입해 성형하는 기법)으로 백자를 만든다. 여기에 미묘한 손물레 성형 기법을 더함으로써 같은 형태에서도 미묘한 변화를 느낄 수 있다. 투명한 청백유를 안쪽에만 시유해 자기질화된 백자의 표면과 대비를 이루어 백자의 투명함이 한층 강조돼 보인다. ‘백색아침’ 원형 볼, 밥그릇과 국그릇, 물병과 찻잔, 머그, 에스프레소 잔과 받침, 사각 크리머 등 간결하면서도 조형성이 살아 있는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오른쪽) ‘백자 장인’이라고도 불리는 이기조 교수(중앙대)가 빚은 백자는 담백한 흰빛이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을 드러낸다. 조선 전기 관요백자의 정결함과 조선 후기 백자의 양감을 현대 생활에 어울리게 디자인하고, 본디 백자가 가진 따스한 살결의 맛을 되살리는 작업을 한다. 단순미의 절정인 그의 대접(지름 15.5cm, 높이 8.4cm)은 자신도 모르게 만져보게 되는 매력적인 그릇이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