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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방랑 식객 임지호 씨의 봄이 오는 길
“나는 나의 존재를 자연에서 훈련하고 채득했다”고 말하는 임지호 씨. 그는 마당의 뒤뜰부터 길가의 나뭇가지, 꽁꽁 얼어붙은 땅속과 바위틈에서 음식 재료를 찾아내고, 그 재료를 이용해 맛있는 요리를 ‘뚝딱’ 만드는 ‘방랑 식객’으로 유명하다. 그가 <행복> 독자를 위해 냉이, 달래, 두릅 같은 봄나물부터 봄에 제맛을 내는 뿔소라, 참숭어 등 해산물까지, 봄철 재료로 만든 다양한 요리를 소개한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입맛을 제자리로 돌려줄, ‘임지호식’ 자연요리를 감상해보자.
우리의 삶은 언제나 사계절의 중심에 놓여있는 진중함입니다. 어느 계절이든 소중치 않은 계절이 없지만 봄만큼은 우리를 기다리게 하고, 들뜨게 하고, 혹은 당황케 합니다. 그래서 봄은 끝없는 도전과 같습니다. 모진 눈보라 이겨내고 언 땅을 녹이고 나와서 의연히 빛을 맞이하는 싱그러운 새싹들! 환상처럼 자연이 연출하는 수많은 꽃들의 빛깔과 향기가, 춤추는 물결들이 지난 시간의 고난을 잊게 합니다. 오직 모든 꿈이 이뤄진 것처럼 정지된 그 순간이 봄입니다. 스쳐가는 바람처럼 아쉽지만 떠날 수밖에 없고 잊어버렸지만 다시 올 수밖에 없는 삶. 그 속에 우리의 사랑이, 삶이, 고뇌가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 도전의 연속인 봄날에 나무 수액과 땅에서 나는 새싹, 달래, 쑥, 쑥부쟁이, 냉이, 소루쟁이, 보리 싹 등 수많은 풀들은 깊고 진한 조상의 숨결과 피와 땀과 눈물로 우리가 느끼는 맛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맛이란 대자연의 진리이며 선조의 맥박 소리와 같습니다. 우리는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영혼은 고통을 느끼고 있으며, 모든 기운은 수행을 하고 있으며, 끝없이 밀려가는 시간이 우리의 삶이며, 우리 마음은 깊고 깊은 곳에서 고독을 느끼고 있으며, 밀려오는 향기를 그리워하다 비로소 봄을 바라보며 사랑을 느낍니다. 그 사랑으로 얻은 온갖 풀들은 조상의 지혜대로 삶고, 데치고, 볶고, 절이고, 말리고, 끓이고, 무쳐서 먹지요. 전설은 음식을 통해 지금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봄에는 나물을 많이 먹습니다. 나물을 무칠 때는 강한 양념, 예를 들면 마늘을 넣지 말고 참기름과 들기름은 쓰시되 너무 많이 써서 나물 고유의 향기를 잃게 하면 안 됩니다. 나물을 삶을 때는 살짝 삶아서 신선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물의 씹히는 소리가 잠자는 감성을 깨워주니까요.
봄나물 고유의 푸른색도 놓치지 마세요. 그 빛깔은 시각의 사랑입니다. 또 봄에는 쓴맛을 즐기세요. 인내를 길러주며 오장을 튼튼하게 합니다. 우리는 자연 현상 속에서 지혜를 터득하며 맛으로 머나먼 여행을 다녀옵니다. 지친 영혼과 육신을 추스르고 DNA에 숨은 비밀의 고리를 하나하나 풀어갑니다.
생명의 비밀, 그것은 당신이 매일 먹고 있는 음식 속에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행복을 나누세요. 생활이 힘들어도 끝내 우리는 행복을 먹고 삽니다. 왜냐하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 2010년 어느 봄날에 산당 임지호

(왼쪽) 개불무침을 곁들인 냉이나물
오도독오도독 씹는 느낌이 좋은 개불은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가 제철이다.
이 개불을 한입 크기로 썰어 유자 소스, 조선간장, 참기름으로 무쳐냈다.
잘 다듬은 냉이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꼭 짠 다음 조선간장, 참기름,유자 소스, 된장, 볶은 콩가루, 들깨 가루를 넣어 무쳤다.


여행, 음식 만들기와 함께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 ‘방랑 식객’ 임지호 씨가 직접 그린 그림. 지난 1월 인사동 개인전에도 출품했던 작품이다. 
(왼쪽) ‘오고 감’, 100× 80.3cm, Acrylic on black paper, 2009. 
(오른쪽) ‘화산’, 290 × 218.2cm, 혼합 재료, 2009.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씨는 <행복>과 십년지기로 1998년 1월호부터 6월호까지. ‘임지호의 자연요리’ 칼럼을 연재했지요. 지금도 자연에 예술을 결합한 요리를 연구 중인 그는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산당(031-772-3959)’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서울 청담동에 또 다른 콘셉트의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최근 SBS 방송국의 다큐 프로그램에 ‘방랑 식객’으로 소개되면서 더욱 인기를 끌고 있는 그는 그림도 그립니다. 지난 1월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어 많은 이에게 그림을 소개하기도 했지요. 그의 그림을 보고 소설가 이외수 씨는 “과연 요리와 그림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개의치 마시라. 산 정상에 오른 사람은 동서남북이 다 보이는 법이다. 그의 의식과 필법은 한없이 자유로워서 천상천하 삼라만상을 두루 넘나든다”라고 했습니다. ‘한식의 세계화’에 앞장서며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 각국에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그는 다가오는 6월, 오스트리아 빈 강변에 유람선을 띄우고 요리와 그림을 곁들인 퍼포먼스도 펼칠 예정이랍니다. 그가 <행복> 독자를 위해 봄철 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습니다. ‘음식은 종합 예술이고 약이며 과학이다’라고 믿는 임지호 씨의 봄맞이 요리를 감상하며 틀에 박힌 음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보세요.


“뿔소라는 3월부터 맛이 들기 시작하는 해산물입니다.
씹을수록 감칠맛이 느껴지는데
찜통에 쪄서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멍게 소스와 함께 먹으면 멍게의 쌉쌀한 맛과
어우러져 입맛을 당깁니다. 뿔소라와 반대로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맛이 영그는 참숭어는
진달래 피는 계절에 제일 맛있습니다.
살이 차지고 단맛이 나면서 기름지지요.”


(왼쪽) 멍게 소스를 올린 뿔소라
뿔소라는 찜통에 쪄서 살을 발라낸 다음 내장을 제거하고 알맞은 크기로 자른다. 멍게는 다져서 유자 소스, 화이트 와인 소스, 생강즙, 엿기름 물, 조선간장, 참기름, 고추냉이를 약간씩 넣고 고루 섞은 다음 뿔소라 위에 끼얹는다.

(오른쪽) 워터 크레송을 곁들인 참숭어
참숭어는 도톰하게 회로 뜨고 워터 크레송은 유자 소스, 진간장, 고추냉이를 약간씩 넣어 무친다.
숭어 위에도 유자 소스를 뿌려 같이 먹는다.


“레시피는 필요 없어요. 자신을 믿고 당당하게 요리하세요.
사람의 입맛보다 뛰어난 계량 도구는 없습니다.
계절마다, 날씨에 따라, 먹는 사람의 건강 상태에 따라 염도와 당분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재료와 양념의 양을 명확하게 재단해둘 수 있겠습니까?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할 수 있게 음식의 간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요.
짠맛과 단맛은 되도록 동량을 넣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간장 1큰술에 엿기름 물 1큰술 분량을 넣으면
달고 짠맛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며 음식의 맛을 돋웁니다.”

(왼쪽) 참게 그라탱
참게는 찜통에 쪄서 뚜껑을 떼낸 뒤 살과 알을 분리한다.
발라낸 살에 조선간장, 참기름, 유자 소스, 화이트 와인 소스, 모차렐라 치즈를 넣어 섞는다.
프라이팬에 치즈가 녹을 정도로 익힌 다음 참게 뚜껑에 담아낸다.

(오른쪽) 훈제 연어를 곁들인 봄나물 다섯 가지
참취, 원추리, 보리 싹, 쑥, 봄동은 각각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찬물에 담갔다 꺼내 물기를 꼭 짠다.
참취는 들기름, 조선간장, 엿기름 물을 넣어 무친다.
원추리는 된장과 화이트 와인 소스를, 보리 싹은 고추장과 참기름을,
쑥은 된장과 들기름을, 봄동은 조선간장과 참기름, 생강즙과
엿기름 물을 넣어 각각 무친다. 훈제 연어는 알맞은 크기로 썰어 녹차 가루를 뿌리고
유자 소스와 고추냉이, 간장을 약간 넣어 무친다.

“봄에는 꽃을 즐겨야 합니다.
찔레와 왕벚꽃은 장식으로,
진달래는 화전으로,
매화는 차로 즐기면 좋겠지요.
봄꽃은 영혼을 행복하게 하며
꿈을 영글게 합니다.
쇠고기는 왠지 봄과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요? 차게 식혀서 장미꽃과 함께 드셔보세요.
봄기운이 담긴 쇠고기 요리를 즐길 수
있습니다.”


레드 와인 소스를 곁들인 안창살구이
쇠고기 안창살은 칼집을 낸 다음 불고기 양념에 1시간 이상 재웠다가 팬에 굽는다.
살짝 식으면 알맞은 크기로 잘라
레드 와인 소스를 뿌리고 노란 장미 꽃잎을 뿌린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