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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시詩처럼 고운 우리 음식
시심 詩心을 담아 아름다운 언어로 이름 지은 작품 같은 음식. 우리에게는 이름만 들어도 그 맛이 궁금해질 만큼 멋과 풍류가 깃든 음식이 많다. 그 의미는 기도 祈禱요, 담음새는 그림이며, 이름은 고운 시 한 수다.

탱글탱글한 만두가 석류처럼 탐스럽다 석류탕
석류 모양으로 빚어 만든 만둣국으로, 옛날에는 궁중에서만 만들어 먹던 귀한 음식이다. 늦가을 붉은색으로 익어 입이 약간 벌어진 새침한 석류 열매 모양을 닮아 ‘석류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옛조리서 <음식디미방>에도 그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만두피를 속이 비치도록 얇게 밀어, 닭고기 다진 것에 여러 가지 채소와
양념을 섞어 작은 단자를 만들어 잣을 박아 넣고 오므려서 석류 열매 모양으로 만든다.
* <음식디미방 飮食知味方>(1670년경)_한글로 쓰인 가장 오래된 음식 책으로, 경북 양양군의 안동 장씨 부인이 썼다. 

우리 조상은 사철 자연에 순응하면서 제철에 나는 재료로 시절식을 즐기는 풍류를 지녔고, 반가에서는 손님 접대인 빈례를 중히 여겨 주부는 술을 빚고 안줏거리를 준비해놓았다가 손님이 오면 주안상을 정갈하게 올렸다. 조선시대 음식 책은 현재 30여 종이 남아 있고, 대개 주부가 필자다. 주부들이 딸이나 며느리에게 자기 집안에서 내려오는 술과 음식을 전해주려고 쓴 것인데, 그중에는 고운 심성과 정성, 기원이 그대로 담긴 운치 있고 품격 있는 음식이 많이 나온다. 또 음식 이름에서는 멋과 풍류가 넘친다.
정월 대보름날 농사의 풍요와 복을 기원하는 ‘복쌈’, 삼키기 아까울 정도로 맛있다는 ‘석탄병’, 눈 오는 밤 친구를 찾아가서 만났다는 ‘설야멱적’, 절묘한 맛이 기생보다 음악보다 더 낫다는 ‘승기악탕’, 경기 광주에서 보낸 국이 새벽 종이 울릴 때쯤 서울 재상의 집에 도착한다는 ‘효종갱’, 입을 즐겁게 해주는 ‘열구자탕’, 여러 재료가 꽃처럼 화려하게 얹혀 있어 ‘화반’이라 부르는 비빔밥… 이 얼마나 멋들어진 이름인가.
일반적으로 한국 음식의 이름은 조리법 앞에 주재료를 붙인다. 예를 들면 쌀밥, 미역국, 배추김치, 갈비찜 같은 것이다. 여기에 더 정확하게 간을 내는 재료가 음식 이름 사이에 들어간 경우는 두부젓국찌개, 호박고추장찌개, 병어고추장구이 등이다. 주재료가 분명치 않고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갈 때는 잡雜자를 붙여서 잡곡밥, 잡탕, 잡채, 잡누름적, 잡과병 등이라 했다. 또 생김새에 따라 이름 붙인 음식으로는 고기를 넓적하게 저며 썰었다고 너비아니, 깍둑깍둑 썰었기에 깍두기, 나박나박 썬 무로 담은 나박김치, 오이에 소를 넣은 오이소박이, 나물을 고루 비벼 먹으니 비빔밥이라 했다.

우리 조상은 입에 들어가는 것은 몸에 약이 된다는 ‘약식동원 藥食同源’사상이 있어 음식을 귀하게 여겼고, 먹을 때도 예의를 갖추어 품격 있게 먹었다. <규합총서>에는 사대부가 음식을 먹을 때 다섯 가지를 살피라는 구절이 나온다. ‘첫째로 이 음식은 갈고 심고 거두고 찧고 까불고 지지는 공이 많이 든 것이니 힘듦의 다소를 헤아리고,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 둘째로 대덕 大德을 헤아려 섬기기를 다하라. 셋째로 좋은 음식을 탐내고 맛없는 음식은 찡그리고, 배불리 먹을 타령을 말라. 넷째로 좋은 약으로 알고 형상 刑相의 괴로운 것을 고치게 하라. 그리고 마지막에 도업을 이루어놓고서야 음식을 받아먹으라’고 이른다.
우리나라는 88올림픽 이후 외식업계가 성장하여 이제는 세계에서 식당 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경기가 침체되면서 오히려 식당 이름은 더 자극적으로 짓고 메뉴는 점차 맵고 뜨거운 음식 일색에다 즉석에서 굽거나 끓이는 음식이 많아졌다. 길거리 식당의 간판에는 뼈다귀, 소머리, 머릿고기, 껍데기, 닭발, 곱창, 막창, 족발, 갈비, 삼겹살, 오겹살 등 육류의 원천적 부위가 한 치의 꾸밈도 없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다. 또 식당 이름 앞에는 ‘원조’ ‘정통’ ‘진짜’ ‘대박’ ‘왕’ ‘막’자 등이 붙어 있다. 상 가운데에 불판이 있어 석쇠, 철판, 돌판, 구들장이 동원되거나 전골냄비와 돌솥, 뚝배기, 양푼까지 올라간다.

‘효종갱’과 ‘뼈다귀해장국’을 비교해보자. 효종갱은 먹을 때 아마 그 유래를 떠올리고 먼 데서 끓여 온 정성을 생각하면서 청결한 곳에서 품위를 갖추고 먹어야 할 듯하고, 뼈다귀해장국은 지저분한 허술한 집에서 급히 먹어치울 음식이 연상된다. 거친 말을 쓰면 행동이 거칠어지고, 고운 말을 쓰면 자세가 공손해진다. 지금 세계는 음식 문화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발 맞추어 우리도 국가적으로 한식이 한국 문화를 알리는 수단이며 경제적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여 ‘한식의 세계화’에 힘쓰고 있다. 그런데 요즘의 거친 음식이 과연 우리의 음식 문화로 품격을 지녔는지 진지하게 돌아볼 시점이다.
요즘 방송에서 인기인들이 음식을 맛보면서 ‘담백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담백 淡白이란 아무 맛이 없이 싱거운 것을 이르는 말로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옛 책에는 ‘맛이 아름답다’ ‘맛이 절미 絶美하다’ ‘맛이 절가 絶佳하다’ ‘ 맛이 달고 향긋하다(甘香)’ 등 고운 표현이 나온다. 궁중에서 ‘절미된장조치’는 ‘맛이 비할 데 없이 매우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걸작의 된장찌개인 셈이다.
이제 우리는 서정적이고 아름답게 음식을 표현하는 마음과 음식을 대하는 조상들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우리의 옛 음식 책에는 공이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한 별미 음식이 많이 나온다. 요즘 시중의 맵고 거친 음식이 세계화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미덕을 느낄 수 있는 정성 들인 음식이야말로 분명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한복진(전주대학교 문화관광대학 전통음식문화전공 교수


(왼쪽) 눈 오는 밤에 친구 찾아가 만난 고기구이 설야멱적
너비아니구이(불고기)의 원조 격인 음식으로, 쇠고기 등심을 넓고 길게 저며 썰어서 꼬치에 꿴 후 양념을 발라 구운 것이다. <산림경제>와 <규합총서>에는 ‘설하멱 雪下覓’이라고 소개되었고, <해동죽지>에는 “설야적 雪夜炙은 개성부에 예부터 내려오는 명물로, 쇠갈비나 염통을 훈채로 조미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냉수에 잠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구워 익힌다. 눈 오는 밤의 술안주에 좋고 고기가 몹시 연하여 맛이 좋다”라고 씌어 있다. 또 19세기 학자 조재삼이 쓴 <송남잡지 松南雜識>에는 송 태조가 눈 오는 밤(雪夜)에 진 晋을 찾아가니(覓) 숯불에다 고기를 굽고(炙) 있더란다. 그리하여 이 구운 고기에 ‘설야멱적’이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붙게 되었다. 스테이크와는 비교할 수 없이 내공이 깊은 우리의 너비아니구이.
* <산림경제 山林經濟>(1715년)_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이 농업과 일상 가정생활에 관한 광범위한 사항을 기술한 소백과사전적인 책.
* <규합총서 閨閤叢書>(1809년)_빙허각 이씨 가 쓴 한글판 생활 경제 백과사전으로 의식주 관련 문제들을 정리, 체계화했다.

(오른쪽) 맛이 뛰어나니 기생이나 음악보다 낫구나 승기악탕
<조선요리학>에 승기악탕의 유래가 기록돼 있다. 조선 성종(1479~1494) 때 오랑캐가 함경도 일대를 수시로 침입하여 백성을 괴롭혔는데, 이를 방어하고자 조정에서는 허종 許琮에게 의주에 진영을 두고 국경을 수비하게 했다. 허종이 의주에 도착하자 백성들은 환영하는 뜻에서 도미에 갖은 고명을 얹어 정성껏 만들어 바쳤다. 허종이 그 음식의 이름을 물으니 아직 이름이 없다고 말하자 그가 ‘음식 맛이 뛰어나(勝) 기녀(妓)와 음악(樂)보다 더 낫다’는 뜻으로 ‘승기악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또 <해동죽지>에는 ‘승가기 勝佳妓’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본디 해주의 명물로, 서울의 도미면과 같은 것이라고 적혀 있다. 승기악탕은 숭어 또는 도미, 조기 등을 구워 냄비에 담고 쇠고기와 여러 가지 채소, 고명을 함께 넣은 뒤 육수를 부어 끓인다. 깊고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며, 국수나 흰떡을 넣어 먹기도 한다.
* <조선요리학>(1940년)_홍선표가 국한문 혼용으로 출간한 음식 책.
* <해동죽지 海東竹枝>(1921년)_최영년이 쓴 시집. 우리나라의 역사ㆍ풍속ㆍ지리ㆍ명승ㆍ고적 등에 대해 읊은 500여 편의 시를 수록했다.


입이 즐거워지는 탕이로구나 열구자탕
일반적으로 ‘신선로 神仙爐’라 널리 알려진 이 궁중 음식의 원래 이름은 ‘입을 즐겁게 해주는 탕’이라는 뜻의 ‘열구자탕’이다. 신선로는 ‘신선이 드시던 화로’라는 뜻의 그릇 이름. ‘신선로’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동국세시기> 이전의 문헌에서는 ‘열구자탕 그릇’이라고 했다. 궁중의 연회 중 1827년 잔치 기록에 열구자탕이 처음 나온다. 열구자탕은 신선로 맨 아래에 쇠고기를 채 썰어 양념한 것을 넣고(혹은 고기에 무를 섞어 곤 것을 함께 썰어 넣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어육과 채소를 색스럽게 둘러 담은 뒤 쇠고기 맑은장국을 붓고 중앙에 있는 노 爐에 숯불을 담아 끓이면서 먹는다. 궁의 수랏간에서는 아랫사람이 밑준비를 다 해주면 조리하는 사람 중 제일 지위가 높은 사람이 찬방에 앉아 신선로를 ‘꾸몄다’. 오색을 맞춘 각각의 재료가 어우러져 또 하나의 음식으로서 예술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대표적 궁중 요리로 신선로를 꼽는 것은 색깔과 그릇이 예뻐서만이 아니라 모든 음식의 맛이 녹아 깊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눈과 입이 모두 즐거워지는, 이보다 더 호사스러운 음식이 또 있을까?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1849년)_조선 순조 때의 학자 홍석모가 지은 세시 풍속서로, 한국 고래의 연중행사와 풍습을 12개월의 항목으로 나누어 설명한 책.


(왼쪽) 신께 쌓아 올려 복과 풍년을 비나니 복쌈
정월 대보름은 한 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날이다. 이날은 오곡밥과 아홉 가지 묵은 나물을 먹고, 부럼을 깨며, 복쌈을 싸 먹는 풍속이 있다. 복쌈은 넓은 취나물이나 구운 김, 배추 잎 등으로(개성 등지에서는 들깻잎으로) 밥을 싸 먹는 것으로, 한자로는 복과 福 또는 박점 縛占, 복포 福包라고 한다. 여러 개를 싸서 그릇에 볏단 쌓듯 높이 쌓아 성주 신에게 올린 다음 먹었는데, 그렇게 하면 복이 온다고 믿었다. 이때 쌈을 볏단처럼 높이 쌓는 것은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 정월 대보름(양력 2월 28일)에는 오곡밥과 함께 복을 한 쌈 싸서 먹어보자.

(오른쪽) 새벽종 칠 무렵 서울에 도착하는 해장국 효종갱
‘효종 曉鐘’은 새벽에 치는 종을, ‘갱 羹’은 국을 의미한다. <해동죽지>에 ‘효종갱’이라는 낯선 이름의 음식이 나온다. 이 책에는“조선시대 경기도 광주 廣州 남한산성 내 사람들은 효종갱을 잘 끓인다”라고 씌어 있다. 배추속대,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쇠갈비, 해삼, 전복 등을 토장에 섞어 종일토록 푹 곤 뒤, 밤에 이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때쯤 온기를 품은 채로 재상의 집에 도착하는데 이 국이 해장에 더없이 좋다고 했다. 해장국 치고는 재료가 눈부시게 호화롭다. 그 시절 서울 양반들이 숙취 해소와 보양을 위해 멀리서 배달시켜 먹던 최고급 해장국인 셈이다.

떡이로다얼마나 맛이 좋으면 ‘차마 입에 삼키기(呑)가 아까운(惜) 떡(餠)’이라고 했을까.
석탄병은 임금의 생신 때 고관대작의 집에서 만들던 귀하고 격이 높은 떡 가운데 하나다. <진찬의궤><규합총서> <부인필지>에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단단한 감을 저며서 말렸다가 쌀가루와 반씩 섞어 잣가루, 계핏가루, 대추, 황률을 섞고 거피팥이나 녹두 고물을 켜켜이 뿌려 안쳐서 찐 시루떡이다.
감 가루가 들어가 은근한 단맛이 나며, 견과류가 많이 들어가 영양가도 높다. 계피와 유자 향이 좋고, 감 가루의 단맛과 잣가루의 고소한 맛이 잔잔하게 어우러져 맛이 깊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한 입 먹고 싶어지는 떡이다.

* <진찬의궤 進饌儀軌>(1901년)_조선 후기 궁중에서 왕・왕비・왕대비 등에게 진찬한 내용을 기록한 책. 조선 후기 궁중 향연의 의식을 알 수 있다.
* <부인필지 夫人必知>(1915년)_방신영이 가정생활에 긴요한 것을 광범위하게 쓴 책.

칼럼에 전체적으로 쓴 그림은 서양화가 박철환의 작품을 변형한 것입니다. 그는 다양한 항아리에 꽂은 희고 붉은 목련을 화폭에 담아냅니다. 작가가 캔버스에 아크릴로 작업한 ‘목련’ 시리즈의 데이터를 한지에 인쇄한 뒤 음식과 함께 촬영했습니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