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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엄마표 요리]강소패 씨에게 배우는 전주 토속 음식 보리단술과 토란대 쇠고기 산적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집요한 그리움 속에는 늘 고향의 맛이 자리 잡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에서 자란 강소패 씨가 어릴 적 어머니가 자주 만들어주시던 보리단술과 토란대 쇠고기 산적을 소개한다. 보리밥을 삭혀서 음료로 만들어 먹은 보리단술은 전주는 물론 농촌이라면 어디서나 즐겨 먹었던, 시골의 정이 담긴 추억의 음식이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가을걷이를 기다리는 곡식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채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 이제 어린 시절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지금도 황금빛 논배미를 보노라면 곡식이 영글 때까지 일꾼들 밥을 지어 먹이느라 분주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내 고향은 전주, 우리 집은 제법 큰 규모의 농가였다. 농촌은 봄가을에 일손이 가장 바쁘다. 추수철이 시작되면 일꾼들은 모두 논에 나가 흥겹게 농가를 부르며 벼를 베어냈고 집 안의 아낙들은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지펴가며 일꾼들 시장기를 달래줄 들밥을 짓느라 손길을 바삐 놀렸다. 이맘때 어머니는 들밥과 함께 꼭 보리단술을 만들어내셨다. 들밥으로는 주로 보리밥을 짓는데, 일꾼들이 부족하게 느끼지 않도록 항상 넉넉하게 마련했다. 그러다 보면 늘 보리밥이 남기 일쑤였고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 쉬 상하는 보리밥을 가장 잘 처리하는 방법이 보리단술을 만드는 것이었다. 옛날에는 특별한 주전부리가 없었기 때문에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보리단술은 간식으로 제격이었다. 최근에 문득 그 맛이 그리워 한번 만들어보려는데 담그기가 쉽지 않았고, 친척 어른에게 물어도 자세히 기억하고 계신 분이 없었다. 이리저리 자료를 찾다가 읽은 <농가월령가>에서 ‘보리단술’이라는 말이 나와 반가웠을 뿐이다. 잠시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생략) / 젊은이 하는 일이 / 김매기뿐이로다 / 논밭을 갈마들여(서로서로 번갈아 듦) / 삼사차 돌려 맬 제 / (중략) / 숨 막혀 기진할 듯 / 때마침 점심밥이 / 반갑고 신기하다 / 정자나무 그늘 밑에 / 좌차(앉을 자리의 차례)를 정한 후에 / 점심 그릇 열어놓고 / 보리단술 먼저 먹세 / 반찬이야 있고 없고 / 주린 창자 메인 후에 / 청풍에 취포하니(취하고 배부르니) / 잠시간이 낙이로다 - <농가월령가> 6월령 중에서
조선시대의 가사에 나온 것을 보니 보리단술은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부터 먹었던 음식인 듯하다. 노래를 살펴보면 보리단술은 일꾼들이 본격적인 식사를 하기 전 속을 달래주는 역할을 한 듯 보인다. 지금에야 만드는 집이 거의 없지만 나라도 그 맥을 이어보고자 보리단술의 맛을 떠올리며 만들기를 수차례,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보리단술 레시피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보리단술을 만들려면 먼저 보리밥이 필요하다. 보리밥에 누룩과 물을 넣어 고루 섞은 뒤 하루 동안 삭힌 후 체에 거르고 물과 설탕을 넣어 끓이면 되는데, 실패의 원인은 누룩과 물의 정확한 양을 가늠하지 못해서였다. 완성된 보리단술의 묽기는 떠먹는 요구르트와 비슷하다. 옛날에도 어른은 큰 사발에 담아 들고 마셨지만, 어린 나는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먹었으니까. 보리의 구수한 맛과 설탕의 달콤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단숨에 꿀꺽 넘어가는 보리단술은 누룩을 넣어 삭히긴 하지만 그 시간이 짧기 때문에 알코올은 거의 생기지 않아 어린아이까지 모두 간식으로 먹었다.
토란대 쇠고기 산적은 특별한 날 어머니가 꼭 만드는 음식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보기 좋으라고 산적에 당근이나 시판하는 게맛살 등을 꿰는데, 나는 지금도 토란대를 끼워 산적을 만든다. 모양은 까맣고 예쁘지 않지만 맛으로는 그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는 토란대가 제철인 가을에 토란대를 잔뜩 베어 말려두고는 사철 꺼내 먹었다. 들깨를 갈아 넣고 무쳐 나물로도 먹고, 탕을 끓일 때 건지로도 넣어 먹는 등 토란대는 여러 가지 음식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식재료였다. 다른 계절에는 말린 토란대를 물에 불려서 삶아 사용했지만 가을에는 생토란대를 이용하곤 했다. 생토란대는 껍질을 벗겨 푹 삶아서 하루 종일 물에 담가 독한 맛을 우려낸 뒤 사용해야 아린 맛이 나지 않는다. 쇠고기와 토란대를 꼬치에 끼워 구우면 어느 것이 고기이고 어느 것이 토란대인지 분간이 잘 안 될 정도로 맛이 잘 어울렸다.
어린 시절 추억을 되짚어가며 음식을 만들고 보니 큰 살림을 도맡으셨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농촌에 살면서도 자식들 공부 욕심이 많던 어머니는 음식 솜씨도 매우 좋았고 생각이 깨어 있는 멋진 여성이었다. 내 모습이 어머니와 꼭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손자가 직장에 들어갈 정도로 나이가 든 지금도 ‘어.머.니’를 발음하면 목이 잠기는 이유는 도통 알 길이 없다.

(위) 옛날 농촌에서는 햅쌀이 나오기 전 주로 보리밥을 먹었답니다. 보리밥이 남으면 손쉽게 보리단술을 만들어 간식으로 즐기던 일은 이제 추억으로 잊힐 뻔했는데, 강소패 씨가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냈습니다. 그가 어렵게 재현한 레시피대로 한번 만들어보세요. 달콤하고 고소한 것이 제법 입맛을 당긴답니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전국 각 지역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

보리단술과 토란대 쇠고기 산적 만들기


보리단술
재료 보리쌀 1컵, 쌀 1/4컵, 누룩 1컵, 물 적당량

만들기
1 보리쌀과 쌀을 깨끗이 씻어 보리밥을 짓는데, 오래 뜸을 들인다. 밥이 다 되면 넉넉한 그릇에 펴 식힌다.
2 식은 보리밥에 누룩을 넣고 잘 섞은 다음 물을 넣어 묽게 만들어 뚜껑을 덮고 실온에 놓아둔다.
3 하루 동안(24시간) 보리밥을 삭힌다.
4 ③을 굵은체로 거르는데, 되직한 경우 물을 섞으면서 거른다.
5 냄비에 ④를 넣어 끓인다. 기호에 따라 설탕을 넣고 주걱으로 눋지 않게 저어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농도를 조절해가며 물을 더 넣는다. 넘지 않게 저으면서 끓이다가 푸르르 끓어오르면 불을 끈다.
6 식으면 걸쭉해진다. 이것을 그릇에 담아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묽기가 요즘의 떠먹는 요구르트와 비슷하면 완성된 것이다. 맛은 막걸리보다 순하다.



토란대 쇠고기 산적
재료
토란대・대파 200g씩, 쇠고기 100g, 밀가루 1/2컵, 달걀 2개, 소금 약간 고기 양념 간장·설탕 1큰술씩, 설탕 1작은술, 다진 마늘 1/2작은술, 깨소금·참기름 1작은술씩, 후춧가루 약간 토란대 양념 국간장 1/2큰술, 다진 파·다진 마늘 약간씩, 밀가루 1/2작은술 초간장 간장 2큰술, 식초 1작은술, 설탕 약간

만들기
1 말린 토란대는 물에 불려서 삶아 물에 담그고, 생토란대는 껍질을 벗겨 삶아서 독한 맛을 우려낸 다음 꼭 짜서 6cm 길이로 썬다.
2 ①의 토란대에 국간장, 다진 파, 마늘, 참기름을 넣어 고루 버무린 후 밀가루를 조금 넣어 섞는다.
3 대파는 6cm 길이로 썰어 소금을 살짝 뿌린다.
4 쇠고기는 0.7cm 두께로 토란대보다 약간 길게 썰어 살짝 잔칼질한 다음 분량의 양념을 넣어 버무린다.
5 8cm 꼬치에 쇠고기 하나, 토란대 2개, 파 1개 순으로 번갈아 꿴다.
6 밀가루에 살짝 묻히고 계란을 씌워 중간 불에 지진다. 접시에 담을 때는 꼬치를 빼고 가운데에 칼집을 내어 담고 초간장을 곁들인다.



이화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