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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실 인터뷰 경주의 전통 다원& 갤러리 '아사가'
태양과 바람, 흙과 비, 달빛과 별빛 등 우주 만물이 정성으로 키운 차나무의 잎을 사람이 따고 덖어서 건조하면 그것이 뜨거운 물과 만나 새로운 잎으로 태어난다. 5천 년의 시간을 너머 찻자리에 놓인 차 한잔. 향기로 마시고 혀로 음미하는 차 한잔이 몸과 마음, 정신을 정화해준다.

1 뜨거운 물에 저어 마시는 가루차인 말차를 만드는 찻사발과 찻솔(앞).
2 차의 성질은 본래 냉 冷하므로 여름에도 뜨겁게 해서 마신다.


천년 고도의 향기가 흐르는 경주 시내, 나지막한 빌딩 사이에서 숨 쉬고 있는 전통 다원 & 갤러리 ‘아사가 我思佳’의 사립문 앞에 서면 한국 전통 차와 ‘차 정신’을 살리는 데 이바지한 지허 스님(선암사 주지)의 글귀 “찻집(茶室)은 볕이 잘 드는 한옥으로 지붕 위에는 항상 그늘이 드리워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면 좋다. 이는 자생 차 밭의 자생 차가 좋아하는 환경과도 같다”를 떠올리게 된다.
맑고 고운 차 꽃을 연상시키는 김이정 대표가 아사가의 문을 연 것은 2002년, 계절이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이다.
“제일 처음 이 집에 와서 추녀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보면서 ‘여기에서 찻집을 해보고 싶다’는 발원 發願을 했어요. 친구가 와서 보고 폐허 같으니까 ‘꼭 해야 되겠냐’고 물을 정도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마당이 있어서 좋고, 그 마당에 꿈을 심을 수 있어서 좋고, 한지 같은 것도 오래돼서 좋았어요. 오래된 맛이 좋아요.”
인류의 음식 가운데 차만큼 오래된 것이 또 있을까. 기원전 2737년, 중국의 전설 속 황제 신농씨가 처음 차를 마셨다고 하고, 한편으로는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대사가 깨어 있기 위해 자신의 눈꺼풀을 잘라 땅에 묻었는데 이것이 뿌리를 내려 각성 효과가 있는 두 그루의 차나무가 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차가 유입된 것은 아유타야 국의 공주인 허황옥이 가야 왕비로 시집오면서 차와 씨를 가져오면서부터라고 한다.
“스물네 살 때쯤 직장 일과 관련해서 경주의 사찰인 기림사에 갔다가 그곳에서 처음 차를 마시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차차 차와의 인연이 깊어지면서 차의 질을 선별하고 함양하며 자기만의 차 생활을 즐기는 분들도 만나게 되었지요. 차 생활을 하면서 저 자신의 오만함과 이기심 등 모난 부분들을 다듬어가게 됩니다. 저에게 차는 말없는 스승이요, 찻자리는 스스로 가르침을 찾아서 체득하는 자리입니다.”


3 기획전이 없을 때 골동 다구를 상설 전시・판매하는 갤러리 ‘아사가’.


4 좋은 물, 좋은 차, 좋은 찻주전자가 만나면 좋은 차가 만들어진다.
5 빈속일 때는 차에 다식을 곁들여 먹는다. 위부터 사과・대추・송화 다식.


아사가에서는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차 밭에서 손으로 채취하여 수작업으로 법제한 뒤 아홉 번 덖고 아홉 번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여 차의 독성이라 할 수 있는 냉한 성질을 중화시킨 지리산 차를 비롯하여 중국의 보이차, 일본의 말차 抹茶 등의 전통차와 대추탕, 오미자차, 매실차 등 김이정 대표가 직접 담근 대용 차,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화차를 내놓는다. 차와 함께 먹는 다식도 일일이 손으로 만든 것이고, 겨울철에는 흰 가래떡 구이가 별미다.
“정말 누구에게라도 ‘차를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차 생활’을 하다 보면 관념과 삶이 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을 체득하게 되거든요. 요즘엔 지역별로 차를 배울 수 있는 곳이 많고, 차를 마시는 분도 많아요. 지인 가운데 차를 마시는 분이 있다면 그분과 함께 시작해보세요. 비싼 찻주전자가 아니어도 좋아요. 차를 끓여 마시는 곳이 바로 다실이니까요. 끊임없이 실천하는 생활 다도를 통해 자기만족이라는 다도 茶道에 이르는 것 아닐까요?”
아사가에서는 1개월에 한 번씩 차회 茶會가 열리고, 1년에 한 번씩 가을 음악회가 개최된다. 차회는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고 음미하는 자리로, 인터넷 다음 카페 ‘아사가’를 통해 예약을 받는다. 정례 차회도 뜻깊은 자리이지만, 김이정 대표가 개인적으로 즐기는 차회는 날씨 좋은 날 새벽 왕릉에서 차를 마시는 것이다. 새벽 4시 30분, 김 대표는 차와 물과 찻주전자를 챙기고 지인들은 감자나 고구마, 김밥 등을 챙겨가 왕릉에서 만난다. 인적 없는 왕릉에서 안개 걷히고 해 뜨는 광경을 보는 기쁨이란 과연 어떠한 것일지…. 어쩌면 ‘자연이 가득한 집’은 누구라도 편하게 앉을 수 있도록 비워진 아사가 정원의 의자처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차회를 만들어 즐기는 김이정 대표의 차 생활처럼, 마음의 빈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웰빙 음식, 좋은 음식을 먹더라도 내 생각, 내 마음 자리 하나가 오염돼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찻자리는 차를 통해서 끝없이 마음을 공부하며 다듬어가는 자리입니다. 차 자체도 웰빙이잖아요.”
자연이 주는 대로 먹고 자라서 사람을 일깨우기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차의 일생이 가리키고 있는 웰빙은 무엇인가? 아사가의 차와 다식은 주문 구매도 가능하다. 문의 054-771-7625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