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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옥희 씨에게 배우는 통영 토속 음식 방풍 생멸치찜과 우무해조무침
한반도가 아무리 작다지만 각 지방의 토속 음식을 들여다보면 그 세계가 얼마나 깊고 다양한지 새삼 놀라게 된다.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집요한 그리움 속에는 늘 고향의 맛이 있다. 봄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은빛 멸치와 바닷바람 맞고 자란 향긋한 산나물이 한데 어우러진 생멸치찜과 탱글탱글 개운한 우무해초무침.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으로 버무린 통영의 봄 음식이다.
언제나 그리움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어 일 년에도 몇 번씩 고향을 찾지만, 특히 이맘때가 되면 나는 마법에 이끌린 듯 내 고향 통영으로 향한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 싱싱한 해초 냄새에 흠뻑 빠져들다 보면 온몸의 감각 기관이 비로소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통영 앞바다는 남해의 황금어장으로 이맘때 바다가 은빛으로 찬란하게 수놓이는 까닭은 바다를 가득 메운 멸치 떼 때문이다. 또한 통영 일대에는 섬이 많고 그 섬에는 산과 계곡이 많아 이즈음이면 방풍, 풋마늘, 산두릅, 산초잎, 방아잎, 햇고사리 등 온갖 나물이 돋는다.
4월 초파일 즈음 벚꽃이 질 때면 살이 통통하고 알이 꽉 찬,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생멸치로 젓갈 담그기가 한창이다. 생멸치를 소금에 버무려 담은 항아리 뚜껑 위로 바람에 날린 벚꽃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면 어머니는 ‘때를 잘 맞추었다’고 하셨다. 젓갈 담고 남은 멸치로는 찜을 만들어 먹었다. 향긋한 온갖 종류의 산나물과 생멸치를 넣고 된장으로 간을 맞춘 생멸치찜은 다른 지방에서는 맛볼 수 없는 통영만의 별미다. 특히 생멸치찜에는 바위틈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자라난 방풍나물이 들어가야 제대로다. 요즘에야 방풍을 재배할 수 있어서 다른 지역에도 많이 나지만 예전에는 통영에서도 워낙 귀한 나물이었다. 향긋하고 매끄러운 방풍은 쌈으로 먹거나,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멸장(멸치액젓을 한지에 서너 번 거른 것으로 빛깔이 맑고 깨끗하다. 나물이나 미역, 해초 등을 무칠 때 사용한다)에 무쳐 먹기도 한다. 멸치보다 나물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간 생멸치찜은 보릿고개를 어떻게든 넘겨보려던 우리 어머니들이 탄생시킨 애틋한 음식이다. 빈 쌀독에 한 줌 남은 쌀알을 갈아 별의별 산나물과 함께 버무린 뒤 바다에서 많이 잡히던 멸치나 숭어를 얹어 푹 쪄내 식구들 끼니를 때웠었다.


(왼쪽) 그 누구보다 고향 사랑이 짙은 윤옥희 씨. 맛을 제대로 내려면 통영 해풍을 맞고 자란 방풍과 산나물, 햇고사리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며 직접 통영에 내려가 모든 재료를 구해왔다.
1 산초잎
2 방풍나물
3 산두릅
4 방아잎
5 산나물


몇 해 전 어머니의 생신날, 자식들 먹이려 손수 차린 밥상에는 오랜만에 봄 향기가 가득했다. 섬에서 나는 온갖 봄나물에 짭조름한 된장(우리 아버지는 당신 아내의 된장을 팔도강산에서 제일로 친다)을 넣어 손맛이 배어들도록 조물조물 무치고, 비늘이 가시지 않은 은빛 멸치와 멥쌀, 밀가루, 녹말가루를 걸쭉하게 개어서 모든 재료가 한데 엉겨 붙게 익힌 뒤 큰 그릇에 옮겨 담아 내놓으니 자연의 향연이 따로 없었다. 그 맛과 향을 어디다 비교하리. 아마도 어머니는 잊혀져가는 유년 시절, 섬의 보릿고개 생각이 나셔서 당신 생일날 그렇게 푸짐하도록 생멸치찜을 차리신 게 아니었을까.
크고 작은 섬이 많아 해초도 풍부한 통영에서 어린 우리의 간식거리 중 제일로 친 것이 바로 우뭇가사리였다. 우뭇가사리는 봄날 물이 빠져나간 바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해조류로, ‘한천’의 원료로 이용된다. 여름날 모시옷을 입고 우물가에 앉아 우뭇가사리를 방망이로 두들겨 달라붙은 조가비 찌꺼기를 털어낸 뒤 다시 방망이질을 하고 또 하면 누렇던 우뭇가사리가 뽀얗게 된다. 이것을 솥에 넣고 우뭇가사리가 잠길 정도로 물을 부은 뒤 뭉근히 오래도록 푹 삶는다. 삶은 우뭇가사리를 체에 밭쳐 굳힌 우무는 훌륭한 반찬거리 혹은 주식거리, 간식거리였다. 우무를 가늘게 채 썰어 콩국을 부어 배고플 때 한 사발 들이켜면 가라앉았던 배가 기분 좋게 불러왔고, 설탕과 팥 앙금을 넣고 고아서 굳히면 윤기 나는 달콤한 양갱이 됐다. 50여 년 전 허기졌던 배를 채워주었던 먹을거리가 지금은 우리 밥상 최고의 건강식품이자 다이어트 식품이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제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나는 어느새 어머니를 닮아 시시때때로 바다의 향기를, 섬의 냄새를 추억하며 산다.

방풍생멸치찜과 우무해초무침 만들기

방풍생멸치찜
재료(4인분)
생멸치 500g(머리, 내장, 뼈를 떼내고 손질한 것), 방풍 500g, 풋마늘 300g, 데친 산나물 150g, 데친 취나물 100g, 데친 산두릅 80g, 데친 고사리 50g, 방아잎・어린 깻잎 15g씩, 산초잎 5g
양념 된장 3큰술, 고춧가루 1 1/2큰술, 멥쌀가루 250g, 밀가루・고구마 녹말가루 1/2컵씩, 물 2컵 정도

만들기
1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끓여 소금을 약간 넣은 후 방풍과 풋마늘을 각각 데친 다음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다.
2 방풍, 풋마늘, 산나물, 취나물, 산두릅, 고사리 등 데친 나물을 볼에 담고 된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간이 배도록 조물조물 주무른다.
3 양념한 나물을 큰 냄비에 넣고 뚜껑을 덮어 중간 불에서 끓인다.
4 나물에서 수분이 빠져나와 자박자박 끓으면 손질한 생멸치를 넣고 끓인다.
5 그릇에 멥쌀가루, 밀가루, 고구마 녹말가루를 넣고 물에 갠다.
6 생멸치가 익으면 방아잎, 깻잎, 산초잎을 넣고, ⑤를 부어 멸치와 나물이 한데 엉기면 그릇에 담는다. 차게 식혀 먹어도 별미다.

* 생멸치는 경남 남해에 있는 갯마을농장(055-863-3006)에서 구입할 수 있다. 머리 떼고 내장 제거 후 손질한 상태로 배송해준다.


우무해초무침
재료(4인분)
우뭇가사리(마른 것) 60g, 물 1L, 불린 가시리 25g 배합초 식초 3큰술, 소금 1작은술, 설탕 2큰술, 물 1큰술, 송송 썬 실파・깨소금 약간씩

만들기
1 티를 골라낸 마른 우뭇가사리를 물에 담가 3시간 정도 충분히 불린다.
2 불린 우뭇가사리를 냄비에 넣고 잠길 정도로 물을 부어 2시간 정도 뭉근히 끓인다.
3 거품을 걷어내면서 끓이다 우뭇가사리가 풀처럼 풀어져 주걱으로 저을 때 뻑뻑한 느낌이 들면 고운체에 거른다.
4 끈끈하고 뜨거운 상태에서 ③을 네모난 용기에 부어 식힌다.
5 굳은 우무를 가늘게 채 썬다.
6 붉은색을 띠는 불린 가시리와 ⑤를 함께 배합초에 버무려 접시에 담고, 송송 썬 실파와 깨소금을 뿌린다.

* 우뭇가사리는 재래시장 건어물점에서, 분말형과 스틱형으로 된 우무용 한천은 밀양한천(055-389-1001)에서 구입할 수 있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