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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의 겨울 음식에는 메밀, 굴, 김치, 늙은호박, 두부가 단골로 들어간다. 특히 백령도 사람 중에 늙은호박김치와 짠지떡을 모르면 간첩이다. 집집마다 담가 겨우내 온 식구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늙은호박김치는 외지에서 백령도로 들어와 살게 된 사람도 인이 박이고야 마는 음식이다. 가을철 고개 숙인 벼를 베어낼 즈음이면 집 앞 밭이랑에는 호박이 덩굴째 누렇게 늙어갔고, 날마다 바다에 나가시는 할아버지는 통통한 알이 그득한 꺽죽이(‘삼식이’의 방언)를 한가득 찍어 오셨다(꺽죽이는 낚시로 잡는 게 아니라 갈고리 같은 도구로 ‘찍는다’고 말한다). 식구 많은 집 종부였던 나의 어머니는 가을배추와 열무, 늙은호박을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리고 독특한 향기가 나는 분지(‘산초’의 방언) 열매와 꺽죽이 알을 넣어 김치를 담갔다. 늙은호박김치가 푹 익으면 반찬으로 그냥 먹기도 하지만, 멸치 넣고 쌀뜨물을 부어 찌개로 끓였을 때 진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데 어릴 때는 왜 그 맛을 몰랐는지, 초등학교 때도 중학교 때도 어머니가 호박김치찌개를 끓여주시면 그냥 싫었다. 인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방학 때 백령도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어나 늙은호박김치찌개를 푹 끓이고 짠지떡을 빚어 상을 차려주셨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하다 결국은 어머니를 서운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다 불현듯 어머니의 늙은호박김치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내가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당장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 김치를 부탁했지만 안타깝게도 꺽죽이도 늙은 호박도 제때가 아니어서 구할 수 없었다. 내 입맛이 철이 든 건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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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자취하는 딸을 위해 늘 김치를 비롯해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셨던 어머니. 배가 뜨지 않아 자식들에게 늙은호박김치를 부칠 수 없는 날에는 바람에 날려 보냈으면 좋겠다며 자식 생각에 하늘을 향해 많이 우셨단다. 고향 떠난 자식이 어머니의 손맛을 잊지 않도록 하셨던 게 아닐까. 요즘에도 여든을 훌쩍 넘기신 어머니는 환갑의 딸을 위해 가을이면 늙은호박김치를 담가 부치신다. 이젠 그만 하시라고 해도 당신 손맛이 더 좋다며 일을 멈추지 않으신다. 실제로 늙은호박김치 맛에 혀끝이 길들여진 후로는 내 손으로 직접 담가 먹지만 어머니가 해주신 게 훨씬 맛있다. 시금시금하고 달짝지근한 늙은 호박에 톡톡 씹히는 꺽죽이 알과 분지의 향이 어우러져 맛이 일품이다. 젊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자꾸만 어머니의 음식이 생각난다. 너무도 그리운 어머니의 따뜻한 음식이다.
이 칼럼은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추천과 도움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평소 우리 나라 각 지역의 다양하고 특색 있는 토속 음식이 잊혀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말합니다. 매달 궁중음식연구원 지미재 회원과 함께 어머니와 고향의 맛을 추억하고 소개할 예정입니다.
백령도식 늙은호박김치와 짠지떡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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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호박김치
재료 늙은 호박 1.5kg, 배추 1포기(2.5kg), 무청 500g, 산초 150g, 삼식이 알 250g, 쪽파・갓 100g씩, 대파 1대, 다진 마늘 3큰술, 다진 생강 1큰술, 고춧가루・까나리액젓 3/4컵씩, 찌개용 들기름・쌀뜨물・멸치 적당량
만들기
1 늙은 호박은 통째로 씻어 골대로 길게 썬 뒤 씨를 긁어내고 껍질째 1.5~2cm 두께로 썬다. 배추와 무청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2 물(10컵)에 소금(11/2컵)을 녹여 배추와 무청을 1시간 정도 절인다.
3 절인 배추와 무청을 건져 씻고, 배추 절인 소금물에 늙은 호박을 절인 뒤 건져 씻는다.
4 산초는 10월 중순쯤 열매가 파랗고 껍질이 벗겨지지 않았을 때 송아리째 따서 손질한다. 찬물에 담가 4~5일간 매일 물을 갈아가며 우린 뒤 냉동보관했다가 필요한 만큼씩 물에 씻어 쓴다. 까나리액젓에 담근 장아찌를 물에 담가 짠맛을 뺀 뒤 써도 된다.
5 삼식이 알은 10월 중순에서 11월 중순에 구입해 소금에 절여 냉동보관했다가 물에 씻어 사용한다.
6 쪽파와 갓은 4cm 길이로 썰고, 대파는 어슷하게 썬다.
7 그릇에 늙은 호박, 배추, 무청, 산초, 삼식이 알과 채소 양념을 고루 섞고 고춧가루와 까나리액젓으로 잘 버무려 항아리에 담는다.
8 늙은호박김치가 푹 익으면 냄비에 들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쌀뜨물과 멸치를 넣어 찌개를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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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지떡
재료 메밀가루 3컵, 찹쌀가루 1컵, 밀가루 11/2컵, 끓는 물 2컵, 배추김치 1/2포기, 굴 2컵, 홍합살 1/2컵, 대파 1대, 다진 마늘 3큰술, 들기름 5큰술, 깨소금 2큰술, 소금・고춧가루 적당량
만들기
1 분량의 메밀가루와 찹쌀가루, 밀가루는 한데 섞어 고운체에 한 번 내린다.
2 ①에 끓는 물을 넣고 고루 치대면서 익반죽한다.
3 잘 익은 배추김치 소를 털어내고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한 뒤 송송 썬다. 대파도 송송 썬다.
4 굴(알이 굵지 않은 것이 좋다)은 깨끗이 씻어 체에 밭쳐 물기를 빼고, 홍합살은 씻어 건진 뒤 굵게 다진다.
5 볼에 김치,굴, 홍합살, 대파, 다진 마늘을 넣고 들기름과 깨소금을 섞은 뒤 소금으로 간해 소를 완성한다.
6 ②의 반죽을 떼어 너무 얇지 않게 피를 만들어 ⑤의 소를 넣고 만두보다 큼지막하게 빚는다.
7 빚은 짠지떡은 끓는 물에 삶거나 시루에 찐다. 8 짠지떡이 익어 떠오르면 건져 한 김 식힌 뒤 들기름을 살짝 바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