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경전처럼 여겨지는 <황제내경黃帝內經>의 사기조신대론편四氣調神大論篇을 보면 가을을 ‘용평容平’의 계절이라 이른다. 이는 가을이 편안히 하고, 받아들이는 계절이라는 뜻이다. 가을은 금金의 기운을 지녔기에 만물이 열매를 맺어 거두어들이는 시기이며, 흩어졌던 양기가 몸속 깊숙한 부위로 모여 평정되는 때이다. 그래서 땅의 기운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사물의 색깔이 선명해진다. 봄과 여름이 기운이 뻗고 성장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기운을 모으고 수렴하는 계절이다. 여름내 피어나고 번성했던 에너지를 거두어들이며 결실을 맺는 계절이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가을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뜻을 가진 ‘수收’자로 요약한다. 흔히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어디 살찌는 것이 말뿐이랴. 오곡백과가 열매를 맺고, 바다 속의 물고기마저도 살이 찐다. 사람도 여름내 잃어버렸던 입맛이 돌아와 많은 음식을 먹게 되고, 살이 오른다. 가을에 낙과와 낙엽이 땅을 덮어놓으면 나무가 겨울을 지탱하듯이, 사람 역시 겨울을 대비해 살을 찌우는 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섭생 원리였다. 그러나 요즘은 겨울에도 먹을 것이 넘쳐나니 가을의 기운대로 살면 병이 생기기 딱 좋다. 따라서 과식하지 않도록 주의하되, 가을 기운이 가득한 제철 음식을 잘 먹는 것이 지혜다.
시월에 살찌는 생선 중 하나가 바로 전어다. 생선의 고소한 맛은 생선 기름에서 나오는데, 가을 전어의 지방질은 봄철에 비해 세 배가 높다. 그러나 지방이 많다 해도 염려하지 마라. 동물성 포화지방은 피를 탁하게 하고 혈관에 때가 끼도록 만들지만, 생선의 불포화지방산(DHA, EPA)은 오히려 피를 맑게 하고 혈관 벽을 청소해줘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 대하에는 글리신이라는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 있어 새우 특유의 맛과 향을 뽐낸다. ‘총각은 새우를 삼가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새우는 훌륭한 강장 식품이다. 새우에는 필수 아미노산과 단백질이 풍부하고, 칼슘을 비롯한 바다의 미네랄이 듬뿍 담겨 있기 때문이다. 호박은 기르기 쉽고 가뭄이나 병충해에 강해서 농약을 살포할 필요가 거의 없는 무공해식품. ‘동짓날에 호박을 먹으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늙은 호박의 노란색을 만드는 베타카로틴이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피부의 젊음도 유지시겨준다.
<동의보감>에는 연근을 쪄 먹으면 오장을 튼튼하게 해주고, 하초下焦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데 좋다고 했다. ‘하초’란 아랫도리를 뜻한다. 남성에게는 정력을, 여성에게는 생식 능력을 북돋아주는 음식이다. 밤은 소화가 잘되고, 설사를 멎게 해주며, 속을 따뜻하게 해주고, 또 배를 든든하게 해주기 때문에 평소 몸이 쇠약하고, 기운이 없고, 입맛이 없는 사람에게 이롭다. 특히 몸집이 큰 태음인의 경우 기운이 처질 때 섭취하면 더욱 좋다.
석류의 새콤한 맛은 밖으로 나가는 기운을 안으로 끌어당겨 수렴시키기 때문에 갈증이 심하거나 설사가 날 때, 여성들의 대하(속칭 냉) 증상에도 효과적이다. 석류에는 여성호르몬과 유사한 성분이 있어 난소 기능이 쇠퇴한 여성이나 갱년기 여성의 건강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송이에 관해서는 <동의보감>에 “버섯 가운데 으뜸이다”라는 영예로운 표현이 있다. 버섯은 인체의 면역력을 높여줌으로써 항암 효과를 발휘한다. 어디 암에 대한 면역력뿐이랴. 송이를 먹으면 겨울철 감기를 예방하는 데도 좋고, 각종 염증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 이 글을 쓴 이재성 씨는 <라디오 동의보감> 진행자로 유명해진, 그래서 목소리가 더 친숙한 한의사입니다. 한의사로, 방송 진행자로, 작가로 숨가쁘게 살다가 올 5월부터 호주에 머물며 인생 2막을 위해 재충전 중입니다. 그가 ‘자연 안에 사람 있고, 사람 안에 자연 있다’는 한의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10월의 재료에 관해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