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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의 쿠킹 노트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추억의 음식 10가지
딱딱한 옥수수빵 특별한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옥수수 기름 자국이 선명한 누런 포대에 옥수수빵이 껄끄러움과푸석거림을 자랑하며 담겨 있다. 한참을 씹어야만 고소함을 느낄 수 있었던, 교정 앞 해바라기를 닮은 노란색과 구수함의대명사 옥수수빵. 한동안 배급되다 밀가루빵으로 바뀌었지만 그 시절 그 맛이 가끔씩 그리워진다.

백색의 마술 달고나 동네를 몇 바퀴 돌며 정신없이 뛰어놀다 보면 친구들이 하나 둘씩 없어진다. 찾아보면 여지없이 달고나 아저씨 좌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코흘리개 친구들. 하얀 돌 사탕인가, 마술 사탕인가 싶게 어린 꼬마들에게달고나는 백색의 마술이었다. 소다 한 술에 부풀기 시작해 국자를 넘어서서 한껏 부풀어 오르던 달고나.

뽑기의 달콤한 유혹 연탄재 쌓인 쓰레기통이 골목을 장악할 때 저 멀리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골목으로 밀려 들어온다. 공치기하던 친구들, 망 까기 하던 친구들, 구슬놀이하던 친구들…. 설탕을 녹여 만든 거북선이나 이순신 장군의 설탕 뽑기는 우리에게 신기한 판도라 상자와 다름없었다. 전봇대 아래 뽑기 판에서는 핀 침으로 살짝 건드려 부서지지 않게 뽑기를 다루는 기예가 펼쳐진다. 잘못하면 난해한 형상이 무너져 내리고 그 허무함을 뽑기의 달콤함으로 달래곤 했다.

황포 돛대에서의 민물장어구이 날씨가 좋아지면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한강으로 나갔다. 황포 돛대가 동막포구에 닿으면 우린 흥분을 머금고 배에 올랐다. 한강에서 갓 잡아 올린 민물장어. 장어 배를 가르고 참숯 화덕 위에 올리면지글거리며 기름을 내뿜는 장어 위에 어머니는 연신 붉은 양념장을 발라가며 요리를 하곤 했다. 다 구워진 장어를 앞에 놓고우리 형제는 정신없이 덤벼들었고, 황복회에 소주 한잔하는 아버지의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났다.

아버지의 반찬 참게장 사각 대나무 바구니 통을 등에 멘 아저씨의 손에는 짚에 꿴 참게가 버둥거리고 있다. 동네를 돌며“참게 사려! 참게 사려!”그 외침에 아버지는 군침을 삼키신다. 어머니 손에 들려온 참게는 간단한 목욕을 끝내고 항아리에 갇힌다. 먹기도 힘든 쇠고기가 참게에게 배급되고 살이 차오른 참게는 며칠 후 달인 간장에 절여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참게장은 아버지의 반찬이 되고, 참게 장사가 오면 실에 묶인 살아 있는 참게는 내 장난감이 되었다.

외할머니의 사랑이 담긴 찐쌀 외갓집을 다녀오는 어머니 손에는 항상 찐쌀이 들려 있었다. 고향의 정취 때문인지 나에게는 별맛이 없던 찐쌀을 어머니는 그리도 소중히 보관하며 드시곤 하셨다. 찐쌀이란 예전에 농가에서 벼가 익지않아 추수를 하지 못해 식량이 부족할 때 덜 익은 벼를 도정해서 쪄낸 쌀을 말한다. 찐쌀을 대용 식량으로 사용하던 우리 조상의 지혜가 새롭다. 찰벼로 잘 만든 찐쌀은 쫄깃하고 씹을수록 고소하다고. 어머니에게는 친정어머니 마음이 배어 있는 음식이었으리라. 몇 년 전부터 나이 든 내 누이도 찐쌀을 구해 먹기 시작했다.

메주콩 삶아 장 담그던 날 장을 담가 먹는 집이 없어진 지 오래인 듯하다. 지방에나 가야 장 담는 모습을 겨우 볼수 있을까. 예전에는 메주콩을 삶는 날이나 조청을 고는 날이면 형제들이 난리가 났다. 방구들이 달아올라 발 디딜 곳 없어쩔쩔매고 있으면 부엌에서 콩 삶는 달콤한 냄새가 곳곳에 진동하곤 했다. 진이 날 정도로 잘 퍼진 콩을 건네받아 먹어보면생각만큼은 맛이 없었다. 형제가 돌아가며 절구에 콩을 넣고 찧다가 콩이 튀어올라 얼굴에 붙은 모습을 보고 서로 낄낄거리며 웃던 추억…. 어머니의 정성으로 그해 집안 음식 맛이 좌우되던 그때 그 행사가 그립다.

거칠기만 했던 보리개떡 어머니의 몸이 좋지 않아 집안일을 도와주던 맹순이 누나가 고향 집에 다녀올라치면 어머니는 밤 말린 것이며 보리개떡을 질펀하게 담아주곤 하셨다.‘ 개도 못 먹을 놈의 떡’으로도 불리듯 한입 베어 물어보면 까칠까칠 입천장을 찔러대던 그 기분 나쁜 씹는 맛. 그만큼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해 먹을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입 안에서 껄끄럽게 맴돌며 쉽게 삼켜지지도 않던 보리개떡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오늘날 매끄러운 유리 진열장 속에 놓여 있는 노릇노릇한 빵보다 더 진한 감동을 준다.

보릿고개를 넘기던 송기떡 옛 어른들이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어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온갖 지혜를 동원해서먹던 음식 중에 이름도 예쁜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송기떡이다. 음식은 배부르고 먹기 좋은 것이라는 상식을 완전히 비켜간 떡. 소나무 껍질을 베어내면 하얀 속살이 나오는데 이 속껍질을 송기라고 한다. 송기를 낫으로 벗겨 돌절구에 넣고 곱게찧다 보면 부드럽게 으깨지는데, 이 풀 같은 것에 밀가루나 보릿가루를 섞어 쪄낸 것이 송기떡이다. 떫기만 하고 별맛은 없었으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던 그 시절을 살아내는 데는 아주 절박한 음식이었다.

약이 되는 질경이김치 질경이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들풀이다. 마차가 다니는 데에서 자라난다고 해서 차전초라고도 불렀다. 옛 고서에 질경이는 만병통치약으로 불릴 만큼 그 활용 범위가 넓고 약효도 뛰어나다. 어머니는 오줌을잘 못 가리는 조카를 위해 봄에 나는 질경이를 곱게 다듬어 질경이김치를 담그곤 했다. 질경이를 소금에 살짝 절여 고춧가루와 멸치젓을 넣고 갖은 양념으로 치대어 만든 김치. 부드러운 어린 순으로는 튀김을 해서 색다른 맛을 선보여주시기도 했다.
또 모시조개를 넣어 국을 끓여도 시원하고 특별한 맛을 내는 들풀이다.
 

들밥 시골 논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 집안 식구들이머리에 한가득 이고 온 그 옛날 들밥과 같이 푸짐하고 정감 어린 시골 밥상을 맛볼 수 있다. 물을 담아주는 양은 주전자에는 막걸리가 들어 있을 것만 같은 향수가 묻어난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 문의 031-637-6040

남이섬 연가 취사를 할 수 없어 도시락 지참이 필수인 남이섬. 계절마다 볼 것 많은 휴양지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도시락이 있다. 양은 도시락에 김치며 달걀프라이 한 장 올려진 그리운 옛날 도시락을 먹을 수있는 곳. 문의 031-582-2250

박실 신약농장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옛날 방식 그대로 만든 유황오리백숙을 맛볼 수 있다. 2년 반 정도 유황을 먹여 키운 오리를 사용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깊은 맛을느낄 수 있다. 부산시 기장에 위치. 문의 051-722-8039

형제떡집 모시떡을 맛있게 만드는 곳. 모시 잎의 향긋함과 쫀득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모시떡과 다양한 전통 떡을 만든다. 주문 배달도 가능해서 어디서든 편하게 맛볼 수 있다. 전남 영광읍에 위치. 문의 061-960-7580

정정식품 묵잡채용 마른 묵(청포묵, 메밀묵, 호박묵 등)을 판매한다. 제기동 경동시장 내 위치. 문의 02-960-7580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한식 요리 전문가인 이종국 씨. 어머니에게 음식에 대한 기억과 끼를 물려받고 수많은 여행과 한정식집(봉황날다, 02-762-0804) 운영을 통해 다져진 그의 음식 솜씨는 가히 놀라울 정도다. 기품이 넘치는 깊은 맛이랄까. 맛도 맛이지만 음식의 담음새나 색의 조화가 남달라 더욱 눈길이 간다. 앞으로 <행복>에서는 이종국 씨와 함께 음식 문화와 관련된 재미있는 아이디어와 제안을 매달 소개할 예정이다.
 
 
글과 요리 이종국, 어시스트 박재환 진행 문혜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