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카사 코르> 전시장 입구. 모두 35개의 방으로 구성된 1910년에 지은 건물을 이용해 독특한 디자인의 집을 만들었다. 상업 공간으로 쓰였던 건물을 빌려 전시장으로 만든 것이다.
(오른쪽) 손님방. 여러 장의 러그가 겹쳐 있고, 의자를 쌓아 이색적으로 연출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브라질 상파울루에는 두 명의 사교계 부인들이 지인들(건축가, 디자이너)과 함께 허물어져가던 대저택을 개조하여 자선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16개의 방이 있는 오래된 대저택을 브라질 상류층의 호기를 자극할 만큼 고급스럽고 센스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전시하는 것이었다. 그 전시회의 이름이 <카사 코르Casa Cor>로, 지난 20여 년간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에서 1백70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이 행사는 브라질과 스웨덴을 오가며 카펫 사업을 하던 한 사업가의 제안으로 스웨덴에 진출하게 되었다. 유럽 진출의 토대를 만든 셈이다. 지난 9월 1일부터 10월 14일까지 열린 <카사 코르> 스톡홀름 전시장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종전의 브라질 전시장은 상류층의 기호에 맞추어 화려한 장식과 고급스러움의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면, 스톡홀름 전시장은 디자인적으로 좀 더 위트 있게, 스웨덴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재구성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 중 가구나 장식품은 옥션에서 판매되고 그 수익금의 일부가 자선단체에 기부되었다. 올해에는 스웨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60여 명의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참여했다. 앞으로는 해외 디자이너와 건축가의 비중도 늘려 국제적인 행사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전시회는 인테리어 잡지 에디터 출신으로 브라질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로티 안데르Lotti Ander가 설립한 회사 ‘스웨덴 쇼케이스Sweden Showcase’에서 주관한다.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전역의 <카사 코르>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이 회사는 차츰 무대를 넓혀 노르웨이, 핀란드 등의 북유럽을 시작으로 다른 유럽 지역으로까지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왼쪽) 레드룸. 레드 컬러를 모티프로 디자인한 응접실.
(오른쪽) <카사 코르> 전시장 건물 외관. 스톡홀름 패션과 유행의 중심지 비르예르얄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디자인으로 풀어낸 한 편의 연극
스톡홀름 패션과 유행의 중심지 비르예르얄Birger Jarls 지역에 1910년에 지은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 내 약 35개의 방, 이곳이 올해 스톡홀름 <카사 코르>의 무대였다. 각 방마다 가상의 주인공이 있다. 스웨덴 사람들의 특징을 보여줄 수 있는 일곱 명으로 구성된 가상의 가족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10대 아들, 그보다 더 어린 딸과 아들이다. 여기에 전 부인이란 독특한 등장인물이 더해졌다. 그들 각자를 위한 방과 거실, 다이닝룸, 와인룸, 게스트룸, 놀이방 같은 공간은 이 집 구성원들의 성격을 보여준다. 시각화된 디자인으로 인물을 설명하는 격이다. 공용 공간에서는 사회적 유행이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풍자적 표현 등 자유로운 시각으로 각각의 공간 이야기를 담아냈다. 집 안 전체에 감도는 다이내믹한 분위기는 관람객들로 하여금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전시가 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놀이방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벽에 낙서를 하며 잠시 놀다 가고, 배가 고프면 아래층으로 내려가 밥을 먹고, 피곤해지면 조명을 조절할 수 있는 방에서 음악과 더불어 휴식을 취한다. 저녁 무렵이 되면 와인룸에서는 와인 시음회가 열리고, 신선한 화초들로 장식한 지그재그 동선의 3층 복도를 거닐며 은밀하고 복잡 미묘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 공간에는 오묘한 향이 있어 더욱 강한 자극을 받게 된다. 한쪽 구석에 있는 실내 정원에서는 지그시 눈을 감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켤 수도 있다. 지난 4월부터 준비를 시작하며 건축가이자 디자이너로 예술 미디어 분야의 코디네이터로도 활동해온 피터 할렌Peter Halen이 일종의 아트 디렉터 역할을 맡았다. 전시에 참가한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은 첫 회인 만큼 공모와 초청의 두 가지 방식으로 선정했고, 1㎡ 당 1백40만 원 정도의 참가 비용을 냈다. 경력이 없는 젊은 디자이너부터 토마스 산델Thomas Sandel처럼 오늘날 스웨덴을 대표하는 건축가, 디자이너들이 빚어낸 각양각색의 공간이 모여 한 채의 대저택을 이루고, 길을 오가던 스톡홀름 사람들에겐 친근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담 없는 성격의 디자인 전시장이 되었다.
일곱 명의 주인공을 위한 무대, <카사 코르> 디자인 시나리오
스톡홀름 유행의 중심지에 스웨덴을 대표하는 60명의 디자이너가 모였다. 그들은 원래 사무실과 숍이 있었던 상업 건물을 한 채의 집으로 꾸며 <카사 코르>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총 35개의 방을 각각 나누어 맡았다. 그리고 각 방에는 가상의 주인공들이 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10대 아들, 어린 딸과 아들, 전 부인까지. 일곱 명으로 구성된 한 가족을 위한 집. 각 방엔 그들의 개성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디자인으로 설명된다.
(왼쪽) 추억 속에 사는 에고이스트, ‘전 부인의 방’
특이하게도 이 집의 구성원에는 아버지의 전 부인이 있다. 그는 이 집의 일원으로 함께 살고 있는데, 전 부인과 현 부인의 방이 대조적으로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전 부인은 자기 세계가 강하면서도 감성적이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라면, 지금의 안주인은 화려한 것을 좋아하며 허영심이 큰 사람이다. 전 부인의 방은 할아버지 방, 손님방을 거쳐 깊숙한 곳에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다. 높은 천장을 최대한 살린 장식과 배치로 추억에 젖어 사는 듯한 쓸쓸함이 녹아 있으면서도 강한 자아를 드러내는 방이다. 감청색 벽에 바닥은 단을 올렸고 창 앞에 소파를 놓아 편안하게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자립만에 재구성한 것이다.
아내의 허영심을 담은 ‘차고’
최신 모델의 아우디를 들여놓은 안주인의 취향을 강하게 반영하는 차고. 스톡홀름 <카사 코르>에 참여한 디자이너 중 최연소인 한나 헤덴Hanna Heden은 안주인의 순진한 허영심과 나름대로의 열정을 표현하기 위해 반짝이는 공간을 표현했다. 아무리 비싼 차의 차고라 할지라도 그 차의 가치만큼 투자하는 차고란 상상하기 힘들지만, 이 집의 안주인은 가치 있고 사랑받는 자동차라면 그 격에 맞게 대접받해야 한다는 가치관과 애정 그리고 동정을 함께 담아냈다.
(왼쪽) 자연을 동경하는 모던 라이프 ‘남편의 서재’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이 집의 남편은 여행을 매우 좋아하는 모험가적인 성향의 사람이다. 아프리카를 특히나 좋아해서 서재도 아프리카 정글에 친 천막처럼 꾸몄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잔뜩 쌓여 있어 자연을 동경하는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깔끔하고 유머러스한 디자인의 책상, 조명기구, 의자, 장식장 등 대부분의 가구는 골판지로 만들었다. 책상의 경우 안쪽은 골판지이고 그 위에 얇은 나무판을 덮어 가볍다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 친환경 디자인에 관심이 높은 제품 디자이너 마리 루이스 구스타프손Marie-Luise Gustafsson이 이 방의 디자인을 맡았다.
(오른쪽) 뼈대있는 가족을 위한 명품 공간 ‘와인룸’
이 프로젝트 참가자 중 가장 연장자인 올레 렉스Olle Rex가 이 집 식구들을 위해 디자인한 와인룸은 스웨덴의 전통 있는 브랜드 제품들로 꾸며졌다. 중앙에 놓인 6m의 긴 테이블은 가운데에 골이 파여 있고 그 사이에 와인의 빛깔을 비추어 볼 수 있게 카라라산의 흰 대리석이 은은하게 빛난다. 와인을 음미하며 시간을 함께 느끼도록 스웨덴 사람들에게 익숙한 열 개의 골동품 벽시계도 걸어놓았다. 와인을 한 모금 들이켜고 그 시간을 음미하는 것이다. 창에는 독특한 기호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는 와인의 냄새, 향기, 맛을 형상화한 일종의 기호인데 낮에는 이 기호들이 그림자로 드러난다. 방에는 포도나무를 나타내는 녹색을 사용했다. 디자이너들에게 잘 알려진, 매년 컬러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알크로Alcro사의 제품을 이용한 것. 가죽으로 와인잔 받침을 만들어 디테일까지도 중후한 공간을 만들어 와인 애호가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소파, 운동기구, 진입 금지 테이프로 말하는 ‘10대의 방’
(왼쪽) 큰 도시를 동경하며 힙합을 즐기는 10대는 이 집 구성원 중 아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의 방 창가엔 노랑 테이프가 둘러져 있다. ‘진입 금지’로 주인공의 사생활을 방해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방에 놓인 거대한 스펀지 소파는 10대의 반항아적 이미지와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도시에 차고 넘치는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에 의미를 두기도 했다. 한때 화제를 모았던 운동기구는 이 소파와 짝을 이루는 10대의 상징물 중 하나다. 이방이 1960년대의 유행 패턴이 바닥, 천장, 벽면 선반을 하나의 그리의류 질주. 펀지다. 매년 브라질 카사 코르 재단에서 우수한 디자인을 모아 책을 발간하는데, 거기에 이 방이 채택되기도 했다.
(오른쪽)전시 중에는 자유롭게 표현하고 체험하는 ‘놀이방’도 있었다.
위트 있고 감각적인 ‘할아버지 방’
할아버지의 방은 의외로 로맨틱하다. 왠지 꽃 향기가 날 것도 같으며 은은한 향수 냄새, 카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앉았을 할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의자 제작을 즐긴다. 그래서 독특한 가구들을 사용했다. ‘왕자님, 공주님처럼’ 곱게 키운 손자들과 같이 노는 것을 좋아하며, 그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할아버지의 센스와 노력이 엿보이는 공간이다.(사진 1, 2)
가장 스웨덴다운 ‘아침 식사 방’
화사한 것이 이 방의 핵심이다. 하얀 벽과 가구, 화사함을 강조하는 벽면의 식물 패턴, 벽시계에선 새소리가 흘러나오는 듯한 환상에 빠져 들게 만든다. 그야말로 스웨덴풍의 방이라 할 수 있다. 이 방의 포인트는 단연 벽 장식. 역시 <카사 코르>의 메인 스폰서인 알크로사의 패턴을 사용했다. 이케아를 위해 디자인하고 있는 바로 베스란더Baro Wesslander와 피아 암셀Pia Amsell이 만든 공간이다.
- 스웨덴 라이프스타일 전시회 Casa Cor를 가다 디자인은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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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디자이너들이 대저택을 개조해 그들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전시회 <카사 코르>. 브라질 사교계에서 시작된 이 전시회가 올해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도 열렸다.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줄 수 있게 가상의 가족을 설정하고 그들의 취향대로 각 방을 디자인했다. ‘잘 짜인 한 편의 연극’을 위한 무대처럼,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디자인으로 풀어놓은 <카사 코르> 스톡홀름 현장을 지상 공개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