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의 재구성 _선비의 서재에서 배우는 공간 연출법
조선시대 선비 유성룡, 정약용, 허난설헌, 김금원, 허유. 이들이 남긴 글에는 그들의 서재와, 그 서재를 감도는 철학을 짐작케 할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들의 서재에서 발견한 철학과 사색을 21세기의 서재로 시간 이동시켜 오늘날의 서재로 재구성해보았다. 선비가 만난 21세기의 서재 속으로.
벗과 세상과 通하는 서재 김금원
(위) 호연지기를 지닌 여성 선비, 김금원의 생각을 담아 아리따운 서재 겸 거실을 만들었다. 고재 테이블은 차이 김영진 대표 소장품, 맨드라미를 꽂은 주병은 공명당에서 판매, 스카프가 걸린 횟대는 빈에서 판매, 책장 안의 도자 작품은 작가 신동원의 작품, 찻잔 세트와 디저트 플레이트는 에르메스 테이블웨어로 씨에스타에서 판매, 케이크 스탠드는 태홈에서 판매.
“때때로 읊조리고 좇아 시를 주고받는 사람이 넷이다. 한 사람은 운초인데 성천 사람으로 연천 김상서의 소실이다. 재주가 무리들 가운데 매우 뛰어나 시로 크게 알려졌다. 또 한 사람은 죽서인데 송호 서태수의 소실이다. 문장은 한유와 소동파를 사모하고 시 또한 기이하고 고아하다. …서로들 어울려좇아 노니 비단 같은 글 두루마기가 상 위에 가득하고 뛰어난 말과 아름다운 글귀는 선반 위에 가득하다. 때때로 이를낭독하면 낭랑하기가 금쟁반에 옥구슬이 구르는 듯하였다.’ -김금원(1817~?)의 <호동서락기> 중. 김금원은 열네 살의 처녀 몸으로 남장을 하고 금강산, 관동팔경을 유람한 후 <호동서락기>를 남긴 호연지기의 여인이다. 또한 여인들이 규방 밖으로의 외출을 꿈도 못 꿀 시대에 벗을 모아 ‘삼호정시사’라는 시 모임을 이끌었다.
학문과 인생에 대한 뜻을 같이하며 서로의 예술적 재능을 고무하는 지음知音들의 무대, 바로 소통의 공간이 서재였다. 나의 건축이면서 타인의 공간이며 공용 공간’인 것이다. 바깥 세계와의 정보 교류, 사람의 왕래가 쉽도록 서재는 대부분 바깥 사랑채에 두었다. 요즘의 ‘거실을 서재로’ 캠페인은 ‘소통’의 공간으로서의 서재를 현대화시킨 것이라 할 만하다. 집 안에서 사람이 자주 모이는 공간, 거실에 큰 테이블을 두고 선비처럼 벗을 모아 시를 읊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도 이야기하며, 독서와 오락도 즐길 수 있다. 빌트인 된 거실 책장에 한지로 만든 미닫이문을 달고 그 안에 책을 보관하면 습도 조절, 먼지 방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바람이 통하는 통풍, 온기와 냉기가 통하는 통기의 효과도 누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소통’을 위한 방법이다.
(위) 선비에겐 ‘유어예遊於藝(예에서 노니는 것)’ 할 줄 아는 여백이 있었다. 승경도는 3백 개의 칸에 관직 이름이 적힌 종이 위에서 하는 놀이로, 영의정에 먼저 오르는 사람이 이기게 된다. 골패는 6짝씩 골패를 나누어 가지면서 승자를 가려내는 놀이인데, 트럼프의 방식과 닮았다. 대패처럼 생긴 나무와 종이가 승경도로, 천고당에서 판매, 주사위처럼 생긴 골패는 장미방에서 판매, 접시는 에르메스 테이블웨어로 씨에스타에서 판매, 우엉 ·연근 ·귤로 만든 정과는 동병상련 제품. 장소 협조 차이 김영진(02-333-6692)
책으로 장식하는 책의 집 허유
(위) 책과 문방사우, 도자기를 사방탁자에 넣어 책거리처럼 만들었다. 사방탁자는 왼쪽부터 갤러리 호, 모던예나르, 화안가구, 갤러리 호, 모던예나르 제품. 첫 번째 사방탁자의 위에서 두 번째 칸에 놓인 다완, 그 아래 칸의 가죽 정리함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회색 박스는 북바인더스 디자인 제품. 두 번째 사방탁자의 제일 위칸에 놓인 필통은 세계미술, 붓은 서울시무형문화재 작품판매전시장, 청화백자는 민예사랑, 고서는 양주상회에서 판매. 세 번째 사방탁자의 제일 위칸에 놓인 노트는 세컨호텔 제품, 고서는 대부앤틱에서 판매, 스테이플러와 테이프 디스펜서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메모지 홀더는 북바인더스 디자인 제품. 네 번째 사방탁자에 놓인 안경집은 세계미술, 청화백자는 공명당에서 판매. 다섯 번째 사방탁자의 화병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책이 프린트된 접시행남자기 제품.
“서책은 내 목숨과도 같다. 책과 두루마리가 소략하지만 또한 고심 속에서 나온 것이다. 대개 거두어 보관함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 특히 돌아가신 아버님의 필적은 더더욱 공경하고 중히 여겨야 할 것이다. 그 책 끝의 자잘한 기록을 살펴 하나하나 싸고, 다른 이에게 빌려주면 안 된다. 책자와 글씨는 늘 잃어버리기 쉬우니 십분 조심해서 상자에서 꺼내지를 말아야 한다. 한번 나왔다가는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소치 허유(1809~1892)의 유언 중. 허유는 19세기 문인화의 대가로 손자인 남농 허건, 방계 후손인 의재 허백련으로 이어지는 남종화의 뿌리가 된 인물이다. 그는 서책의 귀중함을 자손에게 유언으로까지 남기는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책을 귀중히 여긴 선비들은 책을 차곡차곡 눕혀 사방탁자나 책장에 쌓아두었다. 옛 책은 가볍고 부드러운 한지로 만들어 세워두면 우그러들기 때문이다. 이 책 수납법은 오늘에도 유용하다. 실제로 소문난 장서가들은 예술 화집이나 귀한 문서는 모두 눕혀 보관한다. 또 가로로 차곡차곡 쌓은 책은 세로로 세운 책보다 ‘장식 효과’도 뛰어나다. 책을 몇 권만 쌓고 그 위에 화병이나 탁상시계 등의 소품을 올려놓으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훌륭한 데커레이션이 된다. 사방이 막힘 없이 탁 트여 이름 붙여진 가구 ‘사방탁자’는 책을 차곡차곡 쌓아두기에 안성맞춤인 가구다. 좁고 네모진 방구석을 장식하기에도 이만한 가구가 없다. 본래 천장이 낮은 선비의 온돌방에 어울리도록 그 높이가 방 주인의 키를 넘지 않았고, 한 칸의 크기도 책 한 권이 가로로 누울 정도로 작았는데, 이는 넓지 않은 아파트의 서재 공간에서 빛을 발하기에 충분하다. 또 사방탁자는 가느다란 기둥과 가로지른 층널로 이루어져 있는데 간결함과 비례미가 날아갈 듯 아름답다. 칸이 모두 트여 있거나 한 칸 정도 문이 달린 사방탁자도 있다.
자연의 덕성을 담는 서재 유성룡
(위) 낮은 창을 내고 해금 하나 놓으니 자연의 풍류가 집 안으로 스며든다. 사방탁자는 화안가구에서 판매, 사방탁자 위에 올려진 큰 붓통과 대나무 초는 태홈, 해금은 서울시무형문화재 작품전시판매장, 서안은 김영석 전통한복, 서안 위 연필통과 가죽 노트는 티오도, 책장은 모던예나르에서 판매. 스피커는 뱅앤올룹슨의 베오랩 4 제품, LP 레코드 판은 건축가 조병수 소장품, 방석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앞으로는 호수의 풍광을 안고, 뒤로는 언덕을 짊어지고, 오른쪽으로는 붉은 벼랑이 솟아 있고, 왼쪽으로는 모래가 띠를 두르고 있다. 벼슬살이의 부귀영화는 귓전을 스치는 새소리가 되었을 뿐이고, 이곳의 아름다운 언덕과 골짜기에서 만끽하는 즐거움은 깊어만 간다. …산골짜기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어도 보고, 그림과 서책은 찾아서 보고 읽는 즐거움으로 만족한다. 아아! 이 또한 자신의 뜻에 맞는 일이니, 세상 바깥의 무엇을 그리워하겠는가!”-서애 유성룡(1542~1607)의 <서애집> 중. 유성룡은 조선 성리학의 대가로, ‘조선의 5대 명재상’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은 문신이다. 그는 노년에 안동의 부용대 기슭에 서재를 짓고, 서재를 둘러싼 물빛이 맑아 마치 옥과 같다 하여 ‘옥연서당’이라 이름 붙였다. 때 묻지 않은 물과 산을 보면서 태초의 마음을 회복하려 한 이들이 선비다. 먼지가 날리는 도성 안에서 벼슬을 하면서도 집으로 돌아와서는 뜰에 인공의 산을 만들고 꽃나무를 심었다. 또한 자연의 풍경을 집 안으로까지 끌어들이는 차경借景 기법(대청의 위치를 분합문을 열면 산맥이 눈에 담기는 위치에 잡는다거나 처마의 틀, 창문의 틀 안에 자연을 빌려 와 그림을 채워 넣는 듯한 효과를 노린 것)을 썼다. 또 산수를 그린 그림을 방 안에 두어 상상으로나마 자연 속에 살고자 했다. 오늘의 서재에서도 ‘차경’ 기법을 끌어들여 마당이 바라보이는 위치에 좁고 긴 창을 내거나 분합문(들쇠에 매달아 들어 올릴 수 있는 문)을 만들면 자연의 경치를 집 안으로 들여올 수 있다. 자연을 끌어들이는 대신 모양새가 요란하지 않은 가구를 두고 방과 벽에는 이것저것 늘어놓지 않는다. 특히 책장은 현대의 서재에도 요긴한데, 이층이나 삼층으로 된 작은 장롱 같은 모양의 가구가 책장이다. 책을 얹고 글을 읽거나 손님과 마주 앉아 담소하기에 좋은 가구가 서안이다. 서안은 크기가 작아 혼자서 들어 옮기기에 무리가 없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서안 위의 책을 읽는 자세가 되면 등뼈가 곧추세워지니 기능성도 우수한 가구라 할 만하다.
(위) 투명 아크릴 위에 조약돌을 깔고 난초잎을 띄워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었다.
창작을 낳는 서재 허난설헌
(위) 고독을 ‘비단’이라는 고운 물건에 담았다는 허난설헌을 본따 고운 색, 고운 비단으로 서재를 장식했다. 사방탁자는 화안가구에서 판매, 흰색 테이블은 알레시 제품, 혼수함은 차이 김영진 제품, 다이어리는 세컨호텔 제품, 말 인형, 메모지 받침, 패브릭으로 감싼 박스, 노트, 색연필은 북바인더스 디자인 제품, 고서는 대부앤틱, 붓과 벼루는 서울시무형문화재 작품판매전시장에서 판매, 데스크 보드는 티오도 제품, 뜨개실과 뜨개바늘은 스몰 프렌즈 제품.
“신선 나라에서 예전에 하사받은 문방사우/ 경치를 즐기는 가을 규방에 보낸다/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달빛도 그리고/ 등불 켜놓고 벌레나 물고기도 그리겠지.”-허균의 형이며 허난설헌의 오라비인 허봉이 허난설헌에게 보낸 편지 중. “달빛 비친 누각, 가을이 가도록 빈 옥 병풍/ 서리 내린 갈대밭에 내려앉는 저녁 기러기/ 거문고 한 곡조 타보아도 사람은 뵈지 않고/ 연꽃만 이울어 간다, 들판의 연못에”- 난설헌 허초희(1563~1589)의 <사시사> 중. 중국과 일본까지 자신의 시를 알렸으나, 난봉꾼 남편에게 버림받고 두 아이를 먼저 앞세우는 비극을 맛본 여인이 허난설헌이다. 초당에서 책과 먹으로 고뇌를 달래며 생에 저항했다. 그의 시 중에는 유난히 ‘비단’이 많이 등장하고 관능이 배어나는 작품도 여러 편 남겼다. 고독은 그에게 동경해마지 않는 생활을 글로 옮기고자 하는 창작욕을 부추겼던 것이다. “뜻이 맞아 두 허리를 합하고/ 다정스레 두 다리를 쳐들었소/ 흔드는 것은 내가 할 테니/ 깊고 얕은 건 당신 맘대로”-허난설헌의 <가위> 중. 서재는 선비가 글을 쓰며 붓글씨를 휘호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 창작 공간이었다. 홀로 방 안에 앉아 자신과의 대화를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고독은 창작욕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는데 깊은 산중에 집을 짓고 살거나, 오지로 유배된 선비들이 글과 그림을 유독 많이 남긴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대여섯 평짜리 작은 서재를 두고 살았던 대부분의 선비들처럼 창작에 몰두하는 서재를 위해서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선비의 서재처럼 남쪽을 향하게 한 작은 공간이다. 선비의 서재에서는 이국의 사물들(상아로 만든 촛대, 안경 등)이 창작의 기운을 북돋아줬다면 오늘의 서재에는 창작의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색감이 고운 소품들을 배치했다. 창작하는 선비에게 기쁨을 주는 문방의 네 벗(지필묵과 벼루)과 연상(벼루를 넣어 서안 옆에 놓는 수납함. 쇠가 벼루의 기운을 빼앗아 벼루가 마른다고 생각해 연상에는 쇠 장식을 하지 않았다) 등을 방 안에 두었다. 겨울에도 변치 않는 창밖의 벗, 매화가 그들 곁에 자리한다.
(위) 선비는 만물이 싹트기도 전에 꽃망울을 터뜨리는 매화를 청백함의 표상으로 보았다. 이 매화 문양을 비단에 프린트해 먼지 많은 책장의 가리개로 만들었다. 매화 문양은 그래픽 디자이너 안상수가 도안화한 것이다. 사방탁자는 화안가구, 연상은 모던예나르, 연적은 세계미술에서 판매. 장소 협조 차이 김영진(02-333-6692)
독서삼매경의 서재 정약용
(위) 병풍은 빎에서 판매, 평상과 향로는 모던예나르에서 판매, 보료는 차이 김영진 제품, 무릎 담요는 빈에서 판매, 트레이는 태홈에서 판매, 머그잔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방 안에는 책꽂이 두 개를 놓고 책 천삼사백 권을 꽂아놓는다. <주역집해> <모시소>와 고서 명화, 의약에 대한 설명서, 그리고 초목과 새의 계보와 거문고 악보 등에 이르기까지 빠진 것 없이 갖춘다. 책상 위에는 <논어> 한 권을 펼쳐놓고 곁에는 질 좋은 화리목으로 만든 탁자를 두는데, 위에는 도연명, 두보의 시 등을 올려놓는다. 책상 아래에는 오동으로 만든 향로를 하나 놓아두고 아침저녁으로 옥유향 한 판씩을 피운다”-다산 정약용(1762~1836)의 <은자의 거처> 중. 유배지에서도 수많은 서적을 집필한 정약용의 서재 풍경이다. 그는 책이 귀한 시절에 책 천삼사백 권으로 방을 두르고 독서에 빠져들었다. 정약용 외에도 선비들의 탐독 수준은 상상 불허의 수준인데, <논어>는 1만 1천7백50자, <춘추좌전>은 19만 6천8백45자라고 육경의 글자 수를 헤아린 선비도 있고, <백이전>을 1억 1만 3천 번, <노자전>을 2만 번 읽는 식으로 36편의 책을 모두 수만 번씩 읽은 김득신이라는 선비도 있다. 이는 삼매경을 넘어 광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선비의 서재는 접객 공간과 서재를 겸한 ‘사랑방’, 서책을 보관하거나 독서를 위한 ‘서고’, 침실 기능을 하는 ‘침방’ 등으로 그 형태가 다양했다. 보통의 서재는 ‘사랑방’ 형태가 많았는데, 특별히 독서에 집중하는 공간으로는 ‘서고’가 사랑받았다. 대가에서는 서고를 별채로 지어 책만을 보관하거나 온돌방을 들여 서책을 보며 은밀히 손님을 맞기도 했다. 서고의 벽면은 백지로, 천장은 푸른 배경의 담담한 색지로 도배하고 방바닥은 기름 먹인 장판을 사용해 청결을 유지했다. 서고 안의 선비처럼 오로지 독서에 몰두하기 위해 책장으로 세 벽을 두르고, 문 쪽으로 병풍을 둘러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원래 여름나기 야외용 가구인 평상을 서고에 들이면 책 읽다 지친 독서가가 잠시 휴식할 수 있다.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병풍을 둘러 서고 안에 또 하나의 서재 공간을 구획했는데, 세 개의 조명 사이로 꽃과 동물 그림자가 은은하게 비친다.
(위) 밤 늦게까지 글을 읽을 때 가장 필요한 물건이 등기구다. 기름을 담아서 불을 켜는 등잔, 초를 꽂아서 쓰는 촛대, 들고 다니는 초롱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호롱과 호롱대는 공명당에서 판매, 초롱은 민예사랑에서 판매, 모던한 유리 촛대는 태홈에서 판매. 장소 협조 한스타일 북카페(02-517-47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