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강남구 논현동 주택가에 있는 작은 맨션에 이렇게 귀여운 집이 숨어있다.
(오른쪽) 좌식 스타일로 꾸민 거실 탁자와 소파에서는 일본의 여염잡이 연상된다. 바닥을 비롯하여 탁자, 소파, 책장 모두 나무 소재로 담백하게 꾸몄다. 열아홉 평 맨션은 담백한 나무 질감 하나로 한껏 멋을 낸 고즈넉하고 고운 집이다.
1 부엌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수납공간을 활용했다. 상부 장은 가재도구를 보관하는 공간으로, 나무 선반은 평소 자주 사용하는 그릇들을 수납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2 드레스룸 모퉁이에 마련한 작은 서재공간.
3 행어 위로 남는 공간에도 역시 선반을 만들어 부피가 큰 여행 가방을 수납했다.
4 침실 안에 TV 장을 매입하면서 거실 벽면에 생긴 여유 공간도 수납공간으로 쓴다. 벽걸이형 전화기는 앤티크 숍에서 구입한 것.
5 싱크대와 벽 사이에 마련한 세탁기 수납장.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허름한 거북 맨션. 모든 가구 수를 합해봐야 스무 집이 전부다. 25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낡은 맨션에 지난 4월 정주연·이상용 씨 부부가 신혼살림을 차렸다. 아내는 기업이나 상품의 아이덴티티를 이미지화하는 CIBI 디자이너로, 남편은 음향을 컨설팅하는 음향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이들 부부에게조차 이 허름한 맨션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베란다 두 개와 방 세 개가 꾸역꾸역 들어찬 답답한 광경에 가슴이 턱 막혀왔다. 그러다가 이내 이들의 투철한 직업 정신에 발동이 걸렸다. 바로 이 알 수 없는 맨션에 정체성을 찾아주자는 것. 이 무모한 도전에 동참해 열아홉 평 공간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준 사람은 바로 인테리어 디자이너 신경옥 씨(문의 01-543-4319)다. 신사동의 자그마한 와인 바 ‘19번지’를 비롯, 그의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이미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그는 이 집의 가장 큰 문제였던 답답한 구조를 해결하기 위해 대대적인 인테리어 공사를 감행했다. 그리고 작은 모서리 하나까지 모두 활용하기 위해 온갖 수납 아이디어를 총동원하여 ‘작아서 더 매력적인 집’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디자인 계획은 좁은 공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창고인지 방인지 정체를 알 수 없던 작은 방 하나, 부엌과 거실 앞쪽에 있던 작은 베란다를 모두 터서 거실을 만들었어요. 배선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천장도 뜯어냈죠. 덕분에 거실이 한층 넓어졌고, 클라이언트의 유일한 요구 사항이었던 ‘거대한 책장’도 짜 넣을 수 있었답니다. 좁은 집일수록 통일감을 주어야 공간이 더욱 넓어 보이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 집에는 전체적으로 아늑한 분위기를 내주는 나무 소재를 활용했습니다. 바닥재는 거실과 부엌은 물론 각 방까지 한 가지 톤의 원목 마루를 깔았죠. 나무의 담백한 멋을 살리기 위해 벽과 천장은 모두 화이트 톤을 사용했습니다. 가구 역시 원목이 주를 이룹니다. 소파, 옷장, 책상,싱크대…. 잘 살펴보면 이 집에는 기성품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자투리 공간을 남김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가구를 모두 맞춤형으로 제작했죠.”
6 거실 쪽에서 바라본 부엌 풍경. 천장을 뜯어낸 후 드러난 전기 배선을 가리기 위해 천장을 가로지르는 독특한 형태의 조명등을 만들어주었다. 이 집에 사용된 목재들은 의정부에 있는 송이목재(031-541-2368)에서 구입했다. 부엌 오른쪽에는 드레스룸이, 왼쪽에는 화장실이 있다.
7 침실에서 바라본 거실. 침실 문을 미닫이 형태로 제작해 거실 공간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집으로 들어가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거실은 따스한 나무 질감의 멋이 살아있는 공간이다. 거실부터 부엌으로 이어지는 바닥재, 창틀, 문은 물론 가구에도 모두 나무 소재를 사용했다. 좌식 스타일로 단정하게 꾸민 탁자와 소파는 일본식 다다미 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베란다를 확장하면서 생긴 공간에 딱 들어맞게 소파를 만들어 배치하고, 그 옆으로 천장까지 높은 책장을 짜 넣었다. 서재와 거실을 겸하는 공간으로 클라이언트가 가장 흡족해하는 곳. 탁자와 두 개의 방석, 책장을 제외하고는 TV나 장식장 하나 없이 단출하게 꾸몄다.
거실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부엌 역시 내추럴한 나무의 질감이 돋보일 수 있도록 화이트 톤으로 통일감을 주었다. 조리대 역시 스테인리스스틸 대신 흰색 타일을 깔아 따뜻한 느낌을 부여했다. 베란다 확장으로 만들어진 공간의 천장 쪽으로 싱크대를 짜 넣고 베란다의 창문을 활용해 햇살이 그대로 통과하는 쾌적한 부엌을 만들었다. 빈티지 스타일의 주방용품 모으기가 취미인 정주영 씨를 위해 곳곳에 나무 선반을 만들었고, 커피를 좋아하는 이상용 씨를 위해 바 형태의 커피 테이블을 만들었다. 햇빛 잘 드는 창문 옆으로 파릇파릇하게 자라는 식물 화분, 넉넉한 크기의 식탁, 그윽한 커피 향기….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지는 공간이다.
거실, 주방이 나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담백한 멋을 담아냈다면 침실과 드레스룸은 실용성과 수납에 집중한 공간이다. 주로 잠들기 전에 TV를 시청하는 것을 감안해 침대 전면에는 TV장을 겸한 매입형 선반을 짜 넣었고, 침대 역시 벽 공간에 딱 들어맞게 제작했다. 침실은 이 집에서 가장 멋을 부린 공간으로 앤티크 숍에서 구입한(유일하게 구입한 가구다) 로맨틱한 느낌의 화장대가 놓여 있다. 아늑한 느낌이 들도록 커튼을 달았고, 커튼 앞쪽으로 기다란 나무 탁자를 놓아 아기자기한 소품을 진열했다. 또 하나의 방은 벽에 옷장과 행어를 설치해 드레스룸을 만들었다. 옷장과 행어 사이에 생긴 공간에는 작은 책상을 놓고 아늑한 작업 공간으로 꾸몄다. 양옆으로 생간 자투리 공간에도 역시 수납장을 짜 넣어 실용성을 더했다. 정주연·이상용 씨 부부의 무모한 도전은 성공한 듯 보인다. 그 흔하디흔한 패턴 벽지나 상들리에 하나 없이 부부의 살림살이에 딱 맞는, 멋진 공간을 완성했으니 . 여전히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차돌처럼 알차고, 따뜻한 나무 질감 하나로도 멋스러운, 작아서 더 아름다운 집. 드디어 열아홉 평짜리 공간이 제 색을 찾았다.
1 영화 보기가 취미인 정주연·이상용 씨 부부는 침실을 홈시어터 룸으로 꾸몄다.
2, 3, 4 공간마다 각기 다른 조명을 달아준 것이 재미있다. 거실, 부엌, 드레스룸에 단 조명등은 알전구 위에 범랑으로 갓을 씌워 만든 것.
5, 6 전파상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미니 전구 여러 개를 일자로 달아 만든 거실등. 모든 조명은 신경옥 씨가 직접 제작했다. 을지로 메가룩스(02-2265-6911)에서 이 집에 사용된 각종 전구를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