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닮아 더욱 섹시한 공간에 패션 디자이너 박윤수 씨가 앉아 있다.
‘섹시한 여자란?’ 이 질문만 수천 번은 받아본 패션 디자이너 박윤수 씨. 여성의 패션을 디자인하고 슈퍼모델을 심사하며 항상 여성들의 멋과 아름다움을 논하는 그에게 그 어떤 여자보다도 섹시하고 매혹적인 존재가 생겼다. 자꾸 사람을 끌어당기는 그것은 청담동 박윤수 매장 건물 4층에 위치한 넓은 방. 세련되고 과감한 박윤수의 패션처럼 강한 힘이 느껴지는 이곳은 그의 작업실이고, 사무실이고, 거실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이승은 씨가 디자인한, 박윤수의 섹시함과 또 그가 말하는 여성의 섹시함을 닮은 공간이다.
‘방’에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 블랙이 콘셉트다. 세련미, 섹시함, 강한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컬러 아닌가. 여기에 최신 유행의 하이글로시 소재와 어른어른 비쳐 보이는 블랙 커튼을 달아놓았다. 그것을 나무 바닥과 같은 자연적인 모티프와 결합시켜 침울하고 어두운 공간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는 옷을 디자인할 때도 위아래를 똑같이 입곤 하는 중년 여성들에게 과감히 위아래를 대비시키며 자신감 있는 스타일을 연출하도록 제안한다. 비단 색감과 패턴의 문제가 아니다. 과감한 절개선과 심플한 라인을 대비시키는 것 같은 아이디어도 있다. 그의 방에는 또 다른 취향을 보여주는 소품 컬렉션도 있다. 특히 아프리카 모티프가 강하다. 얼룩말 패턴과 질감에 나무 질감을 교차시키고, 마사이족이 만든 오브제를 열쇠고리로 사용하는 센스까지. 사실 그가 블랙만큼이나 섹시하다고 느끼는 것이 이런 자연적인 맛에 있는 것이 아닐지 싶다. 그는 섹시함을 자신의 두 가지 경험에 빗대어 말한다. 인터뷰가 있기 전날 한 파티를 갔는데, 바닥이 금 색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 위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서 있다면? 물론 어두운 공간이었기에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감춰진 듯 살짝 보이는 그 모습에 섹시함을 느꼈다. 직접적이고 관능적인 섹시한 맛이다. “이런 것도 디자인이지 않겠는가”라는 그의 한마디. 파티의 열기를 한층 돋워줄 공간을 만든 디자이너의 위트였던 것이다. 물론 그 위에서 즐기고 있는 여성들은 정작 자신의 비춰진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런가 하면 박윤수 씨를 넋을 잃게 만들 정도로 섹시한 여성이 있었다. 갤러리아백화점 앞에 서 있던 슬림한 블랙 팬츠에 흰색 셔츠를 입은 늘씬한 여성이었다. 셔츠 단추를 두 개 풀고. 그는 생각했다. 화려하고, 벗고, 드러내는 것보다 더욱 섹시한 것이 바로 저런 모습이라고.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화이트 셔츠를 입었는데 단추 두 개 풀고 여기에 목걸이 하나로 포인트만 주어도 웬만한 남성들은 넋을 잃을지 모른다고. 그런 섹시함은 멋과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을 담고 있다. 도회적이며 강한, 그러면서도 섬세함을 연상시키게 하는, 말 그대로 여성성의 ‘내재된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방을 계획할 때도 박윤수 씨는 느꼈다. “남자와 함께 일하는 것이 직선이라면 여자와 일한다는 것은 곡선이죠. 여자들은 섬세한 것은 당연하거니와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자기 개성을 유지하려는 강한 기질도 있어요. 공간을 표현하는 소재나 대화를 풀어가는 방법에서도 훨씬 유연하고 부드럽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1 블랙을 콘셉트로 디자인한 박윤수 씨의 방.
2, 3 아프리카에서 느낀 자연의 감동은 그에게 또 하나의 섹시함이었다. 그곳에서 가져온 소품들.
남자, 기본적으로 여성성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그에게 남성성에 대한 매력은 상대적으로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박윤수 씨는 또 다른 섹시함을 발견했다. 바로 남성지 <맨즈헬스>에서 개최한 ‘쿨가이 콘테스트’를 구경 가서. “슈퍼모델 심사도 해보고 하지만, 세상에, 남성의 몸이 그렇게 예쁘고 매력적일 수가 없었어요. 사실 슈퍼모델에 나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만들어진 미인이죠. 자연산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쿨가이는 다르더군요. 왜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게 되는지 이해할 것도 같더군요. 그걸 보고 있는데, 내 안에서 그런 성분이 막 생겨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이서진도 손호영도 어쩜 그렇게 몸이 예쁜지. 게다가 이번에 쿨가이로 뽑힌 15번 참가자는 두루두루 갖춘 젊은이란 느낌이었어요. 보이는 것 외에도. 내면적으로도. 단번에 저 사람이다 싶었죠. 아니나 다를까, 됐잖아요.” 그는 지금 고민이다. 어떻게 하면 손호영의 배처럼 예쁜 ‘왕王’자를 만들 수 있을지.
4 박윤수 2007년 S/S 컬렉션 대표작.
5 풍만한 여성의 실루엣처럼 생긴 테이블 다리가 섹시한 요소로 부각된다.
남자든, 여자든, 공간이든, 섹시하다는 것은 결국 가장 자연스러운 기운 속에서 내재된 힘과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공간이 섹시하기 위해선 그 안에 있는 사람, “나 박윤수라는 사람 자체가 섹시해야 해요. 비록 제 몸에 ‘왕’자는 없지만, 몸이 아니라 생각과 가치관으로, 제가 갖고 있는 그런 성분으로 섹시함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방을 찾아온 사람들이 계속 또 찾아오고 싶어 하고, 이 방을 섹시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곳을 디자인하며 섹시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죠.” 섹시함이란 스스로 그러해야 하는 것. 쿨가이처럼 자연스러운 상태 그대로, 거기에 스스로의 노력이 더해져 개발된 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섹시하다고 말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섹시함이 완성된다. 여기에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재해석할 줄 아는 센스까지 갖추었다면 금상첨화. 이것이 패션 디자이너 박윤수 씨가 몇십 년을 고민하고 디자인하며 얻어낸 섹시함에 대한 결론이다.
‘박윤수’의 매력을 공간화한 디자이너 이승은 박윤수 씨의 사무실과 매장을 레노베이션한 이승은 씨는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실 ‘SEL’(02-3446-4206)의 대표로 주로 오피스 공간을 디자인한다. 그럼으로써 돈이 잘 벌리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의 지론은 공간이 바뀌면 일도 잘된다는 것. 디자인으로 인해 사람의 표정과 생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 플러스 지향적 마인드에 매력을 느낀 박윤수 씨는 그에게 공간 디자인을 의뢰하게 되었다. 좋은 것을 식별해내는 세련된 안목이 박윤수 씨의 감성과 잘 맞았다고. 공간의 구조적인 부분보다는 세부적인 요소로 디자이너 박윤수 씨의 감성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그리하여 낮과 밤의 느낌이 다른 카멜레온 같은 공간을 완성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