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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가 지은 집 숲, 도시, 이웃을 잇다
좋은 건축가와 클라이언트가 만난 시너지가 이런 것이 아닐까. 젊은 클라이언트 유동재 씨와 국내 건축계의 거장 김인철 대표가 함께 완성한 ‘어느비움’은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열린 터전이다.

아르키움의 김인철 대표가 설계한 어느비움은 205.6m2의 대지에 지은 3층 근린생활시설이다. 유동재 씨는 퇴근 후 이곳 북카페에 반려견과 함께 머무는데, 이곳은 김 대표가 인테리어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건물을 짓는다는 건 의뢰인과 건축가가 하나의 목표 아래 협업하는 일이다. 그 때문에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건축가만큼 의뢰인의 역할도 중요한데, 아르키움 김인철 대표와 의뢰인 유동재 씨는 잘 맞는 한 팀이었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유동재 씨는 3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집 짓기를 결심하며 처음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실 집을 짓겠다는 마음은 현실적인 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직장 때문에 울산에서 분당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천정부지로 솟은 아파트 가격에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발상의 전환을 해봤죠. ‘저 30년 된 콘크리트 덩어리가 이렇게 비싼데, 그 돈이면 차라리 땅을 사서 내 집을 짓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정작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제 모습을 발견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건축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맞은편 언덕에서 바라본 어느비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일 만큼 널찍한 창을 냈다.
그때 아르키움 김인철 대표를 알게 되었다. 꾸밈없이 본질에 집중하는 김인철 대표의 철학에 매료된 그는 ‘이런 분이 내 집을 지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긴 설계 의뢰서와 함께 아르키움의 문을 두드렸다. “많은 의뢰인이 건축가를 건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자신의 의지를 실현해줄 기술자로만 생각해요. 의사에게 병의 치료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과는 다르게 말이죠. 그런데 유동재 씨는 제가 추구하는 건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그 철학이 실현된 집을 지어달라며 설계 전반을 일임해주었어요. 50년 넘게 건축 일을 해왔지만 이런 의뢰인은 유동재 씨와 김동길 박사(김옥길 기념관을 의뢰했다) 단 두 명뿐이었답니다.” 

3층 자택의 거실. 높은 층고와 더욱 넓고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게 시원한 창을 냈으며, 가구도 담백한 제품만을 두었다.
3층 거실과 연결된 테라스. 앞뒤로 열려 있어 자연과 도시를 잇는다.
좋은 의뢰인답게 유동재 씨의 요구 조건은 명확했다. 아홉 페이지에 달하는 설계 의뢰서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김인철 대표가 지향하듯 자연과 연결된 집이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3층 규모의 다가구주택 또는 근린생활시설이 전부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유동재 씨와 김인철 대표의 어느비움은 상업 시설, 임대 세대, 자택으로 구성한 3층 규모의 근린생활시설로 완성되었다.

어느비움에서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른 풍경을 바라볼 수 있으며, 현관문을 닫고 있어도 각 세대의 거주자와 지나가는 이웃과도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게 창과 테라스를 활용했다.

도시와 자연 사이의 열린 공간
건축은 땅에서 시작하는 순수예술이라 말하는 김인철 대표는 사이트를 방문해 머릿속으로 이 땅에 어울리는 건물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사이트에서 가장 인상 깊던 부분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있는 입지 조건이었다. 설명을 더하자면 유동재 씨가 구입한 대지는 신해철거리가 있는 분당 수내동의 끄트머리로 다가구주택이 모여 있는 산자락에서 아파트를 등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 대표는 자연을 끌어들일 방법을 찾았다. “흔히 풍경을 빌려 오는 차경이라 말하는데, 우리나라 건축에서는 풍경으로 들어가는 입경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요. 예로부터 지역마다 다른 특색을 이루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기에 풍경과 하나될 수 있게 집 안에 그 모습을 들이는 거죠. 이곳에도 그런 입경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도시와 자연을 단절하는 게 아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요.” 그가 바란 교류는 자연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도 적용되었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남남이 되어버리는 집이 아닌 서로 오가며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이웃과 화목한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공간을 바란 것. 이를 위해서는 김 대표가 항상 강조하는 ‘열린 공간’이 필요했다. 어느비움에서 활용한 것은 계단. 벽 안에 계단을 가두는 대신 지붕만 얹고 앞뒤로 트인 공간을 의도한 것이다. 앞뒤 벽이 있을 자리에는 되레 테라스를 만들고 각 세대의 벽면에도 창을 크게 내어 한 층 한 층 오를 때마다 다른 풍경과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인 옥상 런웨이.
공사 중 발견한 바위를 그대로 살려 어느비움만의 조경을 완성했다.
실내에서는 창이 같은 역할을 해준다. 밖을 바라보았을 때 아름다우면서도 서로 다른 풍경을 보여줄 위치면 어김없이 창을 내었기에 2층·3층 거실에는 가로·코너 등 서로 다른 형태의 창이 시원하게 뚫려 있고, 내부는 큰 장식 없이 비워두었다. 특히 ‘계절과 날씨의 변화 그리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집’이라는 요청 사항은 3층 야외 공간에서 여실히 구현됐다. 특정되지 않은 가구를 위해 침실 두 개와 거실, 주방 등으로 구성한 2층과 달리 그의 집은 거실 및 주방과 다락의 침실, 테라스라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구성인데, 각 영역마다 야외와 연결되는 테라스를 한 개씩 마련한 것. 그중 하이라이트는 옥상의 ‘런웨이’다. “동재 씨가 갑자기 현장에서 지붕 맨 꼭대기에 아주 작게라도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요. 혼자 명상을 하겠다면서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이런 요청을 했을까, 궁금한 마음에 저도 곧장 올라가봤어요. 이 땅의 핵심인 자연과 도시의 연결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죠. 그래서 작은 공간이 아닌 기다란 런웨이를 만들어주겠다 말했어요.” 상업 공간인 1층은 아예 통창을 활용했다. 산과 마주 보는 쪽은 물론, 반 층 아래, 계단 밑 뜰과 연결되는 벽에도 너른 창을 냈다. 계단 밑 뜰에는 자연을 존중하는 건축가와 집주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얽혀 있다. 당초 어느비움은 지하 1층까지 계획한 건물이었는데, 땅을 파던 중 거대한 바위가 발견되어 지하 공간을 포기하고 지금의 뜰을 마련했다. 실제로 새로 추가한 것은 이끼와 식물 몇 그루, 유동재 씨가 넣어둔 작은 굴삭기 모형뿐이다.

2층 테라스에서 함께한 유동재 씨와 김인철 대표, 그리고 반려견 태수.
완공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건축가와 집주인 모두에게 처음 목표한 바가 어느 정도 실현된 것 같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돌아온 답은 모두 100%. “김인철 대표님이 연남동에 지은 프레임이 그 지역을 변화시켰듯, 어느비움도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랐거든요. 그런데 벌써부터 느껴져요. 1층 북 카페에 이웃분들도 많이 찾아주시고, 동네가 환해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남겨주시니 저로서는 가장 만족스럽고 감사할 뿐이죠.” 비워낸 공간을 숲과 도시, 이웃으로 채워 무한한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어느비움의 목적은 완벽히 성공한 셈이다.


아르키움 김인철 대표는 엄덕문 문하에서 실무를 익힌 뒤 아르키움Archium을 설립했다. 전통과 풍토에 바탕을 둔 ‘열림’을 화두로 작업하며 김옥길기념관, 웅진씽크빅, 어반하이브, 호수로 가는 집 등의 대표작을 통해 건축가협회상, 김수근문화상, 서울시건축상 등 다수의 수상 경력이 있다.(archium.co.kr/)


기사 전문은 <행복> 12월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글 최지은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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