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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를 품은 돌집, 신창 유유희
1965년에 지은 제주 돌집이 2023년 자그마한 스테이를 품은 네 식구의 집으로 변신했다. 곳곳이 트이고 열려 있어 시선이 밖을 향하는 공간, 지인을 초대해 시간을 보내고 때로 작은 공연을 열기도 하는 곳. 신창리라는 지명에 창현·유진·유하·원희 네 가족의 이름에서 따와 이름 지은 집, ‘신창 유유희’의 이야기다.

제주 돌집 위에 새 집을 덧대어 완성한 신창 유유희. 다이닝 공간은 두 가지 다른 집의 모습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다. (왼쪽부터) 아내 조원희 씨와 아들 유진, 남편 민창현 씨와 딸 유하.
이 집의 취재는 우연히 발견한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됐다. 연노랑 페인트를 칠한 외벽과 분홍색 기둥, 굴뚝까지 집 안에 또 한 채의 주택이 들어선 듯 낯선 풍경. 천장이 있는 것을 보니 실내인데, 군데군데 돌벽도 보인다. 외관에서는 구옥에 맞춰 테트리스하듯 박공지붕 형태의 새 집을 덧붙인 모습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이곳은 IT 기업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남편 민창현 씨와 유리 예술 작가이자 환경예술 단체 ‘재주도좋아’의 멤버로 활동하는 아내 조원희 씨, 공룡을 좋아하는 여섯 살 유진과 먹는 것에 진심인 두 살 유하까지 네 가족이 사는 집이자 스테이다.

“저는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집을 원했고, 아내는 정원을 가꾸고 싶어 했어요. 주택에 사는 건 저희가 바라던 여러 가지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었죠. 평소에도 이따금 주택을 알아봤는데, 좀처럼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이 집을 발견했습니다. 한적하면서도 밝은 동네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집도 큰 단점 없이 전반적인 느낌이 좋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더라고요.(웃음)”


거실에서 바라본 다이닝 공간. 연노랑색 벽과 분홍색 기둥, 처마 등 옛집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구옥의 돌벽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왼쪽 가구도 옛집에 있던 것을 해체하고 다시 조합해 만들었다. 제주에서 폐목재를 업사이클링해 가구를 만드는 공방 ‘세간’에서 제작한 것.
오래된 것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던 아내 조원희 씨는 안거리와 밖거리, 창고 등 제주 전통 가옥의 배치가 잘 지켜진 돌집의 모습이 좋았다. “돌은 변하거나 썩지 않고 집이 허물어져도 남아 있어요. 그래서 제집이 생긴다면 돌이 주재료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어요. 예전에는 지역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였기에 돌로 집을 짓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전부 사라졌잖아요. 돌집을 흉내 낸 요즘의 집보다는 오래된 이곳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러나 벽지만 새로 바르는 정도로 집을 고치고 예쁘게 살 일만 남아 있던 부부의 계획은 곧 위기를 맞이했다. 부지를 측량한 결과 오래된 동네가 그러하듯 이곳 또한 경계가 제멋대로였고, 안거리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철거 대상이었다. 네 가족이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크기. 부부는 철거와 설계를 맡아줄 건축가를 수소문했다. 무려 1년 반 동안 건축가 다섯 명을 거쳐 마침내 백반건축사사무소 김원일 소장이 설계를 맡게 됐다. 그는 사무소 이름처럼 주어진 예산 내에서 섬세하게 자신의 손길을 담은 집을 짓는 건축가다. 그의 비유로 소개하자면 옥돔도 좋지만, 여건이 안 되면 고등어로도 맛있게 요리한다는 태도로. 또 현장 소장으로 참여해 모든 시공 과정을 함께하기도 한다. 설계한 프로젝트를 직접 짓고 싶다는 마음, 저예산 프로젝트를 하면서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겹치면서 탄생한 정체성이다.


집에서 골목길 같은 존재인 복도. 구옥과 새 집 사이가 이어지는 곳은 사진처럼 창을 설치해 틈처럼 느껴진다.

공방 ‘세간’에 의뢰해 소반으로 제작한 조명.
“건축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집을 부수지 않는 것이었어요. 여러 면에서 신축이 합리적 선택지였음에도 이 집을 지키는 방향을 택했죠. 저도 비슷한 입장이었어요. 집을 본 후에는 그 의견에 더욱 동의하게 됐고요.” 집은 비슷한 시기에 완공된 건물 중에서도 꽤 공들여 지은 집이었다. 당시 귀하던 시멘트를 충분히 사용했고, 목구조 지붕에는 제주 삼나무를 솜씨 좋은 목수가 가공한 흔적 또한 남아 있었다고.

두 주체 모두 이 집을 살리는 것에 동의하고, 그다음 선택은 새 집을 구옥과 별개의 동으로 지을지 하나로 합칠지에 대한 결정이었다. “구옥과 분리된 집을 따로 짓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러면 낡은 집과 새 집의 구도가 그대로 유지돼요. 반대로 보호하기 위해 좋은 재료를 덧대기 시작하면 원형을 잃어버릴 테고요. 그러다 케이크 상자처럼 구옥 위에 새 집을 뒤집어씌우는 지금의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옛집의 돌벽은 현관의 벤치로 탈바꿈했다.
이후 모든 설계의 기준은 기존 집이 됐다. 실의 배치부터 방 크기, 천창의 위치까지도. 지붕 구조도 넓어진 폭에 맞춰 철골 구조로 계획했다가 본래의 구조체를 살리기 위해 목조로 다시 바꿨다. 그렇게 구옥과 새 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고 집과 스테이까지 한데 품은 유유희가 완성됐다. 구옥과 새로운 공간 사이의 현관으로 들어오면 왼쪽에는 남편 민창현 씨가 재택근무를 하는 사무실이 있고, 오른쪽 복도를 지나면 다이닝 공간과 거실, 가족의 방이 차례로 나타난다. 앞마당이던 곳은 거실이 됐고, 다이닝 공간과 드레스룸을 둘러싸는 복도에서는 아이들이 운동장 돌 듯 하루 종일 달리기 시합을 한다. 집을 덮으며 높아진 층고를 활용해 탄생한 다락 세 개는 창고와 서재, 놀이방 역할을 부여받았다. 지붕은 예전의 구조체와 새로운 부재가 한데 이어져 늘어난 집의 무게를 함께 지지하고 있다.


작지만 아늑한 스테이 공간. 아내 조원희 씨의 지인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맙소사’ 김병국 대표가 가구를 맡아 주방 가구와 침대, 수납장을 집의 일부처럼 정갈하게 디자인했다.
배가 쉬어 가는 제주의 포구처럼
집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스테이다. 건축가는 대지의 가장 안쪽에 스테이를 배치하고, 따로 출입구를 냈다. “면적은 작지만 층고가 4m 가까이 되는 높은 집이에요.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대신 바깥의 시선이 닿지 않는 가장 아늑한 명당자리를 내줬습니다.” 공간과 가구는 모두 목재로 마감해 집과 분위기를 맞췄다. 아내 조원희 씨는 숙박객이 스스로를 정비하고 쉬어 가는 베이스캠프 같은 장소가 되길 바라며 운영을 시작했다. 태풍을 피해 배를 정박하고, 보수하기도 하는 제주 포구의 가장 안쪽 영역인 안캐와 같은 곳이 되길 바랐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가까운 서점과 카페를 발견하는 것,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걸어서 2~3분이면 닿는 바다에 가 실컷 일몰을 감상하는 것. 모두 그가 권하는 유유희 이용법이다.


아들 유진의 방. 정면에 보이는 가구도 옛집에서 수집한 고가구로 제작한 것.
가족에게 스테이는 수익을 얻는 방법이지만, 새로운 사람과 관계 맺는 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으로 투숙객에게도 특별한 장소가 된다. 특히 아내 조원희 씨가 꼽는 가장 큰 변화는 아들 유진의 경험. “일본인 누나, 핀란드에서 온 이모가 아이를 등원시켜주기도 하고, 오래 머무는 투숙객은 집에서 함께 아침을 먹거나 차를 마시기도 해요.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험이 쌓이면서 아이는 어떤 손님이 오는지 궁금해하고, 혹시 만날 수 있을까 기대하고요. 지난달에는 환경 운동가 겸 방송인인 줄리안이 스테이에 묵으면서 함께 아침을 먹었는데, 비건 이야기가 오갔어요. 나중에 유진이가 고기를 먹으면 왜 지구가 아픈지 묻더라고요. 쇠고기를 엄청 좋아하는데(웃음) ‘엄마, 나 이제 생일날만 쇠고기 먹을 거야. 지구가 좀 아플 것 같아’ 하면서요.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또 다른 세상을 조우하고 발견하기를 바라요.”


신창 유유희의 외관. 집 위에 집을 덧대어 지으면서 탄생한 독특한 모양의 박공 지붕. 왼쪽에는 스테이를 위한 입구가 따로 나 있다.
건축주와 건축가의 목표는 하나다. 좋은 집을 완성하는 것. 그러나 이 ‘좋은’의 기준이 각자 달라서 충돌이 생기고 때로는 집 짓기 자체가 무산되기도 한다. 잘 맞는 건축가를 찾고 발굴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조원희 씨 부부와 건축가 김원일 소장은 ‘좋은 집’에 대해 비슷한 방향을 바라보는 이들이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괴로운 시간일지도 모를 일생일대의 집 짓기가 이들에게는 과정마저 아름다운 순간이 됐다. “건축가는 외부였던 곳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공간감을 살려 막힌 곳 없이 안팎으로 잘 열린 집을 만들어주었어요. 그가 물리적으로 공간을 열어놓았으니 우리는 이 공간을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하면서 열린 장소로 사용한다면 좋겠어요. 그렇게 가꿔나갈 계획입니다.”



백반건축사사무소 김원일 소장은 동네 시장에서 장 봐온 식재료로 백반을 차리듯,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성의 있는 공간을 짓는 방법을 연구한다. 제약이 많은 공간일수록 시공하듯 설계하고 설계하듯 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설계자와 현장 소장을 겸해왔다. 공간적으로는 실속이 있고, 건축적으로는 내용이 있는 ‘합리적 멋’에 관심이 많다. @becbanarchitecture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별도 표기 외)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