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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이 무르익는 나무 집, 소우주
제주영어교육도시 인근 작은 마을, 어린 시절 그린 그림 속 집처럼 삐쭉 솟은 박공지붕을 여섯 개나 품은 목조 주택과 스테이가 있다. 오직 아내와 아들의 행복을 영순위에 두고 지었지만, 마음에 쏙 드는 집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활력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 소유상·신승연 씨 가족. 이들이 내뿜는 해피 바이러스는 스테이 ‘마카로니홈’을 찾는 이들에게까지 전파된다.

소우주의 주인이자 마카로니홈의 호스트인 소유상·신승연 씨 부부. 가족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집과 스테이를 짓고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린 시절 보던 그림 동화책 속 집의 지붕은 늘 뾰족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교에서 내준 ‘우리 가족 그리기’ 숙제 속 집도 그랬다. 정작 사는 곳은 아파트이지만, 서로의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가족 뒤로는 늘 박공지붕 집이 우뚝 서 있었다. 취재차 찾은 집의 삐쭉 솟은 지붕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다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박공지붕은 집의 원형적 상징인 동시에 행복이 가득한 집의 메타포이지 않을까?’ 누군가는 지극히 사적인 견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숙제 검사 시간에 힐끗 훔쳐본 친구의 그림 중 열에 아홉은 분명 뾰족한 박공지붕이 그려져 있었다.

제주영어교육도시 인근 안덕면 서광리 작은 마을, 많아 봐야 한두 개가 전부인 박공지붕을 무려 여섯 개나 가지고 있는 주택이 있다. 반은 건축주의 집, 나머지 반은 스테이 ‘마카로니홈’으로 운영하는 이곳에는 육지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에 내려온 지 올해 7년 차를 맞은 소유상·신승연 씨 부부와 국제 학교에 다니는 아들, 그리고 반려견 로니가 함께 산다. 집의 이름은 소씨 성을 물려받은 아들의 작은 우주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소우주’라고 지었다.


집의 다이닝룸. 아일랜드 뒤 문을 열면 조리 공간이 나오는데, 유리문을 내어 마당과 이어진다.

부부의 침실에는 박공 구조를 이용해 작은 창고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의 학업을 위해 이곳에 오게 되었어요. 육지에서 제주로 거처를 옮길 때 아파트, 타운하우스 등 주거 공간에 대한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딱히 내키지 않았죠. 그러니 자연스레 ‘오직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한 집을 직접 지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들이 아무리 말려도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진취적인 성격인 남편 소유상 씨는 그길로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지를 찾는 데 1년, 설계와 디자인에 1년, 시공에 1년을 들여 마침내 첫 집과 스테이를 지었다.


작지만 다이닝룸과 완벽하게 분리되는 거실. 서울에서 어렵게 공수한 제르바소니 고스트 소파를 두었다.

다이닝룸에서 만난 소유상·신승연 씨 부부와 반려견 로니. 중앙의 낮은 계단을 지나면 거실이 나온다.
여섯 개의 박공지붕으로 이어지는 집과 스테이
뭐든 ‘거거익선’이라지만, 소유상 씨가 매입한 1210㎡에 달하는 땅은 세 가족이 살 집만을 짓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직접 봐서 아시겠지만 필지가 도로 안쪽으로 좁고 길게 나 있어요. 보통이라면 집을 나란히 두 채 지어 하나는 세를 주거나 팔겠죠. 그러나 처음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바란 점 중 하나는 이곳이 가족들이 행복을 누리고 성장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집을 한 채 더 짓는 대신 결혼 후 줄곧 주부로 지내온 아내가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경우 아무래도 일반 상업 공간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집과 같은 대지를 공유하기에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부부는 수차례 상의를 거듭했고, 결국 스테이를 짓기로 결정했다. 결혼 전 가구 수입사에서 제품 디스플레이를 담당했던 터라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관리하길 좋아하는 아내 신승연 씨의 성향과도 잘 맞고, 육지에 사는 부모님이나 친인척이 왔을 때 머물 공간이 될 수도 있기에 더할 나위 없는 결정이었다.


2층을 필로티 구조로 들어 올려 주차장을 확보했다. 마당 안 그늘 공간이 되어주는 건 덤이다.
유타건축사사무소의 김창균 대표가 설계를 맡은 집과 스테이의 평면구조는 단순한 듯 독특한데, 대지 모양에 따라 길게 난 一자형 1층과 필로티 구조로 들어 올린 2층이 만나 ㄱ자형 구조를 이룬다. 이때 집과 스테이는 개별 건물로 존재하지만, 그 사이를 창고가 잇는다. “스테이를 안에 둘지 바깥쪽에 둘지는 초기부터 많이 고민했는데, 최종적으로는 안쪽으로 배치하기로 했죠. 두 공간은 이어지면서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돌담으로 마당을 나누고, 스테이 숙박객을 위한 별도의 주차장과 출입 올레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대신 외부에서 보았을 때 두 건물이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지붕 형상을 여러 개의 박공으로 연속되도록 했죠.” 김창균 대표의 말처럼 집과 스테이를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이자 건축적 특징이 된 박공지붕은 높낮이를 달리하며 이어지는데, 이는 오름의 형상을 차용했다고. 더불어 경사면 덕에 별다른 배수 시스템 없이도 빗물을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기능성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정서적 만족감도 준다. “뭐랄까, 평평한 천장보다 안정적인 느낌이에요. 하루 일과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아늑하게 느껴지죠.”


마카로니홈은 천장은 물론 벽체까지 목재로 마감해 일반 주거 공간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독창적 외관처럼 소우주는 내부 구조 또한 꽤나 흥미롭다. “거실과 다이닝룸이 이어지는 전형적 구조에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공간이 넓지 않아도 되니 용도에 따라 분리되길 원했죠.” 소유상 씨의 말대로 집은 현관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는 다이닝룸, 왼쪽으로는 거실이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 다이닝룸은 계단을 통해 다시 2층과 연결되는데, 안방과 드레스룸, 가족실, 아이 방이 차례로 이어지고 박공 구조를 이용해 낸 다락은 민화 그리기를 즐기는 신승연 씨의 취미 방이다. 단층으로 이루어진 거실은 안쪽으로 손님방을 두고 역시나 박공 구조를 활용해 다락을 만들었는데, 이는 아들의 놀이 공간. 단층으로 이루어진 스테이는 현관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침실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주방, 거실, 또 다른 침실이 차례로 이어진다. 물론 스테이 또한 집과 같이 다락을 만들어 묵는 이들이 아지트처럼 이용할 수 있다.


신승연 씨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가구들을 들인 마카로니홈. 헴 알레 다이닝 테이블, 무토 파이버 체어, 앤트레디션 파빌리온 체어, 캐나다의 공예가 브렌트 콤버Brent Comber의 테이블, 이시원 작가의 수작업 통나무 목제 스툴 구깃Gugit 등을 배치했다.
그리고 하나 더, 2023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준공 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한 목조 주택이라는 사실은 소우주를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든다. 목재는 건물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사용했는데, 특히 내부는 집과 마카로니홈의 공간적 특성을 고려해 목재 사용 범위를 조절했다. “집은 계속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편안하도록 화이트&우드를 주조색으로 천장과 계단, 다락 바닥에만 목재를 적용했어요. 그러나 스테이는 손님이 짧게 머물다 가는 곳이기에 천장과 계단, 다락 바닥은 물론 벽체까지 모두 목재를 사용해 일반 주거 공간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연출했습니다.” 이때 공간의 용도에 따라 사용할 목재 종류도 구분했는데, 집의 천장은 내추럴한 느낌의 브라질 오크, 스테이의 벽체는 부드러운 향이 매력적인 웨스턴 햄록, 스테이 욕실 천장은 은은한 피톤치드 향이 나면서 곰팡이에 강한 북미산 옐로 시더를 적용하는 식으로 변주를 주며 다채롭게 연출했다.


집의 2층과 이어지는 다락은 민화 그리기를 즐기는 신승연 씨의 취미 방으로 사용 중이다.
집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돌담으로 구분되는 마카로니홈의 외관. 가족과 숙박객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출입구도 따로 냈다.
삶에 활력을 더하는 정원과 숙박객
소유상 씨는 인터뷰 초반 “이 집은 가족을 위한 집, 그중에서도 아내가 중심인 집이 되길 원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진심이라는 건 마카로니홈의 탄생 비화를 통해 이미 느꼈지만, 한 번 더 여실하게 느낀 대목이 있으니 바로 정원이다. “아내가 제주에 온 후 정원 학교까지 다니며 조경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정원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고 집을 설계했죠.” 소우주에는 집의 앞마당과 뒷마당, 스테이의 앞마당과 뒷마당 총 네 개 정원이 +자 형태로 자리하는데 벚나무부터 호주 아카시아, 수국, 그라스류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싱그러움을 내뿜는다. “아내를 위해 만든 정원이지만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들을 보면 정말 좋아요. 그러고는 생각하죠. 노년에도 즐거이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가드닝이지 않을까하고요.”

이처럼 아름다운 정원 덕분인지 마카로니홈 숙박객 중에는 조경가도 꽤 많았다고. “아무래도 제주는 기후가 육지와는 달라 이곳에서만 자라는 식물이 몇몇 있어서 더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거 같아요. 그동안 마카로니홈에 묵었던 조경가 손님 대부분이 우리 집과 스테이의 정원을 예쁘게 봐주고 조언도 많이 해줬는데, 이렇게 공통 관심사가 있는 손님과 교류하며 느끼는 희열이 있더라고요.”

집과 마카로니홈을 완공하고 입주한 지 2년 차, 소유상·신승연 씨 가족의 만족도는 그야말로 최상이다. “가끔 아이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우리 집 정말 예쁜 거 같아요’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 뿌듯하죠. 아내 또한 10년 넘는 결혼 생활 기간 중 그 어느 때보다 지금 가장 생기가 넘쳐요. 매일 스테이를 정돈하며, 또 정원을 가꾸며 활력을 얻는 것 같아 기쁩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지금까지 스테이에 머문 손님이 모두 매너 있는 분이었어요. 물론 저희가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무언의 메시지를 공간을 통해 나눈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목재는 세월을 머금을수록 색이 깊어진다. 소우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윽해질 것이다. 그리고 소유상·신승연 씨 가족들의 삶 또한 집 안에 오롯한 자신으로 존재하며, 또 마카로니홈을 찾는 이들과 교류하며 무르익을 것이다.



김창균 대표는 서울시립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다양한 실무 작업 후 2009년 유타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일상의 중소 규모 건축물을 바탕으로 하는 도시 풍경에 관심 많으며,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는 젊은 건축가상, 2013년 목조건축대상, 2019 경남건축대전 대상, 2023 서울 건축 산책전 준공 부문 대상, 2023 경상북도 건축문화상 최우수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주요 작업으로 포천 피노키오 예술체험공간, 서울시립대학교 정문, 청담동 비원, 여수 카페 모이핀, 논현동 N7338과 다수의 단독주택이 있다.

글 양혜연 기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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