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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레벨로 Helene Rebelo 멤피스 디자인의 영혼이 깃든 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세트 디자이너인 엘렌 레벨로는 과감한 색상과 개성 가득한 빈티지 제품으로 브뤼셀의 옛 램프 공장에 자리한 메자닌 구조의 단독주택을 탈바꿈했다.

세트 디자이너이자 인테리어 데커레이터인 엘렌 레벨로가 테르에 엑스트롬이 디자한 엑스트렘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 레벨로는 이끼가 깔린 잔디밭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모로코의 스티치 러그 녹색 카펫을 사용했다. 거실 공간은 줄리 랜섬의 컬러풀한 예술 작품,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가 디자인한 타히티 멤피스 램프와 허먼밀러의 레이 윌크스가 커버한 치클렛 소파가 돋보인다.

식사 공간에는 이탈리아 건축가 가에 아울렌티의 녹색 오르세 의자, 미켈레 데 루키의 멤피스 의자와 오셔닉 테이블 램프를 배치했다. 거실은 짙은 녹색과 검은색 캐비닛이 조화를 이룬다. 빨간색과 분홍색 세라믹 화병은 볼륨 세라믹의 잔테 소머스, 거울은 로렌 과르네리의 작품이 포인트를 더했다.
벨기에 출신 인테리어 디자이너 및 건축가들의 디자인은 차분하고 흙빛이 감도는 모래 톤 팔레트 색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악셀 베르보르트Axel Vervoordt, 빈센트 반 두이센Vincent Van Duysen, 베누아 비아네Benoit Viaene의 디자인에서 엿볼 수 있듯이 말이다. 하지만 엘렌 레벨로의 브뤼셀 집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더없이 완벽하게 깨뜨린다. “저는 다양한 건축양식을 사랑해요. 심지어 고전적 스타일까지도 말이죠. 무채색으로만 꾸민 집은 용납할 수 없는데, 가장 큰 이유는 색은 감정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에요. 또한 신제품보다 세계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며 수집한 물건으로 집을 꾸미는 것을 선호합니다.”

엘렌 레벨로는 풍부한 색상, 조각적 형태, 현대적 디자인, 그리고 1970~1980년대의 펑키한 빈티지 가구와 오브제로 믹스 매치하는 것을 즐긴다. 그에게 ‘재미’는 아주 중요한 요소인데, 특히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포르투갈 이민자 출신으로 아홉 살 때 독재 정권을 피해 탈출한 아버지가 항상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늘 지켜봐왔습니다. 제 야망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버지는 절대 ‘불가능’이란 단어를 꺼내지 않았지요.”


컬러풀한 빈티지 도자기, 화이트 타일로 맞춤 제작한 스테어즈Stairs, 뮬러 반 세베렌의 디 아르크스The Arcs 행잉 램프로 꾸며 욕실을 보다 더 생동감 넘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빨간색으로 그라우팅grouting된 흰색 타일이 돋보이는 주방. 알레시의 에토레 소트타스가 디자인한 후추와 허브 분쇄기, 제이드 패튼의 흰색 컵, 피아 슈발리에의 컵, 칼리타의 주전자가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내는 동시에 조화를 이룬다.
브뤼셀에서 찾은 보금자리
엘렌은 그 누구보다 ‘벨기에 사람답지 않은’ 취향을 지녔지만, 정작 브뤼셀에서 비로소 온전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는 주민 9백 명이 거주하는 프랑스 샤토 드 블루아 Château de Blois의 루아르Loire강 유역에서 자랐다. “집 인근에 숲이 자리해 어릴 때 항상 밖에서 놀았어요. 언제나 자연과 접촉하면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투르Tours에서 7년간 살던 엘렌과 그의 남편 에두아르 보제Edouard Beauget는 프랑스 시골에 정착하고 싶지 않았다. “마르세유, 리옹, 릴 등 프랑스의 다른 도시를 고려했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습니다. 릴이 선택지 중 하나라면 브뤼셀도 고려해보면 좋겠다 싶었죠. 2019년 4월, 엘렌과 에두아르는 브뤼셀의 고급 지역인 익셀르Ixelles에 자리한 신고전주의 양식의 아파트에 둥지를 틀었다. 쪽모이 세공 마룻바닥과 신고전주의 디자인 양식이 아름답긴 했지만, 이 프랑스 부부는 곧 숨이 막힐 듯 답답함을 느꼈다. 좀 더 조용하고 넓은 집을 찾던 부부는 브뤼셀 반대편에 위치한 옛 램프 공장의 로프트를 우연히 발견했다. 산업 공간이던 건축물은 고전적 실내장식이 있는 아파트보다 훨씬 더 다양한 가구를 배치할 수 있었다. 탁 트였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이러한 공간은 인테리어디자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만 했다. 색 조합을 잘못 선정하면 전체 그림이 자칫 혼란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집에는 정원이 없다. 대신 초록색을 적극 활용해 ‘친자연적인’ 면을 보완했다. 거실 벽을 초록색으로 새로 칠했고, 이전 아파트에서 가져온 몇 안 되는 가구 중 하나인 가에 아울렌티Gae Aulenti의 연두색 오르세Orsay 식탁 의자를 놓았다. 좌석 공간에는 녹색 엠보싱 카펫으로 인공 자연을 연출했다. 1970년대 무드가 느껴지는 이 러그는 엘렌이 모로코 회사 스티치Stitch를 위해 디자인한 제품으로, 마치 이끼가 깔린 잔디밭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유기적 모양으로 가득해 마치 미래의 세상을 경험하는 듯하기도. 이를테면 테리에 엑스트롬Terje Ekstrom의 엑스트렘Extrem 뱀 모양 의자나 잭 헤이우드Jack Haywood의 1960년대 코브라 램프가 그렇다.


엘렌 레벨로의 로프트에 있는 좌석과 식사 공간. 맨 앞에는 그가 르수르스 펭튀르Ressource Peintures의 라즈베리 페인트로 칠한 평범한 사무실 테이블이 자리한다. 테이블 주변에는 엘렌과 에두아르가 브뤼셀의 이전 아파트에서 가져온 몇 안 되는 가구 중 하나인 미켈레 데 루키의 의자와 가에 아울렌티의 녹색 오르세 다이닝 체어가 놓여 있다.
멤피스 디자인의 재정의
가구와 가구의 색상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엘렌은 반투명 커튼을 사용해 거실과 다이닝 공간을 분리했다. 이곳에서도 컬러의 향연이 펼쳐진다. 라즈베리 레드 식탁, 스카이 블루 선반, 그리고 초록색 의자까지 엘렌은 이 세 가지 컬러를 치트키로 사용했다. 여기에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의 멤피스Memphis 램프와 의자까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적절히 배치했다. “멤피스는 제가 디자인 세계에 입문한 계기였습니다. 비정형적 조형 언어, 색채 팔레트, 특이한 소재 선택 등 ‘멤피스 시대’를 발견했을 때 즉시 흥미를 느꼈어요.” 2015년 온라인 콘셉트 스토어 ‘쿨 머신Cool Machine’을 시작했을 때 그는 멤피스에서 영감을 받은 제품을 곧바로 선보였다. 이 플랫폼에서 그는 수년간 전 세계 고객에게 펑키한 빈티지, 화려한 도자기, 현대적 디자인 제품을 판매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미술이나 디자인을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쿨 머신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판매했는데, 마케팅 전략 없이 순전히 제 직감을 따랐지요. 저희 집 거실에 놓인 줄리 랜섬Julie Lansom의 추상화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색감이 인테리어를 하나로 묶어주거든요.”

굿무즈×모노프릭스, 액셀 체이의 노란색 램프. 카밀 메나르의 침대 옆 탁자 러키 티스 볼륨 세라믹을 위한 제이드 패튼의 블루 꽃병이 돋보인다. 이곳은 거실과 달리 주황색 및 브라운 컬러로 꾸몄다.
지난겨울, 엘렌은 7년 만에 쿨 머신 운영을 잠시 중단했다. 이유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완벽한 인테리어와 시노그래피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고객이나 브랜드의 의뢰를 받아 특정 인테리어 아이템을 찾아줍니다. 또는 세트 디자이너로서 카펫 가구, 조명, 홈 액세서리를 아우르죠.” 구찌 퍼퓸Gucci Parfums의 경우 이미 데커레이션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브뤼셀에 사는 프랑스 패션쇼 시노그래퍼가 자신의 사무실을 완전히 새롭게 꾸며달라고 요청했는데, 그는 규모가 큰 집단과 함께 일하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엘렌은 끊임없이 새로운 인테리어디자인 아이템을 찾기 위해 모든 종류의 웹사이트에 수십 개의 알림을 설정해두었다. “물류는 아버지한테 도움을 받습니다. 정비공이자 자동차 전문가이던 그는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부품을 구해와요. 지금은 인스타그램에서 판매하고 수익금을 나누죠. 예전에는 골동품만 선호했지만, 제 덕분에 지금은 빈티지도 좋아해요.” 엘렌은 색채에 대한 감각을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저는 매우 화려한 집에서 자랐어요. 녹색 거실, 빨간색 주방, 과일이 그려진 1980년대 벽지 등 기본적으로 어머니의 취향이었죠. 한편으론 매우 소박한 가정에서 자랐는데, 집에서 멋진 인테리어를 위해 비싼 가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현관 바로 뒤의 모습. 엘렌은 자신뿐만 아닌 영상 제작자 남편 에두아르의 취향을 반영했다. 다카하마 가주히데Kazuhide Takahama의 1970년대 블랙 래커 의자, 네덜란드 디자이너 헤이스 불라르스Gijs Boelaars의 륀디아Lundia 나무 의자, USM 할러Haller 사이드보드, 콜드 피크닉Cold Picnic의 네오 모더니즘 카펫, 게디Gedy의 빈티지 거울이 모두 에두아르의 로망을 실현한 아이템이다.
그의 안목은 인터넷에 떠도는 아이템들 사이에서 보석 같은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을 찾아내는 훈련이 되어 있다. 사인이 있든 없든, 빈티지이든 아니든 그에겐 중요하지 않다. 더럽거나 부서졌어도 그는 그 가구의 참가치를 바로 알아챈다. 그는 거실에 있는 청록색 오가닉 안락의자를 가리키며 피에르 폴랭Pierre Paulin 제품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페이스북에서 그 안락의자를 발견했을 때 누군가 핑크색 조깅복을 둘러놓은 것처럼 보였어요. 새 천으로 덮으니 다시 빛이 났어요. 하지만 그 의자의 제조업체나 디자이너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최근까지만 해도 말이죠. 브뤼셀 디자인 박물관에 갔을 때 벨기에 디자인 관련 책에서 이 모델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조르주 판레이크Georges Van Rijck의 셰파Chépa였습니다.” 보기 드문 디자인 작품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야말로 크레이티브 디렉터로서 브뤼셀 라이프스타일을 만끽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글 백세리 기자 | 사진 Jan Verlinde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