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공간 전경. 판매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은 테이블 위 오브제는 모두 이은석 디렉터의 소장품이다. 과거 치수를 잴 때 사용하던 목재 도구나 평범한 철제 바구니까지도 어떻게 디스플레이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람결에 따라 울리는 풍경 소리와 오키나와 해변이 떠오르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서간’은 관람객을 잠시 다른 세상으로 초대하듯 오묘한 정취를 뿜어내고 있었다. 서간은 ‘모던 분재’라는 이름으로 전통적 분재가 아닌 오늘날의 감성에 맞춘 새로운 카테고리의 분재를 다루는 식물 숍이다. 중정이 있는 ‘ㄷ’자 형태의 공간은 클래스를 겸하는 쇼룸과 별채의 오픈 갤러리로 구성한 도시형 한옥으로 긴 시간에 걸쳐 생활에 맞춰 개량한 흔적이 덧입혀졌다. 서간을 운영하는 유상경 대표 역시 기존 구조는 유지하면서 분재를 다루는 식물 숍의 콘셉트에 맞춰 장식성을 최소화해 공간을 수선했다. “제가 직접 미장한 부분도 있어요. 그래서 어설픈 곳도 꽤 많은데, 오히려 거기서 오는 아늑한 느낌이 좋았어요. 이 공간에 들어왔을 때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유상경 대표)
<서촌퍼니처: 페이크 쇼룸-가구의 흔적>전은, 1970년대에 존재했다가 자취를 감춘 가구 브랜드가 2024년 서촌에서 부활한다는 스토리 아래 서촌퍼니처의 흔적을 보여주는 소량의 가구와 1970년대 신문광고와 홍보용 포스터 등 인쇄물, 그리고 새롭게 등장할 서촌퍼니처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도록 돕는 무드보드로 구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전시 타이틀에서 이미 힌트를 준 것처럼 서촌퍼니처는 존재한 적도, 앞으로 존재할 계획도 없는 가상의 브랜드라는 것이다. 가상의 브랜드를 통해 관람객의 호기심을 유도하고 속게 만드는 과정 전체를 기획 의도 안에 담기 위한 장치가 바로 서촌퍼니처라는 브랜드인 셈이다.
분재 클래스를 진행한 별채 앞 공간. 천장에 달린 최희주 작가의 작은 모시명태 작품과 식물이 편안함을 준다.
1970년대에 생산된 동서가구의 다이닝 체어. 의자 위쪽에 붙어 있는 신문광고는 모두 같은 시대에 게재한 가구 브랜드 보루네오의 광고를 차용한 것으로 직관적 카피가 재미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학과꽃’은 매거진 에디터 출신의 황선영과 이은석 디렉터 두 사람이 운영하는 콘텐츠&브랜딩 에이전시다. 이들은 성수동 등 이른바 핫 플레이스에서 최근 빈티지 스칸디나비안 가구를 전시 판매하고, 일본의 디자인 부흥기이던 1960년대의 레트로 컬처가 각광받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도 그 시대에 나름의 미감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리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빈티지 스칸디나비안 가구의 인기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 여전하고, 일본에서도 비전60VISION60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1960년대의 뛰어난 가구 디자인을 지금도 접할 수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소반과 반닫이로 상징되는 고가구에서 갑자기 한샘이나 까사미아의 시대로 건너뛰어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실제로 가구에 관심이 있는 MZ 세대도 우리 가구의 역사에 관심을 갖기보다 우리에겐 그런 가구가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요.”(황선영 디렉터)
가상의 브랜드 이름을 전시의 재미 요소로 활용하기 위해 서촌퍼니처의 브랜드 태그를 만들어 눈에 띄도록 가구에 부착하고, 이미 오래전에 아카이브해둔 1970년대 신문광고를 적극 활용했다. 당시 사용된 가구 일러스트와 광고 문안 등을 변용 없이 브랜드명만 바꿔서 위트 있게 서촌퍼니처에 히스토리를 입혔다. “서촌은 시대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개량한 한옥이 많은 동네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 맞춰 둔중해 보이는 5단 서랍장을 3단으로 줄여서 요즘의 비례감에 맞추거나, 책상의 측판을 기존의 합판 판재에서 투명한 아크릴 판재로 바꿔서 가볍고 모던해 보이도록 하는 등 ‘개량’을 덧입히는 작업도 했습니다.”(이은석 디렉터)
전시는 가상의 서촌퍼니처를 기대해볼 수 있는 인스피레이션 무드보드로 마무리되었다. 빈티지 오브제와 현대 공예 작가가 만든 작품들 그리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용품으로 구성했는데, 시대와 나라를 뒤섞어서 서촌퍼니처가 지닌 이미지를 모호하면서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했다. 이토록 알찬 전시를 더욱 알차게 만들어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유상경 대표의 분재 클래스다. 식물 관리 등 이론과 디자인 기획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자신이 선택한 화기에 식물을 직접 심는 순으로 진행했다. “가지치기를 하거나 이끼 연출 등 섬세한 작업을 할 때 다들 몰입하면서 고요한 시간이 이어졌어요. 그 순간이 참 좋았습니다.”(유상경 대표) 행복작당 서촌 기간 중 이 작은 한옥의 밀도는 그 어느 곳보다 높았다.
“서촌이 지닌 장소성과 우리나라 가구에 대한 메시지를 서촌퍼니처를 통해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으로 연결하는 시도를 관람객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여주어서 즐거운 시간이 됐습니다.” _ 학과꽃 이은석 디렉터
문의 서간(070-8064-7362), 학과꽃(@hakgwakkot)
- 서간×학과꽃 1970년대 가구의 흔적, 서촌퍼니처
-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