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익스피리언스&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작가 황다검 비워내서 충만한 무과수의 집
어루만질 무撫에 열매맺는 나무를 뜻하는 과수果樹를 더해 지은 ‘무과수’란 필명처럼 따뜻하고 소박한 일상의 기록으로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황다검 씨. 감나무 집과 아현동 집을 거쳐 안착한 그의 세 번째 보금자리를 <행복>이 찾았다.

살구나무가 보이는 테라스에 앉아 책을 읽는 황다검 씨. 선룸의 창 너머로 포착했다. 창틀 앞으로 보이는 스피커는 가이타인 ME100, 램프는 빈티지 제품.

아침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 시간을 주제로 한 브랜드 아침ACHIM의 패브릭 포스터.

거실 테이블 한쪽을 차지한 빈티지 테이블 램프. 엣시Etsy에서 판매하는 것을 해외 직구로 구매했다.
모든 그리움의 이면엔 상실이 존재한다. ‘반드시’ ‘빨리’ ‘기필코’ 등 빈 껍데기뿐인 관형어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사는 오늘날 우리는 잃었고, 그리워한다. 스스로에게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내게 주어진 작은 행복을 충분히 누리며, 충만한 마음으로 잠드는 나날을.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에어비앤비’ 공식 블로그 운영자, ‘오늘의 집’ 브랜드 마케터를 거쳐 현재는 지인과 함께 부티크 브랜딩 에이전시 ‘하티핸디’를 운영하는 황다검 씨. 무과수란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그가 글과 사진, 영상으로 기록한 소박하고 따뜻한 일상은 많은 이에게 위로를 건넨다. 특히 #무과수의집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올리는 집 콘텐츠는 팬들의 주요 관심사인데, 최근 이 해시태그에 ‘시즌 3’이란 글자가 덧붙었다. 지난해 10월 말 새로운 집으로 이사한 것.

“정확히 따지자면 집을 옮기는 중간중간 짧게 머문 다른 집도 있어요. 그러나 제 삶에 영향을 준 집은 이번이 세 번째예요.” 창 너머로 감나무가 보이는 첫 번째 집은 그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가르쳐주었다. 서늘한 구옥이었던 두 번째 아현동 집에서는 최대한 에어컨을 켜지 않고 살면서 계절을 오롯이 느끼는 법을 배웠다. 그 시절 한여름, 동네 이웃과 툇마루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밥을 먹던 기억은 두고두고 떠오르는 추억으로 남았다. 그리고 이젠 넓은 테라스가 빙 둘러싼 17평 남짓한 성북동의 새 보금자리가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줄 테다.


부엌 한쪽에 걸린 액자. 문성희 선생의 책 <평화가 깃든 밥상>에 나오는 구절을 담은 키미 작가의 판화로 가장 아끼는 액자 중 하나라고.

구옥에 살다 이사 오니 새하얀 창틀이 어색해 이를 중화하기 위해 둔 검은 나무 선반. 황다검 씨가 디자인하고 목공이 취미인 팬이 함께 제작한 맞춤 가구다.

“사방이 창으로 된 선룸과 테라스를 보고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볕이 잘 드는 넓은 부엌도요. 요리를 좋아하다 보니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거든요.” 이 집을 보자마자 기존 계획을 바꿔 지금의 동네로 이사올 정도로 꿈꾸던 집에 가까웠다. 이렇게 연을 맺은 집을 앞으로 잘 가꾸며 살기 위해 황다검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 주인의 흔적 지우기였다. “이전 세입자가 오래 살던 곳이라 손볼 데가 많았어요. 도배를 새로 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블라인드, 문고리 등도 하나씩 바꿔나갔죠. 인테리어업체에 맡겨도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직접 했어요. 물론 몸은 고되지만 집 구석구석의 묵은때를 벗겨내며 ‘앞으로 잘 부탁해’ 하고 인사를 건네는 이 과정은 필요하다 생각해요.” 이번 집은 공개하기까지 유독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고. “구옥에 살다 온통 하얀 집에 오니 어색했어요. 취향과 기준이 점점 더 확고해지니 마음에 드는 물건 찾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고요. 이번 집에는 뭘 많이 하지 않았어요. 쉽게 질리지 않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저 집을 둘러싼 풍경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죠”


안방 모습.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구와 아이템은 최소화했다. 선반 위의 램프는 빈티지, 액자는 황다검 씨의 사진 작품.

테라스로 향하는 문 옆 벽면에 배치한 BFD 선반과 빈티지 그릇장. 입구 쪽 이케아 스툴 위에 우치다 시게루가 디자인한 테이블 램프를 두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보이는 테라스 너머로 북악산 자락과 한옥 풍경이 걸린 커다란 창, 그 앞에 놓인 싱그러운 화분들이 시선을 빼앗는 선룸. 황다검 씨의 인스타그램을 팔로했다면 이미 익히 알고 있을 이 장소는 음악과 휴식을 위한 곳이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가라는 사실을 알고 남자 친구가 구해온, 류이치 사카모토가 평생 사용한 스피커 브랜드로 알려진 가이타인 ME100, 1인 소파인 가리모쿠 더 퍼스트 RU75와 가리모쿠 뉴 스탠다드 캐스터 1인 소파만을 두어 쉼에 충실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가리모쿠 더 퍼스트 RU75는 취향에 따라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인데, 황다검 씨가 소장하고 있는 코럴 블루 컬러의 가죽은 리미티드로 출시된 제품으로 이제는 단종되어 구입할 수 없다고. 가리모쿠 공식 판매점인 리모드 김학건 대표가 소장용으로 매장에 비치해둔 단 하나 남은 제품을 특별히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거실은 황다검 씨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장소다. 일반적으로 소파와 TV가 있을 자리에는 폭을 넓게 주문 제작해 기성 제품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사이즈의 고재 테이블, 요리책이 한가득 꽂혀 있는 선반, 빈티지 그릇장이 놓여 있다.


원목과 스틸 소재를 믹스 매치한 주방. 벽 선반은 이케아, 주방용품은 주로 키친툴에서 구입.

집을 빙 둘러싼 테라스는 이 집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였다.

평창 진부전통시장에서 산 청란. 언젠가 집을 짓는다면 마당에 닭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키우며 얻은 달걀로 요리하며 살고 싶다고.

“비치우드 선반은 BFD 제품으로 밝은 우드 컬러와 적당히 투명한 사틴 유리 칸 바닥이 마음에 들었어요. 빈티지 그릇장은 가장 마지막에 들인 가구인데요, 흔치 않게 모서리가 곡선으로 처리되어 있고 옆면이 투명한 유리로 된 점에 매력을 느껴 보자마자 구입했어요. 공간이 큰 편이 아니라 거실에 있는 가구는 최대한 빛을 많이 담을 수 있는, 개방감이 느껴지는 제품을 구하려고 했어요” 테이블 뒤 파티션 역할을 겸하는 선반장 너머에는 거실 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보내는 주방이 자리 잡고 있다. 하나의 톤앤무드로 통일하는게 지루해, 좋아하는 소재인 원목과 스틸의 소재를 믹스매치 했다고. 주방 뒤로 현관을 지나 이어지는 복도에는 안방과 드레스룸, 두 개의 방이 있다. 안방은 오직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쓰고 싶어 방 면적의 8할을 차지하는 커다란 침대를 두었다. 그 옆엔 전산시스템의 블랙 컬러 책장을 놓았는데 핸드폰 대신 독서를 하다 잠드는 일상을 누리고 싶어서다. 드레스룸은 면적 대비 비어 있는 느낌인데, 이 또한 의도한 것이다.

“수납장을 더 둘 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갖고있는 물건도 잘 쓰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거든요.” 이 선택은 그의 물건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지인이 ‘쓰이지 않는 건 결국 버려진다’는 말을 한적이 있어요. 눈에 보이지 않게 쌓아둔 물건은 쓸모를 잃어버린 것과 다름 없어요. 쉽지 않지만 음지에 있는 물건을 되도록이면 양지로 꺼내고, 쓰임이 있는 것만 곁에 두려고 노력해요.” 물건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것만 남기니 생긴 집의 틈. 그 사이로 새의 지저귐과 음악, 빛과 계절, 그리고 ‘현재’가 스민다.

복도에 놓인 달걀 사진은 황다검 씨가 직접 찍은 것이다.

빈티지 그릇장에 놓인 그릇들. 재료의 물성이 느껴지는 테이블웨어를 사랑한다.
“20대 후반 일에 치여 스스로를 잘 챙기지 못해 크게 아픈 적이 있어요. 그때 이후로 제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죠. ‘아무리 바빠도 밥은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자야 한다’가 생활 신조예요. 제철 식재료로 정성껏 만든 요리를 먹고 오늘의 나를 잘 돌보는 것을 삶의 충분조건으로 두죠. 행복의 가장 최소 단위를 알면 그 이외에 얻는 것은 보너스처럼 느껴져요. 얻으면 기분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나쁠 건 없으니까요.” 매일 아침에 눈뜨면 라디오를 켜거나 좋아하는 음악 CD를 골라 듣는다. 여유를 되찾고 싶을 땐 따뜻한 차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구움 과자를 예쁜 그릇에 담아 티타임을 가진다. 틈만 나면 동네에 있는 유기농 마트에 가 계절의 맛을 탐색하고, 건강하게 자라난 식재료를 구입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으로 끼니를 챙긴다. 그리고 이러한 일상을 10년 넘게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하며, 삶의 본질에 가깝게 존재하는 게 결코 거창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란 걸 직접 경험으로 보여준다.


리모드 김학건 대표가 선물한 코럴 블루 컬러의 가리모쿠 더 퍼스트 RU75.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에 딱 맞는 사이즈다.

음악과 휴식만이 존재하는 선룸. 테라스와 더불어 이 집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 작용을 했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황다검 씨. 비워내서 생긴 집 틈새로 새의 지저귐과 음악, 빛과 계절, 그리고 '현재'가 스며들었다.

“ 제철 식재료로 정성껏 만든 요리를 먹고 오늘의 나를 잘 돌보며 사는 것을 삶의 충분조건으로 두죠. 행복의 가장 최소 단위의 기준을 알면 그 이외에 얻는 것은 보너스처럼 느껴져요. 얻으면 기분 좋지만, 그렇지 못해도 나쁠 건 없으니까요.”

“집의 각 창으로 살구나무, 단풍나무, 감나무가 보여요. 도심 속에서 나무 세 그루를 품고 살다니요! 곧 살구가 열리는데 양이 어마어마해서 주변 사람과 부지런히 나눠야 한다고 아랫집 이웃이 신신당부하더라고요. 그러니 기자님도 꼭 오셔서 가져가세요!” 뒤이어 다른 계절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물론 겨울은 한 차례 경험했지만, 지난번엔 화로에 군고구마나 채소구이를 해 먹지 못하고 넘긴 게 아쉬워 이번에 꼭 해보려 한다고. 뺨과 입꼬리를 봉긋 올린 채 솜사탕처럼 부푼 마음을 말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본래 산다는 건 절벽 같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의 불안 사이에서 외줄 타는 일인 줄 알았건만⋯. 위태로운 줄에서 내려와 현재에 두 발을 딛고, 과거를 양분 삼아 희망을 맺는 삶은 이토록 찬연하다. 

글 양혜연 기자 | 사진 맹민화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