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젠타 컬러 재킷과 플라워 셔츠를 이렇게 탁월하게 매치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볼드한 컬러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 그림은 아티스트 세르조 피오렌티노Sergio Fiorentino 작품.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 가장 도전적인 클라이언트는 ‘자신’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스타일을 탈피해 좀 더 실험적인 도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스타일을 잘 보여줄 수 있는 본질에 집중할 것인지를 시작으로, 매 순간 최고의 결정을 내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적당히 넘어가는 일도 없지만,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일도 없어야 한다. 밀라노 출장 때마다 혼자 거주하던 집을 개조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는 처음으로 ‘무작정 뛰어드는 마음’을 느꼈다.
갤러리 같은 현관 복도에서 거실을 바라본 모습. 문을 제거하고 컬러 문틀을 달아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흥미로운 긴장감을 안겨 주었다. 거실 전체를 장식한 테라코타 컬러는 빛을 받으면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처럼 느껴진다.
모순과 변화의 긍정 효과
친구들 사이에서 MV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물병자리 여인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è bella)>의 촬영지 아레초Arezzo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대를 이어 보석 세공업을 해온 가족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디자인을 익히며, 예술품이 인간의 욕망·소망·심리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가족들은 그가 예술을 전공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법학을 선택했다. 감성적인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성적인 환경도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저는 참 모순이 많은 사람이더라고요. 변덕을 싫어하지만 변화는 좋아하고, 면밀한 계획을 세우지만 즉흥적 결정에 익숙해요. 이런 양면적 태도를 집에 고스란히 담기로 했어요.”
자신을 깊이 탐구한 결과, 개조 프로젝트의 핵심을 ‘긍정적 기복’으로 정했다. 감정 기복이 심하지 않은 사람도 매일 다른 기분으로 살아간다. 날씨가 갑자기 맑다가 비가 내리듯, 수시로 바뀌는 마음 상태를 디자인 언어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각각 다른 색으로 변화하면서도 가구와 소품까지 적절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여러 가지 색상이 충돌하기보다는 적절히 융합해 깊은 인상을 주는데, 이는 균등한 비율 덕분이다. 깊고 진한 이브 클라인 블루는 다이닝 공간에서 시작해 거실의 천장을 거쳐 침실의 미술 작품으로 이어진다. 직선, 육각형, 원형 등의 기하학적 구조는 문밖의 계단에서 각 공간에 배치한 가구로 확장된다. 소재도 다양하다. 금속·유리·레진·나무 등이 교차하며, 그의 공간에는 ‘반짝이다’ ‘부드럽다’ ‘매끈하다’ ‘따뜻하다’와 같은 다양한 형용사가 등장한다.
거울 상판의 장식장, 마몰리 밀라노Mamoli Milano의 조 폰티Gio Ponti 디자인 탭 등 섬세함이 돋보이는 욕실 내부. 천장에 매달린 데다Dedar의 패브릭 블라인드를 내리면 사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심리를 파고드는 벽
“보통 디자이너들은 전형적인 형식과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해요. 이는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는 다르게 풀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이런 오류와 난제를 피하기 위해, 현실에서 가능한 소재를 사용해 시공자와 함께 디자인 도면을 만들고 가구도 직접 제작했어요.”
공간 수치에 따라 손수 제작한 가구 중에는 거울 소재로 만든 침실도 있다. 거울과 유리 소재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는데,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조각품처럼 공간마다 달라지는 바닥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그의 완벽주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의 프로젝트에서 빠질 수 없는 특징은 독특한 컬러다. 그는 컬러가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컬러 심리학을 오랫동안 탐구했다. 사람들이 특정 분위기를 조성하고,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컬러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아티스트 세르조 피오렌티노 작품 속 이브 클라인 블루 컬러가 다이닝룸 전체에 흐른다.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는 “파도처럼 격정적인 감정과 얼음처럼 냉철한 이성을 동시에 지닌 매력적인 컬러”라고 표현한다. 가구는 직접 제작한 것으로, 소실점에 두고 다른 물건이 시선을 방해하지 않도록 했다.
케라콜 컬러 컬렉션Colour Collection의 ‘KK12’ 블랙 컬러로 바닥, 천장, 벽을 마감해 공간이 한층 넓어 보인다. 개조 작업 중에 나온 판자를 활용해 수직 구조를 강조한 맞춤 가구를 만들었다.
혼자이면서 모두를 위한 공간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은 작업 이상으로 품을 들이다 보니 경제적 비용이 한계로 다가왔다. 구조를 변경하려 했지만 냉철한 판단 끝에 눈앞에 보이는 벽을 개방해 공간을 넓히는 대신 공간을 촘촘히 분절하는 역발상을 시도했다. 욕실과 주방이 좋은 예다. 다른 공간과 달리 문을 남겨두었는데, 문을 닫으면 집과 완전히 분리되어 제삼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벽 하나를 포인트 컬러로 칠하는 전형적 방식 대신 창문과 천장, 천장과 벽을 연결해 페인트를 칠하는 것 또한 공간 규모를 착각하게 만드는 한 수.
“워낙 타인의 집을 많이 디자인해봤기 때문인지 ‘내 집에는 이렇게 하지 말자’라고 생각한 것이 몇 가지 있었어요. 우선 창문 방향이나 벽에 맞춰 가구를 배치하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벽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잖아요? 여기, 모든 테이블은 동선상에 놓여 있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혼자 사는 집 치고 다양한 모양, 높이, 스타일을 지닌 의자가 많다는 것이다. 방향도 모두 제각각이라니. “혼자 있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도 필요한 제 바람이 담겨 있어요. 의자는 또 다른 저의 자아라 할 수 있죠. 카멜레온 같은 성격을 지닌 저를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대화하듯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죠.”
혼자 있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도 필요한 자신의 기질을 반영해 다양한 크기와 스타일의 1인용 의자를 곳곳에 배치했다. 정면에 플로스Flos의 아킬레&피에르 자코모 카스틸리오니Achille and Pier Giacomo Castiglioni 테이블 조명이 멋스럽게 놓여 있다.
사진 Helenio Barbetta
- 변화무쌍한 물병자리 여인의 보금자리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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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이 잦은 생활에 맞춰 밀라노에 자신만의 공간을 마련해 개조하기로 결심한 인테리어 디자이너 마리아 비토리아 파지니. 매 순간 올바른 결정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솔직한 자신과 마주하기로 했다. 날씨처럼 수시로 바뀌는 마음 상태를 디자인 언어로 표현한 집에서는 수만 가지 감정이 휘몰아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