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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Thulstrup 건축가 데이비드 툴스트럽의 코펜하겐 하우스
한국에서는 골프웨어 브랜드 제이린드버그 플래그십 스토어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처음 알려진 건축가 데이비드 툴스트럽은 런던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노마Noma, 이코이Ikoyi 같은 F&B 공간은 물론 리폼Reform, 뫼벨Møbel 등 가구 브랜드와 함께 제품까지 작업하는 전방위 디자이너다. 그에게 코펜하겐의 집은 파트너와 함께 생활하는 안식처이자 자신의 디자인으로 직접 쌓아 올린 공간이다. 거실 테이블부터 바닥, 아일랜드 주방까지 좋아하는 방식으로 고이 채워 그만이 만들 수 있는 풍경을 지어냈다.

그가 디자인한 아일랜드 주방 가구 앞에 선 건축가 데이비드 툴스트럽. ⓒIdris Jason
블라인드를 통해 들어온 빛이 은은하게 스며든 주방의 풍경. 빛이 더해진 공간은 마치 한 폭의 정물화 같다.
덴마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툴스트럽은 재료의 물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방식으로 미니멀한 공간을 짓는 건축가다. 미니멀하다고 하면 언뜻 쉽고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디자이너가 재료와 디테일은 물론 빛이나 소리 같은 환경까지 치밀하게 조율한 끝에 비로소 완성된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오케스트라와 같다고나 할까. 그의 손을 거쳐간 장소는 도화지처럼 단정한 배경 위에 각기 다른 소재의 색감과 질감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뤄 고유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다이닝룸에서 보이는 주방과 거실.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 있던 공간을 모두 연결해 하나의 열린 장소를 완성했다. 덴마크 가구 브랜드 리폼Reform의 의뢰로 디자인한 아일랜드 주방 가구 ‘플레이트Plate’는 알루미늄 캐비닛과 스테인리스 스틸 조리대를 결합한 제품.
그는 2018년, 코펜하겐의 아마게르Amager에 위치한 아파트를 구입해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사는 집으로 꾸몄다. “코펜하겐 하우스는 단순히 집을 옮기는 것 이상으로 삶의 새로운 국면을 시작하는 것과도 같았어요. 이 집으로 오기 전, 우리는 집에 있던 가구와 예술 작품, 책 등 대부분의 물건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주방부터 의자, 소파, 테이블까지 직접 디자인한 아이템으로 채웠죠. 이곳에서의 삶은 미니멀리즘의 실현이자 제가 디자인한 제품이 어떻게 쓸모를 발휘하는지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1920년대에 지은 아파트는 이전 주인이 40년 동안 거주하며 낡을 대로 낡은 상태였다. 140m2 규모의 공간은 데이비드 툴스트럽의 디자인을 입고 완전히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했다.


거실에는 모카 색상의 양모 패브릭과 빨간색 프레임을 조합한 무너Mooner 소파, 뫼벨의 의뢰로 디자인한 폰트Font 컬렉션의 라운지 체어가 마주 보고 있다. 모두 데이비드 툴스트럽의 작품.
코펜하겐 하우스를 보고 첫 번째로 떠오르는 단어는 정물화다. 군더더기 없이 말끔하게 면을 정리하고 매트한 질감으로 하얗게 칠한 벽과 천장은 캔버스가 되고, 그 위로 그가 택한 소재와 아이템이 놓여 있다.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스틸, 패브릭 등 여러 소재가 제각기 목소리를 내지만, 서로 부딪치지 않고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공명한다. 이들 조합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바로 빛이다.

“메인 아이디어는 집에 가능한 한 많은 빛을 들이는 것이었어요. 그 장면을 만들기 위해 아파트를 전면 개조했죠. 원래는 복도가 길게 나 있고 작은 방 여러 개가 나타나는 구조였는데, 벽을 허물고 현관과 주방 그리고 다이닝룸과 거실을 모두 연결해 하나의 커다란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침실에도 문 두 개를 설치하고 낮에는 열어두어 채광을 최대한 확보했어요.”


다이닝 테이블은 그가 아끼는 소장품인 헤르타 벵트손Hertha Bengtsson의 도자기 컬렉션에서 영감을 받아 타원형 접시 형상을 모티프로 디자인하고 검은색 스틸로 제작했다. 의자는 폰트 컬렉션의 스툴.
시야를 가로막는 벽 없이 탁 트인 공간은 집보다는 스튜디오처럼 느껴진다. 다이닝룸과 주방 또한 사이에 있던 벽을 없애고 하나로 합쳤다. 이곳을 중심으로 여러 공간이 교차하면서 다이닝룸은 집의 핵심 장소가 됐다. “주방과 거실은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이에요. 다른 곳에 있더라도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으면 했고, 손님이 왔을 때도 분리된 공간을 오가며 대화가 끊기고 싶지 않았기에 하나로 연결했습니다.”

벽을 없애고 창을 넓혀 한 땀 한 땀 확보한 빛을 연출하는 도구는 바닥까지 닿는 길이로 설치한 블라인드다. 블라인드는 시야를 조절해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것은 물론, 창을 통해 자유롭게 쏟아지는 빛에 리듬감 있는 그림자를 만든다. “집의 풍경에 그림자가 함께 내려앉으며 빛의 존재감은 한층 드러납니다. 블라인드 뒤에는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이 디자인한 글로볼Glo-ball 조명을 설치했어요. 덕분에 저녁에는 아늑한 분위기가 가득합니다.”



아일랜드 주방 가구의 재료인 알루미늄을 복도 파사드에 적용해 나타날 공간을 미리 예고한다. 벽면에 걸린 작품은 조각가 칼 에밀 야콥센Carl Emil Jacobsen의 ‘Don’t Know What Shape I’m In’.
삶과 그 삶을 담는 그릇이 같은 방향으로 수렴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다. 데이비드 툴스트럽과 그의 파트너는 더 이상 이곳에 살지 않지만, 코펜하겐 하우스에서 살아본 경험은 두 사람의 기억에 깊이 각인되었다. “살고 싶은 공간을 직접 결정하고 지어본 경험은 일상을 크게 변화시켰어요. 비로소 집(home)에서 산다는 느낌이 들었고, 아침에 이곳에서 눈을 뜨고 저녁에는 집에 돌아오는 순간을 늘 고대했습니다.”


사진 이리나 보어스마Irina Boersma

글 정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