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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ew Roberts 동서양이 공존하는 갤러리 하우스
영국에서 자동차 브랜드 컨설턴트로 일하던 앤드류 로버츠는 2021년, 현대자동차 글로벌 PR팀에 합류하게 되면서 가족과 함께 서울로 거처를 옮기는 모험을 했다. 그들이 서울에서 찾은 집은 이제 가족의 생활과 취향을 고루 품은 스위트 홈이 됐다.

거실에 자리한 수많은 가구와 예술 작품, 그리고 칼한센앤선Carl Hansen & Søn의 CH445 윙 체어에 앉아 있는 앤드류 로버츠. 가운데 아이보리색 의자는 그가 가장 애정하는 가구로 꼽은 버토이아 버드 체어다.
“서울의 첫인상은 말 그대로 ‘텅 빈 공항’이었어요.”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던 2021년 8월, 앤드류 로버츠Andrew Roberts는 그의 부인 엠마와 두 아들 조지, 샘과 함께 한국에 왔다. 앤드류 로버츠는 20대에 영국의 자동차 전문 잡지 <오토카The Autocar>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하며 처음 자동차업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재규어 랜드로버, 벤틀리 등 굵직한 브랜드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현대자동차 글로벌 PR팀의 상무직을 제안받았다.

“평소 현대자동차의 자신감 있는 태도와 역동적 분위기를 존경해온 터라 제안을 받은 것이 무척 기뻤어요. 한국이라 더욱 흥미로웠고요. 가족 모두 한국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팬데믹 기간이었기에 다 함께 거처를 옮긴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지만, 잠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보며 이곳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더 알아가고 싶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고 아내 엠마가 한국의 지인과 영어 대화 모임을 하기도 하는 다이닝 공간.
2백50년 되었다는 푸줏간 도마 테이블 위에 영국 브랜드 루악오디오의 스피커, 그의 할아버지 리처드 로빈스가 빚은 작품이 놓여 있다. 벽면의 그림도 리처드 로빈스의 작품.
그렇게 그들은 한국에 새 둥지를 틀었다. 새로운 도시에 오면 익숙하던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버스와 지하철을 자유롭게 환승하는 통합 교통 시스템, 공원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받침대를 대어주는 세심함, 지하 5층에서 30분 넘게 통화해도 끊기지 않는 통신망, 정시에 도착하는 택시, 늘 친절하고 호의적이던 수많은 한국인까지. 한국이 주는 크고 작은 놀라움을 경험하며 영국에서 온 4인 가족은 서울 생활에 적응해갔고, 대중교통으로 아들과 학교 등교하기, 쿠팡이츠 앱으로 음식 주문하기, 한국에서 살 집 찾기 등 다양한 미션을 완수한 끝에 지금의 집에 안착했다.

“영국에서는 오래된 헛간을 개조한 넓은 집에서 살았던 터라 이곳에서도 면적이 여유 있는 집을 찾았어요. 우선 서래마을이라는 동네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동네 제과점에서 파리에서만큼 맛있는 크루아상을 먹을 수 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분위기도 좋았고요”


다이닝 공간의 볕 잘 드는 창가에 자리한 허먼밀러의 넬슨 스웨그 레그Nelson Swag Leg 데스크.
영국 풍경을 그린 리처드 로빈스의 그림과 한국의 달항아리가 나란히 놓여 있다.
교외의 별장처럼 시원시원한 공간감과 양방향으로 창이 나 있다는 조건에 마음을 뺏겨 택한 집은 2년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의 완벽한 보금자리로 변모했다. 현관에 들어서면 왼편으로는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구분한 영역에 두 아들을 위한 거실과 방을 별도로 마련했고, 오른편 복도를 따라가면 거실과 다이닝 공간, 서재가 한눈에 펼쳐진다. 한쪽 창으로는 멀리 산이 내다보이고, 반대편 다이닝 공간에 난 창으로는 나무와 덩굴이 정원을 이뤄 온통 초록이 가득. 서재는 벽 없이 거실과 이어지지만, 짙은 색 목재 문과 책장으로 자연스레 영역이 나뉜다. 또 하나의 문을 지나 가장 안쪽에는 안락한 침실이 자리한다.

그러나 탁 트인 공간과 풍부한 채광도 좋지만, 이 집의 진정한 묘미는 이곳을 채운 수많은 예술 작품과 가구다. 심지어 그중 다수는 화가이자 조각가인 그의 할아버지 리처드 로빈스Richard Robbins가 그린 그림과 조소, 여동생이 취미로 만든 소 모양 오브제 등 가족의 작품이다. 이 외에도 책을 매개로 작업하는 영국의 작가이자 예술가 할랜드 밀러Harland Miller의 작품 ‘Happiness: The Case Against’, 영국 팝아트의 창시자로 일컫는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의 ‘I ♥ Bentley’ 등 영국에서 건너온 작품이 가득하다.


영국의 화가 피어스 오티Piers Ottey와 리처드 로빈스의 그림이 걸린 침실.
가구도 마찬가지. 영화 <툼 레이더>에 등장한 그 제품이라는 임스 라운지체어 앤 오토만, 2백50년은 족히 되었다는 앤티크 가구인 두껍고 둔탁한 푸줏간 도마 테이블 등 수많은 가구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가구 하나하나에 대해 누가 만들었고,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드는지, 기억을 더듬어가며 들려주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컬렉터다. 심지어 한국에 와서도 더콘란샵·루밍·오드플랫 등 유명한 가구 숍을 섭렵했고, 때로 꼭 살 아이템이 없어도 가구를 구경하러 방문하기도 한다고.

“자동차 분야에서 일하게 된 것도 디자인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어요. 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눈길을 끄는 가구가 있으면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무조건 찾아봐요.”


재택근무를 할 때 애용하는 서재. 영화 <툼 레이더>에 등장한 임스 라운지체어가 주인공처럼 놓여 있다.
그가 고른 가구와 예술 작품, 식물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거실 풍경.
그가 요즘 특히 애정하는 의자는 거실에 놓인 놀Knoll의 버토이아 버드Bertoia Bird 체어. “1952년 디자이너 해리 버토이아가 디자인한 의자인데, 새의 모습을 닮아 버드 체어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등받이가 몸의 곡선에 맞춘 형태라 앉으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편안합니다. 주말 아침에 이곳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것이 큰 기쁨이죠.” 이 의자가 얼마나 안락한지 알려주기 위해 그는 직접 앉아보더니 우리를 한 명 한 명 몸소 앉혀보기까지 했다.

“이곳을 완전히 우리 집처럼 느꼈으면 했기 때문에 영국에서 사용하던 가구 대부분을 가져왔어요. 물론 여기 온 뒤에 많이 사기도 했지만요.(웃음)” 그의 말대로 2년을 보낸 집은 평생 살아온 듯 그들의 취향과 애정으로 잔뜩 버무려져 있다. 그의 할아버지가 영국의 풍경을 그린 그림과 한국의 달항아리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처럼, 이들 영국인 가족의 삶도 서울에 나날이 아름답게 뿌리내리는 중이다.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