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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in Crooks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의 환대
서울 안의 또 다른 영토. 보기 드문 빅토리아 양식의 원형을 간직한 영국 대사 관저에서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를 만났다. 홍차의 나라, 정원의 나라, 박물관의 나라에 관한 힌트와 한국인보다 ‘한반도’를 더 잘 아는 그의 서울 라이프에 대해.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주한 영국 대사관에서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1999년 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방한 당시 총괄 기획을 담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주북한 영국 대사로 평양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2월 주한 영국 대사로 부임했다. 남과 북에서 모두 근무한 유일한 대사로,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지녔으며 한반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19세기 말에 건립한 대표적 서양 건축물 중 하나인 영국 대사 관저. 콜린 크룩스 대사는 대사 관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정원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2층의 테라스를 꼽았다. 테라스에서 그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정원 모습뿐만 아니라 매일매일 일어나는 세상의 작은 변화를 감상한다.
“안녕하세요. 콜린 크룩스Colin Crooks입니다.”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가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 그가 <행복> 팀을 맞이한 영국 대사 관저는 덕수궁 옆에 위치한 빅토리아 양식의 2층 저택이다. 그 자체로 역사인 이 건물을 1890년에 지은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관저로 사용하고 있다. 1층에서는 크고 작은 행사가 열리고, 2층은 대사가 생활하는 공간. 찰스 3세 국왕의 초상화가 걸린 현관을 지나 1층 다이닝룸으로 들어가자 향긋한 홍차 향이 느껴졌다.

“차는 영국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상징입니다. 상황에 따라 차를 마시는 의식은 환대의 행위, 조용한 휴식의 순간, 누군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위로하거나 아침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콜린 크룩스 대사는 평소 대사 관저에서 차 한잔과 함께 많은 회의를 주최한다. “손님들을 환영하는 아주 영국적인 방식이라 저는 요즘 제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차를 마십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마신 차 한잔처럼 말이다.


1층에는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응접실 두 개가 있다. 이곳은 첫 번째 응접실로 그레이 계열의 소파와 베이지 컬러의 커튼이 밝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다이닝룸의 넓은 창 너머로는 아름다운 정원이 보인다. 넓은 잔디밭을 둘러싼 장미와 덤불, 나무가 영국식 전통 정원과 흡사하게 설계되었다. 영국인은 많은 시간과 애정을 들여 정원을 가꾸고, 이를 자랑스럽게 여기기에 콜린 크룩스 대사는 정원을 보며 고향을 떠올린다. 그는 정원이 마치 “한국의 수도 중심에 있는 영국의 오아시스와 같다”고 말한다. 물론 정원에는 한국의 기후에 적합한 식물도 자라고 있다. 그는 정원 끝에 있는 벚나무를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역사를 지닌 식물로 꼽는다.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빈 방문 중에 심은 나무입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여왕의 방문을 준비하던 당시의 향수를 불러일으키죠.”

시간이 날 때면 정원을 산책하거나 세계 제일의 독서열로 유명한 영국인답게 독서를 즐긴다는 콜린 크룩스 대사. 그에게 지금 읽고 있는 책에 관해 물었다. “요즘 저는 영국 작가 조너선 코Jonathan Coe에 빠져 있습니다. 지금은 그의 최근작 <본빌Bournville>을 읽고 있지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영국의 한 가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와 같은 북아일랜드 출신인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의 시 또한 항상 좋아했습니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다이닝룸. 최대 스무 명이 한자리에서 정찬을 즐길 수 있다. 창가에 걸린 작품은 오성철 작가의 ‘실체와 그림자’(2016)이다.
그렇다면 예술과 문화의 도시 런던에서 꼭 봐야 하는 것과 즐겨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런던의 문화 및 관광 명소는 매우 많고 다양해서 그 어떤 취향에도 딱 맞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이드 파크와 리젠트 파크 같은 아름다운 공원과 빅 벤, 타워 오브 런던 같은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있지요. 런던의 박물관은 세계 최고의 예술 컬렉션과 역사적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대부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그는 런던 외 지역도 탐방하기를 권한다. “아름다운 건축물과 매혹적 역사, 독특한 문화가 살아 있는 벨파스트, 맨체스터, 배스 같은 환상적인 도시를 추천합니다. 시골 지역 또한 아주 멋집니다. 여행자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하이킹을 즐기고, 스코티시 하일랜드에서 스카치위스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는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독특한 건축물이 더욱 자주 눈에 띈다.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의 한국타이어 테크노돔,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의 아모레퍼시픽 사옥, 그리고 서울시에서 검토 중인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의 노들섬 사운드스케이프! 영국의 건축가와 디자이너가 세계에서 활약하는 데에 영국인의 어떤 DNA가 작동한 것인지 궁금했다.

“영국의 디자이너와 건축가는 독특한 재료나 대담한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기존 관습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있기에 시대를 앞서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영국 건축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영국의 도시들은 서로 다른 시대의 다양한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혼합되어 존재합니다.” 그가 명쾌하게 설명한다.



대사 관저 곳곳에 영국 정부의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북아일랜드에서 자라면서 국경과 분단이라는 정치적 이념에 항상 매료됐다는 콜린 크룩스 대사는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처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90년대 첫 외교사절로 한국에 와 고국과 비슷한 모습을 발견한 그는 이후 한국과 영국이 공유하는 특별한 순간에 늘 함께했다. 1999년 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방한, 찰스 3세 대관식···. 2022년 2월 주한 영국 대사로 부임하기 전 주북한 대사로 평양에 머무른 것은 콜린 크룩스 대사의 이력에 남은 남다른 이정표로, 남한과 북한의 대사를 모두 수행한 사람은 현재까지 그가 유일하다.

개인 SNS 프로필에 적힌 “한반도를 제일 사랑하는”이라는 소개글 그대로 평양에서 즐겨 먹던 음식, 가장 좋아하는 서울의 한옥(그는 안국동에 위치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집을 가장 좋아하는 한옥으로 꼽으며, 그곳에 초대받을 때마다 항상 기쁜 마음으로 참석한다고 덧붙였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부인 김영기 여사와 함께 집에서도 한식을 먹는다는 영국 사람, 콜린 크룩스 대사. 그는 한국 생활에서 느낀 영국과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묻는 질문에도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두 나라에서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보내 문화적 차이를 느끼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며 “한국에서도 매우 편안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콜린 크룩스 대사는 한국에 온 후 “등산에 대한 취미가 열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환상적 경관과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이 매력적이라고. 특히 서울처럼 북적이는 도시의 한가운데서 한 시간여 만에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한다.
올해는 한·영 수교 1백40주년이다. 이것이 “두 나라의 우정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되돌아보며 앞으로 어떻게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어준다”고 말하는 콜린 크룩스 대사는 지난 상반기를 이렇게 회상한다.

“대사관은 한 해 동안 최대한 많은 협력 분야에서 1백4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주목한 전시와 행사(프리즈 서울)를 통해 영국 최고의 예술을 선보였고,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기념해 영국 참전 용사들의 방한을 기획하고 여러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이곳 관저에서는 박진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해 많은 한국인 관계자분과 찰스 3세 국왕의 대관식을 축하하고, 부산에서는 국왕 생신 축하연을 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행사가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연말에는 한국과 영국 두 나라 모두에 아주 특별하고 매우 기억에 남을 만한 자리를 기획 중입니다.”

글 김혜원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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