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성 작가는 금속으로 일상의 오브제를 만드는 공예가다. 차가운 금속은 그의 손을 거쳐 독특한 비정형 형태와 섬세한 텍스쳐를 입고 따뜻한 작품으로 변모한다.
농담처럼 반복, 강조하는 우리 집의 가훈이 있다.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루앙프라방으로 떠난 지난 가족 여행에서 애들이 쭈뼛쭈뼛 영어로 인사도 못 하고 화장실이 어디인지도 물어보지 못하는 걸 보면서 “그냥 해봐. 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잔소리를 했는데, 입에 착착 붙는 느낌이 썩 괜찮았다. 그 뒤로 애들이 주저할 때마다 “해보면?” 내가 먼저 운을 띄우면 아이들이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대꾸를 하게 했다. 우연찮게 정말 좋은 말을 찾은 것 같아 여행 내내 기분이 좋았다(애들 표정은 당연히 안 좋았다).
작업에 사용하는 거푸집 유닛을 정확하게 계산해 레이저 커팅한 듯 반듯한 파사드. 그 위에 조각처럼 얹은 스테인리스 스틸 물받이와 황동 조명은 김현성 작가의 작품이다.
가평에 새로 마련한 김현성 작가의 작업실 겸 쉼터. 인터뷰를 마치고 뒷마당에서 예초기 정보를 교환하다 작가가 말했다. “막연하고 아득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더라고요. 건축가와 저의 협업 같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는 김현성 작가의 감각과 아이디어도 많이 들어가 있다. 진입로에 콘크리트를 부어 런웨이처럼 길게 길을 내고, 한쪽을 반달처럼 둥글게 처리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마당 한쪽에는 토마토와 가지를 심고 마당에는 잔디를 깔아 콘크리트 외벽의 집에 색채를 더했다.
작은 숲과 산을 끼고 있는 이 집을 보면서 절감한 것이 두 가지다. 첫째는 외장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결정하는 게 외장재인데, 예산에 결박되다 보면 점점 가격이 낮은 재료만 찾게 된다. 이 집의 성공 포인트는 외장재로 노출 콘크리트를 적용했다는 것. 저렴한 재료는 아니지만 김은숙 작가가 <미스터 션샤인>에서 말했듯 “길은 늘 있다”. 김사라 건축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활용 거푸집을 사용했다. 가로 8.4m, 세로 4.2m의 파사드(전면)를 포함해 건물 전체에 들어간 콘크리트 거푸집은 약 3백 장.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 건물처럼 표면이 매끈하지는 않지만(그는 왁스 코팅해 단면이 부드럽게 찍혀 나오는 제품을 사용한다) 군데군데 ‘흉터’가 있어 더 강인해 보인다. 거푸집의 장당 규격은 가로 60cm, 세로 120cm. 유닛 각각이 조적식 벽돌 건물처럼 덩어리를 이뤄 단정하면서도 견고한 모습이다.
전면을 시멘트 블록으로 마감해 바깥에서 쳐다보는 시선을 차단하는 대신 양옆으로 큰 창문 두 개를 내어 개방감과 고즈넉함을 구현한 내부.
두 번째는 금속의 힘. ‘열린 결말’의 집을 지으며 김사라 건축가는 ‘그저’ 심플하되 아름다운 바탕을 짓는다고 여겼고, 그 바탕 위에 김현성 작가의 금속 오브제가 더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흡족.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굵직한 세 가닥 줄이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레인 체인rain chain 위의 물받이, 현관문 위로 붙인 황동 조명이 디테일을 넘어 하나의 구조체로 제 역할을 한다. 사각 건물에 금속 오브제가 반짝이는 모습. 후가공하지 않아 날것의 질감이 도드라지는 스테인리스 스틸 문 위에는 나무를 동그랗게 굴려 만든 손잡이를 달았다. 역시 김현성 작가의 작품으로 냉장고 위 선반, 화장실 휴지 걸이, 오디오 거치대를 포함해 구석구석에 금속 작품이 들어가니 르코르뷔지에의 공간처럼 ‘모던함’이 넘친다.
스테인리스 스틸과 황동으로 만든 오디오 거치대 및 의자는 그 자체로 가구이자 설치미술이다. 한 살이 채 안 된 새끼이던 때부터 함께 살고 있는 리트리버 ‘달리’도 몸체가 큰 조각 같다.
김현성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뒷마당. 아연 골강판 지붕으로 처마를 길게 빼내어 놀며, 쉬며, 작업도 하는 제법 널찍한 공간을 확보했다.
“금속공예라고 하면 망치질하는 노인이나 장인을 떠올리는데, 우리 공예도 충분히 젊어질 수 있어요. 전통 공예 방식을 유지하되 디자인이나 조형적 부분에서 현대적으로 접근하면 됩니다. 고리타분하지 않은 금속공예를 보여주고 싶어요.” 10년 전,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후 <월간디자인>과 인터뷰에서 김현성 작가가 한 말이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김현성 작가는 그렇게 모던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조명과 가구까지 작업의 볼륨과 영역도 훌쩍 커졌다.
“우리에게도 유의미한 포트폴리오가 될 것 같아요”라며 이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가 김사라는 미국의 오래된 사립 예술대학 로드아일랜드 디자인 스쿨에서 실내건축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의 ‘OBRA Architects’와 조병수 건축연구소에서 경력을 쌓다 8년 전 독립했다. 공간과 건축이 감각은 물론 인식의 지평을 새롭게 구축하거나 넓혀줄 수 있다고 믿는다. 하이데거의 저서 <예술작품의 근원>에 이런 문장이 있다. “인간은 일으켜 세우려 하고, 자연은 대지로 되돌리려고 한다.” 아티스트 이우환의 ‘관계항’ 시리즈에 영감을 준 글귀인데, 건축의 정의로도 손색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스테인리스 스틸 문과 캐노피, 그리고 황동 조명이 이렇게 잘 어울린다. 손잡이도 김현성 작가의 작품으로, 공간 곳곳에 그가 만든 금속 오브제와 세간을 위트있게 설치했다.
“프로젝트 이름이 ‘열린 결말’인 것이 앞으로(가정을 꾸려 살) 본집을 가이드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건물 측면에 시멘트 블록으로 마감한 부분이 있는데, 안팎의 선을 딱 맞춰서 언제든 쉽게 허물 수 있어요. 새로 짓는 건물과 빠르고 효율적으로 ‘도킹’이 가능하죠. 지붕에는 부러 방수 페인트를 칠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옆으로 높은 집이 들어올텐데, 회색이나 녹색 지붕을 보면서 일어날 순 없잖아요.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양생하는 과정에서 제물치장을 가미해 쇠흙손으로 물이 빠질 때까지 콘크리트 표면을 꾹꾹 눌러주면 강도가 높아지면서 자연 방수가 되는데, 그 방법을 적용했어요. 천장고는 의도적으로 높였고, 자연광이 부드럽게 퍼지면 좋겠다 싶어 상부에 창문을 달았고요. 우리 사무실이 추구하는 키워드가 있어요. 인식과 불확실성, 그리고 물성. 처음에는 창문과 계단이 있네 하고 그냥 지나치지만, 반복해서 보고 밟고 느끼다 보면 어느새 인식이 되지요. 쓸모의 포인트와 영감의 원천은 어쩌면 불확실해요. 본연의 물성이 드러나는 건축이 아름답고요. 생각과 감각을 플랫하게 만드는 건축을 경계합니다.”
과감함도 눈에 띈다. 전면을 창 하나 없이 막아버린 결단이 대표적이다. “전면으로 창이 열리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 힘들 거라 판단했어요. 김현성 작가에게 언젠가 가족이 생기더라도 ‘분리되는’ 시간과 삶이 있으면 좋잖아요.(웃음) 그런 상상을 하면서 과감한 선택을 했습니다. 하지만 답답하지 않아요. 옆으로 창을 크게 내 숲과 산이 시원하게 보이거든요.” 고정값을 최대한 두지 않고 여기저기 큰 숨구멍처럼 ‘보이드’를 만들어 넣은 건축. ‘열린 결말’의 집은 그 유연한 사고로 애정의 유효기간이 더 길 것 같다.
김사라 건축가와 다이아거날 써츠 건축
인식과 불확실성, 그리고 물성을 핵심 키워드로 작업하는 건축 연구소이자 집단. 집과 상공간은 물론 대지 위 설치미술 같은 파빌리언 프로젝트, 다른 행동을 불러오는 가구와 오브제, 몸과 공간을 주제로 한 영상까지 다양한 작업을 한다. 김사라 대표는 한국에서 공업디자인을, 미국에서 건축과 실내건축을 공부했다. www.diagonal-though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