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ign house

집은 가족의 보금자리이자 세계 각국의 미술 전문가들이 머무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닥스훈트 반려견 말론을 안고 있는 마티외, 딸 엘로이즈, 아내 모라이마.
미로 같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에는 야외 수영장과 야외 정원이 있다. 명당 자리에 그의 베스트 프렌드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이 카펠리니를 위해 디자인한 싱킹 맨스Thinking Man’s 체어를 두었다. 
“한국 매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죠.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수상자로 국립현대미술관, 아트선재미술관, 보안여관 등에서 전시를 열면서 한국을 방문했거든요. 편의점에서 소주잔·젓가락·대나무 김말이·빨간 고무장갑 등 신기한 생활용품을 봤는데, 언젠가 이를 작업에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슈퍼마켓에서 간단히 살 수 있는 평범한 물건으로 작품을 만들고, 현대와 전통을 위트 있게 연결하고 다시 비트는 통쾌한 작업을 하는 마티외 메르시에. 플라스틱컵, 손전등, 정리함 등을 이용해 만든 피터르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떠올리게 하는 선반 작품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그는 전시가 열릴 때마다 현지 동네를 돌아보고, 생활품을 둘러보려 시장을 방문한다. 그가 뜬금없이 스페인, 그중에서도 한적한 소도시 발렌시아Valencia와 인연을 맺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전시로 처음 방문하게 되었죠. 시끌벅적한 미로 같은 구시가지를 벗어나면 고요한 산과 바다가 나타나고, 16세기 건물과 바로크 스타일 투리아Turia 정원 사이에 착륙을 앞둔 우주선 같은 모습의 현대 아트 센터가 툭 튀어나오는 등 반전 가득한 드라마 같은 도시였어요. 게다가 빈집투성이였죠.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어요.”

안무가로 활동하는 아내 모라이마 겟만크Moraima Gaetmank는 그의 대답을 좀 더 솔직하게, 객관적 설명을 추가해서 전했다. “발렌시아 바리오 델 카르멘Barrio del Carmen 마을은 로마 시대부터 지은 각종 건축물로 가득한 곳이에요. 그런 역사적 장소가 쓰레기와 그라피티 낙서로 채워지고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모습을 보자, 돈과 욕심이란 바이러스로 종말을 맞이하게 될 우리 미래를 목격한 것 같았대요. 예술가는 예술로써 변화를 촉발해야 하는 행동가이니 사람들에게 이런 위기를 알려야겠다고 하더군요.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집을 옮겨야겠다고요.”


부엌은 가장 품을 많이 들인 공간이다. 손님과 가족이 함께 어울리면서 요리하고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다이닝 테이블과 부엌 개수대 선반 사이 경계를 없앴다. 테이블은 직접 디자인한 후 목수에게 제작을 부탁했다. 군더더기 없는 우드 테이블에 장 프루베Jean Prouvé의 스탠다드 체어, 부홀렉Bouroullec 형제가 플로스를 위해 만든 에임Aim 조명을 드라마틱하게 매치했다.

벽에는 매슈 맥캐슬린Matthew McCaslin의 시계 작품 ‘나우 앤 웬Now and When’이 걸려 있다. 안드레아 브란치Andrea Branzi가 아르키촘Archizoom 어소시에이티를 위해 디자인한 1960년대 수페론다Superonda 소파, 아티스트 마이크 켈리Mike Kelley의 가방과 볼링공 작품이 바닥에 놓여 있다.
시선이 닿는 데까지가 나의 집
그는 바리오 델 카르멘 마을 내 1790년대에 지은 허름한 건물 한 채를 찾았다. 아내 모라이마Moraima, 딸 엘로이즈Eloise, 닥스훈트 반려견 말론Marlon과 함께 사는 보금 자리이자 세계 각국 박물관 디렉터, 예술가, 비평가 등 예술인을 초대할 수 있는 사랑방 같은 집을 떠올리며 마르카 아키텍처Marca Architectes에 복원을 맡겼다. “건축가는 대뜸 18세기 건축물을 개조하는 일을 수차례 했지만 이 건물만큼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어요. 무사히 진행한다고 해도 파사드밖에 건지지 못할 거라고요. 그래서 건축가를 설득해 원래 의도대로 복원 작업을 시작했는데, 공사 중에 집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어요!”

마티외 메르시에는 이후에도 계획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제 고집이 화를 부른 거죠. 결국 파사드도 건지지 못한 채 모두 철거해야 했어요. 역사적 건물이라 철거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겨우 정리한 후 새롭게 건물을 지으려고 하니 서류 문제가 난관이었어요. 스페인의 느린 속도에도 적응해야 했고요. 어쩔 수 없이 파리의 집은 그대로 두고 이곳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그렇게 4년이 걸렸어요.”


아트 북도 그의 수집품의 일부다. 빼곡하게 꽂힌 책 사이 눈에 띄는 오브제는 윱 판 리스하우트Joep van Lieshout의 설치 조각품. 책장 옆 바로크 시대의 종교 표식을 활용해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하는 필리핀 아티스트 마누엘 오캄포Manuel Ocampo의 작품이 걸려 있다. 비트라의 임스 로킹 체어 빈티지 제품 옆에 나란히 놓인 올리브그린 컬러 벨벳 소파는 이케아의 발렌투나Vallentuna 소파.
1960~1970년대 디자인 가구에 대한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침실. 침대 위 마르셀 뒤샹의 작품과 침대 옆 조 콜롬보의 투보Tubo 라운지체어가 공간을 예술적 분위기로 전환시킨다. 창문 옆 레드 컬러 의자는 피에르 폴랭이 아티포트를 위해 디자인한 통그Tongue 암체어, 올리비에 무르그가 에어본을 위해 디자인한 진Djinn 체어, 두 체어 사이에 편집숍 퀸즈 앤 밀란에서 구입한 앤디 워홀의 브릴로Brillo 푸프가 놓여 있다. 벽에 걸려 있는 물결 모양 형태의 거울은 1970년대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가 폴트로노바Poltronova를 위해 디자인한 울트라프라골라Ultrafragola 제품.
4년 동안 어처구니없는 사건과 사고가 이어지면서 그의 요구 조건도 점점 줄어들었다. 결국 ‘조용하고 밝은 집’이면 만족하겠다 싶었다. 하지만 건축가는 오랜 시간 고생하면서 기다려준 그의 가족을 위해 건축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했다. 부서진 옛 건물 파편을 이용해 마치 옛 건물과 신축 건물이 접합된 것처럼 보이는 집을 완성한 것.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4층 건물 정면, 파사드 2분의 1부분은 오래되고 얼룩졌는데, 18세기 것을 활용한 것이다. 나머지는 비슷한 톤과 질감을 지닌 건축 석재를 찾아 마감했다. 반면 후면은 완전히 시멘트 벽이다. 구조도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수직 중정을 품고 있다. 1층은 외부와 차단된 미음꼴 구조지만, 2층부터는 열린 중정을 품은 디귿자 구조로 전환된다. 중정을 향해 난 창은 모두 양쪽으로 개폐할 수 있어 소음과 공해를 막고, 바람과 빛을 투과한다. 조용하고 밝은 집에 대한 화답이다.


시선이 닿는 데까지가 나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집은 마을 전체다. 욕조 바로 위 수평으로 넓게 디자인한 창 속에는 울긋불긋한 벽돌 기와지붕이 빼곡하다. 실제 바위로 착각하게 되는 폼 푸프 세트는 피에로 질라르디Piero Gilardi가 구프람Gufrom을 위해 디자인한 사시 스톤Sassi Stone, 욕조는 인바니의 프라임Prime 제품. 
“아마 우리 집이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일 겁니다. 창을 열면 집 안 어디서든지 구불구불한 골목과 오래된 건축물로 촘촘히 짜인 마을이 보이죠. 반면 창문을 닫으면 창이 거울이 되어 마을 전체를 비춥니다. 마치 집이 곧 마을을 껴안고 있는 것 같죠. 손님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멋지고 우아한 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 느낄 수 있어요.” 시선이 닿는 데까지가 나의 집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집은 마을 전체다. 욕실을 4층에 둔 것도 그런 이유다. 욕조 바로 위 수평으로 넓게 디자인한 창에는 울긋불긋한 벽돌 기와지붕이 빼곡하다. 바람, 비, 햇살이 덧칠한 시간이 만든 그림 한 조각이 창에 살포시 걸려 있다.

“마치 집이 곧 마을을 껴안고 있는 것 같죠. 손님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멋지고 우아한 지 말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각자 느낄 수 있어요.”


벽에 걸린 작품은 모두 그의 작품으로 책장 뒤는 ‘테스트Test’, 소파 위 작품은 ‘언타이틀Untitled’. 디자이너 잔 카를로 피레티Gian Carlo Piretti가 디자인한 1970년대 빈티지 테이블, 조 콜롬보의 보비Boby 트롤리와 토포Topo 테이블 램프, 레이 임스의 라 폰다La Fonda 체어 등 서로 다른 시대의 디자이너 작품이지만 마치 한 세트처럼 잘 어울린다. 화이트 컬러 캐비닛은 무어만Moormann 제품.
구석에 숨겨둔 욕망
이 외에도 건축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1층을 게스트룸이자 작업실로 만들고 별도로 현관문을 달아 가족이 사용하는 공간과 완전히 분리한 점,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옥상에 야외 수영장과 미니 정원을 만든 점, 차가운 시멘트 벽 대신 전체적으로 우드 판자를 덧대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난방과 단열 효과까지 만족시킨 점이 그렇다. 그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공간이 어디인지 묻자 한참 생각한 끝에 답이 돌아왔다. “열린 공간도 좋지만 좁은 구석이 많아서 좋아요.(웃음) 디귿자로 꺾인 한쪽 부분은 벽으로 막혀 있어 적당히 시야를 가리고 어둠을 만끽하게 해주죠. 우리가 구석이라 칭하는 잉여 공간을 보면 뭔가 채워 넣고 싶은 욕구가 발동하잖아요. 자연스럽게 뭐가 어울릴까 고민하게 되고요.”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집 안 구석구석마다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계단에는 마틴 앤 욜Martin & Youle의 세라믹 설치 작품이 걸려 있고, 책장에는 천장까지 책이 빼곡하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케빈 크리스티Kevin Christy의 그림이 바닥에 놓여 있다. 슈퍼마켓의 물건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언젠가 작업에 사용할까 싶어 구입하는 그이니만큼 그는 자타공인 맥시멀리스트다. 파리 집에 비해 발렌시아 집은 매우 허전하고 깔끔한 편이라고.


아르키촘과 파올로 데가넬로Paolo Deganello가 카시나를 위해 디자인한 아에오Aeo 암체어, 바로 옆에 놓인 오브제는 아티스트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엔드End 스툴로 구프람에서 판매. 시선을 끄는 화려한 패턴의 러그는 부홀렉 형제가 디자인한 나니 마르키나의 로장주Losanges 러그.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드는 일
침대 위에 걸려 있는 마르셀 뒤샹은 물론 계보를 잇는 앤디 워홀Andy Warhol과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작품까지.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편협한 생각을 뒤엎는 블랙 유머 같은 예술 작품이 곳곳에 보인다. 그중에서도 그의 수집벽을 자극하는 것은 1960~1970년대 디자인 아이콘 가구다. “만약 제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 갈 겁니다. 여성운동,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꽃피었고, 달 착륙이 성공하면서 미래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죠.”

그는 2003년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상금을 빈티지 가구를 구입하는 데 다 써버렸다고 유쾌하게 고백했다. 침실에는 레드 컬러로 짝을 맞춘 조 콜롬보Joe Colomb, 피에르 폴랭Pierre Paulin, 올리비에 무르그Olivier Mourgue의 아이콘 체어가 놓여 있고, 곳곳에 찰스&레이 임스Charles&Ray Eames 부부의 상징적 작품이 눈에 띈다. 


테라스에서 반려견 말론과 포즈를 취한 마티외 메르시에. 그는 다양한 사람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발렌시아 발리오 델 카르멘 마을이 지닌 잠재력과 역사적 스토리를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1960년대 작품에는 파격적인 생명력이 느껴진다. 절제되고 품위 있는 디자인은 더 이상 식상하다는 듯 자유분방함과 생동감이 넘친다. 그가 마을에 불어넣고 싶은 것도 이런 활력과 에너지가 아닐까? 마르셀 뒤샹은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이나 조각 형태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데 시간을 보내기보다 차라리 내 인생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것이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보고 느끼고 만지는 모든 것을 예술로 전환시키는 그에게 이 집과 마을은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삶의 가치와 세상을 보여주는 예술품인 셈이다.


사진 Daniel Schäfer | 스타일링 Cristina Giménez | 참조 www.mathieumerci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