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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하미토미 영농조합 된장공장공장장
불어오는 바람, 내리쬐는 햇볕, 촉촉한 비, 비옥한 토양. 자연이 선물한 자원을 거름 삼아 콩을 기르고 장을 담그는 곳. 여름 한복판,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도열한 수백 개의 장독대와 마주했다. 정성으로 담은 전통 발효 장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되새겨본 시간.

된장, 고추장, 간장을 담가 연도별로 구분해 둔 수백 개의 항아리가 줄지어 늘어섰다. 건물 옥상에 세 개의 항아리를 형상화한 벽돌색 고깔이 눈에 띈다.

장독대 뒤편으로는 김영민 대표와 박영애 이사가 사는 가정집과 펜션 건물이, 장독대 오른편에는 가마솥이 있는 작업장이 자리한다.
몸도 마음도 든든하게 채워줄 한 끼가 고픈 날, “언제든 들러 장맛도 보고 시골 구경도 하고 가라”는 정답고 살가운 이의 공간에 초대받았다. 하늘과 땅의 맛, 즉 자연 그대로의 맛을 장에 담고자 이름 붙인 하미토미 영농조합을 운영하는 김영민 대표·박영애 이사 부부의 ‘풀밭’. 별칭은 ‘된장공장공장장’이다. 고객과 직접 얼굴을 맞대며 소통할 수 있는 유기농 장 체험 공간을 만들고, 누구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풀밭이라 이름 지었다.

먹고 마시고 체험하라!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들어가자 어느새 눈앞에 멋들어진 건물 한 채가 나타난다. 서울 어딘가에 자리한 세련된 복합 문화 공간인가 싶다. 레스토랑도 아닌데 테이블이 늘어서 있고, 카페도 아닌데 커피 바가 있다. 카운터 옆 진열대에서는 3~ 5년간 숙성한 유기농 된장·고추장·간장을 판매 중이다. 정확히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물었다. “몸에 좋은 장도 소개하고, 그 장으로 요리도 해보고, 맛도 보고, 맘에 들면 구입할 수도 있는 곳”이라 하니, 말 그대로 체험관이자 복합 문화 공간이 맞다.

“재래식 장을 어렵게만 생각하고,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제대로 알리고 선보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요즘에는 워낙 식재료에 민감하다 보니 직접 와서 한번 둘러보고 체험해본 분은 쉽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그러면서 단골이 되기도 하니까요.” 강된장 만들기 클래스를 시작한 이유도 비슷하다. 직접 장을 만들고 맛보면서 유기농 장과 더 친해지는 시간을 보내는 것. 박영애 이사가 정갈히 차린 점심을 즐기는 것까지가 클래스의 과정이다.

간장 숙성 후 항아리 바닥에 남은 결정으로 만든 간장 소금은 생산량이 적어 방문객에게만 판매한다.

박영애 이사가 차린 정갈한 한 상. 메인 요리는 강된장비빔밥과 직접 재배한 채소로 만든 무침.

박영애 이사가 강된장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하는 오픈 키친 공간.
공간도 장도 함께 익는다
널찍한 단층 건물에 통유리창을 전면에 설치해 사시사철 장독대 풍경이 펼쳐지는 체험관 풀밭은 건축가 박선영 소장이 설계했다. 이번 프로젝트명은 ‘세 항아리_된장공장공장장은’. 잰말놀이(빨리 발음하기 어려운 문장을 빠르게 말하는 놀이)를 이용해 전통 장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하미토미가 하늘의 맛, 땅의 맛에서 따온 이름이잖아요. 그래서 하늘과 땅을 연결한 느낌을 건물에 표현하고 싶었어요. 또 풀밭에 쭉 늘어선 장독대를 보고는 항아리 형태를 이용해 이 공간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건물 옥상에 세 개의 항아리를 형상화한 고깔을 만들었죠. 내후성 강판을 사용해 만들었는데, 이 소재는 시간이 지나면 산화작용으로 붉게 변해요. 이게 장독대 색과 비슷해요. 장 자체도 숙성 기간이 긴 만큼, 그 시간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라 의미 있다고 느꼈죠.” 박선영 소장은 장이 발효될 때 생기는 ‘기체’에도 주목했다. 건물 내부에 설치한 계단을 올라가면 좁은 다락과 함께 옥상 항아리와 연결된 네모난 유리 천장이 보인다. “건물 안의 사람을 항아리 안의 기체로 치환해 표현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만약 항아리 안에 사람이 들어간다면 우리가 보는 세상도 이 조그만 창을 통해 올려다본 하늘이 전부이지 않을까요?”

말린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소금물을 가득 부어 숯과 고추, 대추를 띄워 60일 동안 담가둔 이후, 메주와 장물을 갈라 된장과 간장을 만든다.

대표 제품인 간장, 된장, 고추장 3종.

손수 원두커피를 내려 대접하는 김영민 대표.
장醬에도 격格이 있다
하미토미는 전통 방식 그대로 인공 첨가물이나 합성 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장을 만든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콩만 사용하고, 재배 농가 업체를 엄선해 등급을 나눠 공급받는다. 작업할 때 쓰는 대야, 콩을 씻어 건지는 체망, 장을 푸는 삽과 국자 등의 도구는 전부 플라스틱 대신 스테인리스로 만들어 사용한다. 장을 포장하는 유리병은 꼼꼼히 살균 소독한다. 모두 환경과 위생을 생각해서다.

대표 상품은 된장, 고추장, 간장 세 가지지만 부부는 최근 간장 개발에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제가 요새 간장과 사랑에 빠졌어요. 계속 들여다보고 연구하다 누룩 간장도 개발했죠. 5년 숙성한 간장에 누룩을 넣고 2년 더 기다려야 해요. 보통은 배양균으로 금세 만들어내지만, 저희는 자연균 누룩곰팡이로 만듭니다. 이렇게 손으로 직접 빚은 누룩으로 공들여 만드는 전문 업체는 국내에 몇 안 된다는 자부심도 있죠.” 염도가 낮아 아기 이유식 만들 때에도 적합하다는 누룩 간장은 벌써부터 문의가 많다. 이 외에도 바질, 애플민트, 오미자 등 여러 천연 재료로 간장을 만들어 꾸준히 신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정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전통 방식 그대로 장을 담그는 하미토미 영농조합 김영민 대표와 박영애 이사 부부.
원재료가 좋은 만큼 일반 공장에서 만드는 장에 비해 들어가는 품도 비용도 만만치 않다. 쉽지 않은 길인데도 유기농 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하미토미 장만의 격을 지키기 위해서다. 환경과 건강을 중시하는 고객이 많아 최근에는 무포장을 지향하며 제로 웨이스트 캠페인 ‘용기내 챌린지’에도 동참하고 있다. 빈 용기를 들고 오면 내용물만 담아주고 가격은 할인해준다.

결국 건물마저 큰 항아리를 상징하는 하미토미 체험관은 말 그대로 유기농 장만을 위해 만든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래 묵을수록 맛도 건강에도 좋은 장, 그 시간을 느끼고 경험해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그곳을 공들여 가꾸며 사람 간의 끈끈한 정을 중히 여기는 부부. 도시에서 느끼기 어려운 귀하고 반가운 시간을 마음에 되새겨본다. 더 건강한 삶을 위해. 주소 강원도 홍천군 서면 보리울길17번길 16 문의 033-434-4533


건축 인테리어를 맡은 박선영 소장은 중앙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영국의 포스터앤파트너스, 삼성물산 건축설계팀을 거쳐 2014년 디자인 사무소 오-스케이프 아키텍튼O-SCAPE Architecten을 설립했다. 개인 레지던스 설계는 물론 서울시 공공 건축가로 활동하며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 중랑구청소년커뮤니티센터 등 다수의 사업을 진행했다. www.o-scape.co.kr

글 이예지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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