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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라이프 기능적이돼 지루하지 않은 집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 집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가능성을. 생애 주기에 맞춰 두 번째 옷을 갈아입은 3층 빌라는 네 가족의 모습과 한층 더 닮아 있었다.

현관에서 바라본 2층 전경. 1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입구 위치를 옮겨, 길던 동선을 단축했다.

3층에 위치한 큰딸 방. 붙박이장을 복도 쪽으로 빼 가구를 최소화했다.

1층 계단 앞쪽은 단을 높여 거실과 분리된 평상을 설치했다. 매트를 깔아 요가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분양을 받고 입주를 한 지 8년을 맞이하던 해. 부부는 레노베이션을 결심했다. “아이들도 학업을 마무리해가고, 저희도 은퇴 후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청계산 자락을 등지고, 앞쪽으로는 야트막한 광교산 능선이 병풍처럼 자리한 동네.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이사 온 가족은 이 집에 적응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 “한 층에 펼쳐져 있던 공간이 층별로 나뉘어 있었으니까요. 첫 번째 레노베이션할 때는 몰랐는데, 8년을 살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하나둘 생기더라고요.” 평소 콜라사이다디자인 조연희 실장의 작업을 눈여겨본 아내의 제안으로 집은 새 단장에 들어갔다.

원칙 1
집의 중심엔 온 가족의 여가 공간을!
이 집은 총 세 개 층으로, 1층에는 거실·부엌·서재·안방이, 2층에는 현관, 3층에는 자녀 방이 자리한다. “거실과 다이닝룸이 모두 1층에 있어서 2층의 용도가 불분명한 상태였어요. 사면이 모두 전면 유리창이라 경치도 좋은데, 여름에는 온실처럼 더워 빨래 말리는 공간으로만 사용했더라고요. 그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가족의 취미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조연희 실장은 천장에 실링팬을 달고 공기 순환 시스템을 설치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이어 작은 개수대를 간이 주방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싱크대 하부장에는 작은 냉장고와 와인 셀러를 빌트인으로 설치했고, 번거롭게 1층 주방을 오가지 않도록 와인 잔 거치대를 달았다. 커피를 마시며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바 테이블도 짜 넣었다. 중앙에는 계단 핸드레일 역할을 겸하는 책장을 배치하고, 책장 뒷면은 곳곳을 뚫어 개방감을 더했다. 2층 한쪽에 자리한 그랜드피아노는 평소 피아노 연주를 즐기는 아내와 두 딸을 위해 남편이 준비한 특별 선물. 푹신한 소파까지 배치하고 나니 온 가족을 위한 여가 공간이 완성됐다. “주말엔 오며 가며 피아노도 치고, 온 가족이 함께 2층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셔요. 사시사철 바뀌는 주변 경관이 굉장히 멋지거든요.”

거실에서 안방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서재. 불편한 슬라이딩 도어를 양문형 문으로 교체하고 초록색 페인트를 도장해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좁은 주방 안쪽 공간에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나란히 배치하고, 중문을 달아 별도의 세탁실을 구획했다.

원칙 2
공간을 구획하고 역할을 부여하라
부부가 레노베이션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집의 비효율적인 동선 탓도 컸다. 정중앙에 위치한 계단이 공간을 나누면서 애매한 통로를 만들어낸 것. 면적이 넓은 집인데도 실제 사용하는 공간은 극히 일부였다. “죽은 공간이 정말 많았어요. 특히 1층 계단 주변은 그저 부엌으로 가는, 안방으로 가는 통로로만 사용하고 있었죠.” 공간을 구획하고 역할을 부여하는 일이 시급했다. 먼저 주방 옆으로 난 좁은 복도를 막고 소형 주방 기기를 놓을 수 있는 보조 주방을 만들었다. 반대쪽 주방 안쪽에 애매하게 자리하던 좁은 공간에는 세탁기와 건조기를 배치하고, 중문을 달아 세탁실을 완성했다. 요가를 하거나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단을 높이고 평상을 설치한 계단 앞 공간은 거실과도 공간이 분리돼 쓰임이 매우 다채롭다. 안방 문을 열고 나가야 했던 부부 욕실 출입구도 제 위치를 찾았다. “예전에는 잠을 자다가 새벽에 화장실을 가려면 문을 열고 또 문을 열고, 문을 열어야 도착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문 한 개만 열면 갈 수 있게 되었죠.(웃음)” 넓은 방 하나가 있던 3층은 두 딸을 위해 가운데에 벽을 세우고 소음 차단재를 넣어 각자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통유리창 너머 광교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2층 전경. 레노베이션 이후 가족은 이곳에 모여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과 다이닝 공간. 펜던트 조명 대신 스폿 조명과 금속 모빌을 달아 모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방 앞쪽에 자리한 1층 테라스. 바깥으로 향하는 계단을 설치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원칙 3
컬러로 공간의 개성을 살려라
이 집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과감한 컬러의 주방. 보랏빛 웨인스코팅 마감과 체크 패턴의 바닥 마감재는 팝아트를 연상시킨다. “부부가 첫 상담 때 보여준 사진 속 집은 알록달록한 컬러 가구로 포인트를 준 유럽 스타일이었어요. 처음에 이 컬러를 제안했을 때는 거절했다가 나중에 다시 전화가 왔어요. 해보겠다고. 제가 작은 사이즈의 문짝으로 샘플을 만들어서 좀 더 적극적으로 설득을 했죠.” 알록달록한 주방은 시공 후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공간. 부엌과 마주한 안방 중문은 부부가 좋아하는 초록색 컬러를 입혀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공간의 개성은 세 개의 욕실에서도 드러나는데, 일반적으로 접하기 힘든 과감하고 화사한 컬러 배색 타일을 시공해 문을 여는 순간 유쾌함이 물씬 풍긴다. 집 안 곳곳에서 다양한 색감을 마주한 순간 “간결함은 지루한 것”이라 주창한 건축가 로버트 벤투리가 떠올랐다. 모더니즘이 팽배하던 시기, 독특한 구조와 밝고 친근한 색감으로 개성을 불어넣은 그의 작품처럼 말이다.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단열이나 구조 등 집의 기능이 개선됐다는 점이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각각의 공간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할까요. 조금씩 모자라던 것들이 하나씩 연결되면서 채워진 느낌이에요.” 오랜 시간 다양한 상공간을 작업한 뒤 뒤늦게 주거 공간 인테리어에 매진하고 있는 조연희 실장은 두 공간 디자인에 큰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상공간은 그때그때 유행하는 스타일이 굉장히 중요해요. 하지만 주거 공간은 그렇지 않죠. 3년이면 유행이 바뀌는데, 집 레노베이션은 최소 10년을 바라보고 하니까요. 결국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고치는 게 정답인 거죠.”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연희는 옴니디자인에서 실무를 익히고, 2001년 XYZ Design을 설립해 다양한 상업 공간을 설계하고 시공했다. 이후 외식 사업 컨설팅 작업을 이어오다 2018년 주거 공간을 전문으로 하는 콜라사이다디자인을 오픈했다. 주부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획일된 아파트 인테리어를 디자인적으로 재구성하고 컬러를 부여해 개성 있는 공간을 만든다.

글 김민지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설계와 시공 콜라사이다디자인(031-707-2612)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