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의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는 김보경 씨의 1층 아파트. 별다른 장식이나 데커레이션 없이 블랙&화이트 마감으로 고요한 캔버스를 만들고, ‘자연’을 채워 이 집만의 고유한 톤앤매너를 완성했다.
최근 몇 년간 핫 플레이스는 소셜 빅데이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키워드였다. 주말이면 근교 카페 투어를 하거나, 강릉과 제주 등으로 짧은 여행을 가고, 1년에 한두 번씩 해외여행을 떠나던 이들이 코로나19로 꼼짝없이 집콕 신세가 되면서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공간을 넘어 일과 여가 생활의 활동을 포함하는 플랫폼이 되었다. 집에 있는 시간과 비례해 자연스레 집을 돌아보게 된 사람들의 관심사가 홈 인테리어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공간에 대한 욕망도 함께 자라났다. 김보경 씨 역시 코로나19가 장기전이 되면서 이사를 계획했다. “언니가 정원 있는 아파트에 살아요. 공원 가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코로나19가 극성이던 어느 날, 언니 집 거실에 앉아 있는데 마당에 날아드는 새를 한참 동안 멍하니 보게 되더라고요. 때론 거창한 환경을 찾아 휴식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즐기는 짧은 쉼이 더 큰 힐링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집에 있으면서도 자연을 바라보며 일상을 환기할 수 있는 마당 있는 아파트야말로 위드 코로나 시대에 필요한 주거 환경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할 계획이 있던 김보경·최형섭 씨 부부는 1층 아파트를 알아보았고, 아래층 상가 위로 넓은 덱과 정원이 있는 104m2의 2층(실질적 1층) 아파트를 찾게 됐다. 준공한 지 10년 정도 된 집은 대대적 구조변경이나 보수가 필요하지 않았고, 너른 덱으로 열린 구조 덕분에 몇 가지 디자인 요소를 더해 충분히 ‘아파트스러움’을 탈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비초에 월유닛에 테이블을 구성해 식탁으로 사용한다. 디자인을 맡은 샤우 스튜디오가 합판 마감의 장점을 살린 공간으로, 다용도실로 나가는 문의 원형 창 디테일이 색다른 미감을 만들어낸다.
합판 마감한 싱크대는 상부장과 레인지후드를 생략하고 작은 나무 그릇장과 환풍기를 설치했다.
10cm 정사각 모자이크 타일을 벽면, 바닥, 샤워 부스의 파티션 전체에 시공한 뒤 오렌지색 벽부등으로 포인트를 줬다.
공간은 비우고 경험을 채우는 집
디자인은 평소 온라인 서치를 통해 눈여겨본 샤우 스튜디오에 맡겼다. 지금은 대중적 인테리어 소재가 된 합판과 모르타르를 오래전부터 주거 공간에 자유자재로 적용해온 박창욱 실장은 드라마틱한 구조변경 없이, 짧은 공사 기간에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했다. “앞으로 10년 정도는 충분히 살 계획이라고 말씀하셨죠. 최대한 질리지 않으면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기본 마감은 화이트와 블랙으로 정하고, 주방 가구와 현관 수납장, 방문과 문틀 등을 합판으로 마감해 포인트를 줬죠. 두 식구뿐이라 부분적으로 오픈 구조를 차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현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은 방은 문을 생략해 복도에서 덱까지 개방감이 느껴진다. 역시 창밖으로 소나무 정원이 펼쳐지는 거실은 미니멀 인테리어의 백미를 느낄 수 있는 공간. 마이너스 몰딩으로 걸레받이까지 생략하고 천장 매립등도 최소한으로 설치했다. 소파 대신 나란히 매치한 카시나의 LC 2, LC 3 암체어는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에 사각 쿠션을 끼워 넣는 방식의 디자인으로 어느 위치에서 보아도 정사각형을 유지하는 정갈한 실루엣이 특징. 창가에 배치한 데이베드 역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주방과 마당, 양방향으로 앉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장지문이 시선을 사로잡는 침실도 그야말로 심플함 자체다. 부부가 각자 사용하는 싱글 침대는 프레임과 헤드보드를 생략하고 천장 조명 대신 브래킷 조명 만 설치했다.
“둘 다 직장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면서 충전하는 에너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서로 방해받지 않고 숙면을 취할 수 있도록 분리되면서 모션 기능이 있는 제품을 선택했죠. 결혼 후 10년 동안 이사를 여섯 번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미니멀한 생활 방식을 고민한 것 같아요. 결혼하고 처음에는 이불 욕심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근데 지금은 하얀 이불 하나로 사계절을 나요. 기본에 충실한 하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숙면을 위해 독립 모션 베드를 사용한다. 각도 조절이 가능한 브래킷 조명은 아르테미데 제품, 오른쪽 그림은 부부가 좋아하는 ‘강릉’을 배경으로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김나흠 작가 작품이다.
새시 안쪽으로 장지문을 덧문으로 시공해 온종일 빛이 은은하게 들어온다.
가구의, 가구에 의한, 가구를 위한
탁 트인 마당과 스튜디오형 오픈 구조 외에도 이 집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집주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담긴 가구 셀렉션 때문이다. 디자인 가구 애호가인 김보경씨는 이사 날짜에 맞출 수 없다는 이유로, 아끼는 가구를 보관 이사할 수 없어서 모르타르로 정한 바닥재를 블랙 마루재로 바꾸고, 주방 역시 비초에Vitsoe 월유닛에 맞춰 레이아웃을 정했다. “처음에는 저도 ㄷ자형 주방을 꿈꿨어요. 예전 집은 20평대라 주방과 거실 사이에 비초에 월유닛을 설치해 공간을 구분하는 파티션 겸 식탁으로 사용했거든요. 이사하면서 월유닛을 어디로 옮길까 고민하다 그냥 원래대로 주방 수납장과 식탁으로 사용하자 결정하고 반대편에 일자형 싱크대를 시공했죠.”
상부장과 레인지후드, 화구까지 생략한 싱크대는 맞벌이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준다. “신혼 초에는 요리하는 게 재밌기도 하고 블로그도 열심히 하던 터라 요리를 즐겨 했어요. 그런데 두 식구다 보니 버리는 재료가 더 많고, 남편은 저녁 식사까지 회사에서 해결할 때가 많아서 평일 저녁에는 주방을 거의 쓰지 않죠. 고정해서 설치할 필요 없이 싱크대 위에서 또 식탁 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기레인지가 주로 시켜 먹거나, 간단하게 반조리 식품이나 밀키트를 이용하는 저희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죠.”
SNS에서 인기 많은 디자인 애호가(@bbogaeng)의 홈 오피스.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이라 컬러풀한 손님용 옷걸이를 두었다. 책장은 전산에서 맞춤 제작.
통창 너머로 덱과 연결되는 서재. 마당 덱과 단 차이가 나 합판으로 중간 단을 만들었다. 왼쪽 벽부장에는 캠핑, 아웃도어용품을 수납한다.
서재에 있는 트라이앵글 구조의 책상도 사용자의 취향을 명확히 드러내는 아이템. USM 빈티지 제품으로, 좋아하는 아르테미데의 벽부등과 연결해 미니 작업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이베이에서 구입했다. 책상 옆에 배치한 임스 캐비닛은 허먼밀러사에서 제작한 알루미늄 프레임 대신 비트라에서 제작한 블랙 프레임 제품으로 골랐다. 손님이 왔을 때 가방이나 옷을 걸 수 있는 컬러풀한 옷걸이는 이케아 빈티지 제품이다. “좋아하는 가구를 하나둘 모으다 보니 기능보다는 보는 즐거움으로 고른 가구가 대부분이에요. 유일하게 편안한 사용감으로 만족하는 가구는 안방에 있는 이지 체어죠. 흔들 의자 구조라 앉고 일어나기가 쉽고, 침실에서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목까지 받쳐줘서 좋아요. 또 인도어와 아웃도어에 두루 사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죠.”
부부는 보통 금요일에는 약속을 잡지 않고 주말까지 온전히 집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다행히 이 집으로 이사 온 후에는 지루하거나 심심할 틈이 없다. 마당을 보고 있다가도 동네 길고양이가 지나가면 고양이 얘기를 하고, 새가 날아들면 음악 소리를 줄이고 새들의 지저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봄이 되면 조경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고, 소소한 홈 캠핑도 꿈꾼다. “예전에는 자주 밖으로 나간 것 같아요. 특히 강릉을 좋아해서 주말에 자주 갔죠. 코로나 선기능이라는 말처럼 요즘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소중해져요. 아파트 1층에 처음 살아봤는데, 지금의 라이프스타일에서는 단점보다는 장점이 훨씬 더 많이 느껴지고요. 이 시대에 딱 필요한 피난처이자 대화가 끊이지 않는 아늑한 둥지에서 오래오래 머물 생각입니다.”
- 아파트먼트 라이프 좋은 것과 함께하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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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주거 기능을 넘어 일과 여가 생활의 모든 활동을 포함하는 플랫폼으로서 집. 도심 속 아파트먼트 라이프의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바로 ‘정원’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