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빵 위에 염장 연어, 피시 필레 등을 올려 먹는 덴마크식 오픈 샌드위치. 덴마크에서는 일상적 식사 메뉴다.
커피와 즐기기 좋은 정통 데니시 빵도 다채롭게 준비했다.
2층에 올라서면 유리창 너머로 창덕궁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하 1층에 자리한 갤러리 전경.
김윤영 대표는 종로구 계동 토박이다. 그가 나고 자란 계동 135번지 ㄱ자 한옥은 현재 한옥지원센터로 쓸 만큼 역사와 가치를 지닌 곳. 그는 우리나라 최초 개성 음식 전문점‘용수산’을 운영하던 어머니의 손맛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여의도에서 한정식집 ‘운산’을 운영하면서 에어프랑스와 함께 전통 한식 메뉴를 개발하기도 하고, 세련된 한식을 담은 책 <정성으로 빚은 한식의 예술>을 펴내기도 했다. 덴마크인 남편과 사이에서 난 딸 김민지 셰프도 세계적 요리학교 에콜 페랑뒤를 졸업하고 요리를 업으로 삼는다. 그는 덴마크, 프랑스 등 세계를 유람한 뒤 2016년 한남동에 자리를 잡았다. 2020년 <미쉐린 가이드>에도 등재된 레스토랑 ‘미쉬 매쉬Mish Mash’에서 얼마 전까지 한식을 베이스로 한 다국적 요리를 선보였다.
문화로 채운 공간
각자의 영역에서 활약해온 모녀는 창덕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어머니의 고향, 계동에서 다시 만났다. 28년간 용수산의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너른 부지에 2층짜리 한옥을 올린 것. 언젠가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김윤영 대표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궁궐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탓에 공사를 시작하기까지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어요. 혹시나 모를 유물 발굴 가능성 때문이죠. 이 터가 조선 후기에 왕실을 호위하던 금의영이 있던 자리거든요. 문화재청에서 몇 번이나 실측을 하러 나왔는지 몰라요.” 지하 1층은 갤러리로, 1층은 리셉션, 2층은 다이닝 공간으로 꾸미고 오붓한 모임을 위해 뒤쪽에 작은 별채도 하나 지었다. 설계는 한옥을 전문으로 짓는 참우리건축 김원천 소장이 맡았다. “이 땅이 지닌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건물의 방향을 창덕궁 쪽으로 내고, 탁 트인 풍경을 위해 기둥을 모두 없앴어요. 2층 테라스의 너비도 테이블을 둘 수 있을 만큼 넓게 잡았습니다. 맞배지붕을 최대한 길게 빼서 비가 들이치지 않게 설계했고요.” 좋은 일을 불러 모은다는 염원으로 부를 소召, 업적 공功, 집 헌軒 자를 써서 ‘소공헌’이라 이름 붙였다. 김윤영 대표는 소공헌을 짓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작가를 수소문하던 차에 수백 장의 사진을 중첩해 시간을 기록하는 이재용 작가를 알게 됐다. 소공헌의 첫 삽을 뜨는 순간부터 완공까지의 과정이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갤러리의 첫 전시 <기억의 시선_도시 전경>에 그 모습이 걸렸다.
별채의 1층 전경. 골목 안쪽이라는 위치 특성상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잠시 쉬어 가기 좋다. 오붓한 모임을 즐길 수 있도록 대관도 진행한다.
뒤편에서 바라본 소공헌 모습. 한옥 두 채가 서로 마주한다.
1층 로비 모습. 김윤영 대표가 문경에서 직접 공수한 바윗돌을 쌓아 올려 만든 테이블이 눈길을 끈다.
정통 덴마크 요리를 선보이는 엠브래서리에서는 로얄코펜하겐 접시만 고집한다.
그렇게 완성한 소공헌의 다이닝 공간은 낮과 밤이 다르다. 낮에는 덴마크식 오픈 샌드위치 스뫼레브뢰드smørrebrød를 비롯해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엠브래서리M Brasserie로, 오후 6시부터는 김민지 셰프의 본적, 미쉬 매쉬로 변모하는 것. 김윤영 대표가 시어머니에게 배운 정통 덴마크식 요리를 먹고 자란 김민지 셰프는 유년 시절 추억을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엠브래서리의 M은 제 이름 민지의 M도 되지만 모녀의 M이기도 해요. 브래서리는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느긋하게 커피와 와인도 즐길 수 있는 편한 공간이에요.” 커피에 곁들여 먹을 디저트도 다채롭다. 아몬드 크림을 넣은 퍼프 페이스트리, 마지팬 혼marzipan horn, 카닐스네글kanelsnegl 등 다른 곳에선 쉽게 맛볼 수 없는 정통 데니시 빵이 주를 이룬다.
음식을 넘어 제대로 된 덴마크 문화를 선보인다는 사명감도 생겼다. 엠브래서리의 음식만큼은 2백50년 전통의 덴마크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의 그릇에 담기를 고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창덕궁을 전경 삼아 여유를 만끽하길 바란다는 김윤영 대표와 김민지 셰프. 모녀는 음식과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를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층으로 올라서자 창덕궁을 면한 통창 너머로 한갓진 계동의 풍광이 한눈에 담긴다. 왕실을 보호했다고 하기엔 다소 낮고 소박한 돌담 너머로 수목이 우거진 궁궐 내부의 모습, 처마와 처마가 포개져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곡선이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여유를 찾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궁이라는 장소가 주는 고즈넉함과 안정감이 있거든요.”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 47 | 영업 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
문의 02-6465-2210
- 복합 문화 공간 소공헌 계동 속 작은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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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기와 지붕이 이어진 계동길에 새로 들어선 2층 한옥. 한식의 우수함을 널리 알린 운산 김윤영 대표와 3대를 이어 요리해온 그의 딸 김민지 셰프가 새로 만든 공간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