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구 우이천로, '꽃동네'라 부르는 조용한 주택가. 오랜 시간 사람이 살지 않아 쓰레기가 가득하던 집이 건축가 윤민환과 화가 최윤미 부부의 따뜻한 손길로 되살아났다. 원오원 건축, 가람화랑에서 각자 건축가, 큐레이터로 활동하다 전공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부부는 도쿄에서 8년간 생활하며 느끼고 발전시킨 '집'에 대한 사유를 건축설계와 설치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다. 현재 윤민환 소장은 스튜디오 S. A. M(@yoonminhwan)을 운영, 최윤미 작가와 함께 지하 작업실에 작은 문화 공간을 오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하 작업 공간. 쪽방 세 개를 하나로 터 계단식으로 비스듬히 펼쳐지는 공간의 레이어가 재밌다. 사진은 3번 방에서 책장과 간이 주방이 설치된 1번 방을 바라본 모습. 블록 벽은 당장 칠하지 않고 공간을 사용하면서 필요하면 도색하기로 했다.
지하 3번 방은 최윤미 작가의 작업 공간이다. 주방과 화장실로 사용하기 위해 지붕을 덮어 불법 확장한 공간을 털어내 마당의 제 모습을 찾았다. 동양화를 전공한 최윤미 작가는 일본 도쿄 예술대학에서 서양화와 설치 미술을 공부한 뒤 '집'을 테마로 다양한 설치 작업을 펼친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간혹 내려서 구경하고 싶은 동네가 있다. 동네를 산책하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면 담 너머를 훔쳐보며 이런 집에 살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곤 한다. 집을 숱하게 취재하면서도 아직 못 가본 동네가, 누군가의 집이 궁금한 것은 아마도 직업병일 것이다. 건축가라는 직업 역시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불특정 다수의 집을 설계하며 낯선 지역의 사이트를 분석하고, 그곳에서 이뤄질 삶의 모양새를 상상하는 일. 대수선이 유리할지 신축이 유리할지, 예산에 맞춰 공간은 어떻게 구성하고 디자인은 어떻게 풀어낼지, 수없이 해본 일일 테지만 스스로 건축주가 되었을 때는 기준이 더욱 엄격해진다.
쓰레기로 10년간 방치된 집이 우리 집이 되기까지
3년 전 ‘개화동 일곱집’으로 가성비 좋은 도심 집 짓기 사례를 보여준 스튜디오 S. A. M 윤민환 소장이 쌍문동으로 이사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덕분에 귀에 익은 이름이지만, 사실 쌍문동은 우연히 길을 걷다 마주칠 수 있는 동네는 아니다. 강남은 물론 서울 중심부에서도 외곽으로 한참 떨어져 있기에 연고가 있거나, 말 그대로 ‘찾아 들어갔거나’ 둘 중 하나다. 집을 이사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동네에 살 건지 결정하는 것이 먼저인 만큼 서쪽 끝에서 동북쪽 끝으로 이주한 사연이 궁금했다. “개화동 다가구주택 프로젝트를 제가 설계한 공간에 살았잖아요. 임대 기간이 끝나고 이사할 집을 알아보면서 아파트, 즉 남이 설계한 주거 형태는 자연스레 배제되더라고요. 주변에 산이 있는 조용한 주택지를 찾았어요. 은평구 산새마을부터 평창동, 성북동, 정릉을 지나 화계사 입구, 장위동까지 북한산 자락을 따라 1년 넘게 동네를 탐색했죠.” 건축이 업이다 보니 속속들이 잘 아는 것도 문제였다. 집과 집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너무 붙어 있어도, 집까지 진입하는 골목이 좁아도, 가파른 언덕도, 옹벽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건축비’와 직결되는 난제들을 제하고 나니 조건에 맞는 집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17년 10월 우연히 이 집을 만났다. ‘꽃동네’라 불리는 골목길에 1975년쯤 지은 동갑내기 구옥은 가장 중요한 예산과 규모, 신축에 필요한 그 밖의 조건들이 부합했다.
“10년간 비어 있던 집이에요. 집주인이 해외에 오래 거주하면서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로 오랜 시간 방치됐죠. 그러다 행정처분이 풀려 집을 인터넷 부동산에 내놓았는데, 마침 집을 찾던 저희랑 인연이 된 거죠. 동네 분들도 신기해했어요. 이 집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동안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고요. 덕분에 빌라촌으로 변한 동네에서 유일하게 단독주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요.” 다행히 빈집에 대한 선입견이 없었다. 결혼 후 8년간 도쿄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빈집을 많이 봤고(일본은 2013년부터 빈집 문제가 심각하다), 작가로 활동하는 아내 최윤미 씨는 빈집에서 ‘빈집’을 테마로 전시를 펼치기도 했다. 신축을 고려한 것 또한 이 집을 선뜻 매입한 이유였다. 윤민환 소장은 37평의 땅에 최대로 지을 수 있는 근린 주택을 설계했다. 하지만 5층에서 3층으로, 다시 2층으로 세 번 바뀐 설계도는 아내의 반대에 부딪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남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축하자는 쪽이었고, 저는 있는 그대로 고치자는 쪽이었어요. 습관이 무서운게, 빈집으로 오래 있다 보니 동네 쓰레기 투기장이 된거예요. 비행 청소년들이 드나들며 불이 난 적도 있대요. 보통이라면 찜찜하고 들어가기도 무섭고 그럴 텐데, 저는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누군가의 이해관계로 쓸모를 다하지 못한 집이 이대로 부서져 없어지면 계속 여운이 남을 것 같았어요. 좋은 기운의 텃밭을 만들어주고픈 마음이 컸어요.”
단정한 살림 모양새가 엿보이는 주방. 주방은 가로로 긴 타일을 붙여 옆으로 확장돼 보인다.
현관을 안쪽으로 90cm 정도 들여 재구성했다. 현관 안쪽으로 가벽을 설치해 침실과 거실, 주방 공간을 구분하고 동시에 수납공간을 확보했다.
넓은 욕실은 타일과 원목 바닥재로 소재를 달리해 건식과 습식으로 공간을 구분했다. 욕실 천장은 히노키 원목으로 마감하고 식물을 연출했다.
서재에서 주방을 바라본 모습. 계단식으로 펼쳐진 공간의 묘미는 주거 공간에서도 드러난다.
지하 외부의 유휴 공간은 검은색 콩자갈을 깔아 빗물이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더하기보다 빼기
빌라 단지 골목과 아파트 단지 사이 긴 삼각형 땅에 자리 잡은 집은 골목에서는 단층집이지만, 맞은편 아파트 단지에서 보면 선큰으로 지층이 있는 구조다. 1층은 주거 공간으로, 따로 진입로를 둔 지층은 아내 최윤미 씨의 작업 공간으로 사용한다. 보통 집을 짓는 게 더하는 작업이라면, 이번 프로젝트는 덜어내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크게, 높게, 넓게 대신 작게 덜어내고 줄이는 작업에 집중했다. 새로 만든 벽은 내단열재를 꼼꼼하게 시공하고, 구조 보강을 하는 대신 창문 크기를 줄여 난방과 단열 효과를 높였다. 7m 높이의 박공 구조 천장은 요즘 유행하는 노출 천장으로 남겨둘까도 생각했지만, 지붕이 얇고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를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주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지붕으로 마감했다. 1층 현관은 기존에 문을 열면 바로 골목이 펼쳐지는 구조였는데, 통행하는 차나 행인과 부딪칠 우려가 있어 안쪽으로 90cm 정도 들여 현관을 만들었다. 현관 안쪽으로는 수납장을 설치해 결과적으로 거실이 작아졌지만 생활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옛날 집 구조를 그대로 살려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한 화장실은 타일과 원목 등 바닥 소재로 자연스레 습식과 건식으로 분리했다. 지 층에서 방 바깥쪽으로 불법 증축한 주방과 화장실도 없앴다. “오래된 집을 레노베이션할 때는 늘 변수가 존재하는데, 이는 비용으로 직결되는 만큼 항상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해요. 저는 이 집의 내구성을 고려해 앞으로 10년에서 15년 정도 더 살 거라 예상하고, 총예산을 정했어요. 그리고 모든 선택은 집의 기능을 우선으로 하되, 우선순위에 맞춰 덜어내며 중심을 잡았지요.” 예를 들어 높은 천장을 막으며 지붕과 천장 사이 남는 공간은 다락방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다락방이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굳이 만들지 않는 식이다. 반면 가장 공들인 부분은 바닥재와 조명등이다. 현관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웰컴 조명등과 주방 7m 높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실링 라이트는 평소 위시 리스트에 있던 루이스 폴센 제품으로 선택했다. 작은 방들이 연결된 구조가 자칫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바닥재는 밝은 컬러의 물푸레나무 원목으로 골랐다. 덕분에 무인양품과 가리모쿠 등 기존에 사용하던 가구와 바닥 컬러가 일정한 톤앤매너를 이룬다. 내부 목공사 중 남은 합판으로는 폭 45cm 스툴과 폭 140cm 벤치를 제작했다. 스툴 높이는 35cm로 앉기도 편하고 바닥에 앉을 때는 좌식 테이블로 쓸 수도 있다. 스툴을 쌓았을 때는 수납장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 1석3조 실용템이다.
서재에는 벽면에 책을 수납하는 선반과 서류·CD를 수납하는 수납장을 제작했다. 남은 목재로 만든 직각 스툴은 좌식 테이블로 활용할 수 있다.
이제 색을 쓰는 작업을 시작할 거라는 최윤미 작가가 마음껏 어지를 수 있는 작업 공간.
담벼락을 공유하는 반대편 아파트 단지에서 바라본 모습. 외벽을 하얀 페인트로 도장하니 아파트 단지의 소나무 그림자가 비쳐 인상적인 파사드를 만든다. 햇볕의 정도와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오렌지색 지붕도 동네 풍경을 화사하게 만드는 일등 공신.
꽃동네에 환하게 피어난 오렌지색 지붕
지하는 쓰레기를 치웠더니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하 철거 당시 쓰레기만 15톤이 나왔으니 집이 쓰레기를 게워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개화동 주택은 신축이자 동시에 임대다 보니 작업이 자유롭지 않았어요. 작업실 크기도 한정되었고, 또 더러워질까 봐 걱정돼 채화 대신 주로 설치 작업을 했죠. 이번 작업실은 마음껏 더럽힐 수 있겠다며 좋아했죠.(웃음) 벽도 바닥도 너무 깨끗하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했어요.” 지층은 곰팡이와 습기를 막기 위해 벽 안쪽으로 블록을 쌓고, 바닥에 배수판을 시공했다. 바닥은 에폭시 도장을 해서 콘크리트의 질감과 하얀 벽, 천장이 대비되며 공간에 재미를 준다. 기울어진 벽과 천장을 목공사로 바로잡으면서 입구 한쪽에는 합판으로 간이 주방을 만들었다. 지층은 총 세 개 방으로 나뉜다. 한 칸씩 세를 주던 방으로 구조벽을 헐어 세 개의 공간을 연결했다. 간이 주방이 있는 1번 방, 미니 갤러리로 사용할 2번 방을 지나 가장 안쪽 3번 방이 최윤미 작가의 작업 공간이다. “환경이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집이 그리워서였을까요? 도쿄에서 유학할 때는 빈집 프로젝트를 비롯해 집 설치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생명의 영속성에 대해 고민한 것 같아요. 작은 원을 연결해서 그리는 작업을 했는데, 한동안은 검은색만 쓰게 되더라고요. 요즘은 다시 색을 쓰고 싶어요.” 2000년대 초반 원오원 건축에서 실무를 쌓으며 도시의 오래된 건축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윤민환 소장은 와세다 대학에서 석·박사를 수료하고 연구팀에 있으면서 일본의 강소 주택, 실리주의 건축에 매료됐다. 한국에 돌아와서 종로구 와룡동에 사무실을 개소하고, 개화동 일곱집을 비롯해 우이동의 미니 멀티 하우스 dj59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한 그는 집을 고치며 다시 서울 구도심을 탐방하고 있다.
“학부 졸업 전시에도 멋진 건물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도시의 틈을 주제로 길과 계단을 만들고 광장도 만들었어요. 건축물 자체가 아닌 도시와의 유기성, 관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 집을 만나고부터는 틈틈이 주변 동네를 탐방하고 있어요. 산 너머 빨간 벽돌 주택을 레노베이션한 카페가 있는데, 정취도 좋고 커피 맛도 일품이에요. 또 ‘쓸모의 발견’이라는 이름의 1.5평 남짓한 서점은 지하 작업실을 작은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보면 좋겠다는 동기부여도 해주었지요.” 부부는 집을 고치면서 마지막까지 지붕 색깔을 고민했다. 스패니시 기와색을 찾았는데, 국내에서는 찾기가 힘들어 시골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광빛 오렌지색으로 선택했다. ‘꽃동네’라는 골목의 별칭처럼 마치 지붕에 꽃이 핀 듯 동네 풍경에 밝은 기운을 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집을 고치면서 보통은 민원이 들어올까 걱정하잖아요. 그런데 이 집을 고치면서는 공사하는 분들이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들었대요. 빈집을 예쁘게 고쳐줘서 고맙다고, 살아줘서 고맙다고요.” 더 작고 평범한 사람들의 방향감각을 좇는 건축가의 겸손한 태도를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마흔다섯 동갑내기 집에서 펼쳐질 일상의 풍경은 공간이 품고 있는 나이만큼 너그럽고 여유롭다.
오픈 하우스
윤민환·최윤미 부부의 주거&작업 공간에 독자를 초대합니다. 오래된 집을 고칠 때 알아두면 좋은 실질적 정보와 생생한 개조 스토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일시 3월 22일(금) 오후 2시
장소 도봉구 우이천로 작업실
참가비 1만 원 인원 7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 건축가 윤민환∙화가 최윤미 부부 꽃 피는 봄이 오면
-
멋진 디자인보다 사는 이의 편의성과 예산을 고려해 현실적인 보통의 집 짓기 사례를 보여주는 건축가 윤민환 씨가 낡은 빈집을 고쳐 이사했다. 북한산 자락 서른일곱 평 땅에 지은 스물두 평 집은 10년간 비어 있었다고 느낄 수 없을 만큼 반듯했고, 봄꽃처럼 화사했다. 빌라촌으로 바뀌고 있는 동네 풍경에 집 장사 집으로 일조하고 싶지 않았다는 부부의 곧은 마음이 텃밭이 되었기 때문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