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흔적을 남기는 휴식
놀라Nolla, 핀란드 발리사리섬
핀란드 발리사리섬 해안가에 세운 이동식 별장 놀라. 통나무 여덟 개를 사선으로 세워 다양한 조건에 안정적으로 설치할 수 있다.
스토크만의 ‘서스테이너블 컬렉션’ 가구로 내부를 꾸몄다.
태양에너지로 불을 밝히고, 네스테 재생 바이오 디젤을 연료로 사용해 간단한 요리도 할 수 있다.
거울처럼 하늘과 주변 환경을 반사하는 지붕은 태양에너지를 저장해 전기를 생산하는 역할을 겸한다.
핀란드 사람은 짧은 여름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작은 통나무집 ‘뫼키M kki’ 에서 낚시와 바비큐, 수영을 즐기며 기나긴 겨울을 견딜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 핀란드의 전형적 여름휴가. ‘놀라’는 핀란드 전통 여름 별장 뫼키를 현대적ㆍ친환경적으로 재해석한 이동식 건물이다. 위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알파벳 A 형태 건물은 근처 숲에서 자란 목재를 가공해 뼈대를 세우고, 실내엔 폐목재를 활용한 스토크만Stockman의 친환경 가구가 간소하면서도 아름다운 공간을 완성한다. 거울처럼 풍경을 반사하는 지붕은 그 자체로 훌륭한 디자인 요소이며, 태양 에너지를 저장해 이곳에서 묵는 여행객이 쓰기에 충분한 전기를 생산한다. 핀란드어로 숫자 0을 뜻하는 놀라는 정유 회사 네스테Neste가 자사의 재생 바이오 디젤을 홍보하려는 목적으로 건축가 로빈 팔크Robin Falck에게 의뢰한 프로젝트. 전기는 지붕의 태양광 패널로 해결하고, 난방과 요리, 찻물을 끓이는 연료는 네스테 재생 바이오 디젤 (Neste MY renewable diesel)을 활용한다. 2018년 다보스포럼이 선정한 ‘글로벌 지속 가능 경영 100대 기업’에서 2위로 선정된 네스테가 동물성 지방을 원료로 생산하는 바이오 디젤은 같은 양의 디젤에 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90% 이상 적다. 이동 가능한 건물로 다양한 환경에 지을 수 있도록 설계한 놀라는 지난 2018년 9월, 과거 북해를 지나던 뱃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마시기 위해 찾던 헬싱키 근처 의 휴양지 발리사리Valisaari섬 해안가 바위 위에 처음으로 완성했다. 통나무 여덟 개를 사선으로 연결해 바닥이 평평하지 않아도 건물을 안정적으로 지지한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이곳까지 20분 걸리는 페리 역시 네스테의 재생 바이오 디젤을 연료로 움직인다. 지구와 자연환경에 최소한의 흔적을 남기는 가장 친환경적 휴식. 놀라는 에어비앤비(www.airbnb.com/rooms/27344516)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사진 제공 네스테
햄에서 추출한 연료, 네스테 재생 바이오 디젤
정유 회사 네스테는 핀란드 전역에서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버려진 햄을 모아 추출한 동물성 지방을 재생해 디젤 연료를 만든다. 현재 네스테는 총 생산량의 20%가 바이오 디젤이다.
다 이루었노라
카사 크반터스Casa Kwantes, 네덜란드 로테르담
MVRDV는 두 개의 날개 같은 형태로 한쪽은 부모, 다른 한쪽은 10대 자녀의 생활 공간을 의도했다.
북쪽으로 난 출입구. 흰색 벽돌로 쌓은 구조는 로테르담 지역의 전통 건축양식을 본뜬 것이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은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자연광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밝은 집”이었다.
카사 크반터스의 주방. 나무 벽은 여닫히며 주방 기구 등 다양한 물건을 수납한다.
방수 처리한 흰색 콘크리트로 마감한 2층 발코니는 그늘을 선사하는 차양 역할을 겸한다.
땅속은 지상에 비해 계절에 따른 온도 변화가 심하지않다. 일반적으로 지표면 아래로 6m를 파 들어가면 연중 온도가 10~16°C로 일정한데, 이를 응용한 지열 교환기(ground heat exchanger)는 건물의 실내와 땅 밑을 연결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공기를 공급하는 장치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위치한 2층 주택 ‘카사 크반터스’는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지열 교환기와 지열 펌프 시스템으로 난방과 온수를 자체 해결하는 자급자족형 주택이다. 세계적 건축가 비니 마스Winy Maas가 이끄는 네덜란드 건축 사무소 MVRDV는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잘생긴 올리브나무 한 그루를 양팔로 끌어안은 듯한 독특한 형태의 주택을 완성했다. 올리브나무는 그리스 출신인 건축주 가족의 문화적 배경을 상징하는 장치. 도로와 이웃하는 북쪽과 정원을 바라보는 남쪽의 형태가 극단적으로 다르다. 북쪽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입구와 차 두 대를 수용하는 주차장 외에는 창문 하나 없이 가로가 긴 직사각형으로 솟은 흰 벽이 무뚝뚝하게 서 있을 뿐이지만, 정원을 바라보는 남쪽은 변화무쌍하게 굽이치는 곡선으로 우묵하게 파여 있다. 외부 곡선을 따라 흐르는 듯한 통유리로 남쪽 벽면을 마감한 이층 주택 어디에서나 올리브나무가 보이고, 좁다란 회랑을 중심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각각 부모와 자녀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이다. 외부 시선을 차 공간 구성은 단순한 편으로 1층엔 주방과 거실, 서재가, 2층엔 침실 두 개가 있다. 유리벽 반대편으로 여닫히는 나무 문은 벽과 수납공간 역할을 겸한다. 방수 처리한 흰색 콘크리트 바닥은 중앙의 올리브나무 주변까지 이어져 따뜻한 계절에는 야외에서 쾌적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했으며, 겨울엔 태양광과 열을 반사해 열 손실이 큰 통유리벽의 단점을 상쇄하도록 했다.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지열 교환기와 지열 펌프 시스템을 적용한 것 역시 이러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결과. 조형적으로 아름답고 실용적이며, 건축주의 문화적 배경을 배려하고, 외부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다. 자체적으로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하니 친환경적이기까지. 카사 크반터스는 한곳에서 이 모든 걸 이뤄낸 집이다.
사진 오시프 판 두이펜보데Ossip van Duivenbode
또 다른 태양 에너지, 지열 냉난방 시스템
태양열은 지열 에너지의 근원이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 중 51%가 지표면과 해수면에 흡수된다. 지열 냉난방 시스템은 연중 온도가 일정한 지하수와 지표수, 땅 밑 공기를 순환시켜 여름엔 냉방, 겨울엔 난방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자연의, 자연에 의한, 자연을 위한
소밀Sawmill, 미국 캘리포니아
소밀의 내부. 거대한 유리문과 벽난로가 보인다. 모두 기계적으로 열고 닫힌다.
벽난로에 불을 켜면 따뜻해진 공기를 배기관을 통해 지하로 순환시켜 콘크리트 건물 전체로 열을 전달한 후 굴뚝으로 빠져나간다.
유리문이 완전히 열린 소밀의 야경. 테하차피 Tehachapi산의 곡선과 건물의 직선이 경쾌하게 대비를 이룬다.
위에서 바라본 소밀. 본채를 중심으로 부모와 두 자녀의 생활공간이 직선으로 뻗어나간다.
미국 캘리포니아 외곽, 모하비사막의 거친 고원에 외따로 자리한 네트제로Net-Zero 에너지 주택 ‘소밀’. 자연 속에서 주말을 보낼 별장을 구상하던 건축주는 자연으로부터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에 공헌하고 무언가를 되돌려줄 수 있는 집을 원했다. 엔지어인 그는 오랫동안 눈여겨봐온 건축 스튜디오 올슨 쿤딕Olson Kundig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해발5000m, 사막지대라는 거친 환경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요구 사항이었다. 모래바람이 몰아치고 일교차가 40°C에 달하며 극히 건조해 주변에서 발생한 산불이 옮겨 붙을 위험까지 있는 환경에선 무엇보다 튼튼하고 오래 견딜 수 있는 건축이 필요했다. 거친 환경을 견디고,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자급하기위해 건물 구조는 극히 단순하게 구성했다. 공용 공간인 정육면체 박스 형태의 본채에서 부부와 두 자녀가 각각 사용하는 세 개의 직육면체가 각각의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건축 자재 역시 가장 기본적인 철재와 콘크리트를 주로 사용했는데, 철재는 근방에 문을 닫은 광산의 폐건물에서 가져온 것을 재활용했고, 현장에서 대규모로 콘크리트를 타설하느라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콘크리트 벽돌을 운반해 외벽을 쌓았다. 지붕은 전체가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생산하고, 본채에서 길게 뻗어 나와 강한 햇볕을 차단한다. 연중 강수량이 300mm밖에 되지 않아 생활용수는 우물을 파고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연결해 지하수를 끌어다 쓴다. 사용한 생활용수는 실내 온도를 유지하는 데 재활용한다. 본채 한가운데에 자리하는 벽난로는 따뜻한 공기를 바로 지붕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배기관을 창고가 있는 지하로 연결해 건물을 구성하는 콘크리트를 전체적으로 데운 후 굴뚝을 통해 연기를 내보낸다. 바닥의 마루와 계단, 문과 거실의 테이블을 만든 목재는 모두 주택을 짓기 전 이곳에 있던 낡은 헛간에서 가져왔으며, 건물 정면의 가로 8m, 세로 3.6m에 달하는 거대한 유리창을 옆으로 여닫는 수레바퀴 역시 오래된 양수 펌프 시설에서 발견한 것이다. 건물은 장식이나 자잘한 재주 없이 효율과 내구성에 집중했지만, 뜯어볼수록 더욱 흥미롭다. 기존에 있던 오래된 기술과 설비를 효과적으로, 또 현대적으로 활용한, ‘맥락’을 이해하고 새롭게 적용한 건축가의 탁월한 통찰 때문일 것이다.
사진 케빈 스콧Kevin Scott/ 올슨 쿤딕, 게이브 보더Gabe Border
친환경 건축의 기준, 네트제로 에너지 건축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건물 자체에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춘 건물을 말한다. 자체 생산하는 양이 충분할 때는 외부에 공급하고, 부족한 시기엔 공급받아 연간 생산하는 에너지가 소비량보다 더 크거나 최소한 같아야 한다.
- 주거의 윤리학 스스로 충분한 집
-
친환경이 곧 윤리인 지금,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공간에서 마음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까? 각기 독특한 방식으로 냉난방과 전기 등 생활에 필수인 에너지와 자원을 자급자족하고, 건축적으로도 흥미로운 주거 공간 세 곳을 소개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