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이 열려 있을 때나 닫혀 있을 때나 아름다운 남산골 한옥마을. 전통 조경에서는 안과 밖의 경계를 만들되 경계를 고집하지 않았다.
2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 꽃과 나무를 고를 때는 유행이나 산지를 따지기보다는 자기 취향에 맞는 것으로 다양하게 선택하는 것이 좋다.
3 대나무로 방풍림을 조성한 함양 아름지기 한옥. 대나무는 화계나 담가, 집채 사이에 심었다. 뿌리가 온돌을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집 앞에는 심지 않았다. 함양의 아름지기 한옥은 이런 전통이 반영된 현대 건축이다.
4 우리 조경 정신의 압권을 보여주는 전남 담양 소쇄원 기와. 우리 조상들은 이끼가 자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는 기와처럼 다른 존재를 받아들였다.
우리 조상들은 나무 하나를 심고 배치하는 데도 지혜로웠다. 식물이 지닌 특성을 충분히 살피고 배려한 다음 적당한 곳을 찾아 심었다. 나무가 지닌 품격이나 상징성, 생리, 생태적 특성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 배치했다. 한 종류에 편중해 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꽃과 나무를 조금씩 다양하게 심었다. 자연스러운 절제를 추구했다.
정영선 서안조경 대표는 현존하는 최고의 조경 전문가로 인천국제공항, 선유도공원, 독일에 있는 한국 전통 정원 등 굵직한 조경 작업에 두루 참여했다. 그는 집을 짓기 전부터 그 땅에서 존재하던 것들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조경의 일부로 만드는 자연적인 조경 정신을 추구한다. 정기용, 승효상 씨 등의 건축가들이 ‘전통 조경의 대가’ 로 꼽는 그에게 꽃과 나무에 관해 물어보았다.
꽃과 나무의 격과 의미를 중시한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꽃과 나무의 의미. 우리 선조들은 식물에 품격을 매겨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에 부합되는 식물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형태와 색깔에는 연연하지 않았다. 꽃과 나무의 격과 의미를 중시하는 까닭은 조선시대의 문신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살펴보면 화초 하나하나가 성질이 각각 달라서 습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건조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찬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고, 따스한 것을 좋아하는 것도 있어, 가꾸고 물을 주고 햇볕을 쬘 때 한결같이 옛 법을 따랐고 옛 법에 없는 것은 견문을 살려서 하였다. 날씨가 추워져서 얼음이 얼면 추위에 약한 화초는 토굴 속에 넣어 동상을 방지했다. 이런 뒤에야 화초는 하나하나가 잎이 탐스럽고 꽃도 활짝 펴서 제 참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화초의 천성을 저마다 잘 알아서 거기 맞추었기 때문이요, 처음부터 지혜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다.
아! 화초는 한낱 식물이니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양하는 이치와 거두어들이는 법을 모르면 안 된다. 건습과 한난을 알맞게 맞추지 못하고 그 천성을 어기면 반드시 시들어 싱싱하게 피어난 참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랴, 하찮은 식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랴! 어찌 그 마음을 애 타게 하고 그 몸을 괴롭혀 천성을 어기고 해칠 수 있겠는가, 내 이제야 양생養生하는 법을 알았다. 이로 미루어 이치를 넓혀간다면 무엇을 하든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양화소록>(강희안/이병훈/을유문화사) ‘자서’ 중에서
계절성과 시간성을 즐겼다 기후와 자연 현상에 순응했던 우리 조상은 계절 변화를 굉장히 중시했다. 정원에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어 삼라만상이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즐겼다. 지금은 소나무를 조경에 많이 사용하지만 옛날 시나 그림을 보면 소나무 일변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계절 색이 담긴 꽃이 많이 나온다. 도자기의 그림이나 문양도를 보면 이별이나 사랑을 표현하는 버드나무를 비롯해 살구꽃, 배꽃 등 다양한 꽃과 나무가 그려져 있다. 지금처럼 상록수 일변도가 아니었다.
1 담양 환벽당에서 내다본 정원 풍경. 앞뒤 문을 열면 앞마당과 뒷마당이 하나로 연결된다.
2 함양 아름지기 한옥 마당가에 핀 옥스아이데이지.
3 옛날 시골에는 채송화를 심는 집이 많았다. 사진은 소설 <토지>의 무대인 악양 평사리의 어느 민가에 핀 꽃.
생활에 도움 되는 꽃과 나무를 심었다 꽃과 나무를 단순히 관상용으로만 심었던 것은 아니다. 음식이나 의복의 색깔을 내기 위한 색소 재료로 사용했고 그 열매는 먹을거리로 이용했다. 가난한 서민들은 마당 한구석에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꽃과 나무를 심었다. 제사에 쓰는 대추나 모과, 감, 살구, 오얏, 앵두, 고욤나무 등 과실수를 심어 먹을거리로 이용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좀 있는 집에서는 뒤뜰에 머루를 심고, 뒷산에 뽕나무를 심었다. 뽕나무를 심어 양잠을 치는 한편 뽕잎으로는 장아찌를 담가 먹었다. 남부 지방에 사는 여인들은 석류를 심어 요리용 색소로 사용했다. 노란 물을 내기 위해 치자를 심고, 빨간 색소를 내기 위해 맨드라미를 심고, 집 뒤에 대나무를 심어 방풍 효과를 얻고, 미용 효과를 위해 봉숭아를 심었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집에서는 마당 모퉁이에 텃밭을 만들었다. 물이 있는 텃밭이라면 토란이나 미나리를 심고, 그렇지 않다면 고추를 심었다. 담벼락 밑에는 종이를 만드는 재료가 되는 닥나무를 심는 식이었다. 세종대왕은 실생활에 필요한 나무가 필요하다며 뽕나무, 닥나무, 은행나무 심기를 권유했다.
하지 말라는 것을 따르고 지켰다 전통 정원의 마당에는 나무를 심지 않았다. 마당에 나무가 있으면 행사를 치르거나 농사일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또한 기와 근처에 큰 나무를 심으면 나무 이파리가 기와 위로 떨어져 배수를 어렵게 하고, 기와가 젖은 채로 겨울을 맞이하면 동파될 수 있어 이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우물가에는 벌레가 꼬이므로 봉숭아를 심지 않았고 담 주변에는 동물들이 넘나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관주나 측백나무를 심었다. 장독대 주변에는 뱀이 싫어하는 뱀풀이나 공작초를 심어 여인들의 신변을 보호했다.
최고 품격의 꽃과 나무 매화, 국화, 연, 대나무는 뛰어난 운치를 자랑한다 하여 꽃과 식물 중의 으뜸으로 꼽힌다. 이들 꽃나무에 대해 강희안이 품평을 했다. 매梅 강산의 정신이 깃들어 있고, 태고의 모습이 드러난다. 봄에 피는 매화를 고우古友라고 하고, 섣달에 피는 매화를 기우奇友라고 한다. 소동파는 매화를 얼음 같은 맑은 혼과 구슬처럼 깨끗한 골격이라고 일컬었다. 국菊 혼연한 원기는 그지없는 조화로움이다. 꽃 가운데 성인이고, 성聖의 지경에 넉넉히 들어갈 만하다. 국화를 일우逸友라 한다. 연蓮 깨끗한 병 속에 담긴 가을 물이라고 할까, 비 갠 뒤 하늘의 달빛이라고나 할까, 훈훈한 봄볕과 함께 부는 바람이라고나 할까. 연을 정우淨友라 한다. 죽竹 청우淸友라 하고 차군此君이라 한다. 대의 품종이 매우 많지만 분절오죽粉節烏竹, 곧 마디가 분가루를 묻힌 것처럼 희고 몸이 까맣게 된 것이 가장 귀하다. 대는 그늘을 좋아해서 심은 뒤 보름 동안 햇볕을 쬐지 않으면 곧잘 산다. 출 처 <양화소록>
꽃이 피는 달력
1월 매화, 동백, 두견화 2월 매화, 홍벽도, 춘백, 산수유 3월 두견, 앵두, 살구, 복숭아, 배, 해당, 정향, 능금, 사과 4월 월계, 산단, 왜홍, 모란, 장미, 작약, 치자, 철쭉, 상해당 5월 월계, 석류, 서향화, 해류, 위성류 6월 석죽, 규화, 사계, 목련, 연꽃, 목근, 석류 7월 목근, 백일홍, 옥잠화, 전추라, 금전화, 석죽 8월 월계, 백일홍, 전추라, 금전화, 석죽 9월 전추라, 석죽, 사계, 조개황, 승금황, 도주홍황, 금사오홍 10월 소주황, 금원황, 취양비, 삼색학령 11월 학령, 소설백, 매화 12월 매화, 동백
출처 <양화소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