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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공간과 재료로 지은 명상의 집
자연의 빛과 소리가 공간을 완성하고, 건물은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스페인, 이탈리아, 체코, 미국의 휴식과 명상을 위한 집 네 곳.

한없이 투명한 초록
스페인, 히든 파빌리온

사진 제공 이마헨수블리미날(www.imagensubliminal.com)
붉게 녹슨 내후성耐朽性 철제 골조, 유리 외벽, 벚나무 내부 마감재. 스페인 마드리드 근교 고급 주택지 라스로사스Las Rozas에 자리한 히든 파빌리온은 오직 세 가지 재료로만 지었다. 최소한의 재료를 활용해 현대적으로 설계한 이 집을 온전하게 완성하는 건 유리 건물을 둘러싼 무성한 초록 숲. 사방이 유리로 뚫려 있지만 멀리서 보면 히든 파빌리온이라는 이름 그대로 숲속에 숨어 있는 듯한 이중적 면모가 흥미롭다. 건축주는 실제로 거주하면서 자연 속에서 명상과 휴식을 즐기고 숙고할 수 있는 공간을 원했다. 스페인 건축가 호세 루이스 파넬라스가 설계한 복잡한 구조는 이곳에서 자라는 나무를 한 그루도 베지 않고 건물을 완성하기 위한 것. 2층 한쪽을 경사지게 만들어 2백 년 된 참나무의 가지가 충분히 뻗어나갈 수 있게 했으며, 주변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도록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로 테라스를 허공으로 띄웠다. 사방을 유리로 마감했지만, 주변의 울울창창한 숲이 커튼 역할을 한다. 계절의 변화와 노을, 일출, 단풍이 연출하는 드라마틱한 광경을 언제나 만끽할 수 있는 공간. 빛과 자연의 변화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그야말로 숲과 함께 자라고 숨 쉬는 집이다.


아름드리 밤나무 위에서 꾸는 꿈
이탈리아, 명상 트리 하우스



사진 제공 니코 마르지알리
이 아담한 트리 하우스가 자리한 브라차노Bracciano 호수는 로마시 경계에 위치한 호수로 고대 로마 시대부터 휴양지로 활용해온 지역. 조류와 버섯, 견과류 등 야생 식재료가 풍부한 미식의 명소이기도 하다. 이른 가을이면 밤송이 수만 개가 떨어져 독특한 경관을 연출하는 이곳의 오래된 아름드리 밤나무에 건축주는 오랫동안 자신과 친구들이 명상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트리 하우스를 꿈꿨다. 용도 그대로 명상 트리 하우스라고 정직하게 이름 붙인 이 공간은 구조 역시 간명하다. 테라스와 내실은 모두 정사각형, 하나의 계단을 통해 내실과 테라스에 모두 접근할 수 있다. 내실 아래 ‘ㅠ’자 모양으로 덧댄 나무 기둥이 대부분의 하중을 지지하고, 나머지는 밤나무에 철제 케이블을 연결해 해결했다. 골조와 테라스는 낙엽송으로, 내실 외벽은 타타주바tatajuba라는 단단한 브라질산 목재로 마감해 적갈색을 더했다. 여닫이 방식으로 열리는 내실의 창문은 공간을 외부 테라스로 확장하며, 천창을 통해 낮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꼭대기를, 밤에는 별과 달을 감상할 수 있다. 한쪽 벽에 길게 설치한 벤치 공간 외에는 텅 비어 어떤 용도로든 사용할 수 있다. 쿠션을 가득 깔아놓고 그저 누워만 있어도 좋겠다.


풍경의 일부
체코, 블랙 티 하우스



사진 제공 A1 건축사 사무소
체코 북서부 체스카리파Ceska Lipa시 근교의 소나무 숲을 마주한 자연 정원, 남쪽 끝 연못의 웃자란 풀로 가득한 모랫둑 위에 블랙 티 하우스Black Tea House가 자리한다. 가정집을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의 한쪽 끝자락에 자리한 조그만 공간에선 이름 그대로 홀로 차를 마시며 이곳을 찾아온 손님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거나, 주변 자연 풍경과 연못 속 물고기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불에 검게 그을린 낙엽송으로 외벽을 마감해 ‘블랙 티 하우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실 천장이 독특한데, 용설란의 일종인 사이잘잎에서 섬유를 뽑아 만든 밧줄을 원형으로 엮어 마치 털실로 짠 모자처럼 천장 내벽에 붙인 것. 빛이 들어오도록 천장 한가운데에 뚫은 구멍에서 밧줄이 내려와 바닥의 찻주전자를 연결한다. 동서양의 소박한 미감이 섞여 만들어낸 독특하고 인상적인 공간. 회반죽으로 마감한 한쪽 벽 외에는 삼면을 모두 미닫이문으로 여닫을 수 있어 자연의 정취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다실 문을 닫으면 대청마루처럼 세 방향이 활짝 열린 공간으로 변한다. 이곳을 설계한 A1 건축사 사무소는 옥상에도 잔디를 깔아 어느 각도로 보아도 이 건물이 풍경의 일부가 되도록 배려했다.


호수의 빛과 소리
미국, 빅터 명상 오두막



사진 제공 제프리 S. 포스
마치 거꾸로 뒤집어 붙인 듯한 빅터 명상 오두막의 V자 지붕은 마주한 호수 쪽으로 경사가 져 빗물을 호수로 되돌려 보낸다. 근방에 자리한 일리노이 주립대 교육학과 교수인 건축주는 주변 경관을 바라보며 차를 즐길 수 있는 고즈넉한 다실을 원했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 맞은편에 세로로 길게 낸 통창으로 주변 숲이 펼쳐지고, 다다미를 깐 다실에 앉으면 호수 쪽 벽 하단에 난 가로로 긴 창을 통해 수면이 빛을 반사한다. 지붕을 통해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볼 수도 있다. 그 소리 역시 일품일 터. V자 지붕과 벽 사이에도 가로로 창을 내 은은한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설계했다. 건축주와 같은 학교에서 건축과 교수로 재직하는 건축가 제프리 S. 포스는 흰 벽과 다다미 바닥 외에 아무런 장식이 없지만 주변의 자연과 빛에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고요하지만 생동감 넘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가로와 세로라는 간단한 비율을 통해 푸른 나무와 빛나는 수면, 자연광을 실내로 효과적으로 끌어들인 것. 집 대신 매일 밤 이곳에서 잠을 잘 정도로 흡족해하는 건축주는 이곳의 완벽한 비율과 내부로 스며드는 섬세한 자연광이 마치 그리스 신전 안에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글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